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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3: 7. 독사의 자식
마 3: 7. 독사의 자식 -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
바리새인들은 경건하고 보수적인 자들이었고 사두개인들은 주로 부유한 제사장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회개하였기 때문에 온 것 같지 않다.
요한이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부른 것은 모든 죄인이 다 마귀의 자식이지만(요 8: 44. 요일 3: 10) 그들이 특히 남을 죽이는 독을 품은 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한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를 선포하였다.
1]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1) 바리새인(*, 파리사이온)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바리새파는 사두개파와 함께 마카비 독립운동 시대 초기(B. C. 167)에서 대제사장 요나단(B. C. 159-143) 치하 사이에 기원 된 경건주의자들로 '바리새'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것은 요한 힐카너스 당시(B. C. 135-105)로 보인다.
히브리어 '파라쉬'(*)에서 유래한 것으로 '구별하다'란 의미를 가진다. 바리새인은 '성별된 자'로서 율법과 구전된 조상들의 전통을 엄격히 지키고 영혼 불멸, 부활과 내세, 천사의 존재 등을 신앙하며 배타성이 강한 일단의 무리들을 가리킨다.
* 행 23: 8 -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그들의 분리주의는 율법의 순수한 정신과 내면적 경건을 무시하고 형식주의적인 위선과 외모를 중시하는 외식주의로 전락하여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었다.
* 눅 11: 43-44 –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 눅 12: 1 -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본래는 율법의 수호자로 자처할 만큼 율법 준수에 철저했고 의로운 이스라엘을 고대하며, 장차 도래할 메시아 왕국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바리새인들이 요한에게 온 것은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지대한 관심을 겉으로 나타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회개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현장에 회개에는 유념치 않고 외식의 옷만을 걸치고 거만하게 나타난 것이다.
'많은'이라는 말에서 그들의 수를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요세푸스(Josephus)에 따르면 헤롯이 죽을 때 바리새인들은 6천명 이상이나 되었다 한다.
(2) 사두개인(*, 사두카이온)
기원에 대하여는 알렉산더 대왕 당시의(B. C. 323) 사독이란 사람에게서 유래하였다.
히브리어로 '체디크'(*), 헬라어로 '아포 디카이오쉬네스'(*), 즉 '의'라는 말에서 근거하였다(Epiphanius)는 견해가 있다.
유대의 전승에 따르면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제사장 사독이란 인물에게서 기원하였다(Thayer, Carr)고 한다.
* 왕상 1: 38 –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 내려가서 솔로몬을 다윗 왕의 노새에 태우고 인도하여 기혼으로 가서
이들은 민족주의자들로서 바리새파, 엣세네파와 함께 유대의 3대 종파의 하나이다.
바리새인들과는 적대적인 파당으로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정치, 경제적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었고 특히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은 합리주의자들로 제사장급의 고위층이었다.
그들은 모세 오경 이외에는 모든 전승을 부인하였고, 내세도, 부활도, 천사도, 심지어 하나님의 섭리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유전의 위험은 피하였지만, 무익한 세상적인 열심과 인간의 이성에 절대적 기준을 두는 오류(mistake)에 빠졌다(Alford).
(3) 오는 것을(*, 엘코메누스) 보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을 한 부류로 묵어 기록한 것은 본서에 5회(16: 1, 6, 11, 12) 나타난다.
상호 적대적인 두 파가 함께 왔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으나 그들이 세례를 받으러 왔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헬라어 본문에서는 그들이 세례를 받으러 왔다는 사실을 의미하는지 세례 장소에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지 분명한 구별을 짓지 않고 있다. 뒤이어 나오는 세례 요한의 질책(叱責)으로 보아 그들은 세례 모습을 관찰하러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Bruce).
이 두 파는 종교적 목적에서는 상호 적대적이었지만 예수를 정치적으로 대적하는 목적에서는 연합하였다.
* 마 16: 1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 마 22: 23, 34 –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 행 4: 1 -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독사의 지식들아
이는 예언적 전통에 속한 선언이다.
요한은 광야에서 볼 수 있는 독사들을 보며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간교한 뱀을 연상하였다.
* 사 14: 29 –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 사 30: 6-7 – 6 네겝 짐승들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들의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들의 보물을 낙타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7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현대처럼 욕설이 없던 시대에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였던 그들에게 저주받은 뱀의 후예라고 욕한 것은 위선과 변절, 기만 등으로 길들여진 그들을 향한 신적 권위에 의거한 화의 선포였다.
