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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은이는 창턱에 기대어 준성과 재현이 다른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민영은 몸을 돌려 등허리를 창턱에 대고 감자 칩을 먹고 있었다.
“운동은 그 자식. 아니 준성선배가 더 잘하지 않냐?”
“응. 하지만 내 눈에는 재현선배밖에 안 보여. 동그랗게 재현선배만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자이크 처리한 듯 뿌옇게 보이거든.”
“어련하시겠냐.”
제은이 쿡쿡 웃었다. 준성이 공을 넣자 여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감정정리는 하고 있는 중이야?”
“잘 안 돼. 나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아.”
“파고들 틈은 없어 보이더라만. 우리 반에도 벌써 고백한 여학생들이 여섯 명인데 다들 까였어. 거절은 부드럽게
하지만 냉정한 타입이야. 예전에 재현선배와 사귀었던 3학년 선배한테 물어봤는데 사귀면서도 좋아한다는 말 한
번 한적 없댔어. 처음부터 준성선배가 목적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투덜거리면서도 챙겨주는 준성선배를 좋아하
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에 고민고민 하다가 헤어지자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래. 라고 쿨하게 답장이 왔다더라. 그
선배는 사실을 말한 거야. 네 환상 속 왕자님이 아니라 사실은 차갑고 냉정한 사람인거지. 학교에 안 오면 밤거리
를 누비는 양아치이고.”
“그럴까..?”
제은이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미소를 짓자 민영이 고개를 돌려 제은이를 바라보았다. 다시 준성이 공을 넣었는지 여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민영이 인상을 찡그리며 밖을 바라보았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준성이 재현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 봐. 날 보고 있잖아.”
재현이 고개를 돌려 준성이 눈짓으로 가리키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창가에는 인상을 찡그리는 민영과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조금 숙이는 제은이 보였다. 재현이 고개를 돌려 준성을 바라보았다.
“아닌 것 같은데?”
“맞다니까 그러네. 점점 빠져들고 있는 거지. 땀을 흘리는 내 섹시한 바디에.”
재현이 피식 웃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았다.
제은이 얼굴을 붉혔다. 민영이 제은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손 들어 인사해.”
“받아줄까?”
“받아준다고 했다면서.”
제은이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들어 재현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재현이 손을 조금 들어
보이고 몸을 돌려 다시 농구를 하는 곳으로 가자 제은이 붉어진 볼을 두 손으로 감싸고 몸을 돌려 민영을 바라보
았다.
“그렇게 좋아?”
“응.”
“못 산다.”
두 사람은 웃음을 터트리며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
제은과 민영은 <이소토마> 라는 별과 사진이라는 동아리 부원이다. 1학년이었을 때, 신입부원은 제은과 민영을 비롯해 안세나, 박규성, 최 한. 이렇게 다섯 명이 다였다.
“신입부원은 너희 다섯 뿐이네. 여기 든 이유는?”
“그림을 좋아하긴 하는데 잘 그리지 못하거든요. 사진이라면 어떻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저도 같아요.”
민영과 제은이 대답했다.
“저는 공부를 할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른 친구들도 별로 별에 관심이 없었고, 조용히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를 댔다.
“솔직하네. 별 관찰하는 건 싫어?”
“좋아하지만.. 볼 수 있어요?”
민영이 놀란 표정으로 선배를 바라보았다.
“방학 때 관찰하러 가. 물론 담당 선생님 동행 하에.”
“진짜요?”
민영이 놀랍고 반가운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제은을 바라보았다.
“다행이네. 여하튼 축하한다. 나는 2학년 이세영이야. 다른 학년도 몇 명 안 남았어.”
동아리 활동 시간이 되면 이곳에 와서 각자 공부를 하거나 누군가 찍은 사진을 보거나 잡지책을 보다가 돌아가곤
했다. 근처 공원으로 딱 한 번 출사를 나간 것이 동아리 활동의 전부였다. 2학년이 되었다고 별로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민영은 도서관에서 명화집을 빌려서 동아리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민영아~.”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제은이 종종 뛰어 오고 있었다. 민영이 걸음을 멈추고 제은을 기다려주었다. 그녀 옆에 선 제은이 그녀가 품에 안고 있는 명화집을 바라보았다.
“또 빌렸어?”
“응. 오늘은 햇살이 좋은 것 같아서. 좋은 햇살 아래에서 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것 같거든.”
