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베풂과 나눔을 실천하면서 진퇴양난에 빠지곤 한다.
이렇게 베풀고 나눈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고통 받는 이를 다 구제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이 세상의 어느 한 귀퉁이
아주 작은 마을 고작 한두 개,
내지는 몇몇 사람에게 밥 몇 그릇 나누어 주거나,
교육을 뒷받침해 주거나, 아무리 도움을 준들
겨우 그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고 만다.
아무리 우리가, 내가 열심히 돕는다고 한들
그것은 너무나도 미약하여 이 세상을 밝히는데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아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내가 베푼 아주 작은 나눔의 행위가
그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아무리 작은 나눔과 베풂일지라도
이 전 우주법계를 감동시키고,
한 줄기 커다란 빛과 사랑으로써
우주법계에 기록되고 공명하여
더 많은 자비와 나눔으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갈 수도 있다.
그 어떤 작고 보잘 것 없는 보시일지라도
그것은 우주법계를 변화시킨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고도 부드럽게
이 세상을 바꾸어 내는 무한한 권능을 담고서 말이다.
왜 그럴까?
내가 한 것은 고작
제3세계 어린 아이 한 명을 도운 것 뿐인데,
네팔이나 미얀마의 학교를 위해
고작 1만원을 베푼 것 뿐 인데,
법보시 서적 고작 몇몇 권을 베풀었을 뿐 인데,
그것이 어떻게 이 우주법계를
강력하게 자비의 빛으로 물들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물질의 차원이 아닌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질적 차원에서 내가 베푼 것은
고작 몇 만원이고,
한두 명을 도운 것 뿐 이고,
자원봉사를 며칠 한 것 뿐 이지만,
정신적인 차원에서는 어떨까?
우리는 한 사람을 도울 때
뿌듯한 행복감과
도와줄 수 있었다는 기쁨과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느낌,
나의 작은 보시가 누군가를 배부르게 했다는 풍요의 느낌 등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행복한 느낌과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도울 때 중요한 것은
사실 물질적인 나눔에 있다 기 보다는
도울 때의 그 행복한 느낌, 풍요로운 느낌,
상대방을 도울 수 있었다는
자신에 대한 대견하고도 뿌듯한 느낌,
누군가를 내가 돕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다는 귀한 감정
바로 그 느낌과 감정에 있다.
우주 법계가 원하는 것은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풍요와 행복과 나눔의 정신이 깃든
그 마음인 것이다!
우주법계는 그 물질적 보시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보시한 마음, 베풂의 그 풍요의 정신,
나눌 수 있다는 그 넉넉한 마음을 받는 것이다.
우주법계는 그 풍요와 나눔과 보시의 마음을 받아들여
다시금 이 우주법계 곳곳으로 공명시키고
더 많이 나누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서 나간 보시의 마음, 나눔의 마음은
우주법계라는 무한한 정보(情報) 장, 불성(佛性)의 장을 거쳐
이 우주법계 끝까지, 세계 곳곳에까지,
저 아프리카의 굶주린 모든 어린 아이들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인구의 정신 깊은 곳에까지
그 마음을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누군가가 보시를 행할 때,
사실 그 마음은 이 우주 전체에까지 퍼져나가
온 우주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전 세계 모든 인구의,
유정 무정의 전체 생명에게
그 마음은 비국소적으로 전달이 되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의 정보 장으로 이해한다면
우리가 행한 보시의 순수하고도 귀한 마음은
온 우주의 모든 세포, 공간, 존재 전체에
정보로써 입력을 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법계는
우리의 보시 액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시할 때의 그 마음을 기억하여
그 마음의 정보를
온 우주 끝까지 비국지적인 정보 장으로써
펼쳐내는 몫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 한 사람의 보시는 우주적인 것이다.
당신 한 사람이
오늘 행한 아무리 작은 액수의 나눔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작을 수가 없다.
그것은 결코 잊혀질 수 없다.
그것은 곧장 이 우주 끝까지 전달되어
온 우주로 공명이 되고,
모든 생명에게 공명이 되어 공동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없이 고무적인 것은,
바로 그 보시의 마음들이 모이고 또 모이게 되었을 때
이 우주법계는 단순한 수치적인 것을 넘어서서
여러분이 보낸 보시의 마음과 느낌과 감정들을
그대로 우주 곳곳으로 반사해 낸다는 데 있다.
우주는 우리의 보시의 마음을 받아서
고스란히 이 우주로 그 마음을 반사하고 반영하여
더 많은 행복과 나눔과 보시의 정신이
이 우주 곳곳에 뿌리내려지도록 도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시의 액수가 아니다.
우리가 보시할 때 느낄 수 있는 그 느낌, 감정,
고양된 기분, 풍요롭고도 뿌듯한 그 마음,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특히 가르침을 보시하고, 법문을 들려주고,
지혜의 말씀을 나눔으로써
상대방을 영적인 진보와
수행의 성숙으로 이끄는 토대를 베풀어 주었다면
그것은 사소한 물질적 베풂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영겁을 이끄는 정신적인 완성의 토대가 될 것이 아닌가.
사실이 이러 할진 데,
어찌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보시하고 나누며 베풀지 않을 것인가.
별로 없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나누는 순간의,
베푸는 바로 그 순간의 고양된 느낌,
거기에 있는 것이다.
보시는 또 다른 보시를 불러오고,
보시는 또 다른 풍요로움을
불러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당장에
이 우주를 위해
내가 행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보시와 나눔과 사랑을 베풀라.
힘겨워하는 이웃에게,
친구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그것은 결코 그 친구와 나 사이의
개별적인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적인 하나의 사건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행한 그 따뜻한 사랑의 마음은
우주 전체에 따뜻함과 사랑을 가져다주고
공명해주고 반사해 주는 역동적인 자비의 힘이 될 것이다.
나아가 내가 행하는 하루 삶의
모든 순간들이 조건 없는 사랑,
무주상의 보시가 될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밝힌다는 고귀한 발원의
행위가 될 수 있도록,
단 하나의 행위와 말과 생각에서도
보시와 나눔을 실천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법상 스님 <목탁 소리>
첫댓글 향상일로 시인님의 좋은글 "아무리 작은 보시(布施)도 우주적 사거이다 법상스님" 즐감하고 갑니다.
입추 오늘은 소중한 분들에게 좋은일과 기쁜일이 많이 있길 빕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I return to Buddha, Law, and Seung Sambo.
I pray with all my heart that the holy and merciful Buddha's skin and mercy light will be reflected. Thank you.
Holy Father.
Avalokitesvara Bodhisattva ()()()
마하반야바라밀 ~()()()
아무리 작은 보시도 우주적 사건이다 - 법상 스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나무약사여래불 - ()()()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