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이 땅이 나아갈 길에 대해 다시 한 번 수렴과 응집의 점을 찍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떤 걸음을 걸어왔는지, 지난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가늠하려 합니다.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 '역사 - 과거 현재 미래'는 9월 24일부터 2017년 1월 21일까지 총 19회로 진행합니다. - 기자 말
김구, 신채호, 김원봉, 한용운, 김창숙, 전봉준, 조봉암, 박현채, 박열, 손병희, 이상설, 김영삼, 김준엽, 황현, 조지훈, 김규식, 김남주, 조소앙, 정인보, 안두희, 여운형, 홍범도, 안창호, 함석헌, 김근태, 이승만, 노무현, 송건호, 이회영, 김상덕, 리영희, 김대중, 조봉암, 장준하, 안중근...
74세 노역사학자 김삼웅 선생(전 독립기념관장)이 쓴 평전 주인공들이다. 삼십 명이 훌쩍 넘는다. 그는 여전히 왕성하게 집필하고 있다. 1년에 두세 권씩 꾸준히 써 내려가고 있다. 앞으로 십여 명의 인물을 평전으로 더 녹여 낼 계획이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뿐 아니라 안두희와 이승만 같은 인물도 그의 손으로 엮었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들의 삶을 정면교사로 반면교사로 기록했다.
"지금껏 평전을 쓰면서 이르게 된 결론은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이 세상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바른 공부를 해야 하고 바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정의로운 인간으로 가르치고 길러 내야 합니다." 10월 21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다섯 번째 시간, 참석자들을 만난 김삼웅 선생은 의롭게 살아가자고 당부했다. 그는 꼿꼿했다. 평생 평전을 쓰며 인물에 천착해 온 그는 역사 공부의 목적은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이며, 교육의 목적은 정의로운 인간을 키워 내는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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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평전을 쓰며 인물에 천착해 온 김삼웅 선생은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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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리 식인코끼리에 둘러싸인 한반도이날 김삼웅 선생이 택한 주제는 '민족주의 폐기할 것인가? 살릴 것인가?'였다. 민족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그는 한반도가 처한 현실이 네 마리 식인코끼리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를 한반도 주변의 네 마리 식인코끼리라고 빗대어 말한 폴 케네디 교수의 표현을 빌려 온 것이다. 사방으로 외세에 둘러싸인 긴장 속의 지금의 현실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것이라 했다.
648년 신라 김춘추가 당 태종에게 달려가 나당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김삼웅 선생은 그때부터 우리나라가 쇠약해졌다고 했다. 이후 남에서는 왜구가, 북에서는 대륙 세력이 틈만 나면 우리를 노려 왔다. 1592년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이순신 장군이 활약하지 않고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조선은 중국 땅과 일본 땅이 되었을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자 일본은 조선팔도를 반으로 나눠 남쪽 4도는 일본이 차지하고, 북쪽 4도는 명나라가 차지하자고 제안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조선 정부는 농민 진압을 위해 청에게 군사를 보내 달라 요청했다. 청과 일본은 한쪽이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하면 다른 한쪽에게 반드시 미리 알려야 한다는 조약을 맺은 상태였다. 청나라 군대와 동시에 일본 군대도 한반도에 들어왔고, 그들은 소총을 들고 국토를 유린했다. 농민 30만여 명이 이에 학살됐다.
이를 경계한 당시 세계 최강국 영국은 북은 청나라가, 남은 일본이, 그리고 서울은 영국이 차지하자고 의견을 냈다. 2년 뒤인 1896년 일본 특사 야마가타는 러시아에 한반도를 39도 선으로 나눠서 반으로 나누자고 했다. 을사늑약 2년 전인 1903년 주일러시아공사 로마노비치 로젠은 7년 전 일본의 제안대로 39도 선으로 한반도를 분할해서 나누자고 했다.
