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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 치
"무슨 일인지 얘기를 해봐요.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도와줄테니까. "
양미숙이 몸을 돌려 최대광을 바라보았다. 침대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던 최대광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만나는 건 싫어, 더럽고 냄새나서."
방안에는 아직도 더운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들이 내뽑은 분
비물의 비릿한 냄새도 풍겼다.
"대광씨, 무슨 일이 있어요? 이런 곳에서나 만나자고 하고."
"아, 시끄러 , "
침대에서 일어난 최대광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팬티도 걸치
지 않은 알몸이었는데 하마의 피부처럼 검붉은 색깔에 윤기가 흐른다.
"싫으면 안 만나면 되는 것 아녀?"
양미숙이 시트로 하반신을 가리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기가 어때서?잠판 놀고 가면 되는거지, 꼭 일류 호텔에서 그짓
을 해야 된단 말이여?"
"대광씨, 내 말은‥‥‥‥
탁자 위에 놓인 안경을 집어 양미숙은 얼굴에 걸쳤다.
"대광씨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서."
"없어."
던지듯이 말을 뱉은 최대광은 화장실로 들어졌다. 샤워기의 꼭지를
틀자 찬 물줄기가 뭉쳐서 쏟아져 내렸다. 비누도 보이지 않아서 두리
번거리다가 욕조의 구석에 떨어져 있는 지우개만한 것을 찾아내었다.
안양 근처에 있는 허름한 여관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대림동의 아
파트와 가깝기도 했지만 시내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유장수는 두달째로 접어드는데도 끈질기게 추적해 오고 있었다. 돈
보다도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고 부하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본보기
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까지 그들이 자신들의 은거지를 알
아챈 흔적은 없다. 고영무는 그들의 세계에서 동떨어진 인물이다.
고영무의 아파트에 은신해 있으리라고는 그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다.
수건도 걸려 있지 않았으므로 물이 뚝뚝 흐르는 몸으로 최대광은 화
장실을 나왔다. 양미숙이 시트로 젖가슴 아래 부분을 감싸고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 핀 담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대광씨, 지금 피해 다니는거지?"
오늘은 알아내고 말겠다는 얼굴이었다.
"내가 도와줄게요. 내가 검찰에 아는 사람이 즘 있어."
최대광은 방안을 두리번거리다가 그녀가 감고 있는 시트를 움켜쥐
었다. 힘을 주어 잡아당기자 양미숙이 한바퀴 돌더니 시트가 벗겨져
나왔다.
"어머나, 이게 무슨 짓이야?"
알몸이 드러난 양미숙이 이맛살을 찌푸렀다. 두 무릎을 오므리고는
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는다.
"쓸데없는 소리 말어."
시트로 몸을 닦으면서 최대광이 그녀를 흘겨보았다.
"괜히 그러다가 다쳐. 그만둬."
"놈들이 나하고 당신의 관계를 알면 아마 당신 집안도 절단날거야."
양미숙은 꼼짝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소리야. 이겐 그만 만나는 것이 좋아, 서로간
양미숙의 몸이 거칠게 출렁거렸다. 일주일에 한번꼴로 양미숙을 만
나고 있었는데 그녀측에서 최대광에게 흘딱 빠진 맞도 있지만 최대광
으로서도 주채할 수 없는 힘을 쓸아부을 상대가 필요하기도 했던 것이
다. 그러나 신용만은 그가 양미숙을 만나러 나갈 때마다 길길이 뛰었
다. 지난번에는 나가지 못하게 말리는 신용만을 밀켰다가 치고받는 주
먹질까지 했다. 싸움은 금방 그쳤지만 화가 난 최대광은 고집을 부려
나갔고 그 일로 사흘 동안 말도 않고 지냈던 것이다.
"그럼 안 물어보면 돼?그냥 당신이 하자는 대로 이런 곳에서 만나
기나 하면 괜찮은거야?"
양미숙이 손빠닥으로 그의 등을 볼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므로
최대광의 등 근육이 부르르 떨다가 팽팽하게 굳어졌다.
"절단날 일도 없어.능력없는 그 작자, 나한테 큰소리치지도 못해.
위자료 주어서 헤어지면 돼."
"나한테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앞으로는 묻지도 않을테니까."
입맛을 다신 최대광이 탁자 위에 놓인 담배를 빼어 물었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탐하는 정도는 못되더라도 자신도 이제 그녀의 몸에 익숙
해져 있었다 그리고 감옥살이와 같은 요즘의 일상에서 양미숙을 만나
는 일마저 없다면 아마 발작을 일으켰을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면 신용만은 참을성이 대단한 놈이었다. 그는 시간표를 짜
서 벽에다붙여 놓고는 여섯시에 기상해서 하루에 다섯 시간은 운동하
고 세 시간은 영어회화 공부를 한다. 여자를 겁탈해서 호텔을 쫏겨났
다는 놈이 여자를 밝히지도 않고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일로
단단히 경을 친 모양이었다.
양미숙의 손길이 그의 등에서 허리로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있었다.
목덜미에 그녀의 입김이 부딪쳤고 이내 젖가슴의 물컹한촉감이 등에
당았다. 최대광은 그녀의 손길이 하반신으로 넘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방에서 나온 신용만은 잠시 탁자 위에 놓인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 전화를 걸어을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지금 밖에서 일을
하고 있을 최대광이다. 이맛살을 찌푸린 신용만은 소파에 앉아 수화기
를 들었다. 최대광에 대해서 짜증이 났지만 그의 전화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여보세요."
