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대량살상 막은 ‘지혜의 몸싸움’
씨름은 오랜 역사를 지녔다. 이미 고구려 벽화에서부터 고도로 발달한 씨름의 다양한 형태가 엿보인다. 무용총의 각저도(角抵圖·왼쪽 사진)는 현대 씨름과 같이 서로의 허리춤을 잡고 겨루는 모습이다. 고구려인이 서역에서 온 호인(胡人)과 결투를 벌이는데 선수들의 오른편에는 심판도 자리했다. 씨름은 곧잘 국제 경기가 돼 일종의 대리전의 의미도 띠었다. 오른쪽 사진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중국 전국시대 호인들의 씨름상(像). 국립중앙박물관·강인욱 교수 제공
《‘박치기왕’ 김일(1929∼2006)과 ‘씨름왕’ 이만기, 그리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올림픽의 태권도까지. 격투기는 팍팍한 우리 삶의 활력소였고 좋은 볼거리였다. 오로지 자신의 체력과 두뇌를 동원해서 싸우는 레슬링은 인간의 탄생과 함께해 온 가장 원초적이며 오래된 스포츠이다.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을 해소하면서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체력을 연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격투기의 역사, 그리고 씨름으로 대표되는 우리 무술의 역사를 살펴보자.》
고구려 벽화 속 씨름
레슬링은 별다른 무기 없이 인간의 육체적인 힘으로 겨룬다는 점에서 가장 원초적이며 널리 퍼져 있는 스포츠다. 유라시아 초원 일대에서는 격투기가 널리 성행했다. 구석기 시대 이래 유라시아 일대의 암각화에는 서로 주먹으로 겨루는 전사들의 모습이 흔히 보인다. 레슬링은 전 세계 곳곳에 서로 비슷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성경에서 야곱은 천사와 씨름을 해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스의 장례를 지내면서 씨름 경기를 벌였다. 어디에서 기원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원초적인 사람들의 놀이인 셈이다.
한국의 씨름도 레슬링의 일종이다. 2018년에 남북한이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공동으로 등재한 씨름의 영문 명칭이 ‘Korean wrestling’인 이치이다. 이미 고구려 벽화에도 매우 발달한 형태의 다양한 씨름이 묘사되어 있다. 벽화에 묘사된 씨름은 지금 한국의 씨름같이 서로의 허리춤을 잡고 있는 모습, 일본의 스모나 몽골의 씨름처럼 서로 떨어져서 경기를 하는 모습이 모두 보인다. 이를 한문으로는 각각 각저(角抵)와 수박(手搏)이라 불렀다.
심지어 고구려의 씨름은 국제 경기였다. 무용총에 남겨진 씨름도는 고구려인과 서역에서 온 호인(胡人)들이 서로 결투하는 모습이다. 이 국제 타이틀 매치의 옆에는 심판도 있고, 왼쪽에는 뭔가 신령스러운 모습을 한 나무도 늘어져 있다. 이 고구려의 씨름은 흉노 같은 유목민의 풍습과 깊은 관련이 있다. 기원전 2세기경에 만들어진 흉노의 허리띠에 새겨진 씨름도 비슷한 나무의 밑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목민들은 자기들이 신성시하는 신목(神木) 근처에서 하늘에 올리는 제사와 각종 의식을 벌였다. 그 의식의 하이라이트는 각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벌이는 다양한 씨름 국제 경기였다. 그렇게 이국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국제적인 경기를 하면서 실크로드를 통해 서로 다양한 기술이 전해졌다. 흉노의 허리띠에 새겨진 상대방의 한쪽 무릎을 잡고 들어올리는 장면은 그리스의 레슬링에도 보인다. 심지어 지금 한국의 씨름에서도 흔히 보이는 기술이다. 수천 년 전부터 동서양은 씨름으로 서로 교류했다는 증거이다
흉노의 ‘씨름 허리띠’는 한나라의 수도인 장안에 왔다가 객사하여서 중국인의 무덤에 묻힌 흉노 사신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다. 유목민에게 허리띠는 자신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액세서리의 역할을 했다. 당시 흉노의 사신은 젊은 시절 씨름대회에서 이긴 것을 기념한 벨트를 차고 중국으로 왔고, 그가 죽자 그의 시신 위에 그 벨트를 놓아서 기렸다.
