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큐라의 딸
원제 : Dracula's Daughter
1936년 미국영화
감독 : 램버트 힐리어
출연 : 오토 크루거, 글로리아 홀덴, 마거릿 처칠
에드워드 반 슬론, 어빙 피첼, 길버트 에머리
1931년 유성영화 최초로 만들어진 브람 스토커 원작 '드라큐라' 영화는 벨라 루고시가 드라큐라 백작을 연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도 '프랑켄슈타인' 영화처럼 속편이 있는데 5년 뒤 만들어진 '드라큐라의 딸' 입니다. 프랑켄슈타인과 함께 유니버셜 호러의 대표 캐릭터인 드라큐라 이야기를 사실 한 번만 써먹을 리는 없죠. 영국 해머사에서는 정말 지겹도록 우려먹었는데. 그런데 이 속편엔 벨라 루고시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드라큐라는 반 헬싱에 의해서 죽었지만 그 딸이 존재했던거죠. 이건 마치 해머 영화사의 '드라큐라의 신부'나 과거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으로 만들어진 '드라큐라의 미망인'이 살짝 연상되지요.
이야기의 시작은 반 헬싱 교수가 드라큐라를 처치한 직후입니다. 반 헬싱은 멀쩡한 남자의 가슴에 말뚝질을 한 혐의로 체포되고 아무리 경찰에게 설명을 해도 드라큐라의 이야기 따위를 믿지 않는 경찰에게 통하지 않습니다.(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브람 스토커의 소설과 달리 1930년대, 즉 현대입니다.) 그래서 하마터면 살인 혐의로 교수형을 당할 뻔 했는데 (물론 학계의 권위가 있는 그를 사형시키기 보다는 정신병으로 처리하겠지만) 드라큐라의 시체를 감시하던 경찰이 갑자기 나타난 귀부인의 반지에 홀려 정신을 잃은 사이 시체가 도난당합니다. 시체가 사라져서 증거가 없어졌으니 반 헬싱은 어쨌든 풀려나는데 이후 런던 시내에서 핏기가 빠진 시체가 발견되지요.
1931년 영화가 반 헬싱과 흡혈귀 백작의 대결이라면 이번 영화는 미모의 귀부인과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즉 주인공이 반 헬싱이 아니라 중년의 정신과 의사 제프리(오토 크루거)와 잘레스카 백작녀(글로리아 홀덴)의 이야기입니다. (Countess 는 백작부인 으로 해석되지만 백작의 딸도 그렇게 표기하는데 적당히 뭐라 표기해야 될까요? 백작딸, 백작녀, 그냥 백작부인, 보통 우리나라에서 부인이라고 하면 결혼한 여자를 지칭하니 그건 좀 부적절하고...)
드라큐라의 시체를 빼앗아간 귀부인 잘레스카는 드라큐라의 딸로 이러한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여 시체를 가져다 태우고 인간으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그런데 실패하여 계속 불멸의 존재로 남게 되지요. 그래서 밤이면 흡혈귀 짓을 하게 됩니다. 어느 파티에서 반 헬싱의 수제자인 정신과 의사 제프리를 만난 그녀는 그가 정신치료의 대가라는 걸 알게 되고 자신도 치료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그와 면담을 요청하지요.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인연이 되는데 제프리 에게는 조수 겸 연인 재닛(마거릿 처칠)이 있고 그녀는 은근 잘레스카를 경계하지요. 잘레스카는 제프리와 함께 고향인 트란실바니아 성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그런 황당한 제안을 받은 제프리는 당연히 거절을 하는데, 잘레스카에게 잡혔다가 탈출한 어느 여자가 핏기없는 얼굴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당한 무서운 경험을 되네이고 죽자 제프리는 흡혈귀의 소행을 의심합니다. 그런 와중에 잘레스카는 재닛을 납치해 트란실바니아로 가고, 제프리, 반 헬싱 등이 그녀를 쫓아 트란실바니아로 향하는데...