이쪽이 잠자코 있었으므로 저쪽이 부르고 있다. 신용만의 가슴이 철
렁 내려않았다. 최대광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쪽에서 잠자코 있자 저
쪽은 다시 소리치듯 말했다.
"여보세요, 거기 신용만이나 최대광이 없습니까? 여긴 고영무인데
요. "
"아이고, 형님!"
저도 모르게 신용만이 와락 소리를 질렀다. 수화기를 움켜쥐고는 상
체를 번쩍 일으켜 세웠다.
"접니다, 제가 용만이에요."
"응; 용만이 그동안 별일없지?"
고영무가소리쳐 물었다. 전화의 감이 멀었고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
처럼 두 번 들려왔다.
"네, 별일 없습니다. 형님도 건강하시지요?"
"응, 나야 별일없어. 너희들이 고생이 많겠구나."
"아님니다, 고생은요."
사서 하는 고생이므로 자랑할 것도 못된다. 한 달 만에 걸려온 전화
였다. 이쪽에서는 최대광까지도 신문을 받으면 해외소식란부터 펼치고
는 콜름비아 이야기가 씌어 있나 하고 찾아보는 참이다.
"내가 요즘 바빠서 너희들에게 자주 연락하지도 못해서 미안하다.
이제 조금씩 익숙해져 가너까 자주 연락할거다. "
"고맙습니다. 형님."
"저쪽은 어떠냐
"여전합니다. "
말은 그렇게 했으나며칠 전에 비어 있는신용만의 연립주택에 유장
수의 부하들이 입주해 왔다. 전제 계약서는 그가 가지고 있어서 유장
수도 어쩌지는 못했지만 돈은 그가 내고 사는 사람은 남이 되었다. 시
간이 지날수록 유장수는 더욱 안달을 하고 있었다.
"될 수 있으면 바깥 출입을 하지 말도록 해. 나도 이곳에서 너희들
일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대광이는 옆에 있니?"
"아, 대광이는 지금 화장실에 있는데요, 배탈이 나서."
"그래? 그럼 걔한테도 내 말 전하고. 이만 끊는다. 몸조심해라."
"네, 형님도 몸조심하십시오."
수화기를 내려놓은 신용만은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눈만을 치켜들어 을려다본 시계는 밤 열두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
그의 입에서 저절로 욕설이 터져나왔다. 정신없이 양미숙과 ◎굴고
있을 최대광을 생각하자 울화통이 터진 것이다.
"짐승 같은 놈!"
바로 자기 앞에 최대광이 있기나 한 것처럼 신용만은 앞쪽을노려보
았다.
유장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홍성희를 바라보았다.
"넌 오늘 밖아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 "
"알았어요."
홍성희가 다소곳이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일찍 들어을테니까."
"몇 시쯤 들어오실건데요?"
"좌우간 일찍 ."
아침 여덟시 반이었다. 유장수는 요즘 들어 흥성희의 집에서 자고
가는 횟수가 늘었다. 전에는 일주일에 한번쯤이던 것이 이제는 일주일
에 3, 4일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잠자리의 횟수도 덩달아 늘어났는데
몸에 좋다는 약이란 모조리 집어삼킨 탓인지는 몰라도 밤마다 흥성희
를 못살게 굴고 있었다
홍성희도 허리를 흔드는 짓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이골이 난 터였다.
열여섯 살 때부터 십 년 가깝게 크고 작고 가늘고 굵은 사내들을숱하
게 겪어 온 바가 있었으므로 싫다고 할 여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흥성
희는 유장수가 이렇게 갑자기 덤벼드는 이유를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
다. 나중에 이름을 알았지만 최대광이라는 대물이 좌신의 문전에서 시
위를 벌이고 난 후부터였다.
유장수는 그날 이후로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저, 내일부터는 찰영이 있는데, 주말 연속극‥‥‥‥
흥성희가 머리를 들었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는 돌아와요."
"PD가 어제도 두 번이나 전화를 했어요."
유장수가 앞에 앉은 홍성희를 쏘아보았다.
"어느 놈이야? PD가?"
"건방진 놈 같으니라구."
자리에서 일어선 유장수가 저고리를 집어 들었다. 요즘 들어 신경이
곤두서 있는유장수였다. 한 달이 지나도록 돈을 강탈해 간 놈들을 잡
지 못한 것이다.
그의 기세를 보면 3, 4일이면 놈들의 목덜미를 끌어을 것 같았고,그
들의 신원을 알아내는 것까지는 예상대로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후로 추적은 지지부진이었다. 은신할 만한 곳을 모조리 찿아보았는
데도 어디에 틀어박혔는지 그들은 흔적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유장수를 배웅하고 돌아온 홍성희는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누였다.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올라 앞에 놓인 물건들을 모조리 집어던지고 싶
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집어던져 부수고 나면 다시 치워야 하는 것
처럼 그에게 반발해 보아도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홍
성희였다. 그의 덕분에 정상급 탤런트가 되었지만 그에게 밉 게 보이면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물겨나는 신세가 된다. 유장수는 부동산만 해도
3천 억이 넘는 사람이다. 영동의 강남역 사거리에 있는 20층짜리 빌팅
두 개와 역삼동의 25충 빌팅도 그의 소유여서 임대료만 해도 한 달에
몇십 억을 챙기고 있다. 그는 또한 처세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정계와
관계의 거물들과도 오랜 교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약점을 잡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불우이웃이라
든갸 자선사업에는 언제든지 그의 이름이 첫번째에 오른다. 그는고향
인 대전에 장학재단을 설립해 놓았으므로 재단 이사장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한 양면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잔인
하고 인정머리 없고 약자한테는 강한 사람이 그였다.