지금도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씨름은 말타기, 활쏘기와 함께 대표적인 스포츠로 여전히 인기가 높다. 언제나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했던 유목 전사들은 타던 말에서 내려 잠시 쉴 때면 서로 샅바를 잡고 뒹굴며 체력을 키우고 전사로서의 역량도 키웠다. 고구려의 벽화에 남아있는 씨름은 바로 유목민들의 기술을 전수받아 강한 군사력을 키우던 고구려의 지혜가 남아있는 셈이다.
전사들 놀이서 대중오락으로
고대 그리스의 레슬링 모습이 새겨진 주화. 동양의 씨름과 매우 흡사하다. 출처 루카스 크리스토풀로스의 논문
전사들의 놀이였던 레슬링이 귀족들의 오락거리로 바뀐 것은 한나라 때이다. 흉노를 꺾은 중국은 유목민 전사들의 스포츠를 궁중에서 오락거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주변 국가의 사신이 찾아오면 보란 듯이 그 전사들의 씨름을 공연했다. 한국에도 전해진 ‘수박희(手搏戱)’ 또는 ‘각저희(角抵戱)’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서기 136년에 부여의 왕이 한나라를 방문하자 씨름을 함께 봤다는 기록이 지금도 전해진다. 한나라는 부여의 왕 앞에서 유목민 출신의 선수들이 벌이는 씨름을 보여주며 자신의 국력을 과시했다.
같은 시기 그리스에서 시작한 놀이는 로마에서도 널리 유행했다. 전차 경기, 권투, 검투, 판크라티온(일종의 격투기) 등 서양의 경기는 실제 생명을 걸고 벌이는 잔인한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동아시아에서 무술 경기는 서로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즐거움을 주는 오락으로 폭력성을 해소하는 식으로 지혜롭게 발달했다. 최근 서양에서 도입된 프로레슬링도 겉으로는 잔인하게 보여도 사실은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치밀한 규칙과 시나리오가 바탕에 있다. 그런 점에서 동양의 씨름은 21세기 프로레슬링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중일 사이에는 무술의 원조를 두고도 날카로운 경쟁을 벌인다. 중국은 한나라 궁중에서 벌인 수박희를 들어서, 그리고 한일은 태권도와 가라테를 두고 서로 원조를 다툰다. 하지만 레슬링은 특정한 나라라 할 것 없이 전 세계 공통의 스포츠이며, 특히 유목민들 사이에서 널리 발달했으니 한중일의 원조 논쟁은 사실 의미가 없다.
레슬링 같은 격투기의 또 다른 강점도 있으니, 바로 서로 살상하는 전쟁을 방지하는 기능이다. 1960년대에 극동의 우수리강에서 다만스키섬(중국명 전바오다오·珍寶島)을 둘러싸고 소련과 중국 사이에 큰 국경 분쟁이 발생했다. 양측은 화력은 자제하면서 주먹만을 사용한 싸움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덩치 좋은 군인을 내세웠다가 나중에 육박전이 격해지면서 다른 부대에서 실제 권투나 무술을 했던 선수를 데려올 정도였다. 결국 다만스키 사건은 육박전으로 해결되지 않자 양측이 화력을 사용했고, 그 결과 양측 수백 명이 사상을 입은 거의 전쟁 수준의 피해로 마무리되었다. 최근에 중국과 인도에서도 티베트 일대에서 국경 분쟁이 벌어지면서 총싸움 대신에 주먹다짐이 이어졌다. 첨단 무기를 옆에 두고 옛날식으로 싸우는 것이 얼핏 우습게 보여도, 대량살상을 막는 지름길이니 최근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격해지면서 맨주먹으로 싸움을 벌이는 지혜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공존’ 위한 지혜의 스포츠
선사시대 이래로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해왔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선사시대의 사회 90%에서 폭력 분쟁이 있었으며 적어도 2년에 한 번꼴로 실제 분쟁을 겪었다고 한다. 즉, 폭력성은 인간에게 내재되어 온 본능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분쟁이 생길 때마다 폭력성을 아무 때나 드러낸다면 결국 인간은 멸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은 선사시대 이래로 그 폭력성을 적절하게 해결하면서 재미있는 의식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고구려 씨름에 서역인이 등장하는 것처럼 레슬링에는 유독 국제적인 경기가 많다. 단순히 이국적인 사람의 모습이 흥미로워서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게 본능적인 두려움, 때로는 적대감을 느낀다. 이방인에 대한 적개심을 경기로 풀고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축제를 통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장을 만들었다. 레슬링은 잔인한 폭력을 모티브로 하되 우리에게 카타르시스와 재미를 주면서 공존하려 하는 인간의 지혜로움이 만든 스포츠일 것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