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근성 /三山최진호
약 5.6 년전쯤으로 기억된다. 아파트 밀림을 빠져나와 마을 버스를 타고 주안역으로 직행했다.
출근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버스는 그렇게 예전처럼 붐비지 않았다. 승객 거의가 좌석에 앉아
있고 입석은 몇 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온화하고 행복해 보였다.예전에는 버스마다
초만원을 이루어 비좁고 복잡하여 발을 밟히는일은 다반사 였고 힘든 생활에 짜증스러움은
가믐에 거북이 등처럼 균열된 논바닥을 보는듯 그렇게 안타까웠다. 나는 주안역에 도착하여
매표소에 섰다. 그리고 경로 우대표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창구에 앉은 예쁜 여자 직원이 나를
보더니 주민증을 보여달라 했다. 주민증이 없는 나는 호주 운전면허를 내밀었다. 그걸보더니,
"아저씨! 외국인이잖아요, 외국인은 않됩니다." 하며 경로표 주기를 거부하는 것 이였다.
나는 얼굴이 붉어지며 분노가 치밀었다. 마치 거지가 동냥을 청하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 이보세요, 해외 거주하다 와서 그래요, 그러면 불편한 여권을 가지고 다녀야
합니까? " 하며 되받아 쳤다. 그랬더니 그녀는 마지못해 표 한장을 매표창 입구로 던지듯
팽개쳤다. 그걸 집어든 나는 자존심이 역 콩크리트 바닥에 사정 없이 딩구는 초라함을 느껴야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경인선 전철을 타고 서울행을 하고 있었다.
달리는 차창 밖의 풍광은 옛날과 사뭇 달랐다. 가는 곳 마다 높은 건물이 즐비하고 아파트
단지들이 새롭게 단장을 하고 선을 보였다. 나는 그동안 인터넷 카페에서 서로 댓글을
달아주고 사귀어온 한 여성팬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우린 서로 얼굴도 모른다. 한국에
도착하여 전화 통화를 하고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약속 했을뿐이다. 그녀의 나이는 대충 50대
후반 정도로 추측되었다. 서로 인상 착의를 말하고 종로3가 3번 출구에서 만나자 했다.
우리 때에는 서로 맞선을 보고 결혼을 하는게 일반적인 통례였다. 마치 그때 선보러 가는
기분처럼 괜시리 가슴도 약간은 설레이고 만나면 무슨 말 부터 해야할까?
이런저런 망상에 시달리다 보니 벌써 약속한 역까지 다 왔다.
나는 3번 출구에 서서 약 5분간 서성이고 있을때 웬 키가큰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우린 피차 본일도 없었지만 한 눈에 알아 볼 수가 있었다.
" 바위님 이죠?" "네 !", 우린 서로 악수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출구를 빠져 나왔다.
서로 옛 애인을 만난것처럼 별로 어색함 없이 우리는 어깨를 나란이 하고 인사동 탑골공원
쪽을 향해 걸었다. 행선지도 정하지 않은채 그냥 그간의 안부를 물으면서
걸었다. 나는 공원 뒷쪽에 줄지은 인파를 물끄럼이 보게 되었다. "
저~ 저기에 줄 서있는 사람들은 뭐죠?"
" 아 ~ 저거요, 노숙자와 그냥 배고픈 사람들 무료 급식하는 거예요."
급속도로 빨라진 경제 성장 이후 한국에는 어느 곳에나 옛날에 '거지' 라고 부르던 그런
걸인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IMF 이후 많은 기업이
도산 되고 실직된 사람들이 지하철역 등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옛날처럼 '거지' 라 하지 않고 '노숙자' 라 불렀다. 점심은 그f럭저럭 무료급식으로 땐다 해도
아침저녁은 어떻게 할가 하는 걱정을해 보았다. 그러나 나는 거기까지 그녀에게 묻고
싶지가 않았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더니, " 오늘 점심은 제가 쏩니다",
그러면서 인사동에 있는 13층 스카이 라운지 고급 음식점으로 갔다. 우리는 십삼층 맨 위
타워에서 경제개발로 더욱 아름다운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 보면서 우아한 점심을 들었다.
