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을 극복하는 신명나는 생활 습관이 있다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대로 성령님께서는 ‘협조자’로서 주님께서 친히 선포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시는 분이며, 우리의 협조자, 위로자, 보호자로 오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알게 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주시며,
또한 우리가 기도할 수 없을 때,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에 관하여 공부를 많이 하신 신부님들께서 쓰신 책의 내용이 생각납니다.
유럽으로 유학을 가보니, ‘성령’(Sanctus Spiritus)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스피리뚜스’(Spiritus) 라는 단어를, 타이어 가게나 건강 음료를 파는 곳에서 발견해
많이 놀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럽어를 유추해 보니, 성령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신명나고 활력 있는 삶을 살도록 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간혹, 삶의 활력을 못 느끼시고
슬픈 얼굴로 수심에 차서 지내시는 분들을 멀리서나마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사는 재미를 느끼려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삶의 활력과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성령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아라.” 하고 말씀하셨고,
그리하여 우리는 세례와 견진으로 성령의 은사를 받아 살게 되었습니다.
초기 교회부터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은총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이십니다.’ 하고 기도하고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우리가 성령과 함께 사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몸 안에 피가 흘러 힘이 생기고 살아갈 수 있듯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지 않으면 우리도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스마트기기가 와이파이나 통신망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영께서 활동하시려면 우리도 거룩한 상태,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삶을 권해 드립니다.
기도로써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을 ‘거룩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기도함으로써 삶이 변하는 것을 목격하는 사람들은 더욱 놀랍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고 그 힘으로 우리가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이 의미가 생기고, 보람이 생기고,
기쁨과 희망이 생기며, 시련을 이겨내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글 : 盧寅斌 엘벨트 神父 – 수원교구
두부 한 모, 웃음 한 입
아빠를 기다렸습니다.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갈 거거든요.
그런데 침을 맞고 오시겠다며 휴대폰을 두고 나가신 겁니다.
아빠를 찾아서 동네 골목을 돌았습니다. 저만치에서 자전거 한 대가 다가옵니다.
아빠였습니다. 입가에 뭉실한 미소 한 자락 얹으시고 기분 좋은 표정이십니다.
큰딸이 온 게 반갑고 기쁘신 거지요. 자전거 바구니엔 까만 비닐봉지가 있었고,
아빠는 자랑하듯이 뭔가를 꺼내 보이십니다. 커다란 두부 한 모와 흙 묻은
당근입니다. 따끈한 두부에 김장 김치를 싸서 당근 주스랑 먹이고 싶었던 겁니다.
불과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찰나지만, 영화 어디에선가 봤음직한 장면 같습니다.
콧등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나려는 걸 참고 영화를 봤습니다.
아빠와 이렇게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고 싶었던 겁니다.
저는 오랫동안 아빠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빠는 세 살 때
할머니를 잃은 상실감 때문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술만 드시면 우셨습니다.
어린 제 눈에도 불쌍해 보일 정도였지요.
저는 태어나서 술을 드시지 않는 아빠의 모습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집안의 왕처럼 군림하시며 권위적이고 무서웠던 아빠는 엄마를 힘들게 하셨습니다.
자식들은 술 드시는 아빠를 견뎌야만 했습니다. 맏딸인 저와 엄마는
아빠의 인생이 하느님의 영 안에서 다시금 일어서고 변화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변하지 않았고, 저희는 좌절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기도는 누군가를 내 뜻에 맞도록 변화시키기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을요. 아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 십자가를 껴안아 보기로 한 겁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빠가 빨리 변하기를 바랐던 기도를 멈추었습니다.
아빠의 인생이 다 잘못된 것처럼 여기며 그분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제가 구원되고 변했기 때문입니다. 알코홀릭(Alcoholic) 아빠가 없었더라면,
저는 죽도록 기도하지 않았을 거고, 하느님을 만나지도 못했을 거며,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지도 못했을 겁니다. 아빠는 제게 구원의 도구인
동시에, 제 자신과 화해하게 해주신 정화(淨化)의 선물입니다.
아빠는 4년 전 폐암 초기로 수술을 받으신 데다,
작년엔 췌장암 2기로 생사를 넘나드는 개복수술을 받으셨습니다.
항암 치료까지 잘 마치셨지만 이제 더 이상 술을 드실 수가 없습니다.
엄마와 함께 바친 저의 기도가 응답받은 것일까요? 제 평생 술을 드시지 않는
아빠와 살아본 적이 없어서, 지금의 행복이 낯설기만 합니다.
큰딸이 온다고 갓 만든 두부를 사서 자전거에 싣고 오시며 배시시 웃던 모습,
그 따뜻한 사랑이 제겐 응답입니다.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 한 컷의 스틸 사진처럼 마음에 저장해 두었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술 안 드시는 아빠와 살아볼 기회를 주시고,
부녀간에 추억을 만드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빠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빠, 살아계셔 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대단하신 우리 아빠.”
글 : 박지현 요셉피나 – 방송작가 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