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도 예외 없이 감기가 극성이다. 독감도 함께 거든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감기와 친하지 않다. 잔병치레를 잘 하지 않는 체질 탓도 있거니와, 그보다는 나만의 감기 퇴치법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감기란 놈이 내 곁에 어슬렁거린다 싶으면 고춧가루 태운 소주를 연거푸 들이 부었다. 하루 저녁을 일진일퇴하여도 승부나 나지 않으면, 다음 날은 매운 소주의 융단폭격을 더 세게 퍼부었다. 그 녀석은 강적을 만났다 싶었는지 ‘엇, 뜨거라!’하며 두 손 들고 퇴각하기 일쑤였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직장에서 맞히는 독감예방주사를 나는 거의 맞지 않았다. 예방주사를 맞은 날은 금주하고 집에서 쉬면서 샤워도 삼가라는 주의사항 때문이었다. 그날만 되면, 어찌 그리 술 약속이 잡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주사를 맞지 않아도 감기가 비켜가거나, 왔다가도 슬그머니 물러나곤 했다.
나이가 드니 몸도 따라 약해지기 시작했다. 매끈하고 촉촉하던 발뒤꿈치가 부석부석하지를 않나, 거실에서도 티셔츠를 하나 걸쳐야지 목 언저리에 와 닿는 선득한 기운을 막을 수 있었다. 감기와 맞닥뜨리면 고추소주 폭격에도 쉬 물러나지 않았다.
올해는 무조건 감기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일주일에 사나흘은 쌍둥이 손녀를 돌보기 때문이다. 하여, 외출할 때는 평생 입지 않던 내복 하의를 꺼내 입는다. 귀가하면 곧바로 손 씻고, 양치질도 빼먹지 않는다. 그렇게 주의를 했는데도 목이 간질거리고 마른 기침이 나기 시작한다. 반갑잖은 녀석이 간을 보는 것이 틀림없다. 아내는 그렇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는데 감기를 데리고 왔다고 지청구다. 참 나, 누구는 들고 싶어 드나.
감기약을 먹고 생강과 도라지 끓인 물을 마시고, 비타민과 영양제를 간식처럼 챙겨 먹는다. 나의 필사적인 전방위 저항에 감기란 놈이 이틀 만에 순순히 물러난다. 평생의 호적수(好敵手)가 쌍둥이 손녀를 위하려는 할아버지의 갸륵한 마음을 봐서 이번 한 번 눈 질끈 감고 봐 준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제 감기가 다 나았는지 확인할 차례다. 모두들 아시지요. 친구와 맑은 소주 한 병 마시고 아무 일이 없으면 완쾌, 그래도 으슬으슬하면 아직 덜떨어진 것을. 가만있자, 누구에게 연락하지.
(조이섭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