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문화]壓卷(누를 압/책 권)
1등에 해당되는 試卷을 맨 위에 올린 데서 유래된 말
흔히 책이나 문장,또는 예술작품 등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을 일러 壓卷이라고 한다.
또는 '표정이 壓卷'이라거나 '붉은 악마의 응원이 壓卷'이라는 말에서처럼 詩文(시문)이나 예술작품 외에도 어떤 부류에서 가장 두드러지거나 뛰어난 것을 壓卷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壓卷은 字意(자의)로만 보면 문서꾸러미를 누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壓卷이 요즘처럼 뛰어난 작품이나 물건 등을 가리키게 된 것은 과거제도와 관련이 있다. 壓卷이란 장원급제에 해당되는 試卷(시권=답안지)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본디 科擧(과거)의 채점관인 試官(시관)이 채점결과를 임금에게 올려 재가를 받을 때 1등에 해당되는 試卷을 급제자의 試卷 맨 위에 놓게 되는데,나머지 試卷을 위에서 누르는 제일 우수한 試卷이라고 해서 壓卷이라 하는 것이다. 과거의 試卷이 아닌 詩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의 경우에는 壓卷이란 말 대신 壓軸(압축)이라 하기도 한다. 이 밖에 무엇의 첫 번째에 해당되는 것을 壓頭(압두)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직업이 다양하고 사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공무원 되는 것 이상으로 선호되기도 하는 요즘과는 달리 근세 이전에는 입신양명의 유일무이한 방법이 科擧에 及第(급제)하는 것이었으므로,과거에 쓰이던 말이 詩文을 평하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고 나중에는 시문뿐만이 아니라 표정이나 몸짓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것을 가리키는 말로 용례가 확대된 것이다.
壓의 厭은 '눌러서 찌부러뜨리다'는 뜻이니,壓은 흙과 같은 것으로 무엇을 누르다는 뜻이 된다.
壓力(압력) 壓縮(압축) 등의 壓이 그러하다. 눌러서 진정시키는 것 역시 壓이라 하는데,鎭壓(진압) 壓制(압제)의 壓이 그 예이다. 이와 달리,壓迫(압박)의 壓은 어떤 곳에 바짝 다가서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厭과 통하여 '싫어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卷의 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즉 무릎을 꿇듯이 무엇을 마는 것이 卷인 것이다. 옛날에는 책을 묶지 않고 두루마리 식으로 말아서 사용했으므로,卷이 책이라는 뜻으로 전이되었던 것이다.
대개는 두 묶음 정도를 묶어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후에는 卷이 책을 세는 단위로 쓰이기도 했던 것이다.
무엇을 말아서 주머니에 집어넣듯 才德을 감추는 것을 卷懷(권회)라고 하는데,큰 뜻을 펴려면 壓卷이 될 재능도 때로는 卷懷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