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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작년 2018년 한 해 동안 정토불교대학에서 공부한 졸업생 1800여 명 중 1400여 명이 오늘 스님으로부터 오계를 받고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전에는 수계식이 이뤄지고 오후에는 졸업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오전 9시, 충주 호암체육관은 오늘 졸업식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대중들로 자리가 차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계를 받게 되면 입었던 분소의를 상징하는 가사를 어깨에 걸친 대중들은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찍으며 들뜬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오늘은 인천경기서부, 부산울산지부 청년봉사자들이 다양한 포토존과 소품을 제작하여 멋진 졸업사진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10시가 되자 삼귀의, 예불, 반야심경 봉독에 이어서 ‘부처님께 바칩니다’라는 찬불가를 거룩하게 부르며 정토불교대학 수계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대중은 청법가를 부르며 오늘 수계를 해주실 법륜 스님께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2600여 년 전 불법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시면서 수계의 의미와 수행자의 길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에게 의지하는 데, 구걸하는 데, 칭찬받는 데 중독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중독된 상태가 중생의 상태예요. 이런 중독에서 벗어나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의지처가 되어 주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존재가 부처입니다.
부처의 길로 나아가는 사람을 수행자라고 합니다. 수행자는 믿는 자가 아니라 닦는 자입니다. 이 길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전혀 다른 삶입니다. 지금까지는 종의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부터는 주인의 길로 나아가려는, 지금까지는 중생의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부터는 부처의 길을 걷고자 하는, 오늘은 여러분에게 인생 혁명의 순간입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1년 동안 불교대학 과정을 통해 부처의 길이 어떠한 길인지 배웠습니다. 불교대학을 통해 불교가 무엇인지 배웠고, ‘깨달음의 장’을 통해 괴로워하고 속박되어있고 원한에 사묻혀있던 삶으로부터 나를 얼마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를 경험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오늘 여러분들은 ‘이제 수행의 길을 가야겠다’, ‘부처의 길을 가야겠다’, ‘내가 주인이 되는 인생의 길을 가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내고, 지금 첫 발을 내디디려고 합니다.
이 길을 가려면 과거에 구걸하고 의지하며 살아온 거지 인생을 청산해야 합니다. 욕망을 따라서 남도 해치고 나도 해친 것에 대해 자각하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아, 내가 어리석었구나, 내가 잘못한 것이구나’ 그리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하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구걸하는 인생을 끝내고, 구걸하는 과거의 습관을 모두 불질러 버리고, 오늘부터 주인 되는 길을 가야겠다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주인 되는 길을 가려면 더 이상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떠한 것이 바보 같은 짓일까요?
쥐가 접시 위에 놓인 쥐약이든 고구마를 보고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먹지만, 잠시 후 죽게 됩니다. 이런 행동은 먹는 순간에는 좋았지만 그로 인해 정작 목숨을 잃게 된 바보 같은 짓입니다. 물고기가 낚싯밥을 무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쥐는 전생에 죄가 많아서 죽게 된 것도 아니고, 하느님을 믿지 않아서 죽게 된 것도 아니고, 사주팔자가 나빠서 죽게 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접시 위에 놓인 고구마에 쥐약이 들어있는 줄 몰랐던 어리석음 때문에 죽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괴로워하는 것도 전생에 죄가 많아서 괴로운 것도 아니고, 하느님을 믿지 않아서 괴로운 것도 아니고, 사주팔자가 나빠서 괴로운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원인을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마치 쥐가 쥐약인 줄 모르고 쥐약을 먹듯이, 어리석음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까? 만약 화가 나서 남을 한 대 때린다면, 우선 한 대 때리는 그 행위 자체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폭행죄로 감옥에 간다면, 내 행위는 간단한 것이었는데 그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큽니다. 칼로 다른 사람을 찌르는 행위나 총으로 다른 사람을 쏘는 행위도 그 행위만 놓고 보면 간단합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내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감옥에서 20년, 30년을 보내야 하는 겁니다. 엄청나게 큰 과보가 따르는 행동인 겁니다. 우선 남을 해치기 때문에 나쁘다는 소리를 듣고, 그런 비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너무나 큰 과보를 내가 감당해야 합니다.
