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문숙자
낯선 차를 타고 떠난 막내를 잊고 우리는 쑥쑥 자라는데 엄마는 점점 야위어가요
밥풀처럼 싸락눈이 내리는 오늘 밥풀밥풀 내리는 그것을 받아먹는데 세상이 온통 밥풀인데 왜 이렇게 배가 고픈지
먹고 싶은 먹고 싶은 먹고 싶은 것만 아른거려요
막내를 데려간 웃음의 무늬가 걸어와요, 저기
나를 안아주세요 나를 선택해주세요
웃음의 무늬는 정말 따뜻해 엄마의 출렁이는 슬픔에서 멀어지기 쉬워요
집도 잘 지키고 엄마처럼 주인에게 순종적인 어른이 되겠어요
잊지 않을게요 산갈나무숲에 겨울이 내려앉는 날 나의 생일이라는 것 안녕 엄마 안녕 누이들
사소한 웃음
한동안 소식 끊겼던 사람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한겨울 느닷없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냐 묻는다
언젠가 마트에 가면 아이스크림은 꼭 사세요
하던 말이 생각났다
대답도 하기 전에
바닷가 풍경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물결치는 바다를 배달했으니
무엇을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속이 깊은 바다와
걸음이 예쁜 구름이 하늘을 지나는 풍경을 전송하고
지구에서 가장 푸르게 출렁이는 것을 주었으니
그대는 내게 무엇을 더 주실 수 있는지요? 물었다
빙수가 먹고 싶은데 어떡하느냐 딴소리를 한다
기온이 뚝 떨어져 바닷물이 꽁꽁 얼면
짭쪼롬하고 달큼한 빙수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가 킥킥 웃는다
나도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동그랗게 웃었다
달빛으로 푸른빛이 도는 이마가 시릴 때까지
우리는 킥킥거리다 헤어졌다
무거운 두뇌가 갑자기 가벼워졌다
가난한 저녁
지는 해를 삼키며 수억 만 개의 물비늘이 밀려오는 시간
바다를 닮은 하늘가에 서 있으면
노을이 발목까지 차오르는 날 있다
노을로 물든 신발을 신고
마주칠 사람 없는 마을을 거닐다
바다와 눈이 마주치면 꿍 닫힌 마음이 열린다
해가 머무는지 지는지 바라보는 일
쌀은 떨어지지 않았는지 연탄은 들여놓았는지
삶이 위태로운 한 사람을 생각하는 일처럼 무겁고 슬프다
오늘처럼 추운 날엔
적막이 밀어 올리는 파리한 풍경으로는
영하의 밤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삶이 편하지 않을 때 해는 빨리 떨어지고
바람은 문풍지를 뚫고 들어와
주인처럼 앉아있는 가난한 저녁
당선소감
자술서 위에 쓰는 시
당선 소식을 듣고 집으로 오는 길이 이상한 국경을 넘어서는 것처럼 낯설었다. 괜히 시작했나 하는 마음이 덜컥거렸고, 시를 쓰는 일로 쓸쓸함에 시달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치고 들어왔다. 이 순간 가슴을 휘저으며 뭐라 설명할 수 없게 싫지 않은 묘한 감정은 또 무엇인가. 이런 날엔 문장으로 이어지려는 언어들이 이명처럼 잉잉거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갓 스물이 되었을 때, 친구와 망우리 고개를 넘어 집으로 가는 길에서 서로의 꿈을 말했던 그날이 생각났다. “있잖아 나는 글을 써서 내 이름을 신문에 나오게 할 거야.” 이 말은 내 생애 지켜지지 않으면 안될 약속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삶이란 것이 내 가고자 하는 길을 그리 만만하게 내주었던가.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제일 먼저 달려가 이 소식을 들려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이라 지금 많이 적적하다. 며칠 후 나는 양수리 어느 산허리 봉분 앞에 앉아 “아버지, 이제부터 내 고질적인 쓸쓸함에 대한 자술서를 써 볼 마음이에요.” 독백을 한 후 책 한 권을 태우고 산을 내려올 것이다.