그다지 유명한 영화도 아니고 감독도 램버트 힐리어 라는 완전 듣보잡 감독인데 의외로 영화가 굉장히 깔끔합니다. 30년대 중반 영화 치고는 꽤 정돈된 세트와 차분한 진행, 분위기 있는 화면을 가진 잘 압축된 70분짜리 영화입니다. 생각 외로 볼만한 작품이지요. 감독을 살펴보니 생소한 B급 감독이지만 무성영화 시대부터 40년대까지 100편도 넘는 영화를 연출한 인물이더군요. 굉장한 다작 감독인데 어떻게 그 많은 영화를 연출하고도 유명한 작품이 없는지.... 그럼에도 굉장히 깔끔한 연출을 하였습니다.
뭐 30년대 유니버셜 호러 영화가 지금 기준으로 그다지 무섭지 않지만 이 영화도 섬뜩한 공포보다는 굉장히 기묘하고 분위기 있는 방식으로 끌고 갑니다. 일단 유니버셜 호러의 흡혈귀는 해머 영화와 달리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죠. 그리고 이 흡혈귀 여인은 반지를 이용해 사람에게 최면을 거는 능력이 있지요. 관에서 나오는 장면 같은 것은 있지만 그다지 섬뜩한 장면이 많은 건 아니고, 분위기 있는 여인과 정신과 의사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집니다. 벨라 루고시의 영화가 트란실바니아에서 런던으로 향한 내용이라면 이 작품은 런던에서 시작하여 트란실바니아에서 마무리됩니다. B급 소품일 것 같지만 이런 내용이다 보니 생각보다 제작비는 많이 들어갔습니다. 뱀파이어 여인을 돕는 인간 조수를 연기한 어빙 피첼도 마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연상하듯 체격이 크고 기괴한 느낌을 주어서 영화의 분위기에 잘 맞았습니다. 제프리의 연인을 연기한 재닛 캐릭터도 흥미롭고.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대체로 인상적이고 괜찮습니다. 이 정도면 B급 장르인 30년대 공포물 치고는 꽤 잘 만든 영화입니다. 하긴 공포물이 B급 대우를 받지만 잘 만든 유니버셜 호러 영화들이 제법 많죠. 그래서 30년대 미국 영화사에서 유니버셜 호러 장르는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할 수 있는거죠. 벨라 루고시, 보리스 칼로프, 론 채니 주니어가 모두 안 나오는 영화 중에도 제법 괜찮은 작품이 있는 겁니다.
'프랑켄슈타인' 시리즈도 1편보다 2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가 더 괜찮았는데 제 개인적으로 '드라큐라의 딸'은 벨라 루고시의 '드라큐라'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영화사에서는 벨라 루고시의 '드라큐라'에 대한 이야기만 언급되지만, 즉 저평가 된 덜 알려진 속편이지요. 30년대 유니버셜 호러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무난히 추천할만한 작품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벨라 루고시의 몸값이 오르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가 근사하게 부활하는 속편이 등장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ps2 : 1931년 '드라큐라'에 나온 배우 중에서 반 헬싱 역의 에드워드 반 슬론은 같은 역할로 재출연합니다. 그래서 속편의 분위기가 나오지요.
ps3 : 오손 웰즈 주연 '내일은 영원히'의 감독인 어빙 피첼이 흡혈귀 백작녀의 조수 산도르를 연기합니다. 배우로서 제법 기괴한 분위기를 잘 냈는데 당시 이미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였습니다.
ps4 : 주인공인 제프리 의사 역의 오토 크루거는 '타잔 사막으로 간다'에서 비어헤리라 마을을 장악하려는 악당을 연기한 인물이지요. 분위기 있는 흡혈귀 여인을 연기한 글로리아 홀덴은 좀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실제로 33세에 출연했고, 30세가 넘어서 데뷔한 배우라서 그다지 유명배우가 되진 못했죠. 재닛 역의 마거릿 처칠이 훨씬 젊은데 데뷔는 더 빨랐고 존 웨인의 초기 대표작 '빅 트레일(1930)'에서는 여주인공도 했습니다.
[출처] 드라큐라의 딸 (Dracula's Daughter, 1936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