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신생활』 3호, 1923. 4)
[어휘풀이]
-아미 : 눈썹
[작품해설]
변영로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여러 충신과 열녀들을 작품의 소재로 선택하여 섬세한 전통정서와 기개 높은 민족정신으로 형상화시킨 시인이다. 이 작품도 이와 같은 그의 시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의 하나로,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倭將) ‘게다니’를 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殉國)한 의기(義妓) ‘논개’의 우국충절(憂國忠節)을 노래하고 있다 동시대 『백조』 동인들이 암울한 시대 상황에 굴복하여 한숨과 눈물만을 토로한 퇴폐적이고 감성적인 시를 쓴 데 비해, 그는 민족적 패배감에 젖어 있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논개’의 우국충절을 보여 줌으로써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주었다.
1연에서는 논개의 거룩한 분노와 애국적 정열을, 2연에서는 물로 뛰어드는 논개의 거룩한 순국 모습을, 3연에서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통하여 논개의 충혼(忠魂)에 대한 추모의 정을 노래한다. 왜적에 대한 논개의 ‘거룩한 분노는 /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 사랑보다도 강한’ 것이므로 각 연에 첨부된 후렴은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단심(丹心)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강낭콩과 강물의 푸른색, 양귀비꽃과 석류 속의 붉은색을 대립시키는 방법으로 논개의 정열을 강조하는 이미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므로 각 연에 반복되는 후렴이 바로 이 시의 초점이 된다. 한편 전통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사군자(四君子)와 같은 진부한 소재를 쓰지 않고, ‘강낭콩’ · ‘양귀비꽃’ · ‘아미’ · 석류‘와 같은 토속적 분위기의 소재를 빌어 참신한 이미지 효과를 배가 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연의 ’푸룬 강물‘은 ’영원한 역사‘를 상징하므로 진주 남강이 마르지 않고 푸르게 흐르는 한 논개의 충절도 역사와 더불어 영원할 것임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저항적 색채로 말미암아 이 작품이 수록된 시집 『조선의 마음』(1924)은 발간 직후 일제로부터 판매 금지 및 압수 처분을 받고 말았다.
[작가소개]
변영로(卞榮魯)
별칭 : 변영복(卞榮福), 수주(樹州)
1898년 사울 출생
1909년 중앙학교 입학
1918년 중앙고보 영어 교사
1920년 문학 동인지 『폐허』 동인 활동
1931년 도미(渡美), 캘리포니아주 산호세대학에서 수학
1935년 『신가정』지 주간
1946년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194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53년 서울신문사 이사,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초대 위원장
1961년 사망
시집 : 『조선의 마음』(1924), 『수주시문선』(1959), 『차라리 달 없는 밤이드면』(1983),
『논개』(1987)
첫댓글 푸르고 붉은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번함없이 무한 건필하시길
소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