해병대는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적진에 침투하여 교두보를 확보한 뒤 육군에게 공격로를 제공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외상외과의 역할이 바로 해병대와 비슷하다. 중증외상 환자를 외과적으로 처
치하여 목숨을 확보한 뒤, 다른 진료과목의 전문의들이 달려들어 해당 부위를 살려내도록 길을 터주
는 것이다. 그래서 외상외과가 시행하는 수술을 ‘가망 없어 보이는 수술’이라고 한다. 해병대와 외상
외과가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하면 반전의 기회는 없다.
흔히들 외상외과 쪽을 보고 먼저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외
상외과는 24시간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다. 또한 시
스템은 일개 부서나 의사 혼자서 만들 수도 없다. 당연히 시스템은 행정과 의료를 잘 아는 부서에서
종합적인 판단 아래 치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국종 역시 이러한 식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일이
닥치면 저도 모게 새로운 방법으로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했고 이것이 시스템으로 정착되는 경우가
많았다. 외롭고 힘든 개척자의 길이다.
오만까지 날아가 석해균 선장을 이송해온 뒤 이국종에게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해외 파병인
력이 2000명을 넘어섰다는데, 전투 중 그들 가운데 중증외상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이들을 안전하게 후
송하여 살려낼 국가적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법령도 제정되어 있지 않았고 국방부와
보건복지부 사이에 공조체계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법을 만드는 국害의원들은 표에 눈이 멀어 국
민의 안위는 애당초 안중에도 없고, 공무원들은 돈 안 되는 일에는 손을 쓰지 않는 무사안일과 복지
부동에 빠져 있다. 인구 5천만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선 나라에 에어 앰뷸런스 한 대 없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니 오지랖 넓은 이국종이 걱정을 대신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국종은 해군본부로 윤기희 대령을 찾아갔다. 대잠초계기인 P-3 오라이온의 조종사인 윤기희는 해
군 전력계획과 과장이었다. 이국종이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고 함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기초훈
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하자 윤기희는 흔쾌히 동의하고 즉각 공조에 나섰다. 국가적 시스템이 없을 뿐
이지 개별적으로는 군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된다는 자세도 되어 있고 어느 나라 군인보다 훌륭한
자질과 실력을 갖춘 인재가 도처에 즐비하다. 논의 끝에 포항에 위치한 해군 제6항공전단에서 훈련
을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해군 내의 모든 협력은 윤기희가 총괄하기로 했다. 이국종으로서는 각종 의
료장비가 헬기보다 높은 고도에서 훨씬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오라이온에 적응할 수 있는지를 테스
트해볼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이국종이 상위 보직교수에게 계획을 설명했을 때, 그는 격려도 만류도 하지 않고 그저 알았다고만 했
다. 오래 전부터 이국종과 아주대병원의 관계는 매사가 이렇게 진행되어왔다. 격려하기에는 병원에
도움은커녕 적자만 가중시키는 일들이었고, 만류하기에는 보는 눈이 많아 병원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이국종의 유명세가 위력적이어서였다. 보직교수는 자신의 윗선에도 ‘이국종이 해군과 시
험비행을 실시한답니다’ 하고 통보만 할 터였다. 그러면 그 윗선 역시 같은 어조로 병원장을 거쳐 재
단이사장에게까지 계통을 따라 통보할 터였다.
이국종이 모든 장비를 갖춘 채 2명의 전담간호사 및 김태연과 함께 경기 소방항공대 헬기를 타고 포
항에 있는 해병부대에 도착했을 때, 해군 항공전단장 유성훈 제독이 활주로까지 나와 일행을 맞이했
다. 해군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청신호였다. 해군은 의사로서 이국종의 자세와 진정성, 그
리고 해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매우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있었다. 유성훈은 해군항공대의 링스
헬기 조종사 출신으로 온갖 험한 일을 도맡아온 해군의 이국종이었다. 그 역시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긴 역전의 용사로서 이국종과 마찬가지로 온 몸에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다닌다. 유성훈은 윤기희
를 배석시킨 채 이국종 일행에게 식사를 대접하면서 구체적인 훈련 스케줄을 점검했다. 훈련 장소는
독도 상공으로 정했다.
이른 아침, 이국종은 팀원들과 함께 오라이온에 동승하여 장비 시험에 나섰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윤
기희 대령도 시험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함께 오라이온에 올랐다. 오라이온의 거친 비행에 일부 장비
가 멈추거나 오작동을 반복했다. 오라이온은 헬기에 비해 진동은 덜했지만 소음은 비교할 수 없을 정
도로 헐썩 더 컸다. 자진해서 훈련에 동참한 경기도청 주무관 김태연이 모든 시험결과를 면밀하게 체
크하여 기록으로 담고 있었다. 이국종도 시험결과를 지켜보며 수리해서 사용할 장비와 아예 배제할
장비를 구분하여 별도로 기록해두었다.
울릉도 인근 영해에서 이동 중 환자에게 장비를 부착하거나 교체하는 시험을 하기 위해 오라이온이
가파르게 속도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왜국 해양경비대 함정이 독도를 향해 우리 영해로 접근해오고
있는 항적이 오라이온의 레이더에 잡혔다. 윤기희 대령은 조종사들에게 즉각 차단기동에 나서도록
명한 뒤 이국종과 팀원들에게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팀원들로서는 비상
사태에 대비하는 또 하나의 훌륭한 시험기회가 될 터였다. 오라이온은 기수를 동쪽으로 돌린 뒤 왜국
의 해양경비대 함정을 향해 급강하했다. 좌측 창문을 통해 독도의 바위절벽이 확 다가왔다가 사라졌
다. 오라이온이 선체에 스칠 듯 시위기동을 하자 왜함은 기겁을 하여 어푼 뱃머리를 돌렸다. 아마도
오라이온의 빠른 출동에 적잖이 놀랐을 터였다.
오라이온이 급강하하자 기체가 요동을 치면서 양쪽 날개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와류에 휩쓸려 부르르
떨렸다. 해면에 닿을 듯하던 오라이온은 이내 기체를 급상승시켰다. 이국종의 칼솜씨에 못잖은 조종
술이었다. 덕분에 팀원들은 평생 경험해보기 힘든 기회를 맞아 각종 장비의 성능을 시험하고 전술기
동에 대처하는 요령을 어느 정도 숙지하게 되었다. 와중에 모니터 한 대가 오작동을 일으켜 즉석에서
원인 점검을 실시할 수 있었다. 기내의 전원 공급 상태는 완벽했다. 외상센터가 갖추고 있는 장비는
모두 미제여서, 역시 미국산인 오라이온과 모든 게 잘 맞았다. 게다가 왜국 함정까지 나타나 기동훈
련의 효과를 극대화시켜주었다.
이렇게 하여 이국종은 정부가 하지 않고 있는 시스템 하나를 새로 만들어 해군과 공유하게 되었다.
해외에서 또다시 청해부대가 펼친 ‘여명의 작전’ 같은 긴급사태가 벌어진다면, 해군은 아주대병원 외
상외과 팀을 불러 함께 현지로 출동할 수 있는 매뉴얼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매일 야탑역까지 걸어서 양재로 나가는 일상의 걷기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지만 한수회 의 참여를 몇달만에 합니다. 허리와 허벅지 근육통이 간간히 밀려와 오늘 북한산 진달래 능선의 산행이 염려 되지만 천천히 후미로 쉬엄쉬엄 따라갈 작정 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