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4. 5 - 4. 27 한성숙 작품전 시선(The Gaze) 송미영갤러리 T.070-4143-3192 (삼성동)
사각의 화면을 분할하는 직선, 직사각형의 공간들의 연속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그가 응시하는 시선은 사각의 틀 안에 갇혀 있다.
그러나 눈이 가는 길은 오는 길이기도 하다. 시선이 오는 것을 느꼈다면 시선이 가고 와서 만난 것이다.
글 : 김성은(미술평론)


한성숙의 예술은 시선과 궤적에 대한 메타포(metaphor)이자 포에지(poesy)의 세계다. 짙으나 청량하다. 절제된 구도가 복선을 내포한다. 작가가 ‘나’를 꽃으로 ‘나의 마음’을 자전거, 자전거 바퀴, 깃털 등으로 환유했다면 ‘나’는 시선이다. ’나의 마음’은 궤적이다.
한성숙의 시선은 시각의 몰입이다. The Gaze, 응시다. 누구라도 그 자신의 實在(실재)를 볼 수는 없다. 實寫(실사)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그의 시선은 삼인칭이다. 태양을 향하고 따라가는 해바라기는 그 자신이 태양을 상징한다. 황금꽃잎으로 채색되거나 여린 하늘색으로 표현되거나 꽃의 형태와 색채는 精氣(정기)를 진하게 담는다. ‘나’는 꽃이며 느끼고 응시하는 시선이다.
사각의 화면을 분할하는 직선, 직사각형의 공간들의 연속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그가 응시하는 시선은 사각의 틀 안에 갇혀 있다. 그러나 눈이 가는 길은 오는 길이기도 하다. 시선이 오는 것을 느꼈다면 시선이 가고 와서 만난 것이다.
사각의 화면 속에서 꽃은 일탈을 그렸다. 원형은 꽃의 마음이다. 시선과 꽃이 만났어도, 꽃과 작가가 시선을 서로 느낀다고 해도 하나이기에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남은 궤적이다.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이 궤적이 된 것은 정처 없음과 여운이 흔적과 자취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벗어나고픈 그의 마음은 그와 단절되어야만이 떠날 수 있다. 네모의 머물던 공간은 둥글어야만 떠나갈 수가 있다. 작가는 그의 마음을 원형으로, 바퀴로 그려낸다. 같은 곳을 향하고 흘러가듯 나아가지만 만날 수 없는 숙명이다.
수레바퀴의 여신이 입고 있던 날개가 달린 하늘 옷이 해바라기의 황금 꽃잎일까, 날고자 하는 욕망은 깃털이다. 일탈의 자유, 떠돌아 흐르는 노마드(nomad)의 감성은 날아오를 수 있는 깃털이 가진 불가사의한 힘을 그의 마음과 동일시하고 싶어한다.

한성숙의 세계는 현실성과 관념성 사이를 오간다. 그 자신의 동일성과 이원성을 묻는다. 남성적이거나 여성성의 계속되는 상징성은 그와 그의 마음처럼 대비되고 있다. 나아가고 벗어나고 싶은 갈망이 존재하듯 머무르고 회귀하고 싶은 본능도 동시에 존재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그의 상징과 비유들은 재생과 순환의 순리와 세상의 이치에 대한 화두를 넘어선다.
역동과 발전을 상징하는 자전거는 그러나 느림의 미학이 되고 낭만적인 기계가 되었다. 그의 자전거에서 미술의 역사에서 혁신을 일으켰던 자전거를 소재로 한 대가들의 작품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 언뜻 보기에도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한 대가들의 오마주 혹은 유사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소재들은 오늘 작가의 독특한 감성의 축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술의 소재와 주제의 반복되는 흐름에서, 그 안에서 작가는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 있다. 나란히 공존하지만 부딪히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수레바퀴의 진득한 무게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분리되었으나 함께 가는 것, ‘나’와 ‘나의 마음’은 시선과 궤적이다. 두 개, 세 개, 혹은 네 개의 바퀴가 결코 만나지 못한다. 만나지 않기에 떠날 수가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 자신의 實在(실재)를 볼 수 없고 實寫(실사)할 수도 없다고 했다. 한성숙의 작품은 자기고백적이지만 타자의 관점으로 그 자신의 마음을 응시한다. 시선과 궤적이 자취를 남기면서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수레바퀴가 회전하면 바퀴 테두리 쪽에 있는 가치나 감정은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 빛나기도 하고 어둠에 잠기기도 하지만 참된 사랑은 바퀴 축에 붙어서 항상 그자리 그대로라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말했다. 예술은 수레바퀴의 축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내는 것이다. 참된 사랑처럼 붙어 있는, 항상 그대로인 무엇을.
예술의 수레바퀴는 그 테두리에 무쌍한 변화를 두르고 오르고 내려간다. 한성숙의 작풍은 바퀴의 굴림처럼 이제까지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모색해왔다. 그리고 그는 그 중심에서 근원적 답을 추구하고 있다. 달리고 싶은 욕망이 머무르고자 하는 욕구와 나란히 달리다가 멈추어 쉬기도 하는 여로의 귀결, 그것은 의식과 이성의 분석과 추론을 덮어버린다. 직관의 색채가 실어 나르는 무의식의 세계야말로 수레바퀴의 축에 붙어 있는 무엇이 아닐까. 떠나고 싶고 자유롭기를 욕망했던 마음이, 자전거를 세워두고 몽혼하게 쉴 때에 이르러서야 수레바퀴의 축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절제된 색채의 구사가 비밀의 열쇠를 숨겨놓은 듯 은밀하고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시선과 궤적에 대한 메타포와 포에지를 여운으로 남기는 미묘함이 한성숙의 작품세계를 한 차원 더 승화시킨다.

보일듯 보이지 않는 시선, 바라보면서 빛을 향해 달려가 본다. 나만의 수레를 가지고 머무는 곳에 가득 채워본다. 찬란한 색채를 지니고 화면 가득 채워보면 어떨까? -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