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어머니의 고백
얼마 전 뉴스를 듣는데 90살 노 부부가 치매에 걸려서 동반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들었습니다.
지금 내 나이보다 30여 년을 더 사시면서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셨겠는가 싶더군요.
저는 얼마 전까지는 그래도 하루하루 사는 기대를 가졌었답니다.
차마 제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겐 부끄러워 말할 수 없었던 한 달 여 동안의 내 가슴속 멍을 털어 보고자
이렇게 어렵게 글을 적어 봅니다.
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고등학교 때 남편을 잃고 혼자 몸으로 대학 보내고 집 장만해서 장가를 보냈죠.
이 만큼이 부모로서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아들놈 장가보내 놓았으니 효도 한 번 받아보자
싶은 욕심에 아들놈 내외를 끼고 살고 있습니다. 집 장만 따로 해 줄 형편이 안되어 내 명의로 있던 집을
아들 명의로 바꿔 놓고는 함께 살고 있지요.
남편 먼저 세상 떠난 후 아들 대학까지 공부 가르치느라 공장 일이며 때밀이며 파출부며. 안해 본 일이
없이 고생을 해서 인지 몸이 성한 데가 없어도 어쩐지 아들 내외 한 테는 쉽게 어디 아프다란 말하기가
왜 그렇게 눈치가 보이는지...
무릎 관절이 안 좋아서 매번 며느리한테 병원비 타서 병원 다니는 내 신세가 왜 그렇게 한스럽던지...
참, 모든 시어머니들이 이렇게 며느리랑 함께 살면서 눈치 보면서 알게 모르게 병들고 있을 겁니다. 어디
식당에 일이라도 다니고 싶어도 다리가 아파서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아들한테 짐만 된 거 같은 생각
마저 듭니다.
며느리가 용돈을 처음엔 꼬박 잘 챙겨 주더니 이 년 전 다리가 아파서 병원을 다니면서 부터는 제 병원비
탓인지 용돈도 뜸해지더라고요, 그래도 이따금 씩 아들놈이 지 용돈 쪼개서 꼬깃 꼬깃 주는 그 만 원짜리
서너 장에 내가 아들놈은 잘 키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며 살았지요.
그런데 이따금 씩 만나는 초등학교 친구들한테 밥 한 끼 사주지 못하고 얻어 만 먹는 게 너무 미안해서
용돈을 조금씩 모았는데, 간혹 며느리한테 미안해서 병원비 달라 소리 못할 때마다 그 모아둔 용돈 다 들어
쓰고 또 빈 털털이가 되더
라고요, 그래서 정말 친구들한테 맘먹고 밥 한 번 사야겠단 생각에 아들놈 퇴근 길목을 지키고 서있다가
"야 야, 용돈 좀 다오. 엄마 친구들한테 매번 밥 얻어 먹기 미안해서 조만간 밥 한 끼 꼭 좀 사야 안 되겠나."
어렵게 말을 꺼냈더니 만, 아들놈 하는 말이
"엄마, 집사람한테 이야기할게요." 그러곤 들어가지 뭐예요.
내가 괜히 말을 꺼냈는가 싶기도 하고 며느리 눈치 볼 일이 또 까마득했어요.
그렇게 아들놈 한테 용돈 이야길 한지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답이 없길래 직접 며느리한테
"아가야, 내 용돈 쫌만 다오. 친구들한테 하도 밥을 얻어먹었더니 미안해서 밥 한 끼 살라 한다." 했더니
며느리 아무 표정도 없이 4만 원을 챙겨 들고 와서는 내밀더라고요.
4만 원 가지고는 15 명이나 되는 모임 친구들 5000 원짜리 국밥 한 그릇도 못 먹이겠다 싶어서
다음날 또 며느리를 붙들고 용돈 좀 다오 했더니 2만 원을 챙겨 주었어요.
그렇게 세 차례나 용돈 이야길 꺼내서 받은 돈이 채 10만 원이 안되었지요.
그래서 어차피 내가 밥 사기는 틀렸다 싶어서 괜한 짓을 했나 후회도 되고, 가만 생각해 보니까 괜히 돈을
달랬나 싶어 지길래, 며느리한테 세 번에 거쳐 받은 10만 원 안 되는 돈을 들고 며느리 방으로 가서 화장대
서랍에 돈을 넣어 뒀지요.
그런데 그 서랍 속에 며느리 가계부가 있더라고요. 난 그냥 우리 며느리가 알뜰살뜰 가계부도 다 쓰는구나
싶은 생각에 가계부를 열어 읽어 나가기 시작을 했는데. 그 순간이 지금까지 평생 후회할 순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글쎄, 9월 14일 원수 40,000원, 9월 15일 원수 20,000원, 9월 17일 또 원수 20,000원 처음엔 이 글이
뭔가 한참을 들여다 봤는데, 날짜며 금액이 내가 며느리한테 용돈을 달래서 받아 간 걸 적어 둔 거였어요.
나는 그 순간 하늘이 노랗고 숨이 탁 막혀서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남편 생각에, 아니, 인생 헛살았구나
싶은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들고 들어갔던 돈을 다시 집어 들고 나와서 이걸 아들한테 이야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가 생각을 했는데,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이야길 하면 난 다시는 며느리랑
아들 얼굴을 보고 함께 한 집에서 살 수가 없을 거 같았으니까요. 그런 생각에 더 비참해지더라고요
그렇게 한 달 전 내 가슴속에 멍이 들어 한 10 년은 더 늙은 듯하네요.
얼마 전 들은 그 90대 노 부부의 기사를 듣고 나니까 그 노 부부의 심정이 이해가 가더군요.
아마도 자식들 짐 덜어 주고자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어요.
며느리랑 아들한테 평생의 짐이 된 단 생각이 들 때면 가끔 더 추해지기 전에 죽어야 할 텐데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이제 곧 손자 녀석도 태어날 텐데 자꾸 그때 그 며느리의 가계부 한마디 때문에 이렇게
멍들어서 더 늙어가면 안 되지 싶은 생각에 오늘도 수십 번도 더 마음을 달래며 고치며 그 가계부의 원수란
두 글자를 잊어보려 합니다.
차라리 우리 며느리가 이 방송을 들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젠 자식 뒷바라지에 다 늙고 몸 어디 성한 데도
없고 일거리도 없이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지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과 인지 모르시죠?
이 세상 부모로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자식한테 받는 소외감은 사는 의미뿐만 아니라
지금껏 살아왔던 의미까지도 무의미 해진다라고 말입니다. 이제라도 이렇게 방송을 통해서 가슴 아팠던
심정을 털어놓았느니, 며느리 눈치 안 보고 곧 태어날 손주 녀석만 생각하렵니다. 요즘은 내가 혹시 치매에
걸리지나 않을까 싶은 두려움에 책도 읽고 인터넷 고스톱도 치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출처 : MBC라디오 여성 시대에서 >=
오직 자식 하나 바라보고 자신을 희생하셨던 부모님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
우리 님들과 함께 하고자 다시 띄웁니다.
'주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더욱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 님들 되시길 빕니다
<받은 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