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다 얼마나 먹을 게 없었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좁쌀죽이었을까 그나마 좁쌀죽이라도 먹으면 다행이지 5~60년대에서 70년대 말까지 우리네 삶은 실로 어려웠다 주식이 옥수수, 좁쌀이고 감자, 고구마가 고작이지만 이도 늘 넉넉한 것은 아니어서 사람은 굶기를 밥 먹듯 해야 했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물러난 뒤로 박정희 군사 공화제가 들어선다 박대통령 특유의 리더쉽으로 보릿고개가 주는 가난과 더불어 벌거숭이 산야山野를 회복하였으나 집권 초기는 여전히 가난했다 벌거숭이 산야라는 것이 요즘 북한 사정과 비슷하여 다들 땔나무로 베어가는 바람에 산과 들에는 나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마을에서 또래들이 모이면 독재獨裁냐 민주民主냐가 거의 얘기의 주제가 되곤 했다 중고등학교에라도 다니는 아이들은 나름대로 민주를 부르짖으며 이데올로기를 은근히 내세웠고 더 이상 진학하지 못하는 가난한 집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당시부터 경제였다 경제라면 나는 대깨박이었다
그래, 독재 좀 하면 뭐 어떠냐 아무리 민주주의를 부르짖더라도 국민이 굶주린다면 의미가 없잖은가 아무튼 나는 정치에 관해서는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다 예나 이제나 경제다 만약에 국가가 나랏빚에 허덕이고 국민이 실직하고 헐벗는다면 민주가 무슨 썩어빠진 것이냐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이 실제로 불과 몇십 년 전이다 참 어려운 시대를 살았다 조선조에는 빈부 차가 더 심해 약 5%의 양반을 빼고 나면 나머지 95%는 상常놈이었다 상놈이 나중에 쌍놈이 되었지만 양반과 달리 평민平民으로도 모자라 평平과 닮은 상常에 놈을 붙였다 상민常民도 못 되는 상놈이다
지지리도 힘든 상놈들 세상에서 승려는 도성都城 출입이 금지되었고 결국 팔천八賤으로 떨어졌다 조선조 초기부터 성문 안 사람과 성문 바깥 사람이 구분이 된다 지금도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인칭대명사로서 인민人民을 쓰는데 사대문 안 사람은 인人이고 사대문 바깥 사람은 민民이다 승려는 사람人이 아닌 무지렁이民다
조선조 초기부터 사대부들은 드러내놓고는 아니라 하더라도 안사람을 절에 보내 불공을 올렸고 그 불공을 일컬어 재齋라 하였다 이 재는 사시巳時에 올리기에 사시불공이 잿밥이 된 것이다 그리 푸짐한 게 아니어서 재를 지낸 뒤 잿밥을 내려도 스님들이 배불리 먹기는 어렵다 그러니 잿밥에 목을 맬 수밖에
이를 두고 양반들은 말을 만들어낸다 '염불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 이게 곧 조선조 우리나라 속담이다 나중에 속담 쓰임새가 바뀌면서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잇속만 챙긴다는 뜻이 되었다 "그런 속담 있지 왜? '중들이 입으로는 염불하면서 생각은 잿밥에 있다'고 말이야"
요즘은 누구나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 없는 사람은 원시인이다 최첨단 기술이 집적된 변신으로 스마트폰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 이처럼 좋은 스마트폰이라도 배터리가 방전이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어보나마나 충전을 해야겠지 그래서 나는 비유한다 스마트폰이 염불이라면 충전은 잿밥과 같은 것이라고
자동차에도 여러 등급이 있다 경차에서 최고급 세단까지 다양하다 최고급 세단과 경차가 길에 오른다 그런데 경차는 연료가 충분한데 고급 세단은 연료가 바닥이다 이때 세단이 운전은 뒷전이고 주유소를 찾아 헤맨다면 그런 상황을 뭐라고 표현할까 중이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오직 잿밥이라며 나무랄 것인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눈길이 잿밥에만 머물렀겠는가 만일 잿밥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면 이는 자기 마음을 속이거나 잠시 한눈을 판 것이다 스마트폰 건전지가 방전되고 자동차 연료가 바닥인데 에너지를 찾을 생각이 없다면 되레 그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자동차와 스마트폰이 다 중요하듯 이들을 움직이는 에너지도 중요하다
속담에 담겨 있는 의미를 다시 보자 염불할 때는 염불에 전념하면서 잿밥에도 정성이 담겨 있는지 하나하나 잘 살필 일이다 다섯 가지 공양五種供養이나 여섯 가지 공양六法供養이 예에 어긋나거나 하지는 않는지 반드시 낱낱이 살필 일이다 자동차나 스마트폰을 챙기듯 에너지도 똑같이 잘 챙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