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폴리스와 아테네, 새로운 시간을 만들다
2월 3일
아침에 주인과 전화를 했으나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 결국 친구의 딸이 아이폰으로 메시지 교환을 한 뒤에 해결을 했다. 스위치만 올리면 되는데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지 않고 가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고고학박물관에 있는 청동 기마상. 표현력이 놀라웠다.)

(고고학박물관에서 본 여러 철학자의 두상으로 꾸민 전시실. 모두 학자들이라고 하나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음)
오늘은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구경을 하기로 했다. 고고학 박물관에는 유물이 너무 많아 제대로 보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제우스, 헤라, 아테나, 아폴론, 헤라클레이토스, 포세이돈 등등. 책에서 읽어왔던 인물들을 실제로 만나는 기분은 조금은 묘하다. 실제와 허구를 오가는 느낌이랄까.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그냥 감탄만 하게 된다. 크기라든가 정교함이라든가, 표현 양식 등이 뛰어나다. 학생들 현장 학습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참으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부럽기도 했다.
박물관 구경을 마친 뒤에는 메테오라 하루 관광을 가기로 하고 여행사를 찾아갔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메테오라로 가서 현지 가이드를 만나 구경을 하고 다시 기차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문제는 새벽에 일찍 기차를 타러 가야하는데 택시를 타야 한다. 여행사 직원은 4유로라고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내가 기사들이 더 돈을 요구하면 어떡하냐고 물으니 그냥 어깨만 으슥하고 만다.
어쨌든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집 앞 식당이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웬걸 예약으로 자리가 없단다. 참 대단한 식당인가 보다. 아쉽지만 그냥 나와서 근처 빵집에서 몇 가지 사서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온수 때문에 이것저것 만지다가 경비 시스템을 건드렸나보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엄청난 경보가 울린다. 정도를 달리하면서 거의 3, 4분을 울리니 온 동네 사람을 다 성질나게 할 판이다.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우리가 나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 별 소리는 나지 않는다. 내일 나갈 일이 걱정이다. 더욱이 새벽에 나가야 하는데. 결국 친구 딸에게 문자를 넣었다. 잘 시간이라 내일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서.

(메테오라 관광의 출발지인 칼람바카 시 모습)
2월 4일
아침에 일어나니 해결책이 당도해 있다. 4가지 번호를 누르면 된단다. 조심스레 눌렀더니 ‘오프’ 모드로 돌아갔다. 휴~~. 이제 기차를 타러 가면 된다. 택시를 잡으니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10유로라고 한다. 4유로라고 들었다고 했더니 그건 아침 요금이고 새벽은 다르단다. 아침 6시 30분이 뭐 그리 새벽이라고. 다른 뾰족한 수가 없으니 탈 수밖에 없다. 제대로 데려다주기만 해도 다행이다.
7시 25분에 출발한 기차는 11시 40분에 도착했다. 역 앞에서 우리 둘을 기다리는 가이드와 기사가 있다. 크리스티나라는 아줌마가 반갑게 맞으며 자기가 가이드란다. 메테오라는 ‘공중에 뜬 도시’로 알려져 있듯이 뾰족한 바위 꼭대기에 수도원을 세운 곳이다. 번성했을 땐 1000개가 넘을 정도로 많았으나 지금은 12개만 남아있고, 그중에서 6개만 공개되고 있다. 우리는 3개만 둘러보게 된다. 아기오스 니콜라스 아나파프사스, 바를람, 아기오시 스테파노스 세 곳이다. 가는 곳마다 여성들에겐 비치된 치마를 두르라고 한다.

(메테오라의 바위 위에 세운 수도원. 가운데 동굴 같은 곳도 수도승이 살던 곳이라고.)

(아기아 트리아다 수도원.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사진만 찍었음)
아무튼 신기하기는 하다. 어떻게 바위 위에 돌을 올려 지었을까. 가이드는 친절하게 여러 이야기를 전하지만 어차피 다 이해하지는 못하니 그냥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기만 한다. 가이드답게 사진을 찍어준다. 다니면서 거의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 강제로 찍히고 있다. 점심도 샌드위치를 하나씩 포장해서 준다. 맛은 없다. 그냥 허기만 달래고 말았다. 저녁 기차는 5시 10분에 떠난다. 아테네에는 9시 20분에 도착해서 역시 10유로를 지불하고 택시를 탔다. 저녁은 다시 한식과 중식, 일식을 파는 곳에 가서 우동과 김밥을 먹었다. 김치도 푸짐하게 준다. 한국 음식으로 속을 달래니 피곤도 물러간다.
2월 5일
오늘은 귀국하는 날이다. 비행기가 저녁 9시 40분이어서 하루가 온전히 남아있다. 시내에 짐을 맡겨 두고 아테네 복기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크로폴리스 쪽으로 가다가 메르나 메르쿨리 문화센터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비가 무섭게 내린다. 우산은 있지만 바람이 강해 별 소용이 없다. 다행히 건물 앞이 회랑으로 되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다.