물에 떠내려 가는 사람을 장대를 이용해서 건져주면, 내 행위는 아주 간단한 것이지만 그 사람이 목숨을 건졌다며 은혜를 갚는다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엄청나게 큽니다. 제가 만약 여러분 앞에서 욕을 한다면, 욕하는 것은 간단한 행위지만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하는 비난은 엄청납니다. 반대로 잠깐이지만 여러분 앞에서 좋은 이야기를 한다면, 그 이야기에 감동받은 여러분들로부터 돌아오는 복은 엄청나게 큽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작은 행위로 인해 엄청나게 큰 재앙을 초래하는 인생을 반복합니다. 화가 난다고 때리거나 죽이고, 성질난다고 욕하고, 욕심난다고 속이거나 빼앗거나 훔치고, 욕망이 일어난다고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합니다. 요즘 유명인사들 중에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무릎이나 엉덩이를 한번 만졌거나, 하룻밤 같이 지낸 것으로 인해 치르고 있는 과보를 한 번 보세요. 행위에 비해 받는 과보를 보면 누가 봐도 바보 같은 행동입니다. 가만히 보면 누구나 다 바보 같은 행동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그 바보 같은 행동을 멈추지 못합니다. 술 마시고 마약 하는 것도 잠시 혀끝에 닿는 맛에 집착해서 큰 과보를 받게 되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행패를 부려서 망신을 당하고, 다른 사람을 해쳐서 과보도 받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남을 해치는 행동입니다. 또 자기 스스로에게도 아주 커다란 손실을 입힙니다. 그러니 이렇게 손해 나는 행동을 하지 말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위로해주면, 작은 행위를 하고도 엄청난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는 지혜로운가, 어리석은가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지혜로운 사람인가, 어리석은 사람인가의 차이예요.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어리석어서 고통을 자초해놓고는 그걸 해결하기 위해 남에게 구걸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고통을 자초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그 복락을 받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떠한 길을 가야 할까요?
처음 불교대학에 올 때는 어떤 마음으로 오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1년 동안 가르침을 들은 다음 이 길을 가고자 할 때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자기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해요. 수행자의 길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수행자의 길은 누구의 말을 듣고 따라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에요.
만약 수행을 하면 다음 생에 인물이 좋아진다거나, 다음 생에 부자가 된다거나, 다음 생에 천국에 간다는 이유로 이 길을 가고자 한다면, 그건 여러분이 어떤 꼬임에 빠진 것입니다.
붓다의 길을 가려면 어떻게 태어났든, 과거에 어떠한 삶을 살았든, 어떠한 상처를 받았든, 감정이 어떻게 일어나든, 그런 것 따지지 말고, 일단 어리석은 짓을 멈춰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질이 나면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내거나 주먹이 나가서 계율을 파하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다시 참회를 하고 본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만약 처음부터 성질이 나지 않으면 계율을 파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하든,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이 흥분되지 않고 긴장되지 않도록 편안한 가운데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이 선정을 닦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첫째, 계율을 청정히 지켜야 하고, 둘째,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셋째, 지혜를 증득해야 합니다. 고구마의 본질이 독약인 줄 꿰뚫어 알면 마음이 흥분할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지혜의 증득입니다.
부부가 싸우는데 남편이 씩씩대다가 그릇을 깼다면, 그 모습을 보고 ‘어디서 그릇을 깨?!’ 이러면서 나도 성질이 팍 납니다. ‘가만히 있으니까 행패까지 부리네’ 하는 생각이 일어나면 싸움이 크게 번집니다. 그런데 수행자는 그릇을 깨는 것을 보고, 그 본질을 꿰뚫어 봅니다.
‘저 사람이 성질이 많이 났구나. 성질이 나서 나를 때리려는데, 그래도 아직 나를 사랑해서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대신 그릇을 깨뜨리는구나.’
