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원제 : For Whom The Bell Tolls
1943년 미국영화
제작 감독 : 샘 우드
원작 : 어네스트 헤밍웨이
음악 : 빅터 영
출연 : 게리 쿠퍼, 잉그리드 버그만, 아킴 타미로프
카티나 팍시누, 블라디미르 솔콜로프, 아르투로 드 코르도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카티나 팍시누)
골든 글로브 남녀 조연상 (아킴 타미로프, 카티나 팍시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유명한 어네스트 헤밍웨이 원작 소설이죠. 1943년 샘 우드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고, 당대의 스타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했습니다. 이른바 할리우드 추억의 고전명작으로 자리잡은 영화입니다. 낭만적이고 애틋한 작품이죠.
그런데 세월이 지나 냉정히 바라볼 때 이 작품은 수많은 고전 걸작들의 틈에서 반짝 빛날만한 그런 위상은 아닙니다. 국내에 몇 차례 개봉했고, 방영, 출시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고전이지만 웬일인지 이 영화에 쉽게 다시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추억의 명작으로 기억에 남을 뿐. 그만큼 뭔가 2% 부족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 작품을 다시 봤지요. 훨씬 개선된 화질이었지만 2시간 40여분에 달하는 이 작품은 다소 상투적이고 다소 지루함이 느껴졌습니다. 맞아요. 그런 영화입니다. 약간 러닝타임을 줄일 수도 있었고, 좀 더 멋지게 촬영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연출은 평범하고 배우들의 개인기에 많이 의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샘 우드 감독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구석구석의 단점과 지루함은 엔딩 부분의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와 로베르토(게리 쿠퍼)의 애틋한 이별과 그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로베르토의 애틋한 명대사에 의해서 다 씻겨 내려갑니다. 그래요, 이런게 통속 고전 로맨스의 묘미이자 가치 아니겠습니까? 이 장면에서의 뭉클한 감흥을 느끼기 위해서 이 지루한 2시간 30분을 보낸 것이죠. 이렇게 보상해주는 영화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반짝이는 슬픈 눈망울이 촉촉해지고 게리 쿠퍼의 그 묵묵하고 시니컬한 표정이 이 영화의 캐스팅에 더 말이 필요없었습니다. 이 장면을 위해서 이 두 당대의 최고 배우들의 필요했던 겁니다.
우선 이 영화의 제목의 의미부터 보겠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직역인데 의역을 한다면 '누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서 종을 치는 것인가' 입니다. 영국 성공회 신부인 존 던의 시에서 따온 제목이지요. 그 내용을 해석해보면 누군가의 죽움을 추모하는 의미로 치는 종, 그건 나를 위해서 치는 종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의 일부입니다. 즉 세상의 무엇인가가 파괴되거나 손상되면 그건 나의 일부를 잃는 것입니다. 파도에 부서지는 바위,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나뭇잎, 세상의 모든 공기, 물, 물질속에 나도 포함되고 나는 그것의 일부고 그것들은 나의 일부입니다. 누구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며, 나의 일부를 잃는 것입니다. 추모의 종은 망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일부를 잃는 나를 위한 종이지요.
이야기의 구성은 사실 좀 억지로 만들어낸 느낌입니다. 1937년, 2차 대전이 열리기 직전 히틀러를 비롯한 유럽 열강들간의 세력다툼과 민주주의, 사회주의의 이념의 대립 등 세상이 급변하는 20세기, 경제 대공황의 끝물에 서 있는 미국, 내전이 벌어지는 스페인, 1936년~1939년에 벌어진 스페인 내전이 영화의 중심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인이죠. 미국인 로버트 조던은 다리폭파의 임무를 띄고 이 내전에 참여하여 현지인 게릴라들을 이끌고 이 중대한 임무를 지휘하지요. 그 와중에 만난 마리아라는 여인, 부모가 모두 공화당반대파들에게 숙청당하고 자신도 몸을 유린당한 아픔을 가진 여인, 시장의 딸로 행복하게 살던 가정이 파괴되고, 몸을 더럽히고 머리까지 깎인 채 수감된 상황에서 파블로(아킴 타미로프)가 이끄는 게릴라에게 구조되어 그곳에 온 것입니다.
영화는 두 축으로 흐르는데 로베르토(미국인 로버트인데 스페인이 배경이라서 사람들이 로베르토라고 부릅니다.)의 다리폭파 임무를 위한 상황과 그 와중에 피어나는 마리아와의 사랑, 이 두 가지 이야기가 3일 간 펼쳐집니다. 단지 목숨을 건 임무수행 이야기 뿐만 아니라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가미하여 후반부의 애절한 감성을 엮는 것이지요. 뻔한 통속물이고 상투적인 내용(지금 기준으로)으로 볼 수 있지만 그런 것을 뛰어넘는 감성을 줄 수 있는 건 배우 전성시대였던 당시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이라는 출중한 스타들의 역할이 당연히 한몫 합니다.