(맞은편 언덕에서 바라본 아크로폴리스 전경. 왼쪽 아래는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문화센터는 10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공원도 거닐다가 시간에 맞춰 들어가니 별 볼 것이 없다. 메르나 메르쿨리보다는 연극에 관한 전시물이다. 예전 무대 장치도 만들어 두었으나 온통 그리스어라 뭘 읽을 수도 없다. 대충 읽어보는 사이에 비도 그쳐 밖으로 나와 다시 아크로폴리스 쪽으로 올라갔다. 그 맞은편에 소크라테스 감옥을 지나 다시 언덕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크로폴리스를 바라보는 풍경이 뜻밖에 좋다. 새삼 사진을 많이 찍고 아크로폴리스를 다시 눈에 담았다.

(하드리아누스 문. 문 사이로 멀리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보인다.)

(그냥 밖에서 볼 수 있는 제우스 신전)
그다음에 하드리아누스 문과 제우스 신전을 다시 보기로 했다. 뭔가 소원을 빌고 가자는 생각에. 제우스 신전은 굳이 표를 사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보아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거리의 작은 풀밭에 세운 메르나 메르쿨리 흉상도 구경했다. 점심은 제대로 된 해산물 요리를 먹기로 했다. 샐러드와 생선을 쪄서 주는데 상당히 맛이 있다. 디저트까지 오랜만에 챙겨먹고 아테네에서 마지막 식사를 마쳤다. 시간이 많이 남아 아크로폴리스 지역을 다니는 해피트레인도 탔다. 한 사람에 5유로. 천천히 옛 골목을 달리며 사람들과 가게 구경을 하면서 발을 쉬게 할 수 있다. 시간은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

(메르나 메르쿨리 흉상)
오후 5시 무렵 짐을 찾고 신타그마 광장에 있는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택시를 타려고 부르고 있는데, ‘에어포트’라는 말에 택시 하나가 서더니 타라고 한다. 사실 버스 타는 곳까진 아주 가깝기 때문에 싫어할 줄 알았다. 그런데 기사는 공항에 간다고 생각했나 보다. 버스라고 했더니 공항까지 가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얼마면 가겠냐고 했더니 망설인다. 잠시 있다가 40유로라고 한다. 우리는 50유로 정도 생각했는데, 적게 부른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딴 말 하지 않게 확인을 하고 40유로로 가기로 했다. 사람이 순하게 생겼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 보니 택시비가 만만치 않다. 도로 통행료도 2.8유로를 내니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나온다. 미터기로도 30유로를 넘기고 있다. 별로 남는 것이 없다. 도착한 뒤 5유로를 더 주니 무척 좋아한다. 그 기사도 맘이 비교적 약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캐리어를 끌고 힘들게 걷지 않고 편하게 공항까지 올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그리스 여행은 막을 내렸다.
[여행 결산]
-그리스에서 소매치기는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외국 난민, 중동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강력 범죄는 없는 듯해서 조금만 조심하면 치안이 나쁘지는 않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1인분의 양이 엄청 많다. 전부 다 먹은 일이 한 번도 없을 정도.
대체로 팁 문화는 없는 듯. 그래도 조금 주면 아주 좋아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일은 하우스 와인을 푸짐하게 거의 잔의 80%를 따라준다는 것. 한 잔만 먹어도 충분하니까.
-비수기에 여행을 하니 조용하긴 한데, 교통편도 적고 식당 휴업 등 제대로 구경을 못하는 일이 있다. 일정 짤 때 고려해야 할 듯.
[여행비]
비행기 2,740,400+20,000=2,760,400(2인)
보험 105,800(1인)
아테네 호메로스 호텔 287,325
산토리니 숙소 58,847
델피 숙소 108,404
그리스 국내선 비행기 256,186(2인)
총액 3,576,962원
일상경비 1500유로(약 195만 원, 2인) 지출
산토리니 페리 130유로(2인), 메테오라 하루 관광 210유로(2인) 포함
총경비(2인) 3,576,962원+195만 원=5,526,962원
첫댓글 하드리아누스 문이 있다는 게 당연하겠지요~~~아테네와 그리스를 재건 복원한 황제니까요
비행기 값을 너무 비싸게 한 듯. 직항도 아닌데. 우리 마눌이면 일인당 80만원이면 될텐데. 남 선배에게 약 올리는 것 같아 미안한데 지난해 이탈리아 북부와 돌로미티, 오스트리아 16박에 우리 부부 600만원 조금 넘게 썼음. ㅋ
비행기는 처음에 가격이 쌌는데, 이것들이 예약한 다음에 올리더라고. 진짜 억울하긴 했지만 그냥 갈 수밖에 없었음. 그때 안갔으면 못 갈 뻔. 비행기 예약이 가장 중요하긴 해.
잘읽었습니다. 친구분 따님공이 큽니다.ㅎ
네. 그래서 딸이 있는 사람이 부럽더라고요. ㅎㅎ 물론 아들도... 자녀가 있으니 해결이 쉽던데요...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배 글을 보고나니 자유여행할 용기가 사라지네요. 아이들 데리고 함께 가든가, 아니면 저희 부부는 패키지로 가야 할 듯.
희용형 얘기에 공감이 가네요. 근데 저는 패키지로 갈래도 짝도 업꼬 참...ㅠㅠ
마음 약한 기사에 마음 착한 승객이네용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