식사비는 그녀가 카드를 꺼내 결제를 했다. 그녀는 새로 만든 청개천을 보았느냐 ? 하여
아직 보지 못했다 하였드니 그럼 그곳에서 산책을 하자 했다. 그녀는 여기 저기를 안내하며
설명도 했다. 참으로 아름답고 자연미를 살려 잘 해 놓았다. 누가 보아도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 같았다.
이명박대통령은 서울시장때 청개천을 새롭게 건설하여 국내외로 부터
능력있는 사람으로 찬사를 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이 발판이 되어 급기야는 대통령 까지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참으로 행운아다. 이명박 전임 시장들은 머리가 나쁘거나 그만 못해서 저 청개천을
그냥 내버려 두었을까? 그당시는 한국에 그만한 재력이 없었고 국민의 혈세를 감히 그처럼
함부로 쓸만한 용기가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있다면 뭔들은 못할가,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는 지구상에서 제일 멋진 초 호화판의 도시를
건설했다 한다. 그들은 머리가 좋고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똑똑해서 그렇게
훌륭한 도시를 건설했을까? 아니다, 돈 많은 산유국으로서의 풍요를 누리는 것 뿐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는 노령화 인구가 증가하여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반면에
노후대책을 세우지 못한 노인들이 많은 고생을 한다고 한다. 호주는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어 큰 걱정없다. 그러나 한국은 독고 노인이라하여 겨우 월 30만원 정도의
혜택뿐이라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런 복지에는 신경도 안쓰고 4 대강 정비다 하여
운하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국민의 복지는 내 몰라라 하는 것 같다. 그는 지금은 반대하나
후세에는 자기가 잘했다는 평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하며 공언을 한다고 한다.
박정히 대통령도 많은 반대에 부디치면서 개발을 했기에 오늘날의 한국이있다는
식이다. 그는 보수 세력을 등에 없고 미국에 사대주의적 아부 정치를 하고 있지 않은가.
박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다 같이 자주 국방을 외쳤다. 외세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독립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염원인 통일이 이룩되기 때문이다.
주변의 강대국들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왜세에 더 이상 기대며 그들의
힘을 구걸하기 싫은 것이다. 그걸 모른다면 그는 더이상의 정치인이 될 수도 없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의 후속조치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조선시대는 중국의 사대주의 정치로 반식민지semi-colony 시대를 살았고 그후 36년간은
왜놈 식민지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사대주의 사상에
젖은듯도 싶다. 우리는 이승만 정권 시대 6.25 이후에 미국의 구호물자로 살아 왔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얻어 먹는데는 이골이 난것같다.
나는 호주에 살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얻어먹는 문화가 몸에 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 일이 있다. 왜냐하면 이민자 단체들은 외로움을 서로
달래기 위해서도 그랬겠지만 각종 행사를 많이 한다. 그때마다 점심등 저녁식사를
무료로 많이 제공한다. 물론 나도 여러번 행사에 참여하여 공짜 급식을 제공 받은바 있다.
또 교회에서도 선교 차원에서 각종 행사를 많이 하고 그때마다 무료
식사를 제공한다. 어찌보면 참 아름다운 풍속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연세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언제 무슨 행사가 있고 어디에
가면 공짜로 생활용품도 얻을 수 있고... 등등.. 정보가 풍부하여 아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함께 가기를 권유하는 것을 나는 여러번 보았고 나에게도 제의 해 왔었다.
호주이민사도 이제 50년을 넘어가고 있어 웬만한 사람들은 다 넉넉하게 살고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만큼 여유가 있다.그런데도 공짜 급식을 좋아
하고 공짜를 좋아하는 것은 우리가 가난하게 살던때의 타성이 자기도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나쁘게 말해서 거지 근성이라
하겠다. 않그러면 어찌 대통령 조차도 GDP $20,000달라 선을 넘는 선진국 대열에
있으면서 남의 나라에 의존하려하고 그들의 말에 무조건 귀 귀울이는 비굴한 정치를
하겠는가. 북한의 김정일이도 똑같다. 그도 남한에 구걸하다 쪽박이 깨지니 중국에
연신 왔다갔다 하며 외교가 아닌 거지근성 사대주의적 정치를 펴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첫댓글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샬롬
거지근성 적절한 표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