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56]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청주방송 2025. 1. 8
■ 글: 정승조 아나운서 ■
시대의 연대기. 이를 담은 최고의 사진이 받는 상이 있습니다. 바로 '퓰리처상'입니다. 퓰리처상은 사진 기자들에게 '언론의 노벨상'이라 불리지요? 그런 만큼 최고의 영예로 꼽힙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고요. 전 세계의 사진 기자들에게 열정과 영감을 줍니다. 역사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원천보 빅피쉬엔엠 대표이사는 퓰리처상의 창시자 조지프 퓰리처에 대해 "19세기 후반, 헝가리 이민자 조지프 퓰리처는 미국 저널리즘의 중심에서 우뚝 솟아올랐다"라면서 "오로지 대중을 위한 신문을 제창했고, 온전히 권력의 감시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인물"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이렇듯 1942년부터 지금까지 퓰리처상의 수상작은 다릅니다. 탁월함이 살아있습니다. 이를 살펴볼 수 있는 사진전, 올해는 어떤 점이 다를까요.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퓰리처상 사진전'을 기획한 '원천보 빅피쉬엔엠 대표이사'를 만났습니다.
▮ 올해 '퓰리처상 사진전'의 핵심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전시 전경
이번 전시는 역사적 맥락과 교육적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지난 80년간 퓰리처상 수상작들은 각각 개별 사건을 취재해 상을 받았지만, 이 사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역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냉전 시대의 시작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한국전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1998년 케냐에서 미국 대사관을 대상으로 한 테러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빈 라덴은 2001년 뉴욕 9·11 테러로 본격적인 테러리즘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모두 퓰리처상 수상작들로, 관객들이 이 사건들을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 그래서인지 전시를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았고, 아트홀릭 독자들도 좋아하실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의 방대한 국제정세를 이해하지 못할지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울러 전시장에는 사건을 설명하는 텍스트와 영상이 추가 배치되어 있어 관객들이 내용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또한, 어린이용 오디오 가이드도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 전시작 이야기로 넘어가 보지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작품은 '에드워드 T. 에덤스의 베트콩 사형집행(1969)'이었습니다.
베트콩 사형집행, 에드워드 T. 애덤스, 1969년 수상작
너무나 유명한, 베트콩 포로를 즉결 처형하는 이 사진은 전쟁과 인권, 미국의 참전에 관해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8년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대공세로 전쟁은 사이공 시가지까지 확산되었습니다. 2월 1일 오후 두 명의 베트남 해병대원들이 끌고 가던 베트콩 중위에게, 베트남의 경찰 책임자인 로안이 다가와 총을 겨눕니다. 포박된 채 끌려가는 힘없는 포로와 냉정한 경찰대장의 뒷모습, 그리고 왼쪽 끝 병사의 증오에 찬 표정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 전쟁터의 사진 기자에게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있을 텐데요. 에드워드 T. 에덤스는 그 순간을 마주한 것이로군요.
사이공의 한 골목에서 자행된 이 사건은 미국 반전운동가들의 공분을 샀고, 잔혹한 전쟁의 상징적 이미지로 여겨졌습니다. 로안은 총을 쏜 후 사진을 찍은 에디 아담스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내 부하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로안과 베트콩 중위의 행위에 대해 누가 정의로운가 혹은 누가 더 잔혹한가라는 질문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사진은 많은 미국인에게 베트남 전쟁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한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죠.
▮ 전쟁의 참혹함이 전해지는 사진도 있습니다. 베트남의 한 어린 소녀가 "너무 뜨거워요.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라며 비명을 지르며 다가오는 장면의 사진입니다.
베트남 전쟁의 테러, 후잉 콩 닉 우트, 1973년 수상작
이 끔찍한 장면은 미군 비행기가 베트콩 참호를 공격하던 중, 실수로 민간인 마을에 네이팜탄을 투하하면서 발생한 비극입니다. 네이팜탄은 주변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치명적인 무기로, 사진 속 여자아이의 옷마저 태워버렸습니다. 아이는 극심한 공포와 고통 속에서 살기 위해 무작정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 그러던 중 소녀는 AP통신 기자 닉 우트와 마주하게 된 것이고요?
맞습니다. 사진 속 벌거벗은 소녀는 당시 9세였던 킴 푹으로, 이 사진을 찍은 베트남 출신 AP통신 기자 닉 우트에게 달려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닉 우트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끔찍한 화상을 입은 킴 푹과 함께 그곳에 있던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심각한 화상에도 불구하고, 킴 푹은 무려 17번의 피부 이식 수술을 견뎌냈고, 기적적으로 생존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성장하여 전쟁 중 다친 아이들을 돕는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 브라이언 랭커의 '생명의 순간'은 감동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생명의 순간, 브라이언 랭커, 1973년 수상작
출산은 매우 개인적인 일이기에 대부분의 부부가 촬영을 꺼렸습니다. 사진 촬영을 허락한 부부를 찾는 데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
▮ 그렇군요.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을까요?