홍성희가 보기에도 한 달 전의 그 사건은 유장수의 일생에서 처음으
로 자신의 무능력과 약함을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그녀도 그가 꼼
짝하지 못하고 두 사내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보고는 순간적으펄 야릇
한 충동을 느줬던 것이다.
홍성희는 그 덩치 큰 사내가 자신을 겁탈해 주기를 바랐다. 자신이
받을 상처보다도 유장수에 대한 잠재된 반발감이 그렇게 표출되었을
것이다.
대성빌딩 25층에는 유장수의 대성재단 이사장실이 마련되어 있었
다. 재단의 사무실은 대전에 있었으나 이사장실은 서울에 둔 것이다.
이사장실 옆에는 비서실과 관리부가 있었는데 빌딩관리를 하는 부서
였다. 30평도 넘어 보이는 이사장실의 소파에 유장수가 앉아 앞에 맞
은 장규식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바탕.소리를 지르고 난 후인지 아직도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할수없다. 오늘 애들을 장흥으로 내려 보내서, 그놈 여동생이 있다
고 했지? 그 기집애를 잡아와."
유장수의 말에 장규식이 퍼뜩 머리를 들었다. 진작부터 최대광의 인
적사항은 파악해 놓고 있었다.
"그놈이 나타나지 않고는 못 배길거다. 여동생으로도 안되면 에미까
지 잡아올테니까."
"잡아와서 어떻게 할까요?"
"가둬 놓기만 해라 그리고 신문광고를 내. 그놈 사진을 붙여 놓고
여동생이 오빠를 찾는다고, 연락처를 적어놓고 말이다. 일간지에 모두
내 라."
"알았습니 다. "
장규식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놈이 제 여동생이 납치당해 있는지는 알겠지요. 나타날겁니다. "
"그리고."
유장수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집으로 애들을 보내. 대치동하고, 방배동에도. 무슨 말인 줄 알
겠지?"
"알고 있습니다. "
"무식한 놈들이야. 이놈들을 잡아서 살을 씹을 때까지 내가 잠을 제
대로 자지 못할거다. "
"염려 마십시오, 사장님."
장규식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바쁘게 방을 나갔다.
장규식이 나간후에도 한동안움직이지 않고 소파에 밝아 있던 유장
수가 손을 별어 인터폰의 스위치를 눌렀다.
"네, 사장님 ."
사내의 목소리가 금방 울려나왔다.
"알아봤나?"
"네, 사장님 ."
"들어와."
"f네 . "
일분도 되지 않아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건장한 사내가 들어
셨다. 손에는 종이쪽지 한 장을 들고 있다. 유장수가 잠자코 그를 바라
보자 사내는 소파 앞쪽에 와 섯다.
"담당 PD는 김운영입니다. 내일부터 '바람부는 날'의 찰영이 있다
고 했습니다. 흥성희씨는 내일 꼭 참석해야 한다고 합니다. 내일부터
일주일간은 빠지면 안된다고 하는데요."
"철영장소는 내일하고 모레는 스튜디오에서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속초의 바닷가에서 야외활영을 해야 한답니다. "
손가락 끝으로 탁자 위를 조그맣게 두드리며 유장수가 그를 올려다
보았다. 사내가 종이쪽지를 내렸다.
"속초라‥‥‥
혼잣소리처럼 유장수가 중얼거렸다.
"멋있겠군, 바닷가에서."
긴장해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유장수가 히죽 웃었다.
이자영이 커피숍으로 들어서자 문 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던 두 명의
사내가 동시에 일어딘다. 아침 열시가조금 넘은 시간이어서 커피숍은
한산했다.
"이자영씨 아니십니까?"
사내 한 명이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정중히 물었다. 이십대 후반쯤
으로 보이는 인상이 좋은 사내였다.
"네, 전데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서초경찰서에 근무하고 있는 이형사이
고 저는 박형사입니다. "
신분증을내보이며 다른사내 한명이 꾸벅 머리를 숙여 보였다.
"시간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잠깐 여줄 말씀이 있어서요."
이자영이 그들의 앞자리에 앉자 박형사라는 호리호리한 사내가 말
을 이었다. 그는 말끝마다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을 띄우고 있었는데
인상이 좋은 탓도 있겠지만 이자영의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해주었
다. 형사는 처음 만나지만 한국의 형사도 외국 영화에서 보는 형사만
큼 세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씀이신데요.?"
이자영이 시계를 들여다보고 나서 물었다. 빨리 돌아가야 하는 것이
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와 불안했었다.
"저, 이자영씨께서는 두 달쯤 전에 정도용역이라는 회사에 일을 맡
기셨죠?"
박형사가 웃음띈 얼굴로 물었다.
"네, 그했어요. 그런데 왜요?"
"그 용역회사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용역회사가 심부름만 하고 끝나
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약점을 잡아 공갈을 치거나 협박을 하는 경
우가 많거든요."
"아아, 네."
"또 전과자들이나 불량배들을 고웅해서 일을 시킵니다. 위법이지
요.
이자영의 머리에 두 사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박형사의 표현에 들어
맞는 사내들이었다.
"이자영씨께서 직접 어떤 사내들을 데리고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
다만, 그 사내들이 실은 수배자들이어서요."
"어머나!"