제은은 못 말리겠다는 듯 쿡쿡 웃으며 민영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웃으며 문을 연 제은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영이 그녀 뒤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동아리 방 안을 바라보았다.
“우리 동아리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제은이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민영이 얼굴을 붉히고 눈동자가 움직이고 있는 제은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안에서 세나가 나와 그녀들을 바라보며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담~. 제은~.”
“응. 세나~. 우리 동아리 왜 이러냐?”
“응~. 우리 동아리가 누가 회원인지 알아?”
“우리 학년은 알지.”
세나가 미소를 지었다.
“선배들이 왔거든. 김준성 선배, 차재현 선배, 그리고 민호영 선배. 3대 천왕들이 모였으니 난리가 났지. 1학년 신입회원 입회자들이 엄청 나.”
민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제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래?”
“글쎄..”
그 때 그녀들을 향해 다가오는 선생님이 계셨다.
“안 들어가고 뭐 하냐?”
그녀들이 고개를 돌려 <이소토마> 담당 선생님이신 수학담당 김승주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들어가자.”
김승주 선생님이 들어가시고 얼마 후 수많은 여학생들이 동아리방을 나왔다.
“밖에 서 있지 말고 들어오지?”
선생님 말씀에 세 사람이 들어갔다. 선생님이 자리에 앉은 학생들을 바라보다가 재현에게서 멈추었다.
“다시 봐서 반갑다?”
“네.”
“조용히 지내자~. 너희들 때문에 동아리가 시끄러울 거라고 세영이가 말해서 잠깐 들른 거야. 그럼 이제 조용해 졌으니까.. 그럼 나는 좀 잔다. 너희들도 각자 보고 싶은 책 보다가 가.”
선생님이 기다란 소파 위에 누워 팔짱을 끼우고 눕자 준성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민영을 지나쳐 뒤편에 있는 책장에서 잡지책을 꺼냈다. 민영이 한 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저희 별 보러 언제 가요?”
이미 회원신청을 한 1학년 예솔이의 물음에 선생님은 눈을 뜨지 않고 대답했다.
“글쎄. 아직 예정은 없는데. 대학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 너희들이니까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학교 측의 결정이야.”
다들 조금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햇살 좋은 날 출사를 나갈까 생각 중이시다.”
“정말요?”
“비밀이니까 떠들면 못 가는 줄 알아.”
“네~.”
선생님이 등을 돌리고 눕자 예솔이가 재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선배님. 그런데 왜 동아리 이름이 일본어에요?”
재은과 민영은 예솔이를 바라보다가 재현에게로 시선이 옮겼다. 하지만 대답은 재현이가 아니라 호영이가 했다.
“일본어 아니야. <이소토마>는 별을 닮은 꽃이름이거든.”
호영이 핸드폰을 꺼내 보라색 꽃을 검색해서 1학년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동아리를 만든 선배님들이 붙인 이름인 것 같은데.. 난 꽤 마음에 들어.”
“예쁘네요.”
예솔이가 말하며 미소를 짓자 호영도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민영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조금 생각에 잠겼다.
‘예솔이는 콩 선배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호영선배는 예솔이한테 관심이 있나?’
그녀가 약간 고개를 기울이다가 고개를 돌리는 도중에 턱을 괴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준성과 눈이 마주쳤다. 준성이 민영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
민영이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아니라니까요?”
“내가 <이소토마> 라는 거 알고 의도적으로 들어온 거 아니야?”
“아니거든요?”
“아무래도 의도가 불순한 것 같은데?”
“선배님 있는 줄 알았다면 다른 부 들었을 거예요.”
“그래. 계속 청개구리처럼 말해 봐. 그래도 나는 너와 사귈 생각은 없으니까.”
“아.. 진짜..”
민영이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찡그리며 한 숨을 내쉬었다.
****
동아리를 마치고 나오는데 민영이 제은에게 말했다.
“하아.. 다른 동아리로 옮기고 싶다. 자기애가 차고 넘치는 녀석 때문에 머리가 아파.”
제은이 쿡쿡 웃었다.
“웃음이 나오지? 그래~. 넌 나오겠지. 콩 선배랑 같은 동아리여서. 먼저 가라. 난 보건실 들렸다가 가야겠어.”
“그렇게 아파?”
“터질 것 같아.”
“조심해서 다녀와.”
“응.”
제은이와 헤어져 보건실에 들어간 민영을 보건선생님이 바라보셨다.