1905년엔 '일본은 조선을.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한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진행되었다.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1945년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분할 점거했고, 71년이 지난 지금도 분단 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은 이런 역사적 맥락에 있다. 김삼웅 선생은 남북분단은 어쩌다 한 번 외세가 서로 나눠먹은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주변 세력의 야욕이 하루 이틀 있어 온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과 북이 통일하는 것을 주변 국가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미국을 견제하는 중국, 어떻게든 일본 열도 밖으로 영향력을 넓히려는 일본, 지금은 국력이 약해져 있지만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러시아. 남북한이 힘을 합치면 현재 주변 국가들이 이루고 있는 자신들의 힘의 균형이 영향을 받을까 이들 모두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민족'이라는 구심을 붙들어야 한다고 했다. 팽이가 구심점이 없으면 쓰러지듯 민족주의라는 구심점을 단단히 붙들지 않으면 외세의 원심력에 의해 쓰러지게 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이라는 구심 가운데 공동체를 지키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과 대화하고 핵을 포기하고 지하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연대해야만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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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웅 선생은 팽이가 구심점이 없으면 쓰러지듯 민족주의라는 구심점을 단단히 붙들지 않으면 외세의 원심력에 의해 쓰러지게 된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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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역사, 그대로 둘 것인가김삼웅 선생은 박은식 선생의 표현을 빌려 지난 100년의 역사를 두고 '식민지와 분단의 통사(痛史), 동족상잔과 반독재 민주투쟁의 혈사(血史)'라 정의했다. 현 한반도는 고려부터 1300년 동안을 동고동락했던 민족이 둘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는 우리 후손들에게 이 역사를 그대로 물려줘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분단된 한민족을 하나로 다시 묶기 위해서는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김 선생은 이것이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정언명령(定言命令)과도 같다고 했다. 꽃이 피면 봄이 오듯 민족의 자주 독립은 마땅히 행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과제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남북 공동의 키워드인 '민족'의 가치를 회복하는 작업이 중요하며, 외세에 둘러싸인 지금 한반도의 현실에서 민족주의에 대해 고찰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민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역사학자는 단재 신채호 선생입니다. 1930년대 중국 망명지에서 '조선역사상 1천 년 내의 제일대사건'을 썼습니다. 글의 핵심은 1135년 묘청 일파가 사대적인 문벌귀족에 대항해 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정개혁, 칭제건원, 금국정벌 등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고자 기도했으나 수구기득권 세력에 토벌당해 민족의 의기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신채호 선생은 이때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이 승리했다면 조선사가 독립적·진취적 방면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라며, 이를 조선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습니다."그 후로 줄곧 수구기득권 세력의 사대적·보수적·속박적 사상은 우리나라를 지배해 왔다. 조선 곳곳에 배인 사대주의는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의 득세와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이어진다.
김삼웅 선생은 역사를 어떻게 정의하도록 가르쳤느냐에 사대주의 사상이 깊게 배여 있음을 지적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E. H. 카아의 정의라든지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다'라는 토인비의 정의는 내세우면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는 신채호 선생의 정의는 역사교육에서 뒷전이다. 김삼웅 선생은 일본제국주의로 치환되는 비아(非我)에 대한 아(我)의 투쟁을 통해 민족의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의기 가득한 역사의 전통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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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들이 집중해서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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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속에 배인 식민사관을 제거해야김 선생은 또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에 사대주의가 깊이 배여 있음을 분별하여 하나하나의 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국신민의 줄인 말인 '국민'을 빼고 '초등학교'로 명칭을 바꾼 게 그 한 예다. 또한 '일본이 의병을 토벌했다'든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든지 '독립투사들이 파출소로 들어갈 음모를 꾸몄다'라고 쓰는 표현도 본질을 왜곡한다. 관군이 반란군을 진압할 때 토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니 이는 아와 비아가 뒤바뀐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민족의 적을 처단했다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독립투사들의 행동을 음모로 표현하는 것 또한 철저히 총독부의 시각이다.
"언어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일제강점기는 정확히 34년 11개월 보름이에요. 만 35년이 안 됩니다. 그런데도 치욕의 기간을 36년이라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우리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내막을 알면서도 36년이라고 그대로 써 왔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도 일본의 시각대로 을사보호조약이라고 쓰는 식민사학자들이 여전합니다. 주권을 잃고 강제로 빼앗긴 이 조약은 가죽을 강제로 벗기는 한자어 늑(勒)을 써 '늑약'이라고 함이 마땅합니다." 덧붙여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하는 것도 잘못된 예라고 지적했다. 아나키즘은 '무권력, 무지배, 무독점, 무강권'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일본이 두려워했던 아나키스트들인 신채호, 이회영 등을 엉뚱하게 무정부주의자로 둔갑시키는 것 또한 식민사관이 호도한 용어 사용이다.
해방 후, 민족주의의 시련1945년 해방 후, 독립운동가들은 각자 자신이 신봉하는 민족주의를 치열하게 제시한다. 김구의 이상적 민족주의, 여운형의 진보적 민족주의, 김규식의 중도적 민족주의, 이승만의 현실적 민족주의 등 민족주의의 지향성은 각자 달랐지만 모두 민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신탁통치 이후 남북이 갈라졌다. 미국을 등에 업고 친일 잔재들을 수족으로 부리며 남한 정부를 손에 넣은 이승만은 권력에 집착하며 다른 민족주의자들을 좌익 세력으로 몰고 가거나 암살 등을 꾀했다. 김구와 여운형이 암살당하고, 진보적 민족주의자 조봉암은 사법살인 당했다.
김삼웅 선생은 이승만을 국부로 추대하자는 일각의 의견을 말도 안 되는 망언이라 잘라 말했다. 이승만은 임시정부에서도 탄핵당했고, 4·19혁명 때도 쫓겨났다. 전쟁이 터지자 생업에 열중하라는 방송을 내고는 남쪽으로 도망치고 한강철교를 폭파했다. 이승만은 서울로 다시 돌아와 서울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인민군에게 부역했다며 옥에 가두고 죽였다. 민족에 철저히 역행하고 자기 기득권을 챙겼다.
