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 창세기 11:1-9】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말씀 나눔】
성경을 읽다 보면,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 아래에서 산 위에 올라간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들은 금을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라고 외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금 송아지로 대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들은 금송아지로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했을까요?
금송아지는 그들의 손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아니라 자신들이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도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죄를 "순서가 바뀐 사랑(disordered love)"으로 정의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데, 가족 사랑이 하나님 사랑보다 크면 순서가 바뀐 사랑이 되고, 이것이 우상 숭배가 된다고 말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우상으로는 돈, 명예, '자기 사랑(self-care)'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이러한 우상들이 인간 중심의 세상을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 본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함의 후손 니므롯이 세운 도시들 중에 바벨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시날 땅의 평지에 세운 도시 ‘바벨’은 니므롯의 ‘사냥꾼’ 이미지를 고려할 때, 폭력과 힘으로 통치되는 곳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냥꾼(hunter)'은 단순한 사냥꾼이 아니라, 고대 근동 문화에서 전사나 정복자를 의미하는 비유적 표현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명시적으로 권력 구조를 설명하지는 않지만, ‘서로 말하되’라는 반복되는 집단 명령형 표현을 통해 이미 형성되어 있는 권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서로 말하되’의 늬앙스는 우연한 대화가 아니라 집단적인 결단이며, 주도권을 가진 자들이 정한 정책적인 합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바벨은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소수가 방향을 결정하고, 다수의 힘 없는 백성들은 그 결정을 수행해야 하는 권력형 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라는 결정을 통해서 인간 중심의 체제가 탄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돌을 대신할 벽돌을 만든다는 것은 자연 질서를 벗어나 인공적인 문명을 이룬다는 것으로, 성경 전체 안에서 ‘벽돌 굽기’는 반복적 노동과 통제된 체제를 상징하는 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벽돌 굽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벽돌을 굽는 노동을 연상하게 합니다. 벽돌을 굽는다는 것은 이미 억압의 그림자가 바벨에 드리워졌다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4절에 보면,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돌을 대신하여 벽돌을 굽고, 진흙을 대신하여 역청을 이용하여 높은 탑이 있는 성읍을 건설하는 목적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성읍은 흩어짐을 통제하기 위한 공간이 되며, 탑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상징이며, ‘우리 이름을 내자’는 말은 하나님이 왕 되시는 삶을 거부하고 인간 집단이 왕이 되는 삶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결국 바벨은 하나님 없이도 안전할 수 있다는 인간의 신앙 고백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다는 집단적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육하여 번성하라 명령하셨지만, 이들은 의지적으로 흩어짐에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아지려는 인간들의 세상에 개입하십니다.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거나 능력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4절에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의도적인 대조로 내려오십니다. 이렇게 대조하시는 이유는 인간이 아무리 높이 쌓아도 하나님께는 ‘내려와야 볼 수 있을 만큼’ 하찮다는 반어적인 표현합니다. 이것은 조롱이 아니라 계시적 아이러니입니다.
하나님의 ‘내려오심’에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성경에서 “내려가서 보신다”라는 표현은 종종 등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감정적으로 즉각 심판하지 않으시고, 직접 확인하신 후 판단하심을 의미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내려오신다는 것은, 성급하게 심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절제된 정의를 보여주는 언어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내려오심’은 하나님은 ‘높아짐’이 아니라 ‘관여하심’으로 일하심을 보여줍니다. 바벨의 권력자들은 위로 올라가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래로 내려오셔서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처럼 인간은 높아져서 세상을 통제하려 하였지만, 역사를 개입하시고, 인간이 스스로 무너지는 길을 막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보신 것은 그들이 쌓은 탑이 아니라 그들의 목적이었습니다. 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하신 것은 인간들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염려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 상태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어의 혼란으로 집중된 악의 확산을 차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흩으심은 인간의 실패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온 지면에 흩으신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처음 명령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바벨은 이 명령을 거부하고 흩어짐을 면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서 인간의 계획을 꺾으시고 창조 질서를 다시 세우십니다. 결국 인간의 영광을 혼잡으로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흩어짐을 두려워하는 인간을 부르셨고, 흩어짐 속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는 모이기에 힘쓰라는 말씀도 있고 흩어지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이기에 힘쓰라는 말씀에도, 흩어지라는 말씀에도 충실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는 말씀은 공동체 신앙을 강조하는 말씀인데, 공동체 신앙을 유지해야 할 이유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과 선행은 단순한 구제나 자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서 있는 성도들은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자신이 받은 구원의 은혜를 흘려보내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랑과 선행은 타인의 믿음을 세워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이기에 힘쓰는 것은 흩어지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바벨 사람들은 흩어짐을 두려워했고, 하나님은 바로 그 흩어짐을 통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인간은 모여서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 했지만, 하나님은 흩으심으로 당신의 이름을 지키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바벨처럼 모여 힘을 과시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오순절처럼 흩어져 하나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모이기에 힘쓰되, 결국은 흩어지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너희 이름을 내라”가 아니라 “내 이름을 증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높아지려는 길이 아니라, 순종하며 흩어지는 길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길입니다.
오늘 하루, 바벨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낮아짐으로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1. 어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결심한 결단과 실천 사항은 무엇이었습니까?
2. 어제 결단한 실천 사항을 생활 속에서 적용한 결과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3.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고 말씀하십니까?
4. 오늘 본문은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5. 오늘 본문은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하여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6.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기도문 적기 & 실천 사항 적기
【추천 찬송가】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은혜의 찬양】
예수 내 삶의 중심:
https://youtu.be/MknYjKHC9HU?si=TWJkn_2C2V8Mje70
【새벽예배영상】
https://youtube.com/live/mVdw9Z-VVG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