“왜 왔어?”
“머리가 아파서요. 두통약 좀 주시면 안 될까요?”
“다른 데는 괜찮고?”
“네.”
보건선생님이 주시는 알약을 먹었다.
“연애상담 해 주느라 피곤해서 그런 건가?”
“그건 아니고요. 몹쓸 병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 자꾸 괴롭혀서요.”
보건 선생님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김준성 선배가 자꾸 제가 선배를 좋아한다고 하잖아요~.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거든요?”
보건 선생님이 웃음을 터트리셨다.
“하지만 준성이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걸? 준성이는 모든 걸 갖춘 아이잖아.”
“글쎄요. 그 선배가 갖추고 있는 것 중에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은 없네요.”
의아하다는 듯 선생님이 그녀를 바라보셨다.
“그럼 우리 고마담의 이상형은 어떻게 되는데?”
민영의 얼굴이 슬픔이 스치듯 지나갔다.
“따뜻하고.. 다정한 남자요.”
“너무 평범하지 않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아프고,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을 몸으로 느끼게 해 줄 남자라면.. 평범하진 않을 것 같아요.”
“역시 고마담답다. 문제는 말이야, 좀처럼 너의 이상형을 만나기 힘들겠어.”
‘벌써 만났었는걸요?’
민영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보건실을 나와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재현은 코너에서 고개를 돌려 민영을 바라보다가 보건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쩐 일이야?”
“두통약 좀 주세요.”
“동아리 시간 아니었어? 왜들 머리가 아프대. 아, 너 혹시 금단현상 때문인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보건 선생님이 알약을 주자 재현이 알약을 삼켰다. 밖으로 나온 그가 답답한 듯 숨을 길게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
며칠 후..
“고마담.”
도서관에서 책을 찾고 있던 민영이 고개를 돌리자 <이소토마> 담당 선생님인 수학선생님 김승주 선생님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민영은 조금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앞에 섰다.
“고민영입니다.”
“내 연애상담도 해 주냐?”
민영이 인상을 찡그렸다.
“선생님도 고민이 있으세요?”
“어른들은 없는 것 같아? 오히려 어른들의 세계가 더 치열하다고.”
“글쎄요. 어른들은 오히려 쉽지 않아요? 사랑하지 않아도 원나잇도 가능하고, 병원에 가는 것도 더 쉽고요.”
“애늙은이.”
“고민이나 말씀해 보세요. 들어드릴 수는 있으니까.”
그가 의자를 끌어와 그녀를 자리에 앉게 하고는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럼 고백하세요.”
“그렇게 간단하면 뭐가 고민이겠냐?”
“어른이 되면 더 심플해 질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럼. 너희들 때가 좋은 거야.”
“그건 잘 모르겠고요. 저희들도 나름 치열하거든요.”
그가 혀로 입안을 쓸자 민영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말씀 하십시오. 제자는 듣겠사옵니다.”
그가 헛기침을 하며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까워진 것 같은데, 다음 날이 되면 아닌 것 같고.. 날 좋아하나 싶다가도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조금 생각에 잠겼다. 읽던 책을 선생님 앞에서 접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접으시옵소서.”
“이 녀석이 진지하게 상담에 임하지 못할까?”
그녀가 피식 웃었다.
“상대방이 선생님 간 보는 거 아니에요?”
“그런가?”
“선생님 집 부자잖아요. 지금은 선생님을 하고 계시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드시면 교편은 접고 집안일을 하실 거라고 들었어요.”
승주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민영을 바라보았다.
“오~. 너 정보수집 능력이 좀 있다?”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 분 나이가..”
“아마도 22? 23?”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마도는 뭐예요? 나이도 몰라요?”
“요즘 누가 몇 살이냐고 묻냐? 그리고 여성에게 나이를 묻는 건 실례라고 배웠어.”
“오~. 쌤 좀 괜찮네요?”
“어허!”
“여하튼 선생님이 32살.. 이시니까.. 대략 10살 정도 차이가 나는 거네요? 22살 아가씨가 스승님 마음을 들었다가 놓았다 한다.. 이 말씀이십니까?”
승주는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하구나. 하지만 간을 볼 타입의 여인이 아니니라.”
그가 마치 없는 수염을 쓸어내리는 듯 행동하며 말하자 민영이 피식 웃었다.