"'저회들이 듣기로는 이자영씨가 의뢰하셨던 일을 그 친구들이 해결
하지도 않았다고 들었는데, 돈을 돌려주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
까?"
"네, 그래요."
그들은 고영무를 당해내지 못하고는 당장에 형님을 삼아 버렸다. 이
자영의 머리에 그들이 돈을 던져 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을 바라
보던 고영무의 얼굴도 기억이 났다. 그들은 어울리는 짝이었다.
"어떤 사람을 당장에 형넘을 삼아 버리더군요. 그리고는 어울려서
술마시러 갔어요. 기가 막혔어요."
"그 사람이 누굽니까?"
박형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이형사의 시선도 그녀
에게 집중되어 있다.
"고영무라고, 저희 회사 직원인데 지금은 콜룹비아에 가 있어요."
"출장입 니 까?"
"아뇨, 파견입니다.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그건 잘 몰라요."
"언제 갔습니까?"
"한 달이 조금 넘었어요."
그들은 서로 얼굴을 돌아보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귀찮게 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을 드리
지요."
긴 얼굴의 이형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의 이름이 고, 영, 무, 라고 하셨지요?"
"네, 그래요. 고영무예요."
이자영이 듣기 쉽게 또박또박 끊어서 말했다.
신용만이 발로 엉덩이를 내지르는 바람에 최대광은 눈을 였다. 불끈
화가 치밀어오른 최대광은 서 있는 신용만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야, 이자식아."
질색을 한신용만이 다리 한쪽으로 그의 어깨를 밟았으나 이내 공중
잡이를 하면서 방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
"아침부터 발길질이 뭐야? 이 자식아!"
우습기도 하고 화도 났으므로 최대광이 버럭 소리를 쳤다.
"한번만 더 그했다가는 엉덩이 제를 부숴버릴거다. "
그러자응당대들어서 어딘가를 두어 대 쳐야 할 것인데도신용만은
방바닥에 주저앉은 자세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멋적어진 최대광이 자리를 고쳐 앉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여? 아침부터?"
신용만이 손에 움켜쥐어서 구겨진 신문을 아무 말 없이 방바닥에 펴
놓았다.
"이것 봐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자신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붙여진 것을
본 최대광이 눈을 둥그렇게 였다.
"오빠, 돌아오세요."
커다랄게 위쪽에는 그런 말이 씌어 있었다.
"오빠,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어서 돌아와 주세요. 상기자의 연
락처를 알고 계시는 분은 후사하겠음. 연락처 514-1關5."
한동안 신문을 내려다보고 있던 최대광이 얼굴을 들었다. 이맛살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고 않은 입술은 뒤틀려진 채 튀어나왔다.
"이게 뭣이여? 금옥이 이 가시내가 왜 나를?"
"유장수가 한 짓이야."
"뭣이? 유장수가?"
"신문 읽고 나서 내가 전화해 보았어. 유장수의 똘마니가 받더구만.
사흘 안에 나타나지 않으면‥‥‥‥
"않으면 월?"
덕을 내민 최대광이 신용만을 노려보았다.
"어쩐단 말여? 이 자식아!"
"금옥이를‥‥‥‥
최대광이 와락 신용만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금옥이가 어뜨케 되었는디?"
"이 자식아, 이것 놔."
숨이 막히는지 신용만이 그의 팔목을 잡았다.
"어뜨케 되었딘 말여? 이 자식아!"
"지금 놈들이 잡고 있다더라."
"어허!"
높고 길게 탄식을 하면서 최대광의 활힘이 풀렸으므로 신용만은 목
을 흔들며 물러나 앉았다.
"내가 고향에다 확인을 해보았어. 어젯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거야. 회사에다 전화를 했더니 어제 오후에 외출해서 회사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
"놈들이 잡고 있는 것 같아."
"이놈의 새끼들이 죄없는 내 여동생을!"
갑자기 어깨를 늘어뜨린 최대광의 눈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우라 금옥이가 무신 죄가 있다노
"내 대신 아들 노롯을 허는 지집앤디, 공부도 잘혔는디 대학도 못 가
고, 아이고."
최대광이 커다란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한쪽 팔을 눈에 갖다 댄
채로 황소가 우는 듯한 소리를 여러 차례 질러대었다.
"아이고, 불쌍헌 금옥아!"
"야, 진정해,"
보다못한 신용만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자 울음 소리가 가늘어지더
니 요란한 딸꾹질 소리가 났다. 최대광이 눈물로 범백이 된 얼굴을 들
었다.
"그놈들한티 가야긋다. "
"가서 내가 죽어야지. 울엄니가 알기 전에 얼릉 바쥐야 혀,"
"글쎄 조금 진정하고 생각을 해보자."
"생각은 무슨 얼어죽을."
최대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셨다.
"야, 월 하려고?"
따라 일어선 신용만이 그를 쳐다보았다.
"워허긴 뭐혀? 전화혀야지, 내가 간다고."
"이런 바보 같은 놈, 조금 생각해 보자니까!"
순간 최대광의 주먹이 취익 날아들었으나 신용만은 머리를 누여 비
껴 보냈다. 주먹 이 문짝에 맞아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이 병신아, 다 너나 금옥이를 생각해서 하는 소리란 말이다!"
신용만이 악을 썼다. 그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둘이는 잠
시 서로 노려본 채 서 있었다.
