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출동류(西出東流)
정병산과 진례산성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있다. 이 하천은 한림정 가까이 이르러 낙동강 배후 습지를 형성해 여름철 홍수기 때는 꽤 광활한 호수가 된다. 내륙에 있는 그 호수를 화포라고 한다. 노대통령 묘역이 있는 봉하마을과도 가까운 화포습지다. 십이월 셋째 일요일 화포습지 일대를 걸으려고 길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걸어 창원대학 앞을 지나 창원중앙역으로 갔다.
순천에서 포항으로 하루 한 번 오르내리는 무궁화호를 탔다. 예전 몇 차례 다녔던 철길이었다. 저만치 봉화산에 사자바위가 보였다. 그 아래는 본산리 봉하마을로 노대통령 생가와 사저가 있고 봉하마을 가까운 봉화산 아래 그 분 사후 조성된 묘역이 있다. 창원중앙역에서 진례터널을 지나니 금방 한림정역에 닿았다. 지하통로를 나가 플랫폼에서 역 광장 오른쪽 길을 따라 걸을 셈이었다.
이 열차는 경전선에서 삼랑진부터 경부선으로 갈아탄다. 구포를 지난 부산 부전에선 동해남부선으로 옮겨간다. 해운대와 울산 경주를 지나 포항까지 간다면 한 열차 안에서 제자리 가만히 있으면 선로가 경전선에서 경부선을 거쳐 동해남부선으로 선로가 세 번이나 바뀐다. 연전 나는 울산 북구에 터 잡아 사는 친구를 만나느라 불국사역 바로 아래 호계역을 몇 차례 이용한 적 있어 익숙하다.
한림정역에서 오른쪽으로 걸으니 직진은 한림배수장과 모정이었다. 시산과 진영으로 나뉘는 사거리에서 장재마을 방향인 오른쪽 철길 밑 굴다리를 지나니 철길과 인접한 화포습지 구역이 나타났다. 저 멀리 모정마을 가까운 곳에 있는 한림배수장은 낙동강 유역에선 가장 큰 용량의 배수장이다. 한 때 매미 태풍으로 온 들판이 잠기고 돼지와 젖소가 둥둥 떠다닌 뉴스가 외신서도 알려졌다.
김해 한림면의 예전 행적구역은 이북면이었다. 이북면(二北面)은 화포천을 경계로 상북과 하북을 합쳐 이북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정해졌다. 남북 대치의 첨예한 이념 대결에서 동음이의어지만 이북(以北)의 연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까닭으로 이북면은 한림면으로 바뀌게 되었다. 조선 초 한림학사를 지낸 김해 김 씨가 낙향해 정자를 세웠던 것이 시초가 되어 한림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모정이나 시산은 몇 차례 오고간 마을이었다. 나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그간 한 번도 다닌 적 없는 장재마을로 향했다. 철로 굴다리를 지나니 화포습지가 나타났다. 화포습지는 창녕 우포늪과는 견줄 수 없지만 화포천도 한 눈에 다 살필 수 없다. 화포습지는 지금 진영역부터 낙동강 본류에 이르기까지 몇 개 구역으로 나뉜다. 여름과 겨울 동식물 식생과 생태의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장재교1교 2교를 지나 장재마을 앞을 돌아가는 둑길을 걸었다. 습지 안 둔치에는 비닐하우스 경작지가 있었다. 샛강엔 몇 무더기 오리 떼가 보였다. 칡넝쿨과 한삼을 비롯한 시든 덩굴식물이 우거져 있었다. 늪지 한복판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버드나무들도 보였다. 물웅덩이엔 오리뿐만이 아니라 덩치가 큰 고니들도 몇 마리 보였다. 아직 날씨가 춥지 않아 겨울 철새 개체 수는 적었다.
장재마을에서 어은마을로 돌아가는 언저리에는 널리 알려진 맛집인 화포 메기국집이 있었다. 마침 정기 휴무라 영업을 하지 않아 너른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화포 습지생태학습관이 가까운 둑에 이르자 맞은편 사천 어느 절에서 나온 생태 답사팀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습지는 갯버들이 무성한 곳이 있기도 하고 샛강을 건너니 사료작물인 호밀이 웃자라 파릇한 구역도 있었다.
화포천은 내가 사는 동네에서 드물게 보는 서출동류(西出東流) 물줄기였다. 우리나라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지형이다. 그래서 대개 물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풍수에서는 서출동류하는 지형이 복지이고 명당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서출동류 하천이 서울 청계천이다. 화포천도 서쪽 창원의 정병산과 진례산성에서 발원하여 진영을 거쳐 밀양 하남과 인접한 낙동강으로 합류했다. 2015.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