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동물과는 다른 생각하는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어떤 일을 행하기 전에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과 해야 할 일을 구분하며 그것을 행함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인간다움 인 것 같다.
이런 인간다움에도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 경우는 인간자체로서의 인간다움이다. 이기심을 버리고 오직 자연 그대로의 꾸밈이 없는 순수한 모습, 남을 배려하고 아낄 줄 아는 넉넉한 인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경우는 과학이나 기술의 합리성을 철저히 추구하는 일이 결국은 인간성을 확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류는 새로운 기술의 힘을 구사함으로써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틀림없이 한층 커다란 행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대하여 다른 사람은 그와 같은 행복에 대한 환상은 오늘날 이미 배반당했고,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기계문명의 주인공으로 만들기는커녕, 과학기술에 노예화되었으며, 세계의 합리화와 기계화는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과정이므로 이러한 추세에 저항하는 것만이 휴머니즘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반론한다. 이와 같이 현대의 휴머니즘은 혼미상태에 빠져, 그 지향하는 바는 정반대의 방향으로까지 갈라졌다. 다같이 ‘인간다움’을 추구한다 해도 그 인간성을 어떤 방향으로 확충해 나가는 가가 문제이다.
(2)학교 오는 길에 몽고정이라는 이 곳을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왔었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관심조차 없었던 곳이 자료를 찾아가면서 이 번 과제로 인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곳이 인간다움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몽고군 군마의 식수를 공급했던 몽고정
마산이 합포(合浦), 회원(會原), 창원 등으로 불리다가 마산이라는 행정지명으로 정착된 건 일제시대였다. 1910년대에 조선총독부에서 총독부령으로 창원부를 마산부(馬山府)로 고쳐 부르게 했는데, 그 이전까지 마산은 한 포구의 명칭이었다. 대략 현재의 마산수출자유지역 정문 부근으로 추정되는 이 지역이 왜 마산포로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종내 밝힐 수 없었다.
마산시 자산동 118번지에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몽고정(蒙古井)이란 우물이 있다. 우물로는 흔치 않게도 1983년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지정문화재 자료 제8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우물이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이유는 그 역사적 연원 때문이다.
고려말 충렬왕 7년(1281), 원나라 세조가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하여 합포(合浦 ; 마산)에 정동행성을 두었다. 그러나 일본 정벌이 2차에 걸쳐 실패로 돌아간 후 동년 10월에 연해 방비를 위해 이곳 환주산(현 자산동 무학국민학교 뒤쪽 마산정수장 일대)에 둔진을 설치하였다. 그 때, 군마의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이 우물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물의 지름은 1.7m, 깊이는 6∼7m정도래. 현재 우물의 발판이 되고 있는 직경 1.4m가량의 원방형의 돌바퀴는 몽고군의 전차 바퀴 (차륜)이라는 설도 있으나, 맷돌로 쓰였던 유품으로 보인다.
이 우물은 최근까지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되었을 만큼 물맛이 좋았다고 하는데, 이 우물이 많은 군마의 식수를 다 충당했을 리는 없고, 주요 지도층 말들의 식수원이어서 그 명성이 전해져 온 듯하다. 이 우물물로 담군 간장을 "몽고간장"이라고 불러. 마산이 양조공업이 발달한 것도 이처럼 물맛이 좋아서 일 것이다.
그 옆에 서있는 석비에 몽고정이라 써서 세워둔 것은 1932년 마산 고적보존회(일본인 고적단체)가 멸시적 감정에서 명명한 것으로 그 이전에는 고려정이라 불려 왔다고 한다.
이 몽고정의 위쪽 무학초등학교 뒷산에는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성이 고려 말엽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설치했던 정동행성지(征東行省址)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은 특이하게도 평지에서 정상부로 말발굽 형태의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서쪽과 동남쪽은 아직도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아래서 많은 기와조각이 발견되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의 충렬왕이 일본에 출병하는 병사들을 독려하고자 이 곳에 머무르기도 했고, 후에 고려의 동남도(東南道) 병마절도영이 위치하기도 했다. 이 병마절도영은 우왕 대에 삼별초군에게 점령당해 불태워진 후 배극렴 장군에 의해 합성동으로 옮겨졌다.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원래 명칭은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으로, 일본 정벌을 뜻하는 ‘정동’과 중앙 정부의 ‘중서성’의 지방 파견기관을 의미하는 ‘행중서성’의 합성어이다. 원나라는 전 지역에 지방 행정기관인 행중서성을 두었는데, 고려에도 이를 본떠 정동행중서성을 설치한 것이다.
이 정동행성은 1280년 원의 세조(世祖)가 일본 정벌을 위한 전방사령부 격으로 설치했다가 1차 원정이 풍랑으로 실패하자 폐지하였고, 그후 1283년과 1285년에 다시 설치하였다. 그러나 끝내 일본 정벌을 달성하지 못한 채 세조가 죽자 원의 일본 정벌 야심도 흐지부지되면서 정동행성은 형식상의 기구가 되어 그저 의례적인 기능만 수행하였다. 그러나 1299년 이후로는 고려 내정을 간섭하는 기구로 변하게 된다.
여기 까지가 몽고정에 관한 기록이다.
[1] 몽고정은 몽고로 말미암은 수치스러운 이름을 이 강역에 아로새긴 것이다. 동물이라면 그런 이름이나 기호를 자기 종족의 영토 내에 남겨 둘까? 혹성탈출에서 지성을 가지게 된 원숭이는 인간 종의 멸종, 자기 종의 기원인 곳을 금지된 구역으로 정하고, 접근을 꺼려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영역 내에 수치스러운
첫댓글 [2] 더 많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0] 본인의 독창적인 의견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몽고정을 인간다움과 연관지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1) 몽고정에 대한 자료가 중요한건 아닐겁니다. 의의와 한계를 밝히지 않은점도 또한 인간다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점도 감점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1] 몽고정보다 인간다움에대한 님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1] 몽고정은 몽고로 말미암은 수치스러운 이름을 이 강역에 아로새긴 것이다. 동물이라면 그런 이름이나 기호를 자기 종족의 영토 내에 남겨 둘까? 혹성탈출에서 지성을 가지게 된 원숭이는 인간 종의 멸종, 자기 종의 기원인 곳을 금지된 구역으로 정하고, 접근을 꺼려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영역 내에 수치스러운
거의 기록을 남겨둔다. 그리고 그걸 교훈이라고 한다. 교훈이란 과거의 사건이 오늘에 영향을 미치고, 아울러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내일에 영향을 미치게끔 하는 그 무엇이다. 몽고정은 그래서 우리의 교훈이다. 미아리 텍사스, 부산역 텍사스... 이런 것들과 마찬가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