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황순원 단편 소설[이드, 자아, 초자아 분석] 이명희(목향)
줄거리-1982년 간행된 황순원 전집 4권 [너와 나만의 시간]에 수록된 단편소설로 작가의 삶을 살짝 엿 본 느낌이다. 화자는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어린 시절 그림자에 공포를 가졌던 일, 소학교 때 소풍 가는 날만 되면 어김없이 비가 왔던 일, 중학교 때 미소년을 짝사랑했으나 소년이 소녀의 편지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했던 일, 대학교 2학년 때 클래식을 같이 듣고, 가로수 길을 걸었던 소녀가 자신의 이빨 사이에 낀 고춧가루를 보고 떠난 일. 화자는 졸업하여 출판사에 취업하는데 여기서부터 현재 시점이다. 화자는 출판사에서 창작활동을 하기보다 시사물이나 흥미물을 번역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고민한다. 권태로운 삶을 술로 해소하던 중 한 여인을 만나 교제하면서 자기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신선한 내용이다.
분석-1. 엄마 등에서 보았던 긴 그림자가 자기 그림자인 줄 모르고 가졌던 공포심은 최초의 자아 학습이다. 어릴 때는 자기의 그림자를 인식할 줄 모르고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게 되는데 그림자를 가해자로 느끼면서 자아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2. 소년이 같은 또래의 소년을 좋아하게 된 것은 이드와 자아의 중간 단계쯤이랄까, 사춘기 때는 자아에 충실하기보다 성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으로 좋아할 수 있다. 3. 소풍의 기대에 반역하는 날씨는 화자의 기분에 상응하는 자아의 감정으로 볼 수 있다. 신은 왜 내 편이 아닐까하는 예민한 반응을 할 수 있다. 4.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는데 이빨에 낀 고춧가루로 소녀에게 실연을 당해 한동안 술만 먹고 이도 닦지 않는 나날을 보낸다. 자아 손상의 후유증이다. 그 후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걸어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초자아가 흔들렸다. 화자도 소녀에게 본능적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는데 가로수 길을 걸을 때 소녀와 어깨가 닿는 순간, 입을 맞추고 싶은 욕망이었다. 이것은 이드적 감정인데 화자는 자아를 추슬러 소녀에 대한 모독이라 여겨 초자아로 대응했었다. 5. 졸업 후 출판사 일에 회의를 느끼면서 ‘내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하면서도 어느새 빠져 들어가 나중에는 거기 안주해버리는 심정과도 같은 것이었다.’라고 숙고할 때 자아와 초자아의 갈등을 볼 수 있다. 그냥 세속과 타협하고 싶은 이드의 마음, 그러면 안 된다는 자아의 마음, 그냥 안주해 버리나보다 걱정하는 초자아의 마음. 화자는 술로 풀 수밖에 없었다. 결단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해 괴로워했다. 멀리서 화자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서글프다며 다가온 여자가 있었다. 6. 여자는 어릴 적 아버지를 이해했듯 철든 부모 같은 심정으로 초자아가 발동하여 그를 위로하고 응원해 주고 싶었다. 본연의 자아보다 초자아로 무장된 만남이다. 여자는 원래 약혼자가 있었으나 어린애를 병적으로 좋아하는 상대에게 마음이 닫혀 버렸다. 7. 결혼할 여자를 사랑하기보다 어린아이만 사랑하는 것은 무의식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남자가 자신과 어린이를 동일시함으로써 만족과 안도감을 느끼는 심리 현상으로 이드에 갇혀있다고 볼 수 있다. 화자는 여자와 소설 같은 만남을 이어간다. 여자가 말한다. ‘언젠가 선생님은 저더러 색맹이 돼 줬음 좋겠다구 하셨죠? 그런데 실상은 그렇잖아요. 요즘 저는 모든 게 새롭게만 보이는 걸요. 저 하늘두, 이 소나무들두, 그리고 거리의 가로수나 전선주까지도, 집에 있을 땐 장독대나 세숫대야까지 두, 그리고 거울에 비친 제 얼굴까지 두, 그리구 말예요, 제가 탈 기차가 어느 것이라는 것두 똑똑히 보여요. 아니 전 지금 분명히 제가 타야 할 기차를 타구 있는 거예요.’ 여자는 화자의 이드. 자아. 초자아까지 다 품겠다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작가인 화자는 그녀의 말이 가슴에서 우러난 말이라고 자아로 느낀다. 8. 화자가 전에 ‘적지 않은 여자의 몸을 거리에서 산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젊은 시절의 일방적인 욕망의 단순한 방척행위에 지나지 않았다고, 그런 여자는 언제나 여성의 이름을 빈 한 개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듯이 화자와 욕망의 도구는 모두 이드적인 거래였다. 화자는 모처럼 지적인 여자를 만나 산책을 즐기고 대화를 나눈다. 여자는 순간순간 화자와 얼굴을 마주하면서 눈빛에서 남자의 욕망을 캐치한다. ‘어머, 선생님 그 눈!’ 화자의 눈빛은 이드의 눈빛이다. 여자는 에둘러 선고한다. ‘이대루가 좋아요. 그저 이렇게 선생님 곁에 있으면 만족예요.’ 여자는 까닭 없이 성의 접촉이라는 의미를 혐오로 느낀다. 9.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여자도 어릴 적 이드에 고착되어 있다. 이드의 감정을 저급하게 판단하는 자아는 초자아로 무장한 가식일 뿐이다. 화자가 이성적인 예술가라지만 꽃 이파리 같이 나긋하면서 향기로운 온기를 느끼는 여성에게 이드의 감정을 숨길 수만은 없는 것, 본능이 곧 이드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여자가 제시한 조건을 생각해 본다. 사랑은 하되, 아이는 낳지 않고 선을 똑바로 긋기. 아플 때 돌봐 주고 서로 구속하지 않는 특별한 삶을 갖기. 화자는 여자에게 답을 주어야 한다. 화자가 독백하기를 ‘그대와 나는 이 세상 남녀 이전의 남녀, 혹은 이 세상 남녀의 마지막 남녀가 되는 것이오. 그것이 조금도 서글프지 않고 오히려 통쾌하오.’ 화자는 소설에서 둘의 사랑이 일반적인 사랑이 아님을 여운으로 남겼다. 이드와 자아와 초자아는 서로 줄다리기를 하므로 주인공들이 이 셋을 잘 작동할 수 있을까, 의문은 독자에게 맡길 일이다.
1953년 발표한 현대문학의 대표작 ‘소나기’는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 주제다. 1982년 발표한 작품 ‘내일’은 세상에 편승하여 살던 작가가 순수한 영혼을 갈구하던 중 제 2의 성인용 ‘소나기’를 쓴 것 같다. 황순원의 제자들, 작가들은 한결같이 그가 신사 중의 신사였다고 한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남녀의 사랑이 ‘소나기’ 같을 수 있다면… 나는 소설 속 대화에서 신파적 분위기를 느꼈는데, 시대와 세대 차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2015년 초고, 2020년 9월 퇴고-
첫댓글 자료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