* 창 3: 14 -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예수께서도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같은 책망을 하신 적이 있다.
* 마 23: 33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 욕설은 '아브라함의 자손'(9절)으로 자부하던 그들에게 사탄의 도구인 뱀의 후예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사악한 실체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① 바리새인
'바리새인'이란 말은 '분리','분리주의자', 즉 '우리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라는 뜻이다. 그들은 그 이름이 의미하듯 스스로 '성별된 자'로 자처하였다. 바리새파는 예수 당시에 유대 사회의 유력한 종파의 하나로서 사두개파와 함께 지배 계층에 속했다.
바리새파의 기원은 마카비 독립 운동 시대(BC 167)로 추측되며, '바리새'란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 한 것은 주전 135년 요한 힐카누스 통치 때. 이들의 주요 특성은 율법 존중주의와 더러운 것으로부터의 분리주의, 그리고 조상의 전통, 즉 '장로들의 유전'에 대한 존중이었다.
* 마 15: 2 -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역사를 통제하고 그 목적하시는 바에 따라 다스린다고 믿었으며, 육체의 부활과 천사의 존재, 영혼 불멸과 지상의 정치세력을 회복시킬 메시야의 출현을 믿었다.
이들은 안식일 준수, 십일조 헌납에 철저했으며, 깨끗한 것과 불결한 것을 구별하여, 자신들을 세속에서 분리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유대 사회의 중류 계층의 사람들로서 사두개파와 함께 정치 지배 세력 확대에도 힘썼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비난을 받았고, 예수님과 대립하여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장 섰다.
* 행 9: 1-2 –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그 파에서 최고의 지도자라 할 바울이 나왔다.
그들은 정치단체는 아니었지만 사두개인들이 성전을 지배한 데 반하여 바리새인들은 각 지방에 있는 회당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율법의 해석자로, 율법을 가르치는 자로 민중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요한 히르카누스(BC 134-104년) 통치하의 마카베오 시대에 유대교에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와 같은 파당이 형성되었다. 바리새파는 대체로 하시됨('경건한 자들')의 계승자들로 BC 168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유대교 금지 당시에도 율법을 진실하게 지켰던 자들이다.
이들은 기도와 회개, 구제를 표어로 내걸었던 엄격한 율법 고수주의자들이었다. 마카베오 수난의 시련 가운데에서도 경이로운 출발을 보였던 이들은 점차 퇴폐하여 예수 시대에는 유명무실하고 파렴치한 종교주의자들로 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듯 열정적인 율법주의자 또는 민족주의자들이었으나 극단적인 독선과 형식주의에 빠짐으로 외식하는 위선자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예수께서는 이들의 종교적 위선을 통박하셨다.
* 눅 11: 37-44 –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 지라.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 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위선은 종교의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② 사두개인
사두개인의 기원은 제사장 사독의 이름에서 연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왕상 1: 38 –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 내려가서 솔로몬을 다윗 왕의 노새에 태우고 인도하여 기혼으로 가서
다윗과 솔로몬 치세 때에 유명했던 대제사장 사독의 자손들은 대대로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직을 장악했다. 유대인 사회의 귀족 계급에 속했던 이들은 모세오경만을 믿었으며 내세도, 영혼불멸도, 육체의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들이었으며 합리주의자들이었고, 자유주의, 진보주의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이 분리주의자들인 데 반하여 그들은 타협주의자들이다. 세속권력과 타협하여 유대 사회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대제사장, 산헤드린 공회 의원 등은 모두 이들 사두개파에서 장악하였다.
즉 이들은 유대 사회의 종교적 정치적 실권을 가지고 있었던 교권주의자들이다. 바리새인들이 중류층이었는데 이들은 상류계급이었다. 이들이 유대 민중 속에 종교적 영향력을 확대시켜 갔던 예수를 핍박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그들의 지배력이 도전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2) 독사의 자식
① 왜 그들이 세례 요한에게 왔는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를 베풀고 있는 요단 강가에 왜 찾아왔나? 그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기 위해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한 세례 요한의 말로 잘 알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은 왜 찾아왔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유대 사회의 종교적, 정치적 지배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들로서 요한의 세례가 유대 민중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으로 확대되어갔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었으므로 그 현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 예루살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이었다.
* 요 1: 19 -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그들의 관심사는 선지자의 음성이나 새로운 신앙적 각성(회개)를 위해서가 아니라 요한의 정체, 세례를 주는 이유, 그리고 그 영향력의 규모였다.
