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대병원 외상센터가 2017년 11월 16일에 열기로 한 <아주국제외상학술회의> 준비로 여념이 없던
11월 13일 오전, 미군 의무항공대로부터 이국종에게 급전이 왔다. 마침 그 자리에는 미국 UC 샌디에
이고 외상센터의 라울 코임브라 교수가 동석해 있었다. 라울은 이국종이 UC 샌디에이고 외상센터에
서 연수를 받을 때 가르쳤던 스승으로, 아주대병원 외상센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살펴보고 적
절한 조언을 해주기 위해 일부러 미리 건너와 있던 참이었다. 미군 의무항공대는 총상을 입은 군인을
싣고 10분 이내에 도착한다고 알려왔다.
환자가 실려 오는 동안 미군 헬기에 탑승한 구급대원은 시시각각 정확한 정보를 전해주었다. 환자는
흉복부와 사지에 다발성 총상을 입었으며, 그로 인해 찢어진 폐에서 새 나오는 공기가 폐와 심장을
압박하여 호흡과 심장박동이 여의치 않다고 했다. 이런 상태를 ‘긴장성 기흉’이라고 하는데, 수분 내
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미군 구급대원들은 한국의 외상외과
의사 못잖은 수준 높은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흔들리는 헬기 안에서도 폐에서 빠져나오는 공기를 완
벽하게 제거하여 환자의 생명을 이어오고 있었다. 헬기 문이 열리자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던 환자의
피가 밖으로 왈칵 쏟아져 나왔다.

환자는 이미 심각한 출혈성 쇼크를 보이고 있었다. 의식은 없고 혈압은 60mmHg 아래로 떨어져 있었
다. 복부에도 점점 피가 차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환자를 관통한 총알은 최소 다섯 발로 겨드랑이‧
가슴‧엉덩이‧팔다리 등을 골고루 부숴놓았고, 총알 자국마다 계속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처음 이국
종은 군인이 그처럼 여러 발의 총알을 맞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군에서도 종종 총
기 오발사고가 일어나지만, 어떤 경우에도 두 발 이상 관통상을 입은 환자는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들이닥친 군과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환자가 북한병사라는 말을 듣고서야 전후 사정이 이해가 되었
다. 북한병사의 이름은 오청성이었다.
환자를 긴급하게 수술실로 옮기자마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마취과 의료진이 중심정맥과 사지정맥을
통해 준비된 혈액을 집중적으로 들이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처가 워낙 여러 군데고 환부가 크다 보
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마취과 의료진이 연신 고함을 질러대는 가운데 외상외과가 흉부와 복
부를, 정형외과가 겨드랑이를 열고 동시에 출혈을 잡아나갔다. 절개창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와 둘러선 의료진을 흠뻑 적시며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밑에서 골반을 부수고 들어온 총알은 위로
관통하면서 10여 군데의 내장을 파열시켜놓았다. 으깨진 장에서 흘러나온 온갖 내용물이 복강과 장
기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었다.

그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이국종의 시선을 부여잡았다. 복부의 피 구덩이 속에서 수백 마리의 기생
충들이 스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국종이 수많은 장기 수술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둘러선 의료진 모두가 충격에 빠져 잠시 손을 놓고 그 희한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국종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아무리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놓아도 기생충이 봉합부위를 뚫
고 나오면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고 환자는 목숨을 잃는다. 그렇다고 구충제를 쓸 수도 없는 노릇
이다. 그때 수술을 참관하고 있던 UC 샌디에이고 외상센터의 라울 코임브라 교수가 마이크에 대고
강의하듯 차분하게 조언을 했다.
“이 교수.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기생충부터 모두 없애야 하네.”
이국종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눈에 띄는 대로 기생충을 모두 제거해나갔다.
끊임없이 피가 솟구치는 부위 가운데 일부는 꿰매고 일부는 결찰(結紮. 지혈을 목적으로 혈관을 묶어
피가 통하지 못하게 하는 일)했다. 파열된 소장과 대장도 살릴 수 없는 부분은 잘라내고 살릴 수 있는
부분은 봉합해두었다. 1차 수술로 출혈을 완전히 잡고 겨우 환자의 생명을 붙들어두었다. 환자를 데
리고 중환자실에 도착하니 교전지역을 방불케 했다. 국정원‧경찰‧기무사령부 요원들이 의료진에게
시시마꿈 보안을 요구했으며, 인근 사단에서 나온 병력은 병원을 송두리째 둘러싼 채 철통경비를 하
고 있었다. 그래도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자 각 기관의 보안요원들은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면서도 전
화로는 여기저기 정보를 누설했다.

