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을 함께 한 부부이야기
이재완 장로님, 나원순 권사님을 만나며 / 글 광주은광교회 장영순 총무교사
봄에는 꽃을 꺽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고, 여름엔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매일이 신혼 같은 백발의 노부부... 여기까지만 들어도 뭔가 알 것 같은 이야기, 그렇다. 로맨틱하고 감성적인 노부부의 76년간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었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영화의 장면들이다.
우리교회에도 영화의 주인공 같은 부부가 계신다. 올해로 결혼 70 주년을 맞이하셨다는 이재완 은퇴장로님, 나원순 은퇴권사님 부부가 주인공이다. 두분의 이야기를 듣고 벌써 마음이 설렌다. 보물함의 보석들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주인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빛을 발하며 주인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이분들의 70년 사랑이야기가 나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될까요? 장로님 정말 예쁘세요.! 요즘말로 꽃미남이랄까요ㅎㅎ!! 장로님 뵈니 어릴적 모습이 무척 궁금한데요?
우리 부모님이 아주 개화된 분들이셨던가 봐요. 열세 살인 나를 일본에 가서 공부하게 하셨거든요. 거기서 중등과정의 교육을 받고 돌아왔어요.
공부하고 오신 뒤에는 어디에서 생활을 하셨어요?
그때는 일제 때인데 우리 회사의 본사가 서울이었어요. 그런데 평양에 비행장을 신설하게 되었고, 전공이 기술 분야라서 그 공사의 일부 책임자로 평양에 가게 되었어요.
그럼 회사에 다니시다 어떤 계기로 교육자의 길을 가게 되셨나요?
그때는 중학교 이상 졸업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한 면소재지에서 10명 내외 정도였으니까. 국민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중학교 나온 사람들이 고향학교의 선생 노릇을 하게 된거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일생동안 교육계에 있게 되었어요. 항상 바쁜 시간들이었어요. 그러다보니 가사에는 등한시했던 것 같아요.
그럼 결혼을 언제 하신 거예요?
많은 젊은이들이 징용에 끌려갔고, 나도 군에 가야하는 나이니 부모님께서 빨리 결혼시키는 게 좋겠다 싶으셨나 봐요. 갑자기 "결혼해야 하니 고향(나주)으로 내려오라"고 하셨어요. (1944년인 19세에 엽서 한 장 받고 18세인 권사님과 결혼울 하셨단다.)
와! 그럼 현재 장로님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지금 90세입니다. 집사람은 89세이고, 많이 먹었지요~ㅎ
결혼 70주년이 되셨다고 들었어요. 정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랑의 비법'이 있었을거 같은데요?
집사람은 살림 전문가입니다. 해방 직후부터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 공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아내가 애로사항을 못느끼게 해주었어요.
권사님!! 장로님이랑 같이 사시면서 어떤 부분이 제일 멋있으셨어요? ㅎ~ 장로님 자랑 한 번 해주세요.
나는 지금 장로님 때문에 살고 있어요. 장로님이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몰라요. 60세에는 배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최근에도 4개월이나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했어요. 늘 아프고 매달매달 피검사며 CT촬영이며, 늘 옆에서 지켜주고 간호해 준 덕분에 살아있죠. 장로님은 자식들을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사신 분이에요.(조금전 장로님은 가사 일에는 등한시 하셨다는데요? 아니신가 봐요 ㅎㅎㅎㅎ)
가족이랑 자녀분들이신가 봐요.(식탁 주변에 자녀들의 가족사진이 차례차례 걸려있었다.)
네. 3남2녀예요. 첫째네, 둘째네...... (5남매의 자녀가 각각 기업체의 사장, 이사, 증권사의 부사장, 노인복지관장, 간호사로 성공하여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다복할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자녀들의 모습에 감사가 넘친다고 하신다.)
90세면 장수하신 건데 비결이 궁금해요.
그거 좋은 질문입니다. 특별한 것은 없고, 늘 절제하는 생활과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거죠.
충의교육원장으로 퇴직하시고 자서전도 내셨다고 들었어요. 내용도 궁금하고 계기가 있으셨나요?
교육자로 45년간 살아오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회고하며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었습니다. 제목이 '청백전지'인데 첫 번째는 앞으로도 깨끗하게 살아라. 두번째는 너희 뿐 아니라 대대로 물려주어라 이런 이야기죠.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후배들에게 꼭 강조하고 싶었어요.
살아오시며 "이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신다면 어떤 것일까요?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의 계기가 예수님을 믿게 된 거예요. 그것도 누구에게 전도되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종교를 선택했다는 점이예요. 45세 때 한 연수원에서 연수 중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기독교를 통한 서구 문화의 발전에 크게 감동을 받았어요. 나도 저렇게 내 사고방식과 생활을 바꾸어야 되겠다! 생각하고 그 후 바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죠.
장로님이 기독교를 받아들이셨다 하더라도 권사님께서 종손가의 큰 따님이셨다는데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궁금해요.
어떻게 하긴. 남편이 하는 일인데 나도 따라야죠. 남편이 신앙생활을 하고 나도 바로 시작했어요
그리 내세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교육장을 할 때 예수님을 믿는 교육장은 나뿐이었는데 사람들에게 언행으로서 전도를 많이 했어요. 그때만 해도 주일에 하는 행사가 많았어요. 그런데 주일에 하는 것을 모두 중지시키기도 하고, 어떤 일에서든지 청렴하게 생활했어요. 다 말 할수는 없지만 감사한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혹시 기도제목이나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다른 건 어려움이 없는데 수완예배당이 지어진 이후로 그곳으로 예배를 드리러 가는것이 어려워요. 가고 싶은데 몸이 힘들고, 멀어서(계림동 금호아파트에 거주하심) 처음 한 번만 예배드리러 가고 지금은 누문동으로 가고 있어요. 그래도 수완에 많은 성도들이 모인다는 소식은 무척 기쁘고 좋아요.
남은 여생 바라는게 있으시다면, 자녀 분들에게 '우리 부모는 훌륭한 분이셨다'로 기억되기를 소망하신단다. 서로 사랑하며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며 70년 긴 동행의 길을 넉넉히 걸어오신 듯하다. 그리고 지금도 웬만한 일은 자녀들 의지하지 않고 두분이서 해결하려 노력하시며 서로 버팀목과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신다. 우리교회에 이렇개 신앙으로 청렴하게 사시고 서로 사랑하는 어르신들이 계심은 아무리 생각해도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장로님, 권사님~ 우리 곁에 오래오래 계셔 주세요^^)
광주은광교회 <2015 은광 봄 Vol. 359 에서 퍼옴>
첫댓글 결혼 예복과 기러기, 종지 하나! 그 당시 생활을 엿 보는듯합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