이렇게 그릇을 깨는 모습의 본질을 꿰뚫어 보면 빙긋이 웃음이 납니다. ‘성질이 나도 아직 나를 사랑하는구나, 자기 성질을 못 견디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있구나’ 이렇게 본질을 꿰뚫어 보면, 그 모습을 보고도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증득해야 합니다. 수행자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요?”
“계율(戒律)을 청정히 지키고, 선정(禪定)을 닦고, 지혜(智慧)를 증득한다.”
“이것이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는 것입니다. 붓다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결심을 하더라도 감정이 금방 사라지지 않아요. 지금까지 살아온 업식이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이 일어납니다. 잠잠해진 듯하다가도 경계에 부딪히면 바로 확 일어납니다. 맛있는 것을 보면 먹고 싶고, 어떤 것을 보면 욕망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아, 내가 저 길을 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렇게 자각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이후로 남을 해치거나, 남에게 손해 끼치거나, 남을 괴롭히는 행위를 일체 멈추겠다는 자각을 하는 것, 이것이 계율을 지키는 길이고 자기를 보호하는 길입니다.
부처의 길을 가는 수행자를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바로 계율입니다. 오늘 이 수계식은 여러분이 수행자로서 자기를 보호하는 울타리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수계를 받으면서 ‘앞으로 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 하는 다짐을 하셔야 합니다.”
스님에게 수계 법문을 들은 후 연비의식을 진행했습니다. 법륜스님이 먼저 법사님들에게 연비를 해주고, 연비를 받은 법사님들은 졸업생들을 차례차례 연비 해주었습니다. 따끔한 찰나, 새 마음으로 수행자의 길을 시작합니다.
이어서 스님이 계의 조목 하나하나 설하시고 지킬 것을 물으니 수계 대중들은 ‘잘 지키겠습니다’ 하고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오계를 수지한 후 이 기쁜 마음을 부처님 앞에 나아가 헌화하면서 그 뜻을 다시 한번 다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오계를 합송 했습니다.
“첫째,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 함은, 생명을 존중하라는 뜻이기에 살아있는 생명을 때리거나 죽이지 않겠습니다. 둘째, 도둑질을 하지 말라 함은, 성실하게 살라는 뜻이기에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뺏지 않겠습니다. 셋째, 사음 하지 말라 함은, 청정하게 살아가라는 뜻이기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지 않겠습니다. 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함은, 진실을 말하라는 뜻이기에 남을 속이거나 욕설하지 않겠습니다. 다섯째, 술을 먹지 말라 함은, 맑은 소견을 가지라는 뜻이기에 술을 과도하게 마시거나 취하지 않겠습니다. 저희 수계자들은 오늘 이후부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이 서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화합하고 단결하여, 용맹 정진하겠습니다.”
이렇게 서원한 수계 대중을 위해 스님은 수계자들이 계를 잘 지키고 수행을 놓치지 않고 정진할 수 있도록 축원해 주면서, 수계의 공덕이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향되어 모든 중생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발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수계 받는 대중을 대표해서 무대 앞으로 나온 최숙희 님에게 불명과 수계증을 주고 불명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수계를 받는 것은 ‘나는 이제 부처의 길을 가겠다’ 하고 발심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길에서 부처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부처의 길에 한 발 들어섰기 때문에 부처의 이름을 받아야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아직 성인이 아니지만 앞으로 자라서 세상에 나가면 이런 이름으로 불릴 것이라는 의미로 성명을 지어주듯이, 부처의 길에 들어서게 되면 ‘앞으로 당신이 성불을 하면 당신 부처의 이름은 이와 같으리라’ 하는 의미로 부처의 이름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부처의 이름을 받는 것은 이미 부처될 것이 예정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나는 아직 부처가 아니고 그 길에 첫 발을 내디딘 상태지만, 이미 목표점에 도달할 것이 예정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수계를 받으면 그 이름을 함께 받게 되는데, 이를 ‘불명(佛名)’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부처가 된 것은 아니에요. 부처가 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보살 또는 보디 사트바(bodhisattva)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미타불, 연등불처럼 ‘아무개불(佛)’에서 불(佛) 자를 떼고 ‘아무개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스님은 한 사람씩 다 줘야 하는데 지금 대표로 주는 것이 곧 모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라며 잘 받으라고 했습니다. 대중들은 일시에 마음에서 마음으로 수계증과 불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차례로 앞으로 나와 법사님들로부터 수계증과 염주를 받았습니다. 수계증과 염주를 건네는 법사님도, 받아 드는 졸업생들의 얼굴도 환했습니다.
