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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때 그에게 받은 붉은 태양 펜던트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그와 함께 손을 잡고 눈이 내리는 길을 걷던 것을 떠올렸다. 눈이 내리는 언덕에 멈추어 서서 그가 그녀의 이마에 다시 뜨거운 입맞춤을 해 주었다.
“아직 네가 어려서.. 사랑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널 많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좋아해. 어른이 되어 네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린 사랑하는 사이가 될 거야.”
“웃겨.. 오빠는 마음이 변하지 않을거라고 장담하는 거야?”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변하지 않을 거야.”
그의 진지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그녀가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변하지 않을 거야.”
그의 품에 안기며 그녀가 웃음을 터트리자 그가 행복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헤어지는 날 그가 그녀의 입술 위에도 살며시 첫 입맞춤을 해 주었다.
“여름방학에 다시 올게.”
“응.”
“한 눈 팔면 안 돼.”
“오빠나 한 눈 팔지 마. 난 시골에 사는 촌스러운 여자아이일 뿐인데 오빠가 가는 곳엔 예쁜 여자들이 많잖아.”
“그 어떤 여자도 너처럼 나에게 따뜻함을 주고 행복하게 하는 미소를 갖고 있지 않은 걸. 그래서 말인데..”
그가 녹음기를 꺼내들자 민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말해 주면 좋겠는데.. 네 목소리 갖고 가고 싶거든.”
“뭐라고 말해?”
“뭐든지.”
그녀는 녹음기를 들고 그가 보이긴 하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갔다.
“오빠.. 재현오빠.. 오빠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남자는 이 세상에 없을 거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만들 사람도 없을 거야.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그리고 오빠보다 내
가.. 아마도 내가 더 오빠를 많이 좋아할 거야. 여름방학 때까지 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예뻐지도록 노력 할게. 다
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 평생 내 미소는 오빠만의 것으로 숨겨 둘 테니까. 사랑해.. 잊지마. 나는.. 고민영
이야.”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며 얼굴을 붉히며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하길 잘한 것 같다고 생
각했다.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펜던트와 한 쌍인 펜던트가 달린 팔찌를 하고 있는 그의 손목을 떠올리며 그녀가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
그의 편지를 받고, 또 그에게 편지를 보내며 그녀는 2학년 생활을 시작했다. 여름방학을 애타게 기다린 그녀는 그
가 온다는 날에 그의 집 앞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그는 그 해 여름방학에도 겨울방학에도 오지 않았다. 편지도 오
지 않자 태성은 그녀에게 그것 보라는 듯 시선을 보냈다. 수경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의 팔을 쓰다듬었다.
“그럴 리가 없어. 오빠가 아무 말도 없이..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연락이 없는 그를 기다리며 그녀는 조금씩 야위어 가기 시작했다. 3학년 여름방학 때 그녀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
로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의 집 대문 앞에서 앉아 있다가 해가 떨어지면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도 그녀는
해가 산을 넘어가려고 하자 일어나 엉덩이를 대충 털고 걸음을 옮겼다. 언덕을 내려와 고개를 돌려 그의 집을 조
용히 바라보았다. 심장이 녹아 없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그녀가 숨을 힘겹게 내쉬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려
는 그 때 그의 집에 불이 켜지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몸을 돌려 언덕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
했다. 숨이 턱에 차고 거친 숨으로 폐가 아파왔지만 그녀는 그의 집 앞에 서서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벨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가 다가와 그녀를 바라
보았다.
“저기..”
그녀가 그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재현오빠.. 내가 오빠를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
그의 집 거실 소파에 앉자 그가 차를 그녀에게 건넸다. 너무 울어서 붉고 퉁퉁 부은 얼굴을 숙이며 그녀가 차를 조금 마셨다. 그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제 왔어?”
“미안해.”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떨리는 손안에 있는 찻잔이 흔들리자 그녀는 차를 쏟을 것 같아서 찻잔
을 내려놓았다. 시선을 들다가 그의 손목에 있어야 할 팔찌가 없는 것을 본 그녀는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건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는 이전과 같은 부드럽고 따뜻한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코끝이 아려왔다.