“100% 간 보는 게 아니라면.. 100% 자신이 없는 거라고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뭐가? 엄청난 미인이야. 길을 가다가도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여자가 왜 아직도 애인이 없겠어요. 쉴드를 두껍게 치고 있다는 거잖아요. 상대방이 두려워서? 아니면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 아닐까요, 스승님?”
“그럴지도 모르겠다. 재벌이 싫다고 했거든.”
“오호~. 그건 저랑 좀 통하네요? 저도 싫거든요.”
승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민영을 바라보았다.
“왜 싫어?”
“일단 드라마의 영향이랄까요? 돈으로 뭐든 다 하잖아요. 돈 없이 살아서 생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은 아니지만 절대로 재벌들 앞에서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하며 살진 않겠다..”
“네 지론이야?”
“우리 엄마요. 그래서 저희도 영향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음.. 그건 나쁘지 않은데 그런 여자를 어떻게 공략을 하냔 말이지.”
“그 연세까지 뭐하셨어요? 연애 노하우도 안 쌓고.”
“이 녀석이.”
“쌤 인기 좋으세요. 재벌에 키도 크지, 잘 생겼지, 수학 선생님이니까 머리도 좋지. 쌤을 노리는 여학생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고백하는 일은 별로 없는데?”
“틈을 안 주기로 유명하시잖아요. <이소토마> 담당이시면서도 일 년에 손가락에 꼽을 정도만 얼굴 비추시면서.”
“난 이 일이 좋거든. 괜히 학생과 불미스런 일로 그만두고 싶지 않아. 너희들이 여자로 보이지도 않고.”
“그 예쁜 언니는 여자로 보이시고요?”
“당연하지.”
“얼굴도 예쁘고, 어려서 좋아하시는 건 아니고요?”
“아니야.”
그의 진지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민영은 심장이 설렜다.
“쌤.”
“응?”
“지금 절 유혹하신 건가요?”
“뭐? 미쳤냐?”
민영이 풉.. 하고 웃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전에 심쿵 했거든요.”
그녀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야. 상담은?”
“결론 났는데요, 뭘. 진지하게 고백하세요. 밀당 그만 하시고 제대로 고백하시라고요.”
“거절할 거야.”
“그럼 포기하실 거예요?”
“아니.”
“바로 그런 자세를 보여주세요. 그 언니가 쌤을 마음에 들어 한다면 백번 찍으면 안 넘어오겠어요?”
“그럴까?”
“그럼요. 우리 언니도 그 정도 나이인데요. 그 나이에 결혼을 생각하지 않거든요. 선생님이 고백을 걱정하시는 이
유.. 그 언니랑 연애만 할 생각이셨으면 고민도 안 하셨을 거 아닌가요? 선생님 댁에서 반대하실 만한 이유가 있
으신 거죠?”
그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뭔데요?”
“집은 평범해.”
“선생님과 같은 상류사회의 언니는 아니란 말씀이시고.”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홀로 키우셨어.”
민영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분명.. 반대하실 거예요. 막장 드라마 찍고 싶지 않으시면 접으세요. 아니면 기다리시던지.”
“뭘 기다려?”
“쌤 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인마.”
그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민영이 피식 웃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언니가 뭘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또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마음대로되는 것도 아니고.. 결혼은 말고 연애만 하심이..”
“나는 상관없지만 그녀도 그걸 원 할까? 안정된 관계 속에서 행복해 했으면 좋겠는데.”
“영어 선생님 어떠세요? 그 선생님이랑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 선생님을 좋아하고 계시기도 하시고 또 쌤과 같이 높은 곳에 살기도 하시거든요.”
그가 인상을 조금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기다릴래. 옆에서 지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 분도 그걸 원하세요?”
“아니. 그녀의 안전과 행복이 나를 행복하게 하거든.”
민영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입을 벌렸다.
“뭐라고요?”
“그녀가 웃으면 여기가 간질간질하며서 슬프기도 하고 그래. 집요하게 고백하는 건 오히려 날 싫어하게 만드는 일이야.”
민영이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미움받는 게 싫을 정도로 좋으신 거예요?”
“응.”
“쌤..”
“응?”
“만약 그 언니랑 잘 안 되면요.. 저희 언니는 어떠세요? 우리 언니도 진짜 미인인데.”
“인마. 널 보면 딱 답이 나오는구만. 됐어.”
“진짠데.. 쌤이 아까워서 그래요. 형부가 되어주심 좋겠는데.. 안 될까요?”