그리고 수계식의 마지막 순서로 정토회 행정처장 양윤덕 님이 함께하는 도반이 된 것을 환영하는 영접사를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사홍서원을 끝으로 삼귀의·오계 수계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새로 받은 불명을 다정하게 불러주며 졸업생들은 각자 싸온 도시락을 챙겨 점심 식사를 하러 행사장을 나갔습니다.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부터는 다시 행사장에 모여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졸업생들이 신나는 문화공연을 펼쳤습니다.
대전 정토회 충주 법당은 불교대학생들은 처음에는 태극기를 허리 아래 감싸고 나와 나지막이 홀로아리랑을 부르더니, 반짝이는 의상으로 변신해 신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췄습니다.
대구 정토회 대구 법당의 불교대학생 ‘우리는 수행 퀸’ 팀도 밝고 당당한 표정으로 춤을 선보였는데요. 처음 입학할 때와는 달리 1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방긋 웃으며 신나게 춤을 추며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모습을 보니, 불교대학은 이렇게 사람을 행복하게 변화시켜주는 곳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졸업식은 이렇게 축하공연으로 활기차게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대표 김은숙 님은 웃으며 “부처 클럽에 가입한 걸 축하한다.”라고 축사해주었습니다. 2018년 봄학기 불교대학에 대한 경과보고 후 졸업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감동적인 소감문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적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가족 간의 불화, 직장 내 왕따 문제까지 겪으며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고병록 님은 불교대학, 천일결사 기도, 깨달음의 장을 통해 편안해진 마음을 나누어주었습니다.
“... 직장 내 따돌림의 경험은 큰 상처로 남아 다른 직장에서도 쉽게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잘못도 있지만 따돌림까지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도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 것을... 내가 한 행동은 생각지도 않고 남이 주는 고통만 생각했습니다. 그들도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증오했던 마음이 측은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무거웠던 짐들이 하나씩 덜어지면서 제 마음은 점점 편안해졌습니다.
지금은 정토회 프로그램대로 수행, 보시, 봉사를 하며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움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갓 돌이 지난 첫째 아이의 죽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둘째 아이, 사업 부도 후 유서를 쓰고 사라진 남편... 고통 속에서 권수림 님은 불교대학을 만났습니다.
“...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내 안에 남편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 컸습니다. 나한테 이런 지옥을 안겨준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쌓여있었습니다. 만약 기도를 안 했다면 몰랐을 겁니다. 남편은 나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 지옥 속에서 홀로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끊임없이 욕심만 냈던 지난날을 참회하고,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늘 아이의 부족함을 채근하며 남들보다 잘나길 바랐습니다. 태교는커녕 중환자실에 있는 첫아이 걱정에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던 그 시절, 뱃속에서 고스란히 제 고통을 느꼈을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이를 따뜻하게 봐주지 못한 지난날이 진심으로 참회되었습니다. 지금 저희 가족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아이는 이전보다 훨씬 행복해합니다.
모든 것을 잃었어도 남편이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지금 겪은 일들로 조금씩 더 단단해지는 저를 보며 나쁜 것이 다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이 다 좋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법당에 처음 왔을 때와 지금 저의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훨씬 편안하고 담담해졌습니다.”