사진가 브라이언 랭커는 드디어 촬영을 허락한 부부와 함께 분만실에 들어갔습니다. 산모는 처음에는 브라이언의 존재를 의식했지만,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오자 그는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생명이 탄생하는 신비스러운 순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사진에는 갓 태어난 아이가 첫 숨을 쉬는 모습과 함께, 산모의 얼굴에 고통과 환희가 혼재된 극적인 순간이 포착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출산 과정을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기록한 최초의 사진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혼돈의 순간, 셔터는 멈추지 않더군요. 론 에드먼즈의 '암살 기도'라는 사진인데요. 1981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긴박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지 않습니까.
암살 기도, 론 에드먼즈, 1982년 수상작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사진가 론 에드먼즈는 단순히 호텔에서 나오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촬영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권총을 들고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던 존 힝클리 주니어도 있었습니다. 힝클리는 권총 6발을 발사했고, 에드먼즈의 렌즈 너머로 총격 순간과 일그러진 레이건 대통령의 표정이 보였습니다. 에드먼즈는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 그의 숙명이 느껴지는 순간이네요.
사건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힝클리는 자기 행동이 여배우 조디 포스터에게 깊은 인상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다행히 그날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에드먼즈는 자신이 사진가로서 늘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는 본능과 직감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 론 올슈웽거가 마주한 1988년 12월 31일 미국엔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생명을 불어넣다, 론 올슈웽거, 1989년 수상작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아기를 안고 나와 인공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속 긴박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지시나요? 그들의 몸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사진은 화재 현장이 얼마나 아비규환이었는지를 생생히 상상하게 합니다. 소방관은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깝게도 아기는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날은 아기의 두 번째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1988년 12월 31일에 일어났습니다.
▮ 화재 현장을 촬영한 그는 어떤 인물인가요?
사진을 찍은 론 올슈웽거는 아마추어 사진가로, 우연히 화재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언가 도울 방법을 찾았지만, 거대한 화염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카메라로 이 순간을 기록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론도, 소방관도 아기를 살릴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론의 사진이 보도된 후, 많은 사람이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고, 화재 예방 프로그램이 강화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의 사진은 공공기관, 학교, 지역 소방서 등에 걸려 있으며, 화재 예방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 퓰리처상 수상자 중엔 한국인도 있습니다. 로이터 통신의 김경훈 씨인데요. 그의 인터뷰 영상을 보니, 당시의 사진을 '결코 잊을 수 없다'라고 강조하더군요.
장벽에 막히다, 김경훈, 2019년 수상작
멕시코 북서부 국경 도시 티후아나에는 중미 국가에서 조직 폭력, 치안 악화, 정치적 불안을 피해 몰려든 이민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끊임없는 공포 속에서도 더 나은 삶을 향한 위험한 여정을 선택한 난민들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민자 단속 강화를 위해 국경 장벽을 세워 차량이나 도보로 국경을 넘는 것을 차단했습니다. 이에 몇몇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월경을 시도했으며, 미국 국경 방위군은 최루탄을 동원해 이를 저지했습니다.
사진 속 가족은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는 순간을 담은 장면입니다. 어머니는 ‘겨울왕국’ 티셔츠를 입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맨발로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이 가족이 그들이 꿈꾸던 디즈니랜드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이 사진이 보도된 이후, 평범한 이민자들에 대한 과잉 진압을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퓰리처상, 전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보십니까?
퓰리처상은 시대를 반영하며 유연하게 운영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좋은 언론을 발굴하고 그들을 격려하는 일입니다. 퓰리처상 수상은 해당 언론인에게 커다란 영광일 뿐만 아니라, 사건에 다시 주목하게 하고, 우리에게 역사를 숙고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마치 오늘 이 인터뷰를 통해 역사의 몇몇 장면들을 함께 논의할 기회를 얻은 것처럼 말이죠. 이 과정에서 기존 수상작들이 시대의 상황에 따라 새롭게 생명력을 얻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1950년대 미국의 안드레아 도리아호 침몰 사건은 한국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며, 2014년 라이베리아를 휩쓴 에볼라 전염병은 최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코로나 팬데믹을 상기시킵니다. 이는 전염병이 더 이상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또한 최근의 국제 정세를 고려하면, 과거의 전쟁은 더 이상 너무 끔찍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머물렀던 사건들이 오늘날에도 생생히 되살아나며, 현재와 연결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 아트홀릭 독자들께 이번 전시가 어떤 의미로 다가가길 바라는지.
얼마 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제가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감정과도 맞닿아 있어 놀라웠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사진들도 있지만, 동시에 매우 아프고 슬픈 장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은 단지 슬픈 감정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진들을 통해 우리는 진실을 마주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마주한 이 사진들이 그 변화를 시작할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진 제공: 빅피쉬엔엠)
■ '퓰리처상 사진전' -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 일정: ~ 2025.3.30.(일) - 관람 시간: 오전 10시~ 오후 7시 (입장 마감 오후6시) - 관람료: 유료 (매주 월요일 휴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