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석간(趙石磵)은 조운흘(趙云仡, 1332~1404)로, 본관은 풍양(豐壤)이다. 상주 노음산(露陰山)에 은거하면서 석간서하옹(石磵棲霞翁)이라 자호하였다. 그 뒤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계림 부윤(鷄林府尹)을 거쳐 1392년(태조1) 강릉 대도호부사에 제수되었는데, 이듬해 병으로 사직하였다. 성품이 호탕하고 속세에 구애되지 않았고 은거생활을 할 때에는 소를 타고 다녔으며 죽을 때에는 스스로 묘지(墓誌)를 짓고 태연히 앉아서 죽었다고 한다. 《태종실록》 4년 12월 5일 기사에 졸기와 묘지가 실려 있다. 《해동잡록(海東雜錄)》에, 박신이 강릉 기생 홍장(紅粧)을 사랑한 이야기와 강릉 부사 조운흘이 박신을 초청하여 경포(鏡浦)에서 잔치를 베풀고 짐짓 홍장이 죽었다고 장난을 치며 즐긴 이야기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