그녀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깜박이자 그가 그녀의 머리를 조금 눌렀다.
“어울리지 않게 애교는.”
그녀가 자세를 바로하며 입술을 물었다가 놓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가 피식 웃으며 일어나 의자를 옮기며 말했다.
“너 준성이 좋아한다며?”
그녀가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그래요?”
“소문이 그렇던데? 너도 외모를 그렇게 따지는 줄 몰랐는데. 너는 조금 더.. 사람의 중심을 볼 것 같았거든. 조금 실망이랄까?”
“아, 진짜.. 아니거든요? 도대체 누가 그런 소문을 내는 거야.”
그가 피식 웃었다.
“나중에 차여서 힘들어지면 그 때 또 상담해 주라.”
“제가 도움은 되세요?”
“안 돼.”
그녀가 고개를 약간 기울이자 그가 도서관을 나서기 전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편해졌어. 역시 고마담이야.”
그가 미소를 짓고는 나가자 민영이 피식 웃었다.
“저런 외모에, 저런 재력에.. 그 여자는 도대체 왜 싫다는 거야? 나중에 우리 언니랑 다리를 놓을까나?”
그녀가 방긋 미소를 지었다.
*****
민영은 엄마 꽃가게에서 사온 재료들로 제은이와 아무도 없는 동아리 방에서 카네이션 생화 꽃사지를 만들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세나가 들어왔다.
“아.. 조용한 곳에서 공부하려고 했는데.. 뭐하는 거야?”
“어버이 날에 우리 부모님이 근무하시는 병원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드리려고.”
“요양병원에서 근무하셔?”
“응.”
“좀.. 도와줄까?”
“고마워.”
세나도 앉아서 꽃사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꽃이 싱싱하다. 새벽시장 다녀온 거야?”
“응. 내가 아니라 엄마가 다녀오셨지만.”
“좋은 일 하는 것 같아.”
“나는 제은이한테 등 떠밀려서 하는 것 뿐이야.”
“그래도.”
세 사람이 피식 웃었다.
“너에 대한 소문 들었어?”
민영이 싸늘한 표정으로 시선을 들지 않고 꽃사지를 만들며 말했다.
“김준성선배에 대한 거라면 알고 싶지 않아.”
세나가 쿡쿡 웃었다.
“왜 싫어하는 건지 이유가 궁금해.”
“TV를 틀어도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이고, 돈 많고 백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것도 별로고.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허상이라고 생각하는 타입이라 그럴거야.”
“난 첫눈에 반했는 걸?”
제은은 말하고 나서 세나를 의식하고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차재현선배?”
제은이 놀란 표정으로 세나를 바라보았다.
“원래 사랑은 숨길 수 없다잖아. 눈으로 쫓고 있더라고. 처음엔 준성선배인 줄 알았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재현선배 더라고. 첫눈에 반한 거야?”
“응.”
“글쎄 네가 착각하는 거라니까. 그 선배의 다른 모습을 보면 그 후광도 사라질 거야.”
“그럴까..?”
제은이 고개를 약간 기울이자 민영이 고개를 저었다.
“너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
세나가 민영에게 물었다.
“없어. 얼른 졸업하고 싶어. 돈 벌고 싶거든.”
“너는 있어?”
제은이 세나에게 물었다.
“있어.”
민영과 제은이 세나를 바라보았다.
“누군데?”
“김승주 선생님.”
민영이 놀란 표정으로 세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 선생님이 이 동아리 담당이라고 하셔서 들어온 거야. 생각보다 자주 못 보지만.”
“그 선생님 멋지지.”
제은의 말에 세나가 미소를 지으며 민영을 바라보았다.
“가능성이 없어?”
“응.”
민영의 대답에 세나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좋아. 선생님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거든.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걸 멈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맞아.”
제은이 세나의 말에 맞장구를 치자 민영이 쿡쿡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어버이 날이 있는 주 토요일에 제은이는 민영, 세나와 함께 만든 꽃사지를 아빠 차에 싣고 부모님과 함께 두 분이 근무하시는 병원을 찾았다. 입구에 앉아 있는 민영이 일어나 야구모자를 벗고 제은이의 부모님께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찾아와주고.. 고맙다.”
“아니에요. 건강하시죠?”
“응. 그럼 제은이랑 천천히 들어와.”
“네.”
제은이의 부모님이 들어가시고나자 하품을 하며 민영이 모자를 다시 썼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복 받을 거야.”