외상센터에는 이미 100여 명의 환자들이 입원해 있었으며, 오청성을 치료하는 도중에도 계속 중증외
상 환자들이 실려 왔다. 그러나 북한병사든 대통령이든 이국종에게는 똑같은 중증외상 환자일 뿐이
다. 2차 수술이 끝난 뒤 환자의 상태를 브리핑하면서 이국종은 기생충에 대해서도 의학적인 관점에
서 우선적으로 제거한 사유를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걸 두고 잘난 운동권 출신 국害의원인 정
의당 김종대 의원은 혼자만 정의로운 척 환자의 인권 운운하며 의정단상에서 이국종을 성토했다. 그
렇게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김정은에게 대들어서라도 인민 모두에게 기생충을 퇴
치하도록 만들었어야 할 것 아닌가.
오청성 덕분에 중증외상 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이국종은 오청성 덕을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석해균 때도 잠시 관심이 지나간 뒤 그보다 몇 배 강력한 비난이 덮쳐왔고, 1
년도 지나지 않아 그마저도 국민과 언론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국종은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는 다
시 한 번 의료계의 집중공격 대상으로 떠올랐다. 미군 의무항공대가 오청성을 데려간 곳은 서울대병
원도 세브란스병원도 아닌 아주대병원이었다. 선진 외상외과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는 미군이 믿을
수 있는 의사는 이국종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오청성을 서울대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으로 데려
갔더라면 살려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력이 아니라 반드시 환자를 살려내겠다는 의지와 열
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청성이 상굿도 아주대병원에 입원해 있던 2018년 1월 초, 보건복지부장관이 이국종을 찾아왔다.
그는 병원장을 포함한 모든 보직교수들을 배제한 채 단독면담을 실시했다. 이국종에게 미운털이 하
나 늘어난 이유다.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이 배석한 가운데 진행된 면담은 예정된 1시간 반을 훌
쩍 넘어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이국종은 오청성 문제로 국가적 관심이 쏠려 있으니 여론을 의식하
여 찾아왔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찾아온 손님이니 성심껏 대했다. 그는 자신이나 아주대
병원 얘기는 생략한 채 지난 15년 동안 진행되어온 우리나라 중증외상 의료분야의 난맥상을 압축해
서 전달했다. 장관은 중간중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국장은 이국종의 얘기를 꼼꼼하게 메모했다.
장관은 ‘환자들에게나 의료진들에게나 중증외상센터는 사지’라는 이국종의 솔직한 진단에 적잖이 충
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면담이 끝나자 이국종은 외상센터 정문까지 따라가 장관을 배웅했다. 그는 이국종과 악수를 나누며
진지하게 말했다.
“어렵더라도 힘 내시기 바랍니다. 곧 개선책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뒤에는 의과대 교수 출신인 인사가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으로 채용되어 이국종을 찾아왔다.
그 역시 4시간에 걸쳐 우리나라의 중증외상 의료분야에 대한 의견을 듣고 갔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
도 없었다. 그저 관료적인 구색을 맞추기 위해 외상외과 분야에서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이국종을 찾아
왔을 뿐 애당초 시스템을 고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었다.

미처 다 소개하지 못했지만 이국종의 「골든아워」에는 놓치기 아까운 절절한 사연들이 많이 있다.
법체계나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탓하기 전에 국민들의 지나친 님비현상도 깊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
다. 미국 같은 경우 미식축구 경기 도중에도 닥터헬기가 내려앉으면 즉각 경기를 중단하고 관계자들
이 환자 이송에 최우선적으로 협조한다. 관중들도 경기 중단에 대해 항의하는 법이 없으며, 인근 주
민들도 헬기 소음을 탓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각에 달한 환자의 생명은 도외시
한 채 헬기 소음이 시끄럽다고 민원 넣기 바쁘다. 그러다보니 선거로 뽑힌 공직자들은 국민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이 앞장서서 닥터헬기 출동을 반대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이국종 같은 훌륭한 의사가
외로이 중증외상 환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내팽개친 채 희생하고 있다.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2019. 2. 25 12:34
이국종 「골든아워」 제2권 소개 끝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연초록이 꽃진 뒤 더욱 고운색으로 주변 가득 입니다. 목련까지 잎을 떨구고 연산홍의 찬란한 분홍이 걷는길을 더욱 기분좋게 하고 있습니다. 척추 협착증으로 허벅지 근육통이 가시지 않는 통증 이지만 야탑역을 오가며 걷는 일상의 즐거움 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