* 요 1: 19 –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 요 1: 25 -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그들의 이와 같은 관심사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있어서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은 모두 다 종교인들이다. 그러나 종교인들이 종교 본래의 순수한 신앙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종교를 빙자하여 그들의 기득권, 지위, 지배력 확보에 집착하게 되면 그것은 이미 위선이며 타락이다. 신앙의 생명은 그들에게 있지 않았다.
② 독사의 자식들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힐책한 것은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독사는 뱀이며 뱀은 아담과 하와를 시험하여 범죄케 하였다. 이 뱀은 마귀이며 사탄이다.
* 계 12: 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그러므로 '독사의 자식'이란 곧 '사탄의 자식'을 뜻한다. 그리고 독사는 머리를 높이 들고 마주 선다. 목이 곧고 완악한 불순종의 자식을 의미한다.
지혜로운 뱀이 변질되면 간교한 뱀이 되는 것처럼 종교인이 변질되면 위선자가 됩니다.
* 마 10: 16 –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 창 3: 1 -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천사가 변질되면 사탄이 되듯 그리스도인이 변질되면 독선주의자가 되며 교권주의자가 된다.
* 유 1: 6 -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이러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따르며 결코 이 진노를 피할 수 없다.
* 마 3: 7 -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3]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이 말은 '너희가 무슨 근거로 나는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뜻의 질책성 질문이다.
엘리야로 예언된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등장하여 천국을 선포(2절)할 때 이미 '임박한 진노'가 암시되어 있었다.
* 말 3: 12, 17 –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 말 4: 1, 5 –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세례 요한의 당황스런 질문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임박한 진노를 당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을 자각하게 하고 끝내 그들로 하여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려는데 있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진노란 말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뜨거운 감정을 인격화한 표현으로서 이것은 하나의 정태적(靜態的) 감정이 아니라 참으로 무서운 실제적이며 존재론적 극형(極刑)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임박한 진노'는 이방인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 메시야 영접을 준비(회개)하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홀연히 다가오는 종말론적이다.
이 진노는 A. 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훼파됨으로서 1차 성취되었지만, 예수의 재림으로 인한 마지막 심판 때에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 살전 1: 10 -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 계 6: 16-17 –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1) 세례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렀다.
이 의미는 이중적인 것 같다.
첫째, 모든 죄인들은 다 마귀의 자식이다.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다고 요한일서 5장 19절에 말씀했다.
* 요일 5: 19-20 –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또 예수님께서는 악한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 44)고 말씀하셨다.
요한일서 3: 10에서는 말하기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하나님께로서 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다.
둘째, 마귀의 자녀들의 특징은 악독이다.
남을 속이고 죽이는 독을 품은 자들이다.
교회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 있다. 참된 부흥이 일어날 때 마귀도 거짓 부흥을 일으킨다. 참 신자들이 모일 때 위선자들도 끼어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속에서 가라지 같은 자들을 볼 때 낙심치 말자. 참된 신앙 인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라.
세례 요한의 통찰력은 날카로웠다. 그의 설교는 직선적이었다. 그의 집회에 참석한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불렀다.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바른 눈이 있어야 한다. 정확한 분별력, 정확한 판단력, 정확한 평가력, 정확한 발언이 있어야 한다.
회개치 않는 악한 자들, 위선자들은 그들을 대적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예리하고 직선적이어야 한다.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하나님의 종답지 못하다. 그렇다고 무례하고 거친 태도나 행동을 정당시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진리에 관하여 그리고 죄악에 대하여 정곡을 찌르지 않고, 사람의 기분을 맞추는 것은 하나님의 종의 모습이 아니요 사람의 종의 모습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 10에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말했다.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를 선포하였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이 죄를 쌓을 때 임한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할 때까지 오래 참으시지만 회개치 않을 때 마침내 진노하신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회개치 않는 위선자들인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밖에 올 것이 없었다.
그들에게 임박한 진노는 무엇이었나? 성경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현실적으로 칼, 기근, 전염병 등으로 나타났다. 사회적으로 주후 70년에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는 로마 군대의 칼날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은 황폐케 되었다.
전쟁이 있으면 기근과 전염병은 자연히 뒤따른다. 전쟁이 없어도 때때로 기근과 전염병으로 징벌을 당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최종적으로 마지막 심판으로, 지옥의 형벌로 나타날 것이지만, 그 전에라도 여러 가지 질병과 재난으로 온다.
오늘날도 회개치 않는 자를 위해 하나님의 진노가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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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을 사수하소서.
강해 설교 감사합니다.
악한 자들을 물리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