“나를.. 잊었어?”
“건강해졌고, 고등학교에 올라갔어.”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이내 정상을 찾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녀가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풀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오빠한테 받은 것 중에 돌려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조용히 흘렀다.
“오빠를 처음 만난 1년은.. 너무 행복했어. 고맙게 생각해. 미리 말해줬더라면 지난 1년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그녀는 무표정한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고등학생이 된 거 축하해. 어디에서든 행복하길.. 건강하길 기도할게.”
그녀가 일어나며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녀가 몸을 돌려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을 나온 그녀는 울먹이며 언덕을 뛰어 내려왔다. 누군가의 손에 그녀의 몸이 빙그르르 돌아갔다.
“그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네가 상처 입을 거라고 했잖아.”
태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가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덕을 내려오려던 재현은 두 사람을 바라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냉정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가 몸을 돌려 언덕을 올라갔다.
****
얼마나 울었는지 지친 그녀는 병원으로 가서 입원을 해야 했다. 수액을 맞으며 침대에 누워있는데 문이 열렸다.
그리고 지금 가장 보기 싫은 사람이 얼굴을 드러냈다. 민영은 더 나올 것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다시 눈물이 고이자
고개를 돌렸다.
“아프다고..”
그가 음료수 상자를 그녀가 누운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아.”
그녀가 울음을 참느라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민영아..”
그의 말 한마디에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가 난감한 표정으로 턱에 힘을 주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야?”
그녀가 울먹이며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가 고개를 조금 숙였다.
“미안해.”
“변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미안.”
그녀가 눈물을 닦으며 침대에서 일어나자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누워. 너.. 곧 어떻게 될 것 같단 말이야.”
“그 그림 줘.”
“응?”
“나를 모델로 그린 그림 있잖아. 그거 줘. 작년 여름방학 때 오면 준다고 했잖아.”
그가 턱에 힘을 주며 고개를 돌렸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복입은 오필리아.. 말이야?”
“어? 한복은 맞는데.. 오필리아는 뭐야?”
그가 인상을 조금 찡그리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그에게 다시 말했다.
“완성했으면 줘. 나를 찍은 사진들도.. 주면 좋겠어..”
“주기 싫은데.”
“뭐?”
“너.. 보고 싶었어.”
그녀의 눈에 눈물이 다시 고였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오빠는 마음이 변해도 나는 변하지 말라는 거야?”
“안.. 될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가 입술을 조금 벌리자 눈에서 커다란 눈물이 툭.. 떨어졌다.
****
그녀가 퇴원하는 날 그는 그녀에게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을 이유가.. 그녀에겐 있었다. 그의 마음이
다른 여자를 향하고 있을지 몰라도 그녀는 아직 그가 좋았다. 그를.. 사랑했다. 그녀는 이렇게 그와의 관계를 끝내
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초등학교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가 카메라로 찍었다.
“왜 자꾸 사진을 찍는 거야?”
“그냥. 보고 싶을 때 꺼내 보려고.”
그녀가 흘기듯 바라보자 그는 다시 셔터를 눌렀다.
“좋아하는 여자가 어떤 여잔데? 다른 사람을 몰라도 난 알 권리 있다고 생각해.”
“그런 거 없어.”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귀는 여자가.. 없어?”
“응.”
“그럼 왜..”
그가 카메라 내장 메모리에 저장된 그녀의 사진을 보려고 인상을 조금 찡그리며 말했다.
“이런 관계는 정리하는 게 너에게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녀가 그네에서 발을 땅에 내리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를 위해서.. 그런 거라고?”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리 집은 어마어마한 부자야. 부자인 어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도 알잖아. 드라마나 소설처럼 잘 될 가능
성이 없어. 너에게 마음을 준다고 해도 우린 결국.. 안 될 거야. 더 마음이 깊어지기 전에 그만하는 게 너를 위해서
도 좋아. 말하자면 이번 여름은 이별여행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좋겠어.”
