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삶과 죽음, 우리는 왜 삶을 선택하고 죽음을 끝으로 규정짓는가? 반대로 죽음을 선택한 자들은 왜 삶을 포기한 것인가? 이는 살아있는 자들-삶을 선택한 자들-의 일방적인 생각은 아닐까?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 밤 벚꽃, 박쥐, 침대차 이렇게 4편의 중단편에는 이렇게 죽음이라는 상실이 전편을 관통하는 하나의 동기가 된다.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현실을 다르게 인식하고, 느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표제작 '환상의 빛'은 죽은 남편에게 쓰는 편지로 이뤄진 서간체 소설이다. 여자는 남편이 뚜렷한 이유도 남기지 않은 채 자살한 뒤 재혼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여자는 남편이 죽은 지 7년이 지나 남편에게 오래 품었던 질문을 던지려고 편지를 쓴다. "당신은 왜 그날 밤 치일 줄 뻔히 알면서 한신(阪神) 전차 선로 위를 터벅터벅 걸어갔을까요." 남편은 첫아이가 태어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술이나 약물에 취하지도 않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자는 남편에게 답신을 받을 수 없는 편지를 띄운다. 그녀의 편지 속엔 그리움과 아쉬움이 담담하게 배어 있다. 평온한 삶 속에서도 문득 찾아드는 상실과 공허의 감정이 그녀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달래려고 부치는 편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에도 아닌,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깝고 정겨운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듯해서 그만 황홀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 소설집의 수록작은 한결같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삶을 되돌아보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외아들의 1주기를 맞은 어머니를 묘사한 '밤 벚꽃', 친구를 잃은 남자의 독백을 담은 '박쥐'와 '침대차'가 실려 있다. 이 책의 번역자는 "줄거리보다 분위기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소설"이라고 풀이했다.
20세기 후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비를 피하려고 잠시 들른 서점에서 읽은 유명작가의 단편소설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카피라이터를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194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오테몬학원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산케이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다가 1975년 신경불안증으로 퇴직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77년 『진흙탕 강』으로 다자이오사무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이듬해 1978년 『반딧불 강』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면서 작가로서의 지위를 다졌다.
폐결핵으로 일 년 가까이 요양한 뒤 곧 다시 왕성한 집필활동을 계속한다. 1987년에는 『준마』를 발표하면서 역대 최연소인 40세로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받았고, 같은 작품으로 JRA상 마사문화상을 받았다. 이후 아쿠타가와상, 미시마유키오상 심사위원을 비롯하여 각종 문예지의 신인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대표작으로는 ‘강 3부작’으로 불리는 「흙탕물 강」, 「반딧불 강」, 『도톤보리 강』, 서간체 문학인 『금수』, 자전적 대하 작품 연작으로 영화화되거나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한 『유전의 바다』(1984), 『도나우의 여행자』(1985) 등이 있으며 『사랑은 혜성처럼』, 『해안열차』, 『인간의 행복』, 『이별의 시작』, 『피서지의 고양이』, 『반딧불 강』, 『우리가 좋아했던 것』『파랑이 진다』『환상의 빛』 등의 작품이 우리말로 번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