10월중순이었으나 바닷바람은 싸늘하게 피부에 닿았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도 모른다. 눅눅한 습기를 안은 바람에 음식점의 깃발이 펄럭
이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 반인데도 주변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거친 바다의 파
도를 헤치며 조그만 어선 한 척이 기를 쓰듯 항구로 항해하고 있는 것
이 보였다.
신용만은 상체를 숙이고는 횟집의 포장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다.
오른쪽 언덕 위에 동해 콘도의 웅장한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흐린
하늘을 매경으로 크림색의 밝은 건물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하나
둘 불을 켜기 시작한 방들의 불빛이 선명하게 빛을 내었다. 신용만이
몸을 바로 세우자 최대광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아직 안 들어왔어. 불이 켜지지 않은 걸 보면."
그가 묻기도 전에 신용만이 입을 열었다.
"허지만 곧 들어올거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니까."
최대광은 맥주컵에 담긴 소주를 한모금 마시고는 내려놓았다. 오늘
은 그도 술을 절제하고 있었다.
"서울까지 돌아갈 일이 걱정인데. 비가 내릴 것 같단 말이야."
신용만이 입맛을 W다.
"벗길에 대관령은 어려워, 더구나 밤에."
"염병할 놈."
최대광이 이맛살을 피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잔소리 집어치워라, 운전은 내가 할테니까."
동해 콘도의 418호실에 홍성희가 묵고 있었다. TV 드라마의 촬영을
하기 위해서 오늘 오전에 속초로 내려온 것이다. 홍성회를 납치해서
최금옥과 교환하자는 생각을 해낸 것은 신용만이다. 유장수를 찾아가
겠다고 길길이 뛰는 최대광을 차근차근 설득했던 것이다.
그날 아파트에서 유장수가 끝까지 버티다가 홍성회를 겁탈하려는
최대광을 보자 어이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 흥
성희는 범 의 굴 같은 서울을 떠나 속초로 나온 것이다.
"너,잠판만 여기에 있어 내가 한바퀴 돌아보고올테니까."
자리에서 일어선 신용만이 최대광을 바라보았다.
"밖으로 나가지 말어,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최금옥까지 잡아 둔 유장수가 홍성희를 흔자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
. 다. 홍성희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바람부는 날'의 활영 스케줄은 미리
짜여진 것이어서 조작된 것 같지는 않다. 신용만은 매사에 조심스러운
f 성격이었다. 그리고 최금옥이 납치된 것에 대해서 책임을 느끼고 있었
다. 싫다고 하는 최대광을 끌어들여 유장수의 집으로 쳐들어가게 만든
것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얼굴에 부딪쳐 떨어졌고 바같 바람은 세었다.
신용만은 점퍼의 깃을 세우고는 첫집들이 늘어선 부듯가의 거리를
걸어올라갔다. 좁은 길의 한쪽은 바다였으므로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
리고 있다.
거리의 끝은 4차선 도로였는데 도로 건너편에 동해 콘도로 올라가는
포장된 길이 보였다. 신용만은 거리의 끝 쪽에 있는 해산물 가게 앞에
서 걸음을 멈추었다. 유장수의 부하들은 모두 이쪽의 얼굴들을 외워
두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콘도 안으로 얼굴을 내밀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오징어를 굽어다 보면서 주인에게 값을 물어 보다가
머리를 든 신용만은 418호실의 불이 켜진 것을 보았다. 흥성회가 방에
들어온 것이다. 낮에 확인해 두었으므로 콘도의 내부는 눈에 선했다.
그녀는 여자 연기자 세 명과 함께 콘도 한 채를 같이 쓰고 있었다. 신
용만은 어두워진 도로를 건너 위쪽으로 걸어올라갔다. 백 미터쯤 가자
언덕 쪽으로 올라가는 조그만 샛길이 보였다. 그는 물기에 젖은 잡풀
에 미8러지면서 경사가 심한 셋길을 기듯이 올라갔다. 온몸이 금방
땀으로 젖었다. 20분쯤 기어올라가자 시야가 금방 탁 트였다. 그리고
왼쪽에 휘황한 불빛을 번책이는 콘도가 보였다.
콘도는 50미터쯤 떨어져 있었는데 신용만의 눈앞에는 철조망이 쳐
져 있었다. 위험한 지역이므로 이쪽은 출입을 통제시키는 모양이다. 신
용만은 철조망으로 다가가 허술한 한쪽을 들쳤다.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람 하나가 선 채로 빠져
나갈 수 있는 공간이 보였다. 철조망을 빠져나온 신용만은 콘도 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걸었다. 이제 바로 앞쪽은 주차장이다.
"언니, 길 건너편에 횟집들이 있잖아?우리끼리 나가서 회 좀 먹고
올까?"
김미옥이 생글거리며 물었다.
"바닷바람도 쒸고, 웅?"
"얘, 비온다, 비와."
화장실에서 나오던 정수림이 나무라듯 말했다. 그녀는 이번에 흥성
희의 어머니 역을 맡은 나이나 경륜으로 따져도 좌장격이었다.
"가까운데요, 월. 저기 아래까지만 걸어가면 되는데 "
"난 싫어."
흥성희가 머리를 젓자 김미옥이 입술을 배죽 내밀면서 소파에 주저
앉았다.
큰도의 아래층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올라온 길이었다. 남자들은
PD를 중심으로 횟집으로 가기로 한 모양이었는데, 여자들은 피곤하다
면서 먼저 올라왔던 것이다. 정수림이 선배 노롯을 단단히 하려는 지
여자들을 이끌고 있었다.