“오빠랑 결혼하고 싶은 게 아니야.”
“알아. 하지만.. 불가능해. 여러 가지로..”
그의 눈동자가 슬픔이 스치듯 지나가자 그녀가 그네에서 내려와 그의 앞에 서서 그의 팔위에 손을 올리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날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거지?”
그가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리는 것을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몸을 돌려 다시 그네에 올랐다.
“난 또.. 그거면 돼. 난 겨우 16살이고, 오빤 17살일 뿐이잖아. 오빠가 날 아직 좋아하고 있고, 나도 오빠를 좋아하니까.. 더 뭐가 필요해? 후회가 남지 않는 사랑을 할 거야. 그거면 돼.”
그녀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네를 타는 모습을 찍기 위해 그가 카메라를 들어 렌즈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저하던 손가락이 움직여 노을빛으로 물든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그의 집에서 그와 마주 앉아 장기를 두고 있던 그녀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림은.”
“미안. 그건 내가 가져야겠어.”
그녀가 입술을 조금 내밀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피식 웃자 개구쟁이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는 예전보다 조금 더 생기있고, 조금 더 어른스러워져 있었지만 속은 조금 더 짓궂은 사춘기 소년이었다.
“그림이 생각보다 별로 안 예쁘게 나와서. 그래서 말인데.. 모델을 다시 해 주면 안 될까?”
“또? 모델이 별로여서 그림이 잘 안 나온 거 아니고?”
“음..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그럼 왜 또 해 달래?”
“보고 싶으니까. 그 때와 지금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들거든. 가발도 필요 없을 것 같고.. 응?”
그녀가 그를 흘기듯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똑같은 옷이네?”
방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민영이 말하자 밖에서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는 재현이 대답했다.
“응. 맞아?”
“응. 다 입었어.”
그녀가 방문을 열고나오며 옷 앞섶을 만지자 그의 시선이 봉긋하게 올라온 그녀의 가슴과 얇은 한복 천 아래로 드러난 복숭아 빛 피부에 닿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그는 시선을 조금 옮겨 그녀의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가발은 안 써도 될 것 같아? 아니면 쓸까?”
“필요 없을 것 같아. 올라갈까?”
“응.”
민영은 그와 함께 계단을 올라가 옥상에 도착했다. 그녀가 꽃다발을 손에 들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자 하늘빛 한복이 부풀어 올랐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누르자 물속으로 치마가 사라졌다.
“어떻게.. 또 누워?”
“응.”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물 위에 누워 힘을 뺐다. 그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늦은 오후의 후끈한 여름 공기가 물 위로 드러난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내가 변해서 슬펐어?”
그의 물음이 물속에 귀가 잠겨서 먹먹하게 들렸다. 그녀는 눈을 뜨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마음이 아팠지.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차이게 될 줄은 몰랐거든. 오빠한테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언제 차여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내가.. 그렇게 좋았어?”
그녀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왜 과거형이야? 지금도 얼마나 좋아하는데. 오빠가 마음이 변한다고 해도 아마 내 마음은 조금 더 늦게, 아주 천천히 변하지 않을까 싶어.”
“내가 잘생겨서? 아니면 부자여서?”
그녀가 한쪽 눈을 살며시 뜨고 그를 바라보았지만 카메라에 가려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왜 좋아하는지 이유가 궁금해서.”
“말했잖아. 오빠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남자는 평생 못 만날거라고.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지난 1년 동안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이 어떤 고통을 말하는지.. 하루하루 오빠가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어.”
“미안해..”
그녀가 눈을 감은 채로 피식 웃었다.
“다 됐어.”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귀에 들어간 물이 나오도록 물속에서 콩콩 뛰다가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고 말았다. 물속에
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첨벙 소리와 함께 그의 단단한 팔이 그녀를 안아들었다. 그녀가 눈을 힘겹게 뜨고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민영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물에 젖은 그의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그녀의 볼 위로 떨어졌다.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만들어졌다.
“다친 거야? 어디 아픈데 없어??”