“꼭 받아야 해. 그것 때문에 하는 거니까.”
민영이 제은이의 손에 들린 짐을 나누어 들자 제은이 미소를 지었다.
****
어르신들에게 꽃사지를 나누어 드렸다. 고맙다는 인사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른다. 먼저 끝나 음료수를 2개
사서 테라스로 나간 민영은 꽃이 활짝 핀 화단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바라보고 계신 할아버지를 보았
다. 할아버지 옆으로 가서 앉자 할아버지가 인상을 조금 찡그리셨다.
“꽃을 싫어하는 여자는 드물죠.”
“뭐?”
“할머님이요.”
“흠.”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하시며 몸을 조금 돌리셨다.
“고백해 보세요.”
“이 나이에 무슨.”
“할아버지는.. 연애는 젊은 일들만의 즐거움인가요?”
할아버지는 대답대신 헛기침을 하셨다.
“제일 중요한 질문이에요.”
할아버지가 그녀를 바라보셨다.
“불륜은 아니시죠?”
“뭐? 어린 것이 어른을 놀리는 거야?”
“불륜은 싫단 말이에요~. 하지만 할아버지도 혼자, 저 고운 할머님도 혼자시면 고백해 보세요.”
“혼자 된지 10년이 되었고, 저 사람은 더 오래됐어. 하지만 이 나이에 주책이라고 할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다짜고짜 좋아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면 그렇게 반응하시겠죠. 조금 느리게 다가가세요.”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민영은 심장이 쿵 떨어졌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
“건강하시면서 약한 말씀하시기는..”
할아버지가 인상을 찡그리시자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압화 해 보세요.”
“압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할머니가 보고 계신 꽃을 압화해서 드리세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할머니와 할머니가 바라보는 꽃을 바라보았다.
“저 꽃은 압화가 안 돼.”
“그럼 다른 예쁘고 고운 꽃으로 주문해도 돼요.”
“인터넷으로 그런 것도 팔아?”
“그럼요. 분명 할머님이 마음에 들어 하실 고운 꽃들이 있을 거예요. 할아버지. 먼저 좋아하는 사람이 움직여야 하는 거예요. 샤워도 자주 하시고, 향수도 뿌리시고요.”
“어린 게 뭘 안다고.”
“제가 고마담이거든요.”
“고마담?”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으셨다.
“민영아.”
민영이 고개를 돌리자 제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파이팅.”
민영이 할아버지를 응원하고 일어나 제은에게 갔다.
“뭐하고 있었어?”
“저 할아버지가 어떤 할머니를 좋아하셔서 조금 팁을 드렸지.”
“너 그런 거 싫어하잖아.”
“오늘 이 사람 좋아했다가 내일 다른 사람 좋아하는 가벼운 마음이 싫은 것 뿐이야. 요즘 사랑은 기다림도 없고,
애틋한 것도 별로 없잖아. 저 할아버지 지난 번에도 바라보고만 계시더라고. 그래서 그냥 내가 도와드리고 싶었
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고백을 미룰수는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여기
가.. 이상하더라.”
민영이 손을 들어 심장 부근에 올렸다.
“행복하셨으면 좋겠어.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시는 분들이시잖아. 마음이 더 외롭고 추우실 것 같아서.”
“음.. 너의 이런 모습은 나만 알고 있는 거지?”
“아마도?”
제은이 미소를 지었다.
****
재현이 부모님께 어버이날 선물을 드리자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어머니는 입만 웃는 얼굴로 그에게 말씀하셨다.
“고맙다.”
“할머니 찾아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네가 다녀올래? 우린 내일도 회사에 나가야 하거든. 얼마가 되었든 좋아하실 만한 걸로 사다 드려.”
재현이 시선을 내렸다.
“그럴게요.”
“이건 할머니 드리고, 이건 네 용돈이야. 카드로는 선물 사고.”
어머니가 봉투 2개와 카드를 건네시자 재현이 받았다.
****
준성과 재현이 병원을 찾았다.
“너는 왜 왔냐?”
재현이 준성을 바라보며 말하자 준성이 대답했다.
“심심해서.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간 것도 오래됐고. 손주의 잘생긴 친구를 보시면 얼마나 기쁘시겠냐?”
재현이 피식 웃으며 카네이션 화분과 선물을 들고 걸음을 옮기자 준성도 과일바구니를 들고 따라갔다.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할머니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셨다.