발표자처럼 불교대학에서 매주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저마다 행복하고 자유로워진 졸업생들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졸업생을 대표하여 광주정토회 임철순 님이 꽃다발을 전달하고, 대중은 다 함께 스승의 은혜를 불렀습니다.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스치우고 가사에 진심이 담겨 울려 퍼졌습니다.
다음은 졸업장 수여가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졸업생을 대표하여 대구 정토회 황혜경 님이 나와서 졸업장을 스님으로부터 직접 받고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개근상, 정근상 시상이 열렸습니다.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지런히 수업에 참여한 분들의 이름을 사회자가 호명하고, 대중들이 큰 박수를 쳐주는 가운데 스님은 시상자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네었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지난 1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지런히 공부하고 봉사활동했던 그 수고로움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어서 졸업 축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불교대학 졸업생들을 격려하며 졸업 이후에는 또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도 말씀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태어나서 보니 이미 태어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한국 사람이 된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을 따라 말을 하다 보니 한국어를 하게 되었습니다. 유치원이나 학교도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닙니다. 보내주니 학교에 들어갔고, 친구 따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갔습니다. 성인이 되면 결혼해야 되는 줄 알아서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기니 아이를 키웠고, 이렇게 흐르는 물에 떠내려 가듯이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상상도 못 하고 예측하지 못한 불행이 나에게 닥쳐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다가, 그것으로도 되지 않으니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이렇게 전생 탓도 해보고, ‘아이고, 내 팔자야’ 이렇게 사주 탓도 해보고, ‘아이고,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이렇게 하늘의 신들도 탓해 봤습니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질이 부족한 사람은 ‘물질만 있다면’ 하고 바라지만 그것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설령 물질적으로 원하는 만큼 이루어진다고 해도 삶이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내가 원하는 사람과 만나 지지 않고, 또 설령 그런 사람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다른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고뇌는 끝이 없습니다.
이런 우리의 삶은 마치 어릴 때 문방구 앞에서 본 두더지 게임과 같습니다. 이걸 때리면 저게 튀어나오고, 저걸 때리면 다시 이게 튀어나오고, 빨리 때리면 더 빨리 튀어나옵니다. (모두 웃음)
우리의 인생도 이걸 해결하면 저게 문제가 되고, 저걸 해결하면 이게 문제가 되고, ‘이것만 해결되면 더 이상 원하는 게 없겠다’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납니다. 누가 죽어간다고 하면 안 죽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냥 그때 죽는 게 나았을 걸 싶기도 합니다.
우리 중에는 일찍 삶의 고달픔을 맛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중년이 될 때까지 인생의 고달픔을 모르다가 노년이 되어서 상상도 하지 못할 고통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가 돌아가셔서 인생의 시작부터 험한 인생길을 살아가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 중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내가 어떻게 태어났든, 어떻게 자랐든, 자라면서 어떠한 경험을 했든, 내가 지금 어떠한 경우에 놓여있든,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두더지를 아무리 때려도 끝이 나지 않던 두더지 게임이, 누구는 빨리 때리고, 누구는 천천히 때리고, 누구에게는 두더지가 천천히 올라오고, 누구에게는 빨리 올라오던 그 두더지 게임이, 종류와 관계없이 그 기계의 전원을 내려버리면 다 해결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원을 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올라오는 두더지를 어떻게든 빨리 때릴 생각만 합니다. 이는 마치 강도에게 쫓기는 악몽을 꿀 때, 도망가거나 도와달라고 할 생각만 하지 꿈에서 깰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꿈속에서 강도에게 쫓기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종교와 세상사라면, 눈을 번쩍 뜨는 것이 수행과 깨달음입니다. 꿈의 종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무슨 꿈을 꾸든, 어떠한 강도가 쫓아오든, 깨달음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눈을 뜨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이고, 이것이 수행의 길입니다. 그런데 눈을 뜨지 못한 상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는 이 소식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잠을 깨야만 ‘아, 꿈이었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면 그 즉시 두말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악몽을 오래 꾸었든 짧게 꾸었든, 심한 악몽이든 아니든, 그런 건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천년 동안 어두웠던 동굴이라고 하더라도 촛불을 켜는 순간 바로 밝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스님은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불교대학을 축하하며 경전반까지 다닐 것을 독려하였습니다.
