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대한 분노(Epic Fury)’에...
지난달 28일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겨냥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은 그를 제거했지만 중동의 화약고에 불을 댕긴것이다. 트럼프의 즉흥적 결단과 네타냐후의 정치적 생존욕이 맞물린 합작품의 거대한 불길이 7000㎞ 떨어진 한반도까지 번졌다.
발화점은 성주에 자리 잡고있던 ‘사드(THAAD)’다. 사드는 단순한 방어용 무기가 아니다. 요격 고도 40~150㎞를 책임지는 우리 방공망의 ‘최후 보루’다.
패트리엇이 저고도를 담당하는 방패라면, 사드는 적의 심장부를 높은 하늘에서 낚아채는 거대한 그물이지만 이 전술적 자산이 최근 중동의 전운 속에 방어 시스템 보강이 급해진 미군이 경북 성주의 사드 포대를 중동으로 빼낸 탓이다.
10년 전, 우리는 사드 배치라는 안보 결정 하나로 대한민국 경제의 기둥이 흔들리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겪었다.
당시 성주 골프장을 부지로 내놓은 롯데그룹은 중국의 노골적인 제제에 112개 롯데마트 매장은 소방 점검과 위생 단속이라는 치졸한 올가미에 걸려 도미노처럼 무너졌고 롯데가 중국 시장에서 쫓겨나듯 철수하며 입은 직접 피해액만 2조원에 달했다.
보복의 칼날은 대한민국 기업에게는 무차별적이었다. 현대차와 기아의 판매량은 수직 낙하했고, K-뷰티의 상징이던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매출은 증발했다. 당시 산업계가 입은 총손실액은 연간 10조원에 육박했다. 국가 안보를 위해 기업이 제단 위에 올려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드가 소리 소문 없이 중동으로 날아간 것이다. 자주국방을 외치던 정책 당국자들의 호언장담이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기업들은 허탈함을 넘어 분노한다. 국가가 준 상흔은 여전한데, 그 원인제공자였던 ‘안보의 상징’은 국익의 손익앞에서도 너무나 쉽게 자리를 옮겨버렸기 때문이다.
이번 중동전쟁이 몰고 올 후폭풍은 10년 전 사드 사태 때와는 체급이 다르다. 사드 사태가 특정 국가의 ‘치졸한 심술’이었다면, 지금의 중동전쟁은 한국 경제의 ‘생존’을 직격하고있다.
세계 에너지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순간,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한국은 공급망 단절이라는 질식 상태에 빠진다.
주유소에 늘어선 긴 차량 행렬과 가동을 멈춘 석유화학 공장들은 우리가 누려온 안온한 일상이 얼마나 위태로운 얼음판 위에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보여준다.
자본 시장은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다. 미국 경제분석가 '짐 비앙코'의 조롱 섞인 경고처럼, 한국 증시는 ‘심약한 자는 발을 들일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됐다. 전쟁 직후 단 이틀 만에 시가총액 1000조원이 물거품 처럼 사라졌다. 삼성전자 127조원, SK하이닉스 87조원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시장에서 논리적인 투자는 사치일 것이다.
환율은 1500원을 오르내리고, 기업의 돈줄인 IPO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유가, 환율, 주가라는 ‘트리플 쇼크’는 우리에게 오직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 거대한 불길 속에서 대한민은 살아남을 준비가 되었는가.”
‘전시 경제’의 문법으로 산업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 나프타 의존에서 벗어난 에너지 믹스의 재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다.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로 나갔던 생산 기지들은 이제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니어쇼어링’이나 우방국 중심의 ‘프렌드쇼어링’으로 머리를 돌려야 한다. 특정 원료와 경로에 목을 매는 비즈니스 모델은 지정학적 불길 앞에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다.
전쟁은 언젠가 끝나지만 포성이 멈춘 뒤의 세상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호르무즈의 파도가 잦아들었을 때, 여전히 바다를 가르며 나아갈 수 있는 기업은 오직 스스로를 파괴적 혁신으로 재무장한 곳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