"넌 언제나 철이 들래?내일 아침에도 찰영이 있는데, 대사나 외우
지 勢군"
정수림이 얼굴에 크림을 바르면서 김미옥을 나무라자 그녀는 더욱
뾰로통해졌다. 연초에 CF 모델에서 전격기용된 그녀는 청소년들의 폭
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다리가 길고 젖가승이 아예 없는 몸매였
으나 그들의 취향에 맞는 모양이었다.
"성희야, 너 이 크림 좀 발라 봐라. 프랑스젠데 아주 괜찰아."
정수림이 크림통을 내밀자 김미옥이 재빠르게 다가와 낚아채듯 받
았다.
"어머나, 예쁘다. "
아직 열아홉 살짜리였으므로 정수림이 머리를 들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김미옥의 어머니는 오늘 몸이 아파서 따라오지 않았다. 그
대신 정수림에게 신신당부를 해놓은 것이다. 어머니 대신이므로 야단
을 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홍성희는 크림통의 뚜껑을 열고는 크림을 찍어 얼굴에 문지르기 시
작했다. 정수림은 삼십대 중반이지만 미모나 체격에서 이십대 스타들
에게도 뒤지지 않는 여자였다. 지금은 두 아들의 어머니가 되었으나
십 년쯤 전만 해도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던 여자였다.
홍성희는 유장수가 한때는 정수림과 가까운 관계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석 달만 TV물을 먹어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수림도 자신과 유장수와의 관계를 알고 있을 것이라
는 이야기도 되었다.
"언니, 남자를 떨구려면 어떻게 해야 돼?"
홍성희가 얼굴을 문지르며 정수림을 바라보았다.
"왜? 귀찮게 하는 남자가 있니?"
눈을 크게 뜬 정수림이 동작을 멈추었다.
"하나둘이겠어, 언니한테?"
"시끄러, 이것아,"
나서려는 김미옥을 나무라고 난 정수림이 찬찬히 홍성희를 바라보
았다.
"있어, 귀찮게 하는 사람이."
"월 하는 사람인데?"
머리를 숙인 정수림이 소곤거리듯 물었다. 김미옥이 귀를 중긋 세우
고 그들을 곁눈질하고 있다.
"모르겠어, 뭘 하는 사람인지, "
정수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기대에 어긋났다는표정 같기도 했다.
"몰라?"
"응, 전화로 귀찮게 해."
"전화로?"
"에이, 그럼 전화번호를 바꾸면 되지 월."
김미옥이 다시 나쳤고 이번에는 정수림도 나무라지 않았다.
"전화번호도 몇 번 바뀌 보았어. 하지만 소용없던걸."
거짓말이었다. 정수림의 얼굴을 대하자 문득 그런 말이 나왔던 것이
다. 그러나 차즐 그 대상의 얼굴이 머리속에 떠을랐다. 아마 잠재하고
있던 생각이 불쪽 말로 튀어나왔던 것 같았다.
"언니, 요즘은 그걸 방지하는 장치가 달린 전화기도 팔아."
김미옥이 크림을 찍으면서 말했다.
"그걸 사면 돼. 녹음시켜서 음성 분석도 해준다고 하던데. 누군지 알
아내 준대."
거울을 향해 돌아앉은 김미옥은 열심히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다.
철조망을 통과한 신용만이 몸을 돌리자 최대광이 몸집과는 달리 사
뿐하게 철조망을 넘어왔다.
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옷은 흠백 젖었다. 열
두시가 넘어 있었고 418호실의 불은 조금전에 꺼겼다'.그들과 일행인
416호실의 볼은 켜져 있었는데 남자들이 술타령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
다. 신용만은 앞장을 서서 콘도의 오른쪽 벽으로 다가갔다.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조금 열려진 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
다.
신용만은 문 앞으로 다가가 틈사이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커다란
양동이가 횐 김을 내고 있을 뿐 인기척은 보이지 않는다. 신용만이 문
을 조금씩 열고는 안으로 들어서자 최대광이 들어서떤서 문을 활짝 마
저 열었다.
그들은 주방의 다른 쪽 입구로 다가값다. 문을 열면 아래층의 비상
구가 나을 것이다.
"넌 여기서 기다려. 내가 올라갔다 올테니까."
최대광의 귀에 대고 말하자 그가 벌떡 얼굴을 들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어, 임마."
"야, 임마, 귀찰아. 내가 이런 일은 전문이란 걸 몰랐어?"
"같이 올라가. 내가 떠메고 와야 하니까."
입맛을 다신 신용만이 주방의 안쪽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콘도의
프런트는 통로의 오른쪽에 있었다. 왼쪽에 비상계단이 침침한 어둠에
묻혀 있었다.