“원래는 불교대학과 경전반이 하나의 불교대학 교과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1년 과정만 해도 중간에 절반 가까이 떨어져 나가는데, 2년 과정을 하니까 20~30퍼센트만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배우기 싫어서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바쁘기도 해서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생기니까, 불교의 기본 입장을 가르치는 1년 과정을 불교대학이라고 하고, 경전 공부를 하는 1년 과정을 경전반으로 분리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 오늘 불교대학을 졸업하지만 사실 이건 불교대학 졸업이 아니라, 대학으로 따지면 이제 교양과정을 이수한 것이고, 경전반까지 마쳐야 진정으로 불교대학을 졸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들은 전원 다 경전반에 입학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불교대학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이 완결됩니다.
또한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체험해야 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근본불교를 배우고 나면 깨달음의 장을 체험해야 하고, 부처님의 일생을 배우고 나면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와야 하고, 불교의 근본 교설을 배우고 나면 나눔의 장과 명상수련을 체험해야 하고, 불교의 역사를 배우고 나면 대승 경전의 내용을 배워야 합니다.
스님이 절에 들어와서 오랜 시간 동안, 때로는 헤매기도 하면서 배운 내용들 중에 진액만 모아서 치밀하게 만들어 놓은 과정이 이 불교대학과 경전반이라는 2년 과정입니다. 스님이 고생고생해서 터득한 걸 여러분은 거의 공짜로 먹는 거예요.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 2시간만 수업받으면서 거의 공짜로 먹는 건데, 그것도 안 하려고 하면 되겠어요? (모두 박수)
수행자의 길을 가려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 배우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해요. 붓다의 가르침은 합리적으로 따져도 맞고, 경험을 해봐도 맞다는 것을 체험해야 해요. 붓다의 가르침은 그런 점에서 과학과 유사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죽어서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붓다의 가르침은 직접 경험해보면 가장 효율적인 길이고, 삶에 있어서도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또 배운 내용을 직접 체험해보고 증명할 수 있는 길이예요.”
법문이 끝나고 불교대학 담당자들의 축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졸업 전까지 바빴을 텐데 또 공연까지 준비한 담당자들에게 졸업생들은 시작부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강원 경기동부지부 담당자들이 알록달록 가발에 반짝이는 의상을 맞춰 입고 나와 신나는 댄스로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했습니다.
박수를 치며 웃다 보니 어느새 졸업식을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졸업식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순서는 지난 1년 동안 불교대학을 운영하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해준 봉사자들을 격려하는 시간입니다.
전국 각 법당에서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담당했던 분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졸업생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모습이 장미꽃 같아. 당신을 부를 때, 장미라고 할래요.”
노래와 함께 졸업생들은 자신들을 위해 밤낮으로 수고해준 담당 봉사자들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헌신해 준 봉사자들을 위한 무한한 신뢰와 감사의 마음이 가득 느껴졌습니다.
스님도 무대에 올라 한분 한분 모두에게 눈을 맞추며 악수를 건넸습니다. 졸업생들뿐만 아니라 가장 수고가 많았던 봉사자들까지 알뜰히 챙겨주시려는 스님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졸업생들은 그런 담당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려 무대 앞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서로를 위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사홍서원과 산회가를 끝으로 정토불교대학 수계식 및 졸업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과 법사님들은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손을 맞잡고, 졸업생들도 무대 아래에서 손을 맞잡고 서로를 바라보며 산회가를 불렀습니다.
“몸은 비록 이 자리에서 헤어지지만, 마음은 언제라도 떠나지 마세.”
마지막 순서의 아쉬움을 달래며 이제는 경전반에서 그리고 자원봉사자로 법당 곳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약했습니다.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좋은 법을 만나 더불어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찾아가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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