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계시지 않지만 교회에 나가기로 작정하다"
제가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던날 저의 마음속에 가졌던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안계신다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교회에 나갈 마음을 가지게 되었냐고요?
제가 스물두살 되던해 10월달에 돌아가신 저의 아버님이 선산이 있는 경북 연일읍 택전동이라는 곳에 성묘를 다녀 오셨습니다.
선산에 성묘를 다녀오신 아버님은 여늬때완 다르게 매우 심각하신 표정으로 말씀을 시작 하셨습니다.
"요번에 성묘를 간김에 내 묏자리도 봐놨다, 내가 살면 얼마를 더 살겠느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당시 아버님이 70세 셨고 어머님은 58세 셨는데 그때까지 저는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생각조차 하지못했습니다.
아버님이 묻히실 묏자리를 봐두고 오셨다는 말씀을 들은 후 아버님의 뒷모습을 할끗 바라보니 지금껏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그런지 머리는 이미 백발이 거의 다 되셨고 허리는 구부러져 계셨습니다.
오늘 저녁에 자리에 누우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리 만큼 쇠약할대로 쇠약한 노인이 되어계신 부모님이 너무 불쌍해서 저의 가슴은 미어질것 같았습니다.
당시 저희집은 찢어지게 가난 하였으며 7형제 8남매중 제가 다섯째 였는데 위로 누님과 형님 두분만 결혼하여 따로 사셨고 다섯 형제와 부모님포함 일곱 식구가 월셋집을 전전하던 즈음이었습니다.
특별한 효자는 아니었지만 그다지 불효자도 아니었던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집에서 가까운 반송1동의 "반송제일교회" 로 나가시고 계셨습니다.
그때 저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치는게 있었습니다.
"맞다, 나를 포함하여 형제들이 교회에 나간다고 하면 부모님은 분명히 기뻐하실거야, 하나님이 있을리야 없지만 없으면 어때, 그 어떤 것으로도 이미 쇠약한 노인들이 되신 부모님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드릴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교회를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나가면 부모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방 한칸에 부모님과 다섯 형제를 포함하여 일곱식구가 함께 잠을 자는데 항상 새벽기도를 다녀오신 어머님이 아침 여섯시부터 일곱시까지 형제들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며 성미기도를 근 한시간씩 수년간 해오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다들 어려웠지만 교회도 가난해서 교회 사역자들의 식량을 성도들이 성미쌀을 날마다 가족 한사람당 쌀 한 숟갈씩 모아서 매주일 교회로 가져와서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어머님은 새벽마다 그 많은 식구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불러가며 5분정도 기도하시고 쌀 한숟갈을 성미 주머니에 담으시면서 따로 나가서 사시는 형님들 누님몫까지 성미기도를 다하시고 나면 한시간 이상이 소요되곤 했습니다.
유난히 새벽잠이 많은데 하필 잠귀까지 밝은 저는 꿀잠을 더 자야할 이른 아침, 한시간 내내 듣기싫은 어머님의 기도소리를 몇년간이나 들으며 아침을 맞곤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속으로 다짐에 다짐을 했습니다.
"나는 죽어도 교회는 안나간다 라며.."
저와 형제들이 교회를 나가면 부모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수년간이나 죽도록 듣기 싫었던 어머니의 성미기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부지께 기도드립니다.
진우, 선이, 진곤이, 진철이, 진태,
진홍이, 진해, 진수는 아직도 하나님을 몰라서 믿지않고 있습니다.
우짜든지 저 자식들 교회 나와서 예수를
믿도록 해주이소, 쟈들이 비록 잘 살지는 못하지만 예수만 믿는다면 저는 오늘 죽어도 소원이 없습니데이.."
수년간 계속된 어머님이 드리는 새벽의 성미기도가 당시에는 너무나 듣기 싫었지만 막상 부모님이 곧 돌아가실수도 있는 쇠약한 노인이 되어계신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자 어머님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형제중 다섯째지만 결혼해서 근처에 사시는 형님 두분과 다른 형제들에게 할말이 있다며 좀 모이라고 한 후...
"형님과 동생들 제말 좀 들어보소, 아버님이 어제 연일에 갔다오신 후 아버님이 묻히실 묏자리를 봐두고 오셨답니다. 그말씀을 듣고 아버님과 어머님을 다시보니 오늘이라도 자리에 몸져 누우실 정도로 이미 너무 늙으시고 쇠약한 노인들이 이미 되셨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열심히 살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아직 집한칸 없이 떠돌고 있고 변변한 직장도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자식들을 지켜보시는 부모님의 마음에 우리 형제들은 여전히 근심덩어리일 뿐입니다.
무엇으로 다 늙으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수 있을지 의견을 하나씩 내보소"
하였습니다.
갑작스런 저의 질문에 형제들이 제대로된 대답을 내놓을 꺼리가 있을리 만무했습니다.
저는 이때다 싶어서 말했습니다.
"형님과 동생들, 우리 다같이 요번 주일부터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로 나갑시다.
하나님이야 안계시지만 우리가 교회에 나가는게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리는 것이라면 그거하나 못하겠습니까.
부모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죽는 시늉인들 못내겠습니까?"
제 말을 들은 형제들은 듣고보니 제 말이 틀린말이 아니기에 오는 주일에 다같이 교회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하나님도 없다면서 말입니다.
1979년 10월 일곱 아들들을 데리고 교회를 향해서 발걸음이 거의 땅에 닿지 않는것처럼 춤을추듯 앞서서 가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 나쁜놈아, 저렇게 좋아하는 어머님의 그 소원을 그렇게 모질받게 지금껏 외면하고 있었구나..."
하나님은 없지만 어머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며 교회에 나가던 첫날 저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펴든 창세기 1장 1절 말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한말씀이 사실처럼 저에게 확신으로 믿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직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으신 분들의 입장을 백번 이해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사랑하는 부모님, 아내, 남편의 소원이라면 그 소원을 매정하게 뿌리쳐야 할 정도로 ....?
기회가 되면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