그들은 계단을 소리없이 걸어올라갔다. 사층에 다다르자 신용만은
비상구의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통로는 비어 있었다. 비상구의 바로 앞쪽에412라고 씌어진 횐 아크
릴 번호판이 붙여져 있었다. 그렇다면 문 쪽에는 흘수 번호가 있을 것
이다. 418호는 앞쪽의 여덟 번째 방이다. 신용만은 등에 맨 둥산용 가
방에서 수건과 클로로포름 병을 꺼내고는 쭈그리고 않아 약을 수건에
적셨다.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내어 약을 적신 수건을 넣은 다음
봉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신용만이 허리를 조금 숙인 자세로 재빠르게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최대광은 두 팔을 취저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416호
실 앞으로 다가가자 안쪽에서 사내들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신용만
은 418호실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좌우를 살피고 난 신용만은 호주
머니에서 끝이 구부러진 철사토막 하나를 꺼내더니 열쇠 구멍에다 집
어 넣었다. 복도는 환한 불및에 싸여 있었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딸그
락거리는 소리가들려왔다. 몸을 구부리고 있는신용만의 옆에 비펀麥
최대광은 우두커니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쾅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서 있는 바로 뒤쪽의 방문
이 열리는 소리였다. 417호실의 방문이 열리더니 순식간에 사내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내 한 명이 손에 든 야구 배트로 내려쳤으므로 좁은
복도에서 피할 수도 없었던 최대광은 어깨가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
고 418호실의 벽에 등을 부딪쳤다. 신용만은 사내 한 명에게 목을 잡혀
두 팔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다른 사내 한 명이 최대광의 배를 발끝
으로 찍었으므로 최대광은 허리를 숙였다. 내려치고 맞는 둔탁한 소리
와 발자국 소리, 그리고 가쁜 호홉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
다.
416호는 말할 것도 없고 418호실은 바같의 일을 모르는 듯 반응이
없었다.
누군가 야구 배트를 위에서 아래로 곧장 내려쳤으므로 최대광은 몸
을 복도에 누이면서 한바퀴를 굴렀다. 그러자 알루미늄 배트는 복도의
대리석 바닥에 부딪쳐 쇳소리를 내었다. 최대광이 구르는서슬에 사내
에게 목을 잡힌 채 발버둥을 치던 신용만이 사내와 함께 바닥에 넘어
졌다. 사내들은 모두 여섯 명이었다. 그러나 장소가 좁았으므로 다수의
힘을 효을적으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껏 이쪽과 부딪히는 상대
방은 세 명 아니면 네 명이다. 최대광은 옆으로 넘어진 사내의 얼굴을
주먹으로 찍으면서 일어셨다. 주먹이 수박을 부수는 듯한 느낌이 왔지
만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야구 배트가 한걸음에 다가오고 있었다. 높게 쳐든 야구 배트 쪽으
로 와락 달려들자 거리가 좁혀겼으므로 상대방은 내려칠 수가 없다.
사내는 배트의 손잡이 쪽을 와락 앞으로 내밀어 찍어 왔다. 얼굴을 돌
려선 배트를 피하는데 옆에서 사내의 발길이 날아와 최대광의 옆구리
를 책었다.
"어흥!"
최대광의 입에서 곰이 우는 것 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는 배트
를 쥔 사내의 머리칼을 움켜쥐고는 와락 끌어당기면서 이마로 그의 콧
잔둥을 박았다.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사내가 허물어지듯 주저
앉았다. 휘익 몸을 돌려 발길질한 사내를 찾는데 사내의 발길이 사타
구니로 날아 들어왔다. 허리를 틀었으나 발길이 고환에 닿았으므로 최
대광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끊었다. 온몸에 기운이 빠져 달아나고 얼
굴에 순식간에 진땀이 배어 나온다.
사내의 발길이 다시 얼굴로 날아오는 것을 손을 들어 가로막은 최대
광은 다른 한손으로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는 있는 힘을 다하여 끌어
당겼다.
중심을 잃은 사내가 넘어지굴서 끌려 나온다. 최대광은 와락 그의
몸 위에 엎어지면서 입을 쩌억 벌렸다.
밝이 모이를 찍듯이 머리를 내리자 그의 입이 부딪친 곳은 사내의
콧날이다. 최대광은 한 입에 그의 코를 잡아떼줬다. 신용만이 사내의
명치끝을 팔꿈치로 찍자 사내는 입을 책 벌리더니 눈을 뒤집어 까면서
넘어졌다. 휘익 몸을 돌린 신용만은 쇠뭉치를 든 사내를 보았다. 그는
쓰러진 동료를 건너뛰어 무릎을 끊고 있는 최대광 앞에 선 참이다.
거리는 3미터 정도가 되었다. 최대광은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신용
만은 입을 딱 벌리면서 달려들었다. 소리를 지르려고 벌렸으나 막상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 짧은 순간에도 신용만의 온몸에 소름이 돋
아났다.
사내가 쇠뭉치를 든 순간 최대광이 머리를 돌렸고 쇠뭉치가 내려쳐
졌다.
최대광이 손을 올려 사내의 쇠뭉치를 받아내었으나그의 무릎에 얼
굴을 찍혔다. 신용만의 발이 그때서야 그쪽에 닿았다. 그의 주먹이 사
내의 얼굴을 쳤다. 취청거리는 사내의 얼굴을 다시 양쪽 주먹으로 돌
리면서 쳤다.
사내가 털씩 무릎을 끊자 최대광과 같은 꼴이 되었다. 머리를 좌우
로 흔들던 최대광이 덤석 사내의 어깨를 양손으로 쥐었다. 그리고는
피로 범택이 된 붉은 입을 쩌억 벌리더니 마음을 고쳐 먹은 듯이 이마
로 사내의 얼굴을 찍었다 사내가 머리를 쥐고는 구겨지듯 마를바닥에
쓰러졌다. 아랫배를 움켜쥐며 최대광이 일어딘다. 여섯 명의 사내가 복
도에 가득 쓰러져 있었다.
십 분도 안된 시간이었지만 416흐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418호실
에서 바괄의 소동을 못 들었을 리가 없다.
사내들은 모두 실전에 익숙한 기술자들이어서 극도로 소리를 역제
하고 있었으나 얼굴이 부서진 사내라든지 코가 없어진 사내들은 저도
모르게 소리들을 내질렀으므로 418호실의 여자들은 깨어났을 것이다.