그녀가 고개를 조금 저었다.
“난 괜찮은데.. 오빠.. 찬 물 싫다고 했잖아.. 오빠야 말로 괜찮아?”
그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천천히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건강해 졌잖아. 너 때문에 진짜 놀랐어.”
“미안해..”
그가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 커다란 수건으로 그녀의 몸을 감싸주었다. 수건을 여미며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
라보았다. 그를 안 본 1년 사이에 그는 순수한 소년에서 곧 어른이 될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몸에서 뭔가
뜨거운 열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그가 다가와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수건 위로 그녀의 몸을 쓰다듬었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으면 말 해.”
“.....”
그가 시선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민영아.”
그녀는 대답대신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젖은 어깨 위에 올렸다.
“키가 조금 더 큰 것 같은데?”
그녀의 손이 그의 머리 위로 올라와 손끝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자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앞으로 더 클 거야.”
“그래? 나도 열심히 먹고 커야겠다.”
그는 자신의 손안에서 펄떡이는 심장박동을 하고 있는 그녀의 작은 손목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말했다.
“차갑게 굴어서.. 미안해.”
“괜찮아. 이렇게 내 앞에.. 내 눈 앞에 있으니까. 다 용서해 줄게.”
시선을 든 그의 눈이 붉어지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볼을 감쌌다. 그가 눈을 감자 눈물이 볼과 그녀의 손가
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그가 놀란 숨을 멈추었고 밀어내
려는 듯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끌어안고 간절함이 담긴 키스를 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잡은 그의 커다랗고 힘이 있는 손을 바라보며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목걸이 펜던트가 노을에 반
짝였다.
****
그와 보낸 여름은 조금 더 뜨겁고 조금 더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았다. 그와 헤어지기 전에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너와 헤어지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그녀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지 않을 게. 너무 부담갖지 마.”
그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를 잊을 거야?”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직은.. 못 잊어. 잊게 되는 쪽은 오빠겠지.”
“그럼.. 잊지 마. 나도 잊지 않을 테니까.”
그녀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 위에 입술을 눌렀다.
“고마워.”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사랑해 줘서.. 기억해 줘서.. 고맙다.”
그녀는 그의 말이 마치 이별의 말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파왔다.
“겨울방학에는 못 올 거야. 그리고 어쩌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그가 떨리는 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건강해라.”
“오빠도..”
울음을 참는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 끝을 어루만졌다. 마치 그녀의 입술 위
에 입맞춤을 하려는 듯 고개를 숙이려다 그가 멈추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
보며 그녀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손등으로 막았다.
****
그 해 겨울 그는 오지 않았다. 전화도 없었다. 겨울방학을 맞은 그녀는 마치 그를 떠올리지 않으려는 듯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다. 눈싸움을 하며 민영은 태성과 화해를 했다. 젖은 장갑과 양말을 모닥불 근처에서 말리며 태성이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괜찮냐?”
민영이 피식 웃었다.
“안 괜찮을 이유라고 있냐?”
태성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자 민영이 그의 팔을 슬쩍 밀었다.
“나. 너희들에게 할 말 있어.”
민영의 말에 다들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자주 못 만날 것 같아. 나..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거든.”
수경이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짜?”
“응.”
“잘 됐네.”
태성의 말에 민영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수경이 울음을 터트렸다.
“잘 됐는데.. 난 너무 서운해..”
민영이 피식 웃으며 수경을 품에 안고 같이 훌쩍였다. 고개를 들자 태성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
다.
****
2월 졸업식을 하는 날 태성이 그녀와 마주 섰다. 그는 뭔가 말을 하려는 듯 하다가 오른 손을 들어 자신의 뒷머리를 만지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연락할게.”
그녀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건강해라.”
“너도.”
졸업식을 마치고 다들 동네 유명한 중국집에 모여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
늦은 저녁 전화벨이 울려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민영의 숨이 멈추었다.
“오.. 오빠..”
<졸업했다며? 아까 낮에 전화했더니 할머니께서 말씀해 주셨어.>
“응.”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축하해.>
“고마워. 그런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감기에 걸렸나 봐.>
“조심하지.”
