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조>
어부가(漁父歌)
이현보
<1연>
이듕에 시름업스니 어부(漁父)이 생애(生涯)이로다
일엽편주(一葉片舟)를 만경파(萬頃波) 띄워 두고
인세(人世)를 다 니젓거니 날 가는 줄을 알랴
<2연>
구버는 천심녹수(千尋綠水) 도라보니 만첩청산(萬疊靑山)
십장홍진(十丈紅塵)이 언매나 가렷난고
강호(江湖)에 월백(月白)하거든 더욱 무심(無心)하얘라
<3연>
청하(靑荷)애 밥을 싸고 녹류(綠柳)에 고기 꿰어
노적화총(蘆荻花叢)에 배 매야두고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를 어느 부니 아라실고
<4연>
산두(山頭)에 한운(閑雲)이 기(起)하고 수중(水中)에 백구(白鷗)이 비(飛)이라
무심(無心)코 다정(多情)하니 이 두 거시로다
일생(一生)에 시르믈 닛고 너를 조차 노로리라
<5연>
장안(長安)을 도라보니 북궐(北闕)이 천리(千里)로다
어주(漁舟)에 누어신들 니즌 스치 이시랴?
두어라, 내 시름 아니라 제세현(濟世賢)이 업스랴?
♣어구풀이
<1연>
-이듕에 : 이 속에. 이러한 생활 속에.
-시름업스니 : 근심, 걱정 없으니
-생애(生涯) : 생활, 생계, 사람이 살아온 일생, 여기서는 생활을 말함.
-일엽편주(一葉片舟) : 아주 작은 한 척의 배. 조각배.
-만경파(萬頃波) : 한없이 너르고 너른 바다. ‘만경창파(萬頃蒼波)라고도 함.
-인세(人世) : 인간 세상. 세상의 일.
-니젓거니 : 엊었거니
-날 가는 줄을 : 날이 가는 것을. 세월이 흐르는 줄을.
<2연>
-구버는 : 굽어는. 굽어 보면
-천심녹수(千尋綠水) : 천 길이나 되는 깊고 푸른 물.
-도라보니 : 돌아보니.
-만첩청산(萬疊靑山) : 여러 겹으로 첩첩이 쌓인 푸른 산.
-십장홍진(十丈紅塵) : 열 길이나 되는 붉은 먼지, 여기서는 ’어수선한 세상사‘를 말함.
-언매나 : 얼마나.
-가렷난고 : 가리었는가. 가려 있는고.
-월백(月白)하거든 : 달이 밝거든. 달이 밝으면.
-무심(無心)하얘라 : 무심하구나. 사심(邪心)이 없어지는구나. ’얘라‘는 감탄형 종결어미.
<3연>
-청하(靑荷) : 푸른 연꽃.
-녹류(綠柳) : 녹색 버드나무.
-노적화총(蘆荻花叢) : 꽃이 핀 갈대 떨기.
-매야두고 : 매어 두고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 : 같은 맑은 의미.
-어느 무니 : 어느 분이. 어느 사람이.
-아리실고 : 알 것인가.
<4연>
-산두(山頭) : 산의 맨꼭대기. 산머리.
-한운(閑雲)이 기(起)하고 : 한가로운 구름이 일고.
-수중(水中) : 물 속에.
-백구(白鷗) : 갈매기.
-비(飛 )이라 : 날고 있다.
-다정(多情)하니 : 다정한 것은.
-시르믈 닛고 : 걱정, 근심을 잊고, 시름을 잊고
-너를 조차 노로리라 : 너를 쫓아 놀리라. 너와 더불어 놀으리라.
<5연>
-장안(長安) : 중국 당(唐)나라의 수도. 우리 시가에서는 흔히 한양(漢陽)의 의미로 쓰였음.
-북궐(北闕) : 경복궁의 다른 이름.
-어주(漁舟) : 고깃배.
-누어신들 : 누워 있은들, 누워 있더라도.
-니즌 스치 : 잊은 사이. 잊은 적이. ‘스치’는 ‘숫’에서 온 말로 짧은 동안의 시간을 의미함.
-내 시름 : 나의 근심.
-제세현(濟世賢) : 세상을 건져낼 마난 위인.
♣해설
<1연>
초장 : 이러한 생활(어부의 생활) 속에 근심, 걱정할 것이 없으니 어부의 생활이 최고로다.
중장 : 조그마한 쪽배를 끝없이 넓은 바다 위에 띄워 두고
종장 : 속세의 일을 다 잊어버리고 있는데 세월이 흐르는 것을 알 수 있으랴.
<2연>
초장 : 아래로 굽어보니 천 길이나 되는 깊고 푸른 물이며, 돌아보니 겹겹이 쌓인
푸른 산이로다.
중장 : 열 길이나 되는 붉은 먼지(어수선한 세상사. 깨끗하지 못한 속세의 번뇌)는
얼마나 가려 있는고
종장 : 강과 호수에 밝은 달이 비치니 더욱 사심이 없어지는구나.
<3연>
초장 : 푸른 연잎에다 밥을 싸고 푸른 버들가지에 잡은 물고기를 꿰어
중장 : 갈대꽃이 우거진 떨기에 배을 매어두니
종장 : 이와 같은 일반적인 맑은 재미를 어느 사람이 알 것인가
<4연>
초장 : 산머리에는 한가로운 구름이 일고, 물 위에는 갈매기가 날고 있네
중장 : 아무런 사심없이 다정한 것으로는 이 두 가지뿐이로다.
종장 : 한 평생의 근심 걱정을 모두 잊어버리고 너희들과 더불어 놀리라.
♣전체감상
어부가(漁夫歌)는 일찍이 고려 때부터 12장으로 된 장가와 10장으로된 단가로 전해져 왔는데 이현보가 이를 개작하여 9장의 장가, 5장의 단가로 만들었다.
생업(生業)을 떠나 자연과 벗하여 고기잡이 하는 풍류객으로서의 어부의 생활을 그린 이 시조는 우리 선인들이 예부터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운치있는 생활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자연속에 묻혀 산수를 즐겼을망정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는 인간사(人間事)가 도사리고 있었으니 ‘인간사(人間事)를 다 니젓거니’와 ‘니즌 스치 이시랴’라고 한 것은 임금에 대한 충성을 나타낸 것으로 애국 충정이 엿보인다. 그러니 완전히 자연에 몰입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한자어가 너무 많이 사용되었고, 정경의 묘사도 관념적이며 상투적인 용어가 쓰인 것이 커다란 흠이라고 하겠다.
♣작가소개
이현보(李賢輔, 1467~1555) : 호는 농암(聾巖), 애일당(愛日堂). 조선 세조에서 명종 때에 이르기까지의 문신, 연산군 때의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副提學), 호조참판(戶曹參判),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의 벼슬을 역임했다. 말년에는 고향인 경상도 예안으로 돌아가 낙동강(洛東江) 상류(上流)의 산수를 즐기며 시작(詩作)과 음영(吟詠)으로 여생을 보내다가 88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끝마쳤다. 작품으로는 예로부터 전하던 어부사(漁父詞)를 개작(改作)했고, 「농암가(聾巖歌)」, 「효빈가(效顰歌)」 등 많은 시조를 남기었으며 문집(文集)도 전하고 있다.
첫댓글
세월의 흐름에
인생의 배
삶을 노저어 가네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