“우리 재현이 왔어?”
“네. 할머니.”
“할머니~. 저도 왔어요.”
“잘생긴 총각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환해지는 것 같은데?”
“그쵸~? 거 봐~.”
준성이 재현의 팔을 슬쩍 밀자 재현이 피식 웃었다.
“엄마랑 아빠는 일 때문에 바쁘셔서 저만 왔어요. 죄송해요.”
“바쁘면 어쩔 수 없지. 괜찮아. 너라도 와줘서 고마워.”
재현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
준성이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재현은 카네이션 화분을 창가로 옮겼다. 작은 화병에 담긴 카네이션 꽃사지를 바라보며 재현이 물었다.
“병원에서 마련한 거예요?”
할머니가 재현이 바라보는 꽃사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셨다.
“의사선생님 따님이 준비해서 준 거야. 한 3년 됐나? 고등학생이 되었다는데.. 바쁠텐데 어린 학생이 마음이 얼마나 고운지 몰라. 작년부터 같이 도와주는 친구도 아주 싹싹하고.. 다들 그 아이들 칭찬을 얼마나 하는지 몰라.”
“그게 누군데요, 할머니? 예뻐요?”
준성이 할머니께 묻자 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재현은 손을 들어 꽃사지를 살짝 만지고 미소를 지었다.
****
제은이는 집 마당의 나무와 꽃나무에게 물을 주고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리자 그녀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바라보았다.
“누구지.. 여보세요?”
<나 차재현인데..>
핸드폰을 잡은 제은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전화 괜찮아?>
“네.. 네. 그럼요. 괜찮아요.”
<저녁 같이 먹을래?>
“네? 좋아요. 네.. 알아요. 네.. 그럼 이따 봬요.. 네.”
전화를 끊은 제은이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눈을 질끈감은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물을 잠그고 집으로 뛰어 들어온 제은이 전화를 걸었다.
<낮잠 중이시다.>
민영이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말하자 제은이가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재현선배한테 전화가 왔는데 저녁 먹자고 했어.”
<진짜?>
“응.”
<잘 됐네. 사귀자는 말을 하려고 부르는 건 아닌가? 라고 착각하지 말고 그냥 즐거운 시간 보내.>
“알았어.”
<진정하라고. 지금도 말 엄청 빠르거든?>
제은이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진정이 안 되는 걸.. 네가 옆에 있어주면 좋겠는데.”
<왜.. 나중에 결혼식장도 같이 들어가자고 하지?>
제은이가 쿡쿡 웃었다.
<잘 다녀 와.>
“응. 전화할게.”
<그래. 제은아..>
“응?”
<파이팅.>
“응.”
제은이 배시시 웃었다.
****
제은이의 전화를 끊은 민영이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눈을 감고 침대에 엎드린 채로 피식 웃었다.
****
약속장소에서 재현과 만난 제은이는 이미 붉어진 볼로 떨리는 숨을 내쉬며 인사를 했다.
“음식점에 예약해 놨어. 가자.”
“네.”
재현을 따라 도착한 분위기 좋은 음식점에 조용한 자리에 마주앉자 제은이는 자신의 마른 침을 넘기는 소리마저 들릴까봐 편하게 침을 삼키지도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뭐하고 있었어?”
“스케치 좀.. 하고 있었어요.”
“그림 그려?”
“대단한 건 아니고요. 그냥 조금..요”
재현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렸다.
“어울린다.”
“부모님이 시키셔서 배운건데 오히려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오전에 할머니께 다녀왔어.”
“네.”
“꽃사지.. 고맙다.”
제은이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할머니 꽃사지가 유난히 사이즈가 크던데?”
제은이가 얼굴을 붉혔다.
“고마워. 할머니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좋더라.”
제은이는 여전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귀자고 말하려고 부른 건 아니야. 단지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네. 오해하지 않을게요.”
“그래주면 고맙고.”
그녀가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고 수줍게 미소를 짓자 재현이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
제은이의 집 앞에서 그와 헤어지고 집에 들어온 그녀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너무 긴장했나봐.. 온 몸이 저려..”
그녀가 재현이 미소를 짓고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배시시 웃었다.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즐거웠어? 아니면 위로가 필요해?>
“즐거웠어.”
<사귀자고 했어?>
제은이 인상을 조금 찡그리며 쿡쿡 웃었다.