<그러게.. 민영아..>
“응?”
<고등학교는 어디로 가?>
“아.. 나 서울로 가.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어.”
<진짜? 잘 됐다. 내정된 학교가 있어?>
“응. ***고등학교.”
<정말?>
“응. 왜 그렇게 좋아해?”
<가깝거든.>
“아.. 싫다..”
<싫어..?>
“오빠가 다른 여자랑 같이 가는 걸 어떻게 보라고.”
전화기 너머로 그가 낮게 웃는 소리가 들리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민영아..>
“응?”
<미안한데.. 듣고 싶어..>
“뭐가?”
<나.. 아직도 좋아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잔인하다. 꼭 그걸 확인하고 싶어?”
<미안해.. 미안한데.. 그래도 듣고 싶어.>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마음이 변한 건 오빠지, 난 아니야. 아직도.. 좋아해. 오빠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이..”
전화기 너머로 그가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우연이라도 나를 만났는데 나한테 내가 좋아하는 여자다.. 라고 소개시켜 주기만 해. 오빠 여자친구 머리카락 다 뽑을 거야.”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기대가 되는 걸?>
“오빠..”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내가 이름을 계명하려고 하는데.. 네가 부르는 거 듣고 결정하려고.>
“지금 이름도 좋은데.. 뭘로 계명하려고?”
<차재민.>
“차재민?”
<성은 떼고 불려 봐.>
“재민오빠?”
<다시 한 번.>
“재민오빠.”
<또..>
그녀가 피식 웃었다.
“재민오빠. 하지만 이것도 어울리는 것 같아. 그런데 이렇게도 바꿔 주나?”
<사랑해?>
“오빠..”
<사랑해.>
“나도 사랑해.”
<하아.. 고마워.>
“못 살아.. 만나면 때려줄 거야.”
<혹시 만나게 되면.. 사랑해 줘.>
“치이.. 그럴 거 알면서..”
<아~. 싫다. 다른 놈한테 주기 싫어.>
“오빤 아니면서 난 평생 오빠만 좋아해야 해? 욕심쟁이.”
<그럴지도.. 이 세상에서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오글거리거든?”
<시간.>
“응?”
<아니. 너라고.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까.>
그녀가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래. 오빠가 내 앞에 있었으면 좋겠어.”
<....>
“걱정하지 마. 언제든 용서해 줄 테니까.”
<고마워. 햇살같은 너를 만나서 나는 행복했는데..>
“나도 행복했어. 두근거리고, 설레고.. 그러니까 나도 고마워. 오빠가 내 첫사랑이어서.”
<서울 올라오면.. 보자.>
“언제?”
<언제든..>
“그건 약속도 아니잖아.”
<네 생일이 3월이라고 했지?>
“응. 3월 2일. 개학 전이야.”
<그럼 그 날 보자. 3월 2일. 오후 2시. **** 앞에서.>
“좋아. 바람맞히지 마.”
<용서 안 해 줄까?>
“용서는 해 줄 거야. 하지만 투정도 부릴 거야.”
<그래. 너의 투정 쯤은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어.>
“감기 얼른 나아.”
<너도 감기 조심해.>
“응.”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그녀는 다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녀는 커다란 택배를 받았다. 포장을
벗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는 그림 위에 엎드려 울음을 터트렸다. 오렌지빛
꽃잎같은 노을 빛으로 물든 강물 안에서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한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이었다.
****
이사 가는 날 수경은 다시 울음을 터트렸고, 태성은 손을 내밀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민영이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 다시 만날 때 까지. 건강해라.”
차에 오른 그녀는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가 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3월 2일.. 오후 2시.. 3월 2일.. 뭐 입고 나가지..’
그녀의 마음은 이미 그 곳으로, 그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
“오늘 저녁은 외식할까?”
