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은 뉴욕으로
원제 : Tarzan's New York Adventure
1942년 미국영화
감독 : 리처드 소프
출연 : 자니 와이즈뮬러, 모린 오설리반, 자니 셰필드
찰스 빅포드, 버지니아 그레이, 폴 켈리
칠 윌스, 사이 캔들, 러셀 힉스
'타잔은 뉴욕으로'는 MGM에서 만든 자니 와이즈뮬러 주연의 6편의 타잔 영화 중 마지막 편 입니다. 사실 이전의 5편의 영화가 모두 유사한 패턴으로 슬슬 식상해지고 있었는데 6번째 영화에서야 비로소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아주 파격적인 설정을 했지요.
1-5편 모두 정글에서만 고립되어 살던 타잔이 '탈 정글'을 시도합니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복잡한 빌딩과 자동차가 다니는 거대도시 '뉴욕' 입니다. 정글의 타잔이 정글을 벗어나 뉴욕에 온 것이죠. 네, 자니 와이즈뮬러의 6번째 타잔 영화의 무대는 바로 아프리카가 아니라 뉴욕 입니다.
MGM의 타잔에서는 타잔이 사는 아프리카 지역을 철저히 고립된 곳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미개한 원주민들 외에 주변에 있는 아프리카의 다른 마을조차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타잔이 사는 곳은 높은 절벽위를 올라가야 있는 고지대지요. 울창한 정글과 원숭이, 고릴라, 코끼리, 사자, 악어, 하마 등 야생 동물들만이 사는 곳,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미지의 세상입니다. 여기서 타잔은 스스로 고립된 삶을 즐겼죠. 제인과 보이 외에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자체를 귀찮아 했습니다.
그런 타잔인데 아프리카 이웃 마을도 아닌 뉴욕으로 간다는 설정은 정말 파격적입니다. 아무리 정글에서 팬티만 입고 칼 한자루만 갖고 모든 동물과 자연을 지배했다고 해도 문명세계에서 과연 타잔은 어떻게 적응할까요?
서커스단 사업을 위하여 동물 사냥을 온 사람들, 타잔은 그들에게 돌아가라고 강요하지만 보이는 그들이 타고 온 비행기를 신기해 합니다. 그들의 리더인 벅 랜드(찰스 빅포드)는 악당인데 보이가 동물을 잘 다루는 것을 보고 서커스단에서 활용하기 딱 좋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조종사인 지미는 선량한 사람으로 타잔과 보이의 삶을 존중합니다. 보이가 이들의 비행기를 구경하는 와중에 자코니 족이 나타나서 위기에 빠지고 보이는 타잔을 부르는데 타잔은 보이를 구하러 오다 자코니족의 함정에 걸려 정신을 잃고, 백인들은 타잔이 죽은 줄 알고 보이를 데리고 황급히 비행기로 떠납니다. 이렇게 보이는 그들과 함께 뉴욕으로 가게 되고, 타잔은 낙심한 제인을 위로하며 꼭 보이를 되찾겠다고 결의를 다집니다. 이렇게 해서 타잔과 제인은 산넘고 물건너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 가서 비행기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그들이 보이를 뉴욕에 데리고 간 것을 알게 되고 보이를 찾으러 뉴욕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잃어버린 아이찾아 삼만리 같은 내용이지만 어두운 내용이 아니고 코믹하고 경쾌하게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문명 세계에 처음 온 타잔과 보이는 마치 즐겁고 호기심어린 관광객 같습니다. 특히 치타는 역대급으로 재미난 행동을 보여주지요. 도시에서 벌이는 치타의 재롱 구경하는 재미만으로 충분히 볼만합니다. 늘 재미난 것을 보여준 치타였지만 이 영화에서 더욱 많이 웃음을 주지요. 타잔 영화는 치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늘 잘 보여줍니다.
알다시피 타잔은 처음 제인을 만났을 때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원숭이와 코끼리와는 말이 통해도. 그래서 직전 영화까지도 거의 중학교 1학년 수준의 단문만 구사했는데 이번 뉴욕에서는 상당한 달변을 보여줍니다. 타잔의 말빨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작품이지요. 아니, 늘 타잔은 말빨은 쎘어요. 누구와도 말싸움에서는 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상대는 법을 공부한 변호사와 판사였고, 더구나 뉴욕의 법정에서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타잔은 촌철살인적 어록으로 변호사를 제압합니다. 뉴욕 법정에서 타잔의 말빨을 구경하는 것이 이번 작품의 톡톡한 재미입니다.
