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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3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주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새 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렘 31).
이 언약은 죄와 허물로 인하여 다시 변경하거나 갱신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언약입니다.
그간 이스라엘과 언약을 3번씩(시내산, 모압, 세겜 언약)이나 갱신하며 언약을 하였지만 그 언약은 옛 언약이었습니다.
이제 완전한 언약인 새 언약은 우리 예수님께서 성취하셨습니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렇게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는 새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여 옛 언약 시대와 같이 나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구원 곧 영생을 얻음을 믿습니다.
이 시간 나의 의는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아들을 의지하여 담대히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내 심령에도 완전한 빛이신 우리 주님으로 가득 채워주옵소서.
어둔 구석구석을 비춰 더럽고 추한 것들을 밀어내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겔 34:25-31
제목 :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25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26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27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에의 나무를 꺾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겠고
28 그들이 다시는 이방의 노략 거리가 되지 아니하며 땅의 짐승들에게 잡아먹히지도 아니하고 평안히 거주하리니 놀랠 사람이 없으리라.
29 내가 그들을 위하여 파종할 좋은 땅을 일으키리니 그들이 다시는 그 땅에서 기근으로 멸망하지 아니할지며 다시는 여러 나라의 수치를 받지 아니할지라.
30 그들이 내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며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고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31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나의 묵상
겔 34:1-16절까지는 거짓 목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라면, 17절 이후는 같은 양들이지만 양들 중에서도 살진 양과 깡마르게 야윈 양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내용이다.
20절에서 말하는 살진 양은 왕이나 지도자들이 아니라 유력한 중간 권력층이나 부유한 상인 계층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들의 비호 아래 가장 연약한 자들을 착취하여 자기들의 배를 부르게 하고 또 자기보다 위에 있는 계층들에게 뇌물을 상납하는 그런 자들을 말한다.
따라서 이들은 어찌 보면 거짓 목자들보다 더 악한 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7절의 양과 양, 숫양과 숫염소는 딱히 누가 살진 양이나 염소고, 누가 야윈 양이나 염소인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이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18-19절에 잘 묘사되어 있다.
(18-19) 너희가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살진 양들은 좋은 풀밭에서 풀을 충분히 뜯어 먹는다.
하지만 자신의 배부른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남은 풀을 모두 짓뭉개서 자기들보다 약한 양들이 먹지 못하도록 악한 짓을 행하곤 하였다.
또한 깨끗한 물을 실컷 마셨으면 자기보다 약한 양들도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하건만, 그들이 마시지 못하도록 다 휘저어서 흙탕물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약하고 야윈 양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진흙탕이 된 구정물이라도 먹어야 했다.
또한 살진 양들은 자기들의 옆구리와 힘 있는 어깨로 약한 양들을 밀어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서 밖으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참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실 때 얼마나 화가 나며, 또한 가여우셨을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살진 양과 야윈 양 사이에서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살진 양으로 묘사되는 중간 계층의 고관들은 유다가 바벨론에 패망하기 직전에도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친 애굽 정책을 고수한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보다 애굽을 더 믿고 애굽이 자기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게다가 부유한 상인 계층의 살진 양들은 가난하고 억눌린 일반 백성들을 압제하고 그들로부터 온갖 착취와 약탈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 역시 유대인들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시대 상황을 보면서 그 시대의 패권자들에게 결탁하여 자신들의 이득을 추구하는 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죽어가는 약하고 야윈 양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해 내셔서 더 이상 약탈당하지 않도록 하신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바로 그들을 위해 한 목자를 세우실 것인데 하나님의 종 다윗을 세우신다고 하신다.
그가 연약하고 야윈 양들을 기르고 돌보는 참 목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목자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종 다윗은 다름 아닌 당시에는 장차 오실 메시야요, 오늘 우리들에게는 다시 오실 메시야이며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를 세운다.
(시 94:15)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악한 자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고 말씀 앞에서 주님과 함께 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시고 의를 세우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하면서 버틸 때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을 진멸하시는 것이다.
약한 자요 야윈 양들이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을 단련하여 정금 같이 나오도록 하실 것이다.
단순히 약하고 야위었기 때문에 그들이 불쌍해서 하나님이 돌보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비록 약하나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시는 것이다.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인 환난을 통하여 받은 연단은 정금 같이 나올 수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이다.
환난과 무덤의 상황은 계속될지라도 그 심판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의를 세워주시면, 의의 결과 화평이 임한다.
이 화평은 나도 알 수 없는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다.
이런 자는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에서 조용히 쉴 수 있다.
(사 32:17-18)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현실적으로, 있는 자들과 강한 자들에게 당하는 핍박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쓰리다.
그러나 그런 아픔 속에서도 복 있는 자의 모습은 다름 아니라 말씀과 함께 하는 자이다.
(시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이처럼 주야로 주의 말씀과 함께 하는 자가 복 있는 자의 모습이다.
이런 자는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다고 하였다.
(시 1:3b)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서 말하는 형통은 세상적 육신적으로 나의 뜻, 나의 계획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말씀과 함께 주님의 품에 있을 때 어떠한 회오리바람이나 폭풍우가 닥쳐와도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있다.
그것이 바로 형통이다.
이곳이 천국이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이 천국을 맛보는 현장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천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자리는 주님의 재림을 통하여 성취된다.
하지만, 아무리 재산이 많고 건강하고 권세가 높다 할지라도 주의 말씀과 함께 하지 않는 자를 가리켜 성경은 악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중심이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 1:4-5)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의인은 말씀과 함께 하니까 심판을 견디고 하나님의 심판임을 인정하여 의를 세우고 평강 가운데 거할 수 있다.