아침 식사를 하면서 엄마가 말씀하셨다. 민영의 언니인 윤진은 대학에 합격해서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는 엄마와 민영만 살고 있었다. 민영이 미소를 지으며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미역국 먹었으면 됐지, 뭘. 괜찮아요. 정말 괜찮다니까?”
민영은 엄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엄마가 출근을 하시고 민영도 외출 준비를 했다.
****
재현과 만날 약속장소에 도착한 그녀는 시계탑을 바라보며 손에 입김을 불었다.
‘아.. 진짜 춥다.. 너무 멋 부렸나..?’
그녀는 체크무늬 미니스커트에 검은 스타킹을 신고 검은색 굽이 낮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크림색 블라우스와 진한 분홍색 코트는 언니한테 물려받은 옷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간을 흐르고 흘러 약속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주변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근처 리어카에서 귀마개와 목도리와 털장갑을 샀다. 덜덜 떨며 재현을 기다리고 있는 민영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안 올 건가 봐. 바람 맞은 것 같은데.. 그런데 포기하고 갔다가 길이 엇갈리면 어떻게 해?’
그녀는 벙어리장갑 끝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두 팔로 자신을 안았다. 저녁 8시가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
는 몸을 돌려 건물 처마로 비를 피했다. 하지만 이미 차가운 겨울비가 코트와 스타킹을 적셔버렸다. 한기를 느꼈
지만 그녀의 시선은 시계탑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저녁 9시가 되자 그녀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녀는 천천히
빗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얼어버리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지만 그녀는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목도리에 얼굴을 묻은 그녀가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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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 날, 그녀는 고열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그녀는 보건실 침대에 누워야했다. 눈을 뜨자 보건 선생님이 그녀를 바라보셨다.
“어제 뭐 했니? 겨울비라도 맞은 거야? 열이 심해서 이대로 수업이 될까 모르겠다. 오늘은 조퇴해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부모님 중에 오실 수 있는 분이 계시니?”
그녀가 고개를 조금 저었다.
“그래? 그럼 어쩐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실내화를 찾아 신었다.
“교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괜찮겠어?”
“네.”
“너무 아프면 다시 와. 참지 말고.”
“네.”
그녀가 교실에 들어갔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여학생이 다가와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몸은 괜찮아? 안색은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민영이 시선을 들자 태성의 말처럼 우유냄새가 나게 생긴 하얗고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너랑 같은 반 임제은이라고 해. ‘제’ 자는 어이야. 난 10번, 넌 나보다 조금 큰 것 같다고 말해서 11번이 되었어..”
“아.. 고마워.”
제은이라는 아이는 예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은이는 부모님이 요양병원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라고 했다. 여중을 나와서 그런지 여학생은 대하기 편한데 남학생들은 어렵다고 했다. 순수하고 착하고 예쁜데 이
상하게 남학생들 눈에는 제은이의 미모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입학식 날 쓰러졌을 때 보건실로 옮기는 걸 도
와준 사람도 제은이였다. 부모님을 닮아 아프고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시
골에서 올라온 촌스러운 아이라며 다른 여학생들이 놀렸을 때에도 그녀 편을 들어준 사람이 제은이 뿐이었다.
“나한테 왜 그렇게 잘 해 주는 거야?”
“시골에서 중학교 나왔으면 놀림 받아야 해? 초등학교는 여기에서 다녔다며. 부모님 덜 힘드시게하려고 너만 외
갓집에서 생활했는데.. 난 네가 착하다고 생각해. 아마 나였다면 나도 여기에 있게 해달라고 졸랐을 거야. 그리고
난 시골이 좋거든. 큰삼촌이 시골에 사시는데 방학 때 놀러가면 즐거운 일이 항상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네가
있던 곳은 어땠어? 즐거웠어?”
민영은 재현을 떠올리자 눈물이 고이려고 했다. 애써 눈물을 삼키며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었어.”
