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7. 큐티
히브리서 11:8 ~ 10
믿음의 선진 – 아브라함
관찰 :
1) 아브라함의 믿음
- 8절a.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였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을 수는 있지만 그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순종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자신이 가진 재물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행위라고 가르치고 있다.
- 8절b.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이자 터전인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난 것이다. 당시의 갈대아 우르는 매우 번성했던 문명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때에는 여타의 지방에 갈 때, 그곳의 치안에 대해서 누구도 어떤 보증이 없는 시대였다. 마적과 산적이 들끓는, 그래서 아브라함을 누가 쳐 죽이고 그의 모든 소유를 가져가도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 없는 상황의 시기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다른 이유도 아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떠난다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또 어디로 인도하시는지도 알지 못하고 떠났다. 아버지를 모시고 떠났는데, 그 아비는 국경선 근처 하란에서 지체를 하고, 더 이상 가지 못하게 하고 그곳에서 머물다가 죽는다. 그리고 그의 형제 나홀은 그 하란에서 계속 머무르고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데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떠난다.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끝끝내 순종하는 것, 자신의 좋은 형편과 사정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이루는 것을 먼저 행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 9절a. “믿음으로 저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이었지만, 그 땅은 타국과 같은 이방의 땅이었다. 아브라함이 어디로 가든 그를 환대하는 곳은 없었고, 이미 그 땅을 차지하고 있던 이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 땅은 음란하고 잔인하여 아브라함이 그들의 땅에 거주할 때, 그가 염려했던 것은 아름다운 아내 사라로 말미암아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땅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땅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아내를 자신의 누이라는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다니던 땅의 패역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게 자신을 반겨주지 않는 땅을 약속의 땅으로 믿고 다닌 이유는 바로 믿음 때문이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을 환대하지 않는 상황과 형편에 대해서도 담대할 수 있게 되는 이유는 약속의 땅을 다지면서도 그를 환대하지 않는 이들에 대하여 믿음으로 반응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아브라함이 그 후손 이삭과 야곱에게 전수한 믿음
- 9절b.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 이삭과 야곱은 아브라함과 동일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족장들이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받는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자신들을 환대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 그 땅을 두루 다니며 밟아가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는다. 당대에 전쟁은 신과 신의 싸움으로 여겨지던 시대이기에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그 지역에 들어오면 그 지역의 지역신을 섬기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시대였다. 만일 그곳에 들어와서 그 지역의 지역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이 믿던 신을 섬긴다는 것은 전쟁을 의미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을 어디로 가던지 섬기며 공개적으로 단을 쌓아 경배를 드렸다. 짐승을 잡고 불을 살라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을 섬겼다. 그리고 이들은 동일하게 하나님으로부터의 약속을 받은 땅을 밟아나갔다. 그런데 그렇게 하여 이들이 살아생전에 소유한 땅은 겨우 장례를 위한 막벨라 굴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그 땅이 자신들의 약속의 땅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들을 때는 우스운 일이었고, 거부가 된 아브라함과 이삭이 그렇게 그 땅을 소유하지 않고 겨우 막벨라 굴만 구입하면서 그 땅이 자신들의 약속의 땅이라고 할 때, 그것은 우습고 이해가 불가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우스운 상황은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이삭은 야곱에게 전수한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을 믿기에 그 땅을 약속의 땅으로 실제로 믿으며 살았다. 그 땅을 밟으며 살았다. 그 땅을 소망하며 살았다.
- 10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놀라운 것을 언급을 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바라본 것은 단순히 그 땅이 아니라 그들이 밟았던 그 땅에 하나님이 세우시고 경영하실 성이 도래할 것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땅을 막벨라 굴 외에는 소유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이 장차 이루실 예루살렘 성, 또 향후 이루게 될 새 예루살렘 성까지 완전한 그림이 아니라 믿음으로 내다보는 믿음을 소유했다. 사실 아브라함이 받고 이삭과 야곱에게 이어지는 믿음은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에게만 이어지는 축복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었고, 소돔과 고모라 사건을 통해서 보더라도 그에게는 열방을 향한 믿음이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한 믿음은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성, 예루살렘으로 연결되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통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로 아브라함의 때, 이삭과 야곱의 때에 예루살렘은 살렘의 왕 멜기세덱이 다스리며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있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러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가르침 :
1)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에녹과 노아의 믿음을 통하여 죽음을 맛보지 않는 믿음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에 대하여 논한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설명을 한다.
2)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의 믿음이었다. 갈 바를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 그리고 인생을 정착하지 않으면서 그 땅을 밟으며 지냈다. 그저 자신의 무덤이 될 막벨라 굴 외에는 땅을 소유하지도 않았다. 그는 거부가 되었고, 그는 막강한 힘이 있었지만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 차지하지 않았다. 당대의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순종이었고, 그 순종을 하나님은 믿음으로 바라보셨다.
3) 아브라함의 믿음은 장래를 바라보는 믿음이었다. 자신의 당대에 이루어질 것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대대손손을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믿음이었다. 그래서 열국의 아비가 되는 아브라함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싸우시리라는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었다.
4)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믿음은 전수되었고, 그 믿음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만이 그들이 중보하는 모든 열방이 복받는 참된 비결이 되는 것이고, 그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의 나라임을 채 몰랐지만 믿음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야곱은 험악한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당대 최강 국가의 황제 파라오를 축복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적용 :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듯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참된 믿음이 되지 못한다. 나의 지금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음성은 무엇인가?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바른 믿음이다. 순종하는 믿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저절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음성을 분별하는 분별력이 있어야 하고, 그 후에 참된 순종이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순종하는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나의 소유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해야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실제로 있음이 확인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시기에 하나님의 음성은 언제나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와 그 음성을 분별함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2) 장래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참된 믿음이 되지 못한다. 내가 지금 있는 상황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에 함몰되어 장차 이루실 하나님의 일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