시를 쓰는데 격려와 꾸짖음을 아낌없이 해주신 나호열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또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동지라 불러도 좋을 문우님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아직은 시라 하기엔 염치없는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제부터 쓸쓸한 자술서 위에 나를 내던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문숙자
경기도 구리 출생. 『소요문학』 편집장, (사)한국작가회의양주지부 『아름다운작가』 편집장.
2014년 시에 신인상 시 부문 심사평
지속적인 시 작업만이 좋은 시로 나아가는 길
해가 바뀔 때마다 문단은 신춘문예 당선작에 시선이 집중된다. 그동안 신춘문예는 한국문단에 첫 발을 내딛는 권위의 표상처럼 여겨져 왔다. 문예지를 통해 등단을 하였거나 시집을 통해 등단한 기성 문인들도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신춘문예의 권위와 명예는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문단의 대체적인 시각인 것 같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신춘문예가 갖는 여러 가지 문제가 엄연히 존재한다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하나는 신춘문예 양식을 들 수 있고, 또 하나는 심사위원의 양식에 맞는 작품이 대부분 당선작으로 뽑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신춘문예 응모는 마치 대학 입시생이 자기가 가고자 하는 대학의 양식에 맞는 공부가 이루어지고, 그 양식에 맞는 모범답안을 갖추어야 된다는 데 있다. 간간이 일고 있는 표절 시비는 부차적인 문제 같다. 표절 시비는 신춘문예뿐만 아니라 문예지도 존재하는 사실이니까.
문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데는 신춘문예나 문예지로의 등단, 시집 출간 등 여러 가지 양식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등단의 지면이 아니라 작품의 개성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일회적인 등단의 요식적인 행위의 글쓰기가 아니라 지속적인 글쓰기 역량이 갖추어져 있는가가 관건이다. 2014년 『시에』 시 부문 심사에서 전자보다는 후자에 관심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투고된 작품을 정독하였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10여 명의 100편이 넘었다. 그중 문숙자 씨의 「입양」 외 2편, 장자순 씨의 「상상의 뱀」 외 2편, 정경용 씨의 「달맞이꽃」 외 2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세 분의 시편들은 위에서 언급한 “일회적인 등단의 요식적인 행위의 글쓰기가 아니라 지속적인 글쓰기 역량이 갖추어져 있는가”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투고된 10편이 편차가 없는 가편으로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이는 그동안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면서 꾸준한 시작활동을 쉼 없이 해온 결과라 여겨진다.
문숙자 씨의 시편들은 시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따뜻하면서 또한 예리한 점에 주목하였다. 장자순 씨의 시편들은 개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한 점에 주목하였다. 무엇보다 시적 대상을 현대의 언어 감각에 맞게 구사할 줄 아는 미덕을 높이 샀다. 정경용 씨의 시편들은 시적 소재가 평이하게 느껴졌지만 시를 이루는 언어가 사회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민중서정을 잃지 않은 점을 높이 샀다.
시뿐만 아니라 문학은 자신만의 색채를 구축하는 양식이다. 그때 언어와 정신을 어떻게 결합시켜 자신의 존재를 시로 드러낼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세 분의 당선을 축하한다. 모쪼록 지속적인 시 작업만이 좋은 시로 나아가는 길임을 잊지 말고 정진, 또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공광규(시인)
김선태(시인, 목포대 교수)
양문규(시인, 본지 주간)
―계간 『시에』 2014년 봄호
첫댓글 선생님 더위에 잘 지내시지요 삶의 배려가 깊네요
선생님께서도 더위를 잘 이겨내셨지요? 오늘따라 귀뚜라미가 문턱에서 꼬박 밤을 새우려나 봅니다. 가을이 문턱에 걸려 있는거겠죠. ^-^
가을이 물들무렵 천태산에서 뵙겠습니다. ^-^
독자로부터 사랑받는 시인으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격려 잊지 않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