그러나 악인은 말씀이 없으므로 항상 이 세상에 그들의 시선을 맞추고 살아간다.
있으면 선이고 없으면 악, 강하면 선이고 약하면 악, 높으면 선이고 낮으면 악, 이런 구도로 모든 것을 보기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은 항상성이 없는 무상성이다.
따라서 있다가 없고, 또 없다가 있는 그런 존재를 믿고 바라는 것은 악인들의 표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약하고 야윈 양들을 돌보시며 그들을 친히 인도하시는 것은 이런 심판을 견디며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잘리며 깨진 영적 장애인들을 돌보시겠다는 것이다.
주를 위하고 복음을 위하여 깨지고 상처가 난 그들, 육신적으로는 가장 연약해 보이고 불쌍해 보이지만, 그런 자들이야말로 주님의 눈에는 가장 존귀한 자들인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내며, 푸른 초원에 거하면서 수풀 가운데서 평안히 잘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25절).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복을 주시는데 때를 따라 내리는 소낙비, 즉 복된 소낙비를 내리신다(26절).
그 소낙비는 하나님이 부으시는 최고의 소낙비요, 은혜의 소낙비이다.
그 복되고 은혜로운 소낙비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고 땅은 소산을 내며 그 땅에서 평안히 거할 수 있다.
이곳이야말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으로 거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곳이 바로 창세전의 세계요, 진짜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이며, 영생의 나라, 사랑의 아들의 나라인 것이다.
결국은 이런 자와 맺은 언약이 이루어지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가 되며,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요 또한 아버지가 되시는 것이다.
(31)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백성, 아들)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던 일명 모태신앙인이다.
하여 예수라는 이름이 나에게는 너무나 친근했으며 교회가 나의 놀이터요 집이었다.
그만큼 교회 그리고 성경이 나의 전부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나였지만 복에 대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복이란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공부도 잘 해서 항상 상위 클래스를 점유하며 사업도 잘 하여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상위에 랭크되어야 했다.
자녀들도 다들 잘 되어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학을 갈 때 서울대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그러나 두 아들이 모두 성악을 하고 서울대에 응시를 하였으나 합격을 하지는 못했다.
젊은 나이에 학원이라는 사업을 했다.
이 학원도 잘 되어서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내가 목회를 하기 위해서 학원을 접었다.
어찌 되었든 이 땅에서 하는 일은 나름대로 잘 되었다.
그렇게 학원을 잘 운영하다가 신학을 한다고 해서 학원을 접는다고 하니까 주변의 지인들이 다 말렸다.
하지만 나는 학원이 아무리 잘 돼도 그보다 더 차원이 높은 신학을 위하여 학원을 접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신학을 하고 교회에서 전도사로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및 청년부를 맡아서 사역을 하였다.
그럴 때 내가 맡은 사역부서마다 아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렇게 나는 사역에도 성공을 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 은혜라고 생각했다.
또한 교회를 개척하고 불과 1년여가 지났을 때 무려 100명이 넘는 성도들을 모았다.
이 때 나는 성도를 많이 모으는 것이 복인 줄 알았다.
이렇게 나는 복을 많이 받은 것이다.
그런데 개척 후 7-8년이 지날 무렵 성도들과의 관계가 어그러지기 시작하였다.
직분자를 뽑는 문제를 비롯해서 직원을 임명하는 문제 등 크고 작은 일들이 두드러져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거치는 돌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전에는 전하지 않았던 복음을 전하는 일 때문에 교회에 큰 파란이 일기도 하였다.
그동안에는 지극히 일반적인 말씀을 전했었다면 복음을 알고 난 후로는 우리가 생각하던 일반적인 말씀이 아니라 그와는 전혀 정반대의 말씀을 전하다 보니 그 말씀에 대한 거부감이 극도로 거셌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앙 양심과 목회의 윤리상 타협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곧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어 그들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최고의 부를 구가하게 하는 왕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며 맞이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메시야는 바로 이런 정치적으로 해방을 주고, 경제적으로 부요함을 주며 사회적으로는 정의를 가져다 주는 다윗 왕과 같은 메시야였다.
이를 가리켜 민속 메시야라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진짜 주기 원하시는 메시야는 그런 왕이 아니었다.
참 메시야이신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 이유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다.
그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시기 위하여 당신이 죄가 되어 죽으신 것이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 왕 같은 메시야를 원하여 정치적인 해방과 경제적인 부요함 그리고 사회적인 정의를 간절히 구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으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며 병든 자를 강하게 할 것이다(16절).
이들이 바로 거룩한 불구자들이다.
팔이 떨어져 나가고 발은 절뚝거리며 눈은 하나가 빠져 애꾸눈으로 사람들이 볼 때는 비참하고 불쌍한 자들이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한 영적 군사들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용사이다.
이들이 비록 연약하여 힘을 쓰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사자 곧 군대대장을 세워서 그들과 싸우게 하신다(수 5:13-15).
그 자리에 함께 있을 때 그 승리는 곧 나의 승리가 된다.
그 때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려주시는 것이다.
그 소낙비로 인하여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은 소산을 낸다.
그렇게 그 땅은 평안을 이루게 된다(27절).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지극히 육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을 하고 높은 자리에 앉으면 하나님의 복이 임했다고 자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는 나를 심판하셨습니다.
그 심판은 진멸이 아니라 징계임을 믿습니다.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나를 고난의 무덤으로 이끄셨습니다.
또한 그 무덤 안에서 주님과 함께 말씀으로 교제와 사귐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 교제와 사귐이 복음으로 연합하는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가 오늘도 더 깊이 주님께 나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생각과 뜻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님의 뜻을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주의 자녀로 삼아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