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신문 ♤ 시가 있는 공간] 괭이잠 학습법 /민서현
심상숙 추천
괭이잠 학습법
민서현
핏발이 서도록 밤마다 주문을 걸었다
침대 밑 어둠에 숨어 있다가
한 발짝 다가서면 서너 발짝 뒷걸음치는
잠꼬대가 어수선하다
밤과 낮이 뒤엉켜 팽팽해지는 눈시울
뒤척이는 가로등의 심장이 붉다
뻥뻥 구멍을 내고 싶은 막다를 골목
길이란 길은 웅크린 채 호흡곤란이다
먹구름이 쪼개놓은 달빛 사이로
한밤을 꼬집는 고양이 울음소리
허공에 걸터앉아 밤하늘을 읽는다
동이 터도 깨지 못한 꿈처럼
사유의 허기가 나를 갉아 먹는다
선잠 속에서도 나는
너로부터 멀리 날아가고 있다
사라지는 것들은 어디에 저장될까
몽유병자처럼 길을 잃은
꼬리 잘린 초침 소리
새벽을 할퀴던 그믐밤이
나
를
쓴
다
詩는 짧고 생각은 많아
오지 않는 너는 어디에 맺힐까
(『김포문학』41호,134쪽,(사)한국문협김포지부, 2024)
[작가소개]
김포문학상신인상(2018), 김포문학상우수상(2015), 마로니에백일장입선,
<달시>동인, 동인지 공저『척尺』『시차여행』『꽃을 매장하다』『무화과 서약』외,
[시향]
민서현 시인의 시이다. 화자는 부지런한 시인의 성정이 형체도 없이 꼬리를 감추는 시를 향한 사유를 잡으려 밤잠을 설친다.
하버드 대학교 어느 해 졸업식 유명한 축사는
“ 갈망하라! ”
이 한마디였다고 한다.
시마詩魔에 시달리며 사유를 펼치려 갈망하는 화자를 응원한다.
마음의 정원에 꽃도 피우고 새도 울어 구름도 살게 하고, 심연에 피라미 송사리 새뱅이도, 초록 개구리 뛰어오르는 수련잎도 띄우면 詩 또한 고요한 아침으로 찾아올 것이다.
고통을 즐길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시인이라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순을 넘기어 잇대어 사는 잉여 세대이다. 오늘이 감사하다.
이제 내가 먼저 한 발 뒤로 물러서 세상을 보듬고 내어주는 삶이 시가 아닐까 싶다.
정녕 시詩처럼 사는 이는 시 詩는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삶에 시가 더 요구될 일이겠는가? 매 순간이 시 詩 일진데,
언제라도 될 일은 되겠지만 되지 않을 일이라면 결코, 되지 않는 법이다.
봄! 입춘이 지났다.
지구적 사회적 난데없는 맹추위에 빙판은 솟아올랐지만, 봄은 문턱에 와있다.
눈길을 조심조심, 우리는 이제 더욱 겸허한 자세로 내 할 일에 소신껏 창의적으로 충실해야 할 때이다.
글: 심상숙(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