두 배우는 이렇게 자신들의 역할을 해내는데 다른 조연진들 역시 마찬가지죠. 우리 편의 중요한 일원이지만 한 편으로는 골치덩어리이기도 한 파블로 라는 존재, 사악한 면과 필요한 면이 다 있는 불편한 존재지요. 아킴 타미로프가 연기한 이 파블로는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감초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그와 대척점에 있는 역할이 집시 여인 필라(카티나 팍시누) 그리스 출신 배우인데 집시여인 역할이고 이 게릴라 부대에서 어머니 같은 역할입니다. 외모는 본인 스스로 'ugly'라고 하지만 드세고 용맹하고 사리판단도 빠릅니다. 비겁하고 치졸한 파블로와 달리 여걸의 풍모를 보이지요. 필라는 마리아와 로베트로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가교역할 이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풍찬노숙을 함께 하는 이들 동료들의 면모 하나하나는 각자의 성깔과 개성들이 있습니다. 이들 배우들이 평치는 3일낮 3일밤의 향연입니다. 중심에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있고 그 사이드에 아킴 타미로프, 카티나 팍시누가 보조를 하고 외곽에 다른 조연, 단역 배우들이 포진해서 펼치는, '배우중심'의 영화입니다.
이 모든 상황은 엔딩 몇 분간 전개되는 마리아와 로베트로의 애틋한 이별을 만들기 위한 통로입니다. 뻔히 아는 내용, 아는 장면이지만 그럼에도 다시 이 장면을 접할 때 뭉클 합니다. 나이가 들면 더 쉽게 감동하는 것일까요? 예전에는 그냥 그 장면 자체에 집중했다면 지금 다시 볼 때는 마리아 라는 캐릭터가 겪은 그 험한 상황들이 함께 더해지면서 한 여자로 태어나 세상에서 당할 수 있는 가장 아프고 험난한 사건을 겪은 이 여인이 모처럼 다시 사랑하고 의지하고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는 남자를 만나서 불과 3일 간의 사랑으로 끝나며 결국 생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좀 더 많이 몰입되더군요.
예전에 못 느꼈던 부분, 마리아와 로베르토의 사랑은 일방적으로 마리아에 의해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밋밋한 로베르토에 비해서 마리아가 훨씬 적극적이고 키스도 먼저 하려고 달려들고 먼저 찾아오고, 그야말로 남자가 좋아서 미치기 직전인 여자를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할까요? 이게 마리아의 현 상황, 모든 것을 잃은 여인이 유일하게 새로 평생 의지할 대상이 생긴 것에 대한 행동입니다. 반면 이런 저돌적인 마리아에 비해서 로베르토는 훨씬 수비적입니다. 그건 그가 마리아에게 매력을 못 느껴서가 아니라 죽음의 임무를 수행하러 전쟁터 한복판에 던져진 자신의 상황 때문이지요. 한가롭게 사랑을 할 처지가 못되는, 즉 한 여자를 보호하고 책임지고 행복하게 함께할 상황이 못 되기 때문이지요. 언제 죽을지 모르고, 위험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하고, 그래서 그에게 마리아는 멀리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하는 존재입니다.
유명 소설의 각색물들은 좋은 대사가 나오기 마련이지요. 이 영화의 엔딩에서의 로베르토의 대사가 그렇습니다. 번역대사로 옮기는데 한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참 명대사이고 애틋함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문장이라고 봅니다.
"이제 가, 마리아
여기 일은 나 혼자 해야 해
당신이 있으면 할 수 없어
당신이 가면 나도 가는 거야
둘 중 하나만 가면 같이 가는 거야
그렇게 나도 가는 거야
당신은 가야 해, 우리 둘을 위해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니까
이제 나 역시 당신이야
당신이 가면 나도 가는 거야
그게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우리의 시간은 지금이고
그건 절대 끝나지 않아
이제 당신은 나, 나는 당신이야
이제 일어나서 가
우리 둘 다 가는 거야
당신이 나 라는 걸 기억해
작별 인사는 없어, 헤어지는 게 아니니까"
이 로베르토의 대사가 이 영화에 대한 모든 설명이 됩니다. 그렇게 거의 80살 먹어가는 이 오래된 영화는 계속 그렇게 기억됩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키스할 때 코는 어디로 가는 거죠?' 라는 재미난 대사와 장면이 많이 기억되는 영화입니다. 코를 피해서 키스하는 요령 강습이지요.(너무 쉬운 요령이지만)
ps2 : 잉그리드 버그만은 20대 후반이었지만 할리우드에서 막 뜨던 시기였습니다. '카사블랑카'에 출연하고 그 다음 영화가 이 작품이었지요. 그리고 다음 작품인 '가스등'으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지요. 가장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의 작품이지요. 게리 쿠퍼도 '요크상사'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이후라서 절정기였습니다.
ps3 : 아카데미 9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필라 역의 카티나 팍시누의 여우조연상 만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샘 우드는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 해 작품상은 '카사블랑카'가 받았는데 1년 전 영화지만 개봉이 늦게 되는 바람에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1년 늦게 올랐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영화끼리 경쟁한 셈이지요.
ps4 : 우리나라 개봉관에서 1957년 1964년 1972년 세 번이나 상영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ps5 : '5인의 낙인찍힌 처녀' '싸우는 젊은이들' 이 두 편의 영화 엔딩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아주 유사합니다. 설정조차도. 다만 다른 두 영화는 최후에 남은 자가 2명이라는 점이 다르죠.
[출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1943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