“할머니께 꽃사지를 준 걸 알았나봐. 고마워서 식사대접 받은 거야.”
<특대형 사이즈를 눈치 챘구나?>
“응..”
<다행이네. 노력을 몰라주면 서운한데.>
“응.”
<콩 선배를 향한 마음이 조금 더 커졌겠는데? 이래서야 포기가 되겠어?>
“하지만 부담스럽게 하지 않을 거야. 지금으로도 충분히.. 충분히 행복하거든.”
<난 아마 너처럼 누군가에게 빠지지 못할 거야. 네가 착하고 순수해서 가능한 거라고.>
“너도 분명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응.”
<내 쪽에서 거절이야. 힘들어서 싫어.>
제은이가 쿡쿡 웃었다.
<내일 보자.>
“응. 잘 자.”
<그래~.>
전화를 끊은 제은이가 떨리는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
전화를 끊은 민영이 답답한 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두 번 다시는 못 해. 그러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
형의 작업실에 도착한 재현이 인상을 찡그렸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준성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냐? 남의 집 앞에서 술이나 마시고.”
“어디갔다 온 거냐?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나랑 사귀냐? 뭘 하루 종일 붙어 있어.”
재현이 문을 열자 준성이 일어나 봉지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가족끼리 저녁식사 한다고 했잖아.”
“하고 온 거야.”
“술 마시고 싶어서 온 거냐? 나중에 우리 형한테 들키면 너랑 나랑 야구배트로 맞을거야.”
“아직 멀었잖아. 어디 갔다 온 거냐?”
“제은이랑 저녁 먹고 왔어.”
“에? 홍당무랑? 왜?”
재현이 옷을 갈아입으며 아무 말이 없자 준성의 눈이 커졌다.
“설마.. 좋아하냐?”
“착하잖아. 요즘에 드문 케이스인 것 같아.”
“진지한 연애를 하고 싶은 거야?”
“할머니 계신 병원에 계신 분들이 몇 분인지 알아? 만든 꽃사지는 또 몇 개인지..”
“몰라. 하지만 꽤 되지 않나?”
“그걸 만든 여학생이 누군 것 같아?”
“누군지 궁금하긴 하더라. 할머니가 미인이라고 하셨잖아. 만나보고 싶어졌어.”
“만났어.”
“그래? 누군데?”
재현이 눈썹을 조금 들자 준성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홍당무라고?”
“응. 고맙더라고. 부모님도 안 챙기는 할머니를 챙겨주는 마음이. 그래서 저녁 사 준거야. 사귀고 싶어서 만난 게 아니라.”
“오해하지 않을까? 아직도 널 좋아하는 것 같던데.”
“오해하지 않겠다고 했어.”
“여자 말을 믿냐?”
“글쎄.. 믿어도 될 것 같아. 그 녀석은.”
“고마담이 친구라고.”
“같이 온다는 싹싹한 여학생이 누구겠냐?”
“말도 안 돼. 그 싸가지가 그런 일을 할 것 같아?”
“재료를 준비한 건 고민영인 것 같던데.”
“네가 어떻게 알아?”
“그 녀석 어머니가 꽃집 하시잖아.”
준성이 재현을 바라보자 재현이 조금 시선을 돌렸다.
“내가 가끔 가는 꽃집 주인아주머니가 그 녀석 어머니더라고. 안지는 얼마 안 돼. 딱히 비밀로 하려던 건 아니야.”
준성이 피식 웃었다.
“누가 뭐래? 분명히 억지로 했을 거야. 홍당무가 부탁해서 했을 거라고. 스스로 할 녀석이 아니야.”
“억지로라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바쁘다는 핑계로 돈으로 때우려는 사람들보다.”
준성이 재현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봉지에서 맥주캔을 꺼내 재현에게 던졌다. 맥주를 잡은 재현이 인상을 찡그렸다.
“어떻게 샀냐?”
“삼촌 냉장고.”
재현이 피식 웃으며 맥주캔을 열어 한 모금 마셨다.
첫댓글 오래전에 쓰신 글에 댓글 달기가 뭣해서 눈팅만 하고 있었는데^^;;;;
서은준범님 글 완전 좋아해요^^*
지금까지 서은준범님 글 모두 읽었는데 다 맘에 들었어요
지금 고마담도 넘 달달하니 좋고^^*
ㅎㅎ 감사해용^^ 더운 날씨에 늘 건강하소서~^^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사쿠라메이지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