제은이 그녀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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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때 외할머니로부터 놀러오지 않겠냐는 전화를 받았지만 민영은 가지 않았다. 공부가 힘들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그 곳으로 가면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여름방학을 지내고 햇살은 여름향기와 가을향
기를 반반씩 품고 있었다. 제은이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힘들게 하는 무리의 공격은 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를 괴롭히던 여학생이 2학년 선배에게 고백을 했다가 차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민영은 몸을
돌려 그 자리를 피하려는데 그 여학생이 다가와 그녀의 팔을 잡아 돌렸다.
“소문 낼 거지?”
“뭐하러.”
“네 말을 어떻게 믿어? 내가 널 어떻게 했는데..”
“알긴 알아?”
그 여학생이 입술을 살짝 물었다.
“말하기만 해. 정말 가만히 안 둘 거야.”
“마음대로 해.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그 선배와 사귈 수 없을 거야.”
민영이 몸을 돌리자 그 여학생이 그녀의 앞을 막았다.
“무슨 소리야?”
“아까 그 선배는 너 말고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여학생들이 많잖아. 똑같은 방법으로는 그 선배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야.”
“다른 방법이.. 있을리가 있겠어? 촌닭 주제에.”
“그러게.”
민영이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그녀가 민영의 팔을 잡았다.
“나.. 현욱선배 정말 좋아해. 방법이 있으면.. 알고 있다면 말 해 줘.”
민영이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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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제은과 민영은 음료수를 마시며 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들 앞을 그 여학생과 선배가
지나가고 있었다. 여학생은 민영을 바라보며 방긋 미소를 지었고, 민영도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지나가
자 제은이 고개를 돌려 민영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요즘 널 괴롭히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저 두 사람이 사귀는데 네가 뭔가 한 거야?”
민영이 어깨를 조금 들었다가 놓자 제은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그녀들 앞으로 왔다.
“저기.. 네가 고민영이야?”
두 사람은 여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그 선배에게 퇴짜를 맞은 선배 여학생들이었다.
‘아.. 죽었다..’
민영이 손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네.”
한 여학생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리에게도 비법을 알려 줘.”
“네?”
난공불락이었던 선배가 한 여학생에게 넘어갔다는 소문에 그녀들은 민영에게 연애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민영이 난감한 표정으로 제은을 바라보자 제은은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살짝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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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민영에게는 별명이 생겼다. <연애상담은 고마담과 함께.> 민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시내 서점 안에 있는 벤치에 앉아 한 숨을 내쉬었다.
“고마담이라니.. 나이 17에 고마담이라니..”
제은이 옆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그러게. 그런데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야?”
“나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커플매니저 일을 하셨었거든. 아빠는 돌아가시고 엄마 성으로 바꾼 두 명의 딸을 책임
지기 위해 안 하신 일이 없으셨었는데 그 일을 하시는 걸 보면서 재미있었던 것 같아. 집으로 가져오신 프로필 사
진을 보는 것 만으로도 어울릴 것 같은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정해보곤 했는데 나중에 엄마한테 들어보니 대충 맞
더라고. 그래서 나한테 신기가 있나.. 했던 적도 있었어.”
“신기하다~. 나도 좋아하는 사람 있는데.. 나중에 고마담 도움 좀 받아야겠다.”
민영이 손을 들어 제은의 팔을 잡았다.
“너까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제은이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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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은과 민영이 가는 것을 반대편 벤치에 앉아 있는 준성이 바라보았다.
“우리 학교 학생 같은데 저 녀석들은 뭐냐?”
“한 명은 모르겠고, 나머지 한 명은 둘이 하는 이야기로 봐서 누군지 알 것 같아.”
준성이 눈썹을 조금 올리자 호영이 말했다.
“고마담.”
“뭐?”
준성이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연애상담은 고마담과 함께라는 타이틀이 붙은 여학생이야. 여학생들의 연애상담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아.”
“별종이네.”
호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은 어떻게 할 거야?”
“늘 가는 곳으로 가야지. 그 녀석한테 우리밖에 없으니까.”
호영이 안경을 조금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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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편 읽고 왜 고마담인가 했더니 이제 알겠네요~~ 잔잔하면서 아주 잼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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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요ㅋ 본격적인 에피소드는 이제 시작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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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해결사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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