타잔 어록을 정리해 보면
1. 재판 전 선서를 하면서 진실만을 말해아 한다고 하자 -> "타잔 언제나 진실만 말해"
2. 보이에게 뭘 가르쳤냐고 묻자
"타잔 보이에게 목마를 때 물 찾는 법, 배고플 때 먹을 것 찾는 법 가르쳤어"
"타잔 보이에게 사자처럼 강하고 새처럼 기뻐하라고 가르쳤어"
3. 보이가 자라서 뭐가 될거냐고 묻자
"보이 자라서 태양의 형제 되고, 비의 친구되고
다른 사람에게 해 안끼치고
남의 불건 탐내지 않고
보이 좋은 사람, 행복한 사람 돼"
4. 글을 읽을 줄 아냐고 물으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아냐고 묻자
"타잔 정글의 길 읽어, 하늘의 구름 읽어"
5. 여기는 법정이라고 변호사가 말하자
"백인의 법 말이 많아, 정글의 법 더 쉬워"
타잔의 촌철살인에 완전히 변호사가 밀리는데 오히려 런던에서 교육받고 자란 제인은 말실수를 해서 변호사에게 말립니다. 그래서 보이의 양육권 다툼 재판에서 불리해지죠. 뉴욕으로 떠나기 전 타잔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제발 뉴욕에서는 자기말을 따라 달라고 큰소리 친 제인이 뻘쭘하게 되고, 제인은 타잔이 옳았다고 인정하고, 뉴욕의 법 대신 타잔 방식으로 하는 게 맞다고 이야기합니다. 창 밖을 물끄러니 바라보던 타잔은 갑자기 생기가 돌며 "제인 가라는 거야?' 라고 묻고 제인은 '가세요, 보이 데려오세요' 하니까 냉큼 '타잔 간다, 타잔 보이 데려온다' 라고 말하고 그 복잡한 도시 뉴욕에서 정글의 타잔 방식으로 보이를 되찾아 옵니다. 정글의 왕이 결국 정글 방식으로 뉴욕에서도 통한다......타잔의 뉴욕에서의 활약이 새롭고 재미난 영화입니다. 타잔과 치타의 콤비가 세트로 웃겨줍니다. 타잔이 처음으로 양복을 입고 도시를 활보하고 확실히 양복을 입으니 얼마나 체격이 큰 인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답게 어깨가 무척 넓고 당당한 체격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패턴의 내용으로 비로소 바뀌었는데 그럼에도 코끼리를 활용하는 결말은 동일합니다. 뉴욕 서커스단의 코끼리 조차 타잔을 잘 알고 있고, 즉 타잔은 이 세상 모든 코끼리의 친구였습니다.
모리 오설리반이 6번째로 출연한 타잔 영화이고 진작부터 제인 역을 그만하고 싶어했던 모린 오설리반은 이 영화를 끝으로 드디어 제인 역을 벗어나게 됩니다. 1932년 '유인원 타잔'에서 처음 제인을 연기했으니 꼭 10년 출연한 것인데 30대가 되서 더 아름다워진 모린 오설리반 입니다. 마지막 제인 역할인데 오히려 더 아름다워져서 퇴장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다른 영화에는 계속 출연하긴 했지만 제인 특유의 가녀린 야성미의 매력은 더 이상 볼 수 없었죠.
이후 자니 와이즈뮬러와 자니 셰필드는 RKO 영화사로 옮겨서 계속해서 타잔 영화에서 타잔과 보이로 출연합니다. 그리고 RKO에서는 MGM에서는 다루지 않은 타잔 동네의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 전개합니다. MGM은 오로지 타잔 동네 이야기였다면 RKO는 그 옆동네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지요. 타잔 마을에서 좀 가까이 떨어진 저지대에 '팔란드리아'라는 평화로운 마을이 있고, 타잔의 정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사막이 있고, 그 사막을 가로지르면 비어헤라리 라는 아랍 스타일의 마을이 있고, 사막은 건너면 온갖 선사시대 동물들이 사는 약초정글이 있고, 타잔 지역 산 뒷편에는 여인들만 사는 비밀스런 아마존 마을도 있고, 타잔의 정글에서 가장 가까운 현대문명 사회는 란디니 라는 곳입니다. 란디니는 아프리카와 문명을 연결해주는 교통과 통신의 중개점이지요. 그리고 자니 와이즈뮬러 주연 마지막 타잔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바다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즉 RKO 타잔영화는 탈 정글을 시도해서 다양한 여러 마을과 종족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시도의 전조를 처음 보인 것이 MGM 타잔의 마지막 작품 '타잔은 뉴욕으로' 입니다. 도시의 경찰, 도시의 법도 타잔의 용기와 진실함은 막지 못한 것. 일회성 이었지만 타잔의 도시에서의 대모험은 무척 흥미로웠고, 개인적으로는 1934년 '타잔의 복수' 다음으로 재미있게 본 자니 와이즈뮬러 주연 타잔 영화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타잔 영화에는 그다지 유명한 배우가 안 나오는 편인데 이번에 찰스 빅포드가 악역으로 등장합니다. '조니 벨린다' '백주의 결투' '빅 컨츄리' '생쥐와 인간' '성처녀(베르나데트의 노래)' '반항' '빌리 미첼의 군사재판' 등 주옥같은 고전 명작에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많이 나온 배우죠.
ps2 : 타잔 영화는 장면의 재활용이 특징인데 이번 영화 엔딩부근에서 타잔 가족이 수영하는 장면은 직전 영화인 '타잔의 황금'의 초반부 장면을 그대로 재탕합니다. 타잔이 정글에서 날아다니는 장면도 물론 재탕이고요.
ps3 : 보이 자라서 뭐가 되느냐는 질문에 간단히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죠. "정글소년 봄바'가 됩니다.
[출처] 타잔은 뉴욕으로 (Tarzan's New York Adventure, 42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