신용만이 열쇠를 따고 방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환히 불이 켜진 방안
에 네 여자가 모여랄아 있었다.
"아악!"
제일 먼저 비명을 지른 것은 김미옥이었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더니
금방이라도 기절해 넘어질 듯 상체를 건들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내의 온몸이 피투성이였던 것이다. 특히 최대광의 모습은사람을 잡
아먹는 고릴라나 귀신의 형상보다도 더 지독했다.
"소리 지르지 말어. 창밖으로 집어던지기 전에."
신용만이 여자들을 휘 둘러보았다. TV에서나보던 미인들이 한꺼번
에 네 명이나모여 있었다. 대뜸 흥성희를 찾기는 찾았으나 잠시 어리
둥절했던 것이다. 여자들은 신용만의 엄포에 모두 오금을 붙이고 떨었
다.
"당신, 이리 나와."
신용만이 흥성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하고 같이 가줘야겠어 "
홍성희는 문밖에서 투덕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사내들이 자신을 따라와 앞방에 묵고 있는 것을 흥성희가 모를 리
없다.
"빨리 나와, 끌어내기 전에."
아직도 피가흐르는 입을 벌리며 최대광이 말했다. 다급한신용만이
한걸음 다가가자 홍성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나 서울에 올라갈테니까, PD한테는 급한 일로 갔다고 해줘."
"얘, 도대체 누슨‥‥‥
흥성희가 힐끗 신용만과 최대광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날 데리러 온 사람들이야, 내가 따라가야 돼."
"얘, 저 밖에는‥‥‥‥
밖에 쓰러져 있는 사내들을 본 모양이다.
"아까 얘기했장아. 모두 알아서 할테대까 어디에나 전화할 필요 없
어. 내버려 두면 갈거야."
그녀는 정수림이 신고하려는 것도 막은 모양이었다.
정수림이 아연한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집안일이야. 언니는 이해할거야. 이 일은 절대 비밀로 해줘."
"언니, 저 애들한테도 얘기 잘해줘. 괜히 입을 놀려 신세 망치지 말
라고. "
김미옥과 그녀 또래의 연기자를 덕으로 가리켜 보인 홍성희는 몸을돌
렸다.
"5분만 기다려요, 짐 좀 싸게."
신용만이 명한 얼굴로 최대광을 바라보았다. 최대광은 얼굴을 찌푸
린 채 입을 열지 않는다.
그녀가 짐을 싸는 동안 최대광이 방 밖으로 나가 떨어진 야구 배트
를 주워 들고는 몸을 추스리고 있는 사내들에게 적선하듯이 한 대씩을
갈겨 주었다.
사내들은 이를 악물고 있었으나 아까보다는 억제력이 풀린 모양이
었다. 낮은 신음 소리가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날 어디로 데려가지요?"
됫좌석에 않은홍성희가 옆에 앉은 최대광에게 물었다. 승용차는 대
관령 고개를 올라가고 있는 참이었다. 아직도 빗발을 뿌리고 있는 대
관령은 짙은 안개까지 끼어 있어서 라이트의 불빛이 5미터 밖으로도
나가지 않는다 신용만은 온몸을 긴장으로 굳힌 채 운전대를 쥐고 있
었다.
"이 길로 곧장 가떤 잡힐거예요.그 사람들이 서울에다 연락했을테니까
까."
신용만이 힐끗 백미러를 올려다보았다. 홍성희는 도무지 무서워하
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다소곳이라도 앉아 있다면 그런대
로 보아넘기겠는데 콘도에서 나와 차에 태우고 나서부터 쉴새없이 지
절이고 있다. 그들은 그녀로부터 싸움을 잘한다는 칭찬을 실컷 들었고
코피가 흐르는 최대광의 코를 흥성희가 손수건으로 밖아 주기도 했다.
참다못한 최대광이 신용만에게 클로로포름 수건을 달라고 하자 잠시
잠잠해지는 것 같더니 다시 지껄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사람한테 대항해서 이길 것 같아요? 이렇게 둘이서?"
흥성희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떤서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철저하고 잔인한지 알아요? 한번 그 사람의 손에
들면 빠져나을 수가 없다구요."
기어를 일단으로 한 채 차는 등산하는 노인처럼 대관령을 기어오르
고 있다. 다행히 오가는 차가 없어서 마음이 놓였다. 새벽 세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사람은 당신 동생과 나를 바꾸려는 당신들의 계획을 짐작했던거
예요. 그래서 사람들을 보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당신들이 모조리 때려눕힐 줄은 생각하지 못했
겠지요."
"당신들을 과소평가한거예요."
"아, 시끄러."
최대광이 버 럭 소리를 지르자 홍성희가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 동생을그사람부하들이 이렇게 거칠게 다루면 좋겠어요?"
"나한례 부드럽게 대해 주세요. 협조해 드릴테니까."
"금옥이가 어디에 있는지 압니까?"
운전을 하던 신용만이 묻자 그녀는 머리를 저었다.
"그건 몰라요."
"하지만 곧 당신들은 잡힐거예요. 그 사람이 온갖 방법을 쓰고 있으
니 까."
"허어, 이 망할 년이 !"
최대광이 눈을 부릅떠 보였으나 흥성희는 무서워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
첫댓글 이제 홍성희는 대광이꺼로구먼 그럼 용만이는 더 외롭겠다 그나저나 이눔덜은 어케될까나?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