이승만이 하야하고 4·19 이후 한때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었지만 8개월 만에 5·16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 민족주의는 다시 설 땅을 잃었다. 박정희 정권이 날치기로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하려고 1964년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강행한다. 대학생들은 이를 성토하면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을 거행했다.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를 10억 엔에 타결했다. 이런 배경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세를 확장했고,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식민사관 버리고 '열린 민족주의'로이렇듯 민족주의가 설 곳을 잃은 땅에 식민지 근대화론이 득세하고 있다. 김삼웅 선생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열린 민족주의란 자기 민족 안에만 갇혀 있는 사고가 아니라 다양한 세계사적이고 문명사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내다보는 안목을 필요로 한다. 일본식의 침략적 민족주의가 닫힌 민족주의라면, 열린 민족주의는 남과 북이 한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가꾸고 세계로 진출하여 다음 세대에게 평화로운 시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그는 정의했다.
"인터넷과 세계화, 정보통신혁명, 장벽이 없는 세계무역구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등 이른바 뉴 노마드 시대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지식과 문명을 내다보는 안목과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배타적이고 국수적인 민족주의나 식민사관의 낡은 사고를 탈피한 인권·평화·평등·국제·자유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담긴 열린 민족주의가 필요합니다." 그가 말하는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천착하는 게 필수다. 애국주의를 부추겨 과도하게 고대사를 왜곡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된다. 그는 "역사의 기본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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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웅 선생은 식민지 근대화론이 득세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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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청산, 대한민국 역사의 과제신채호 선생이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조선의 제일대 사건으로 뽑았다면, 김삼웅 선생에게 광복 후 71년 동안 가장 안타까운 사건은 무엇일까.
김삼웅 선생은 주저 없이 1949년 6월 6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습격해 해체시킨 사건을 뽑았다. 제헌헌법의 제3조 헌법 부칙에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부터 해방 직전까지 친일한 사람에게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나온다. 친일파를 처벌할 수 있도록 특검을 구성해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해방 후 자기 조직이 없었던 이승만은 친일 경찰과 검찰을 받아들여 세를 구축했다. 반민특위가 구성되고 친일파들이 속속 구속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자기 수족이 잘려 나가는 것과 같은 위기를 맞았다. 이에 이승만은 무력으로 반민특위를 해체시켰다.
"반민특위 해체로 인해, 친일파를 청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민족주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2차 대전 이후의 수많은 국가들은 전범들을 모두 처단했는데, 우리만 못했습니다. 민족의 정신사에 악초·독초 세력들이 지금도 활개 치며 지배 세력으로 떵떵거리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흙수저가 되고, 친일파들이 금수저가 된 현실입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민족반역 세력과 독재 세력에 대한 정비·정화가 필요합니다."그는 특히 특정 세력이 국정을 논단한다든가, 특정 세력에게 국부가 집약되거나, 노골적으로 시민을 개돼지라고 여기는 기득권층의 행태를 준엄하게 심판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시민들이 자기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고, 이웃끼리 소집단을 만들어 역사를 공부하고 시사를 공부하는 연대 활동이 더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3시간의 강의를 마무리하며 김삼웅 선생은 다른 주제로 불러주면 더 공부해서 오겠다고 약속했다. 이미 지금 알고 있는 것으로도 많은 시간을 강의할 수 있을 텐데, 더 공부해서 오겠다니. 평생 역사를 공부하면서 온몸에 밴 겸손함이 이런 것이리라. 김삼웅 선생에게서 겸손하면서도 꼿꼿한 절개를 느꼈다.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역사 공부의 목적이고, 정의로운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강조한 말을 곱씹는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정의롭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를 분별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일생을 정의를 추구하며 뚜벅뚜벅 공부해 온 그의 발소리를 선명하게 듣는 시간이었다. 강의를 시작하며 불렀던 '홀로 아리랑'의 가사와 곡조가 김삼웅 선생의 강의에 배여 두고두고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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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로운 인간을 가르치고 길러내야 한다는 노역사학자의 외침이 삶 속에 박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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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 오겠지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 보자 함께 가 보자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 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 보자 함께 가 보자백두산 두만강에서 배 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 타고 간다 가다가 홀로 섬에 닻을 내리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해 보자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 보자 함께 가 보자 (홀로 아리랑 / 작사·작곡 한돌) |
▲ 참석자들은 '홀로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 노래는 울림이 되어 삶 속에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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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정의롭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를 분별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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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카페로 오시면 교육문화연구학교를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의 소감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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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다가 힘 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 잡고 가 보자 함께 가보자~ 이 노래 가사는 언제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큰 힘이됩니다. 정의로운 사고로 함께....
친일 친미 청산도 할수 없고 같이갈수도 없습니다
지난번 역사책 결국 페기로 끝낫지만 또 그들이 권력잡으면 역사 다시 쓸것입니다
역사는 신라에 의해 기록되고 찬란한 가야는 사라져 버린 역사서가 증명하지요
가야 역사는 발굴로통해 만들어야 하거던요 4국시대가 서로 힘을 겨룬 한반도에서 3국시대는 배웠어도
4국시대란말 들어본적 있나요~~ㅎ
지금도 힘이 역사를 바꿈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