釋(석)氏(씨)[고타마 싯달타]의 金剛經(금강경)을 풀어 볼가한다
현존하는 석존의 말씀이 모두 그 제자들이 꾸며낸 글로서 그 거짓글에 가깝다하는 설이 있으나 그래도 사람들 한테 덕이되는 말씀이 많은지라 주제넘게 한번 해석해 보고자 하는데 내가 天竺(천축)의 말은 알수 없고 현장과 구마라즙이 한문으로 번역한 경문을 갖고 한문 뜻에 충실하게 풀어보고자한다
경문 명칭이 금강반야 바라밀경 이라하였는데 내가 책방에가서 책 찾아보길 게을리 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냥 수박 겉핡기의 해석은 많아도 이게 뭣을 말하는 것인지의 해석은 보지 못해서 우선 그 제목을 한문의 뜻에 立脚(입각)하여 풀어본다면 물론 玄奬(현장)이 漢文(한문)이 지닌 의미를 완전 무시하곤 그 경전을 번역할리는 만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한문이 지닌 의미로 해석 한다면 이것을 우리말로 해석해 본다면 '쇠처럼 단단하게 다지는 마음의 지혜를 꽉차게 하는 글' 이란 의미이다
소이 이렇게 譯者(역자)와 같이 해석한 글을 한번도 못봤다 물론 그 인도 天竺語(천축어)에 근거하여 스님들이 그 의미에 대해서 확실하게 밝혀서 풀은 글은 있다할 것이다 그럼 본문을 해석해 보기로 하는데 서른두분[서른두 조목]으로 나누어선 해설하고 있는데 이것도 그 體得(체득=체계적으로 습득)하기 쉽게 그렇게 분리한게 아닌가한다 첫 번째 분을 法會 因由分[법회인유분]이라 하였는데 법이란 여기서 그무슨 진리를 말한다 했는데 그렇게 한가지로 단적으로 말할 의미가 아니란 것이다 소이 견해나 주장 따위 이념사상 따위를 통틀어서 그렇게 법이라 하여보는 것이다 즉 세상에 通用(통용)되는 경우란 것을 바탕으로 해봄직할만한 글의 語源(어원)이라해도 된다할 것이다
좌우당간 법이란 의미가 그렇다하고 이러한 법을 모이게하여 끌어오는 원인을 제공하는 글을 서두로 삼는 다는게 곧 법회인유분이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을 들여다보자
如是我聞(여시아문) 一時(일시) 佛(불) 在舍衛國(재사위국)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 與大比丘衆(여대비구중) 千二百五十人(천이백오십인) 俱(구) 爾時(이시) 世尊(세존) 食時(식시) 着衣持鉢(착의지발) 入舍衛大城(입사위대성) 乞食(걸식) 於其城中(어기성중) 次第乞已(차제걸이) 還至本處(환지본처) 飯食訖(반사흘) 收衣鉢(수의발) 洗足已(세족이) 敷座而坐(부좌이좌) . '내가 이렇게 들었다 한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 [천축국의 당시의 하나의 나라 이름] 기수급 고독원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외로운 장자 또는 正覺者(정각자)가 노니는 동산]에 여러 제자들과 같이 계셨는데 이때에 세존 [ 세상에 높은분이란 의미 이다] 께서 식사때가 되었는지라 옷을 걸치시고 음식 얻을 그릇을 지니시고 사위대성[ 그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 에 들어 가셔선 음식을 구걸 하실세 그 성중을 돌아 다니시면서 집집마다 차례대로 빌기를 마치시고 게시던 곳으로 돌아오셔서 음식을 잡수시고 걸치신 옷과 음식 그릇을 거두시고선 몸을 씻으신 다음 결과부좌 [소이 우리말로 책상다리 하고 앉으시다 ]하시다 ' 여기까지가 법회인유분이다 或(혹) 一說(일설)에는 法會因由分(법회인유분)을 得道(득도) 成佛(성불)하신 상태를 가리킨다한다
다음 두 번쩨로 善現起請分(선현기청분)인데 이것의 의미를 푼다면 잘 드러나도록 간청함을 일으키는 대목이라는 뜻이다 善(선)에 의미는 좋게 한다는 의미도 된다 現(현)에 의미는 현상시킨다는 의미도 된다 起(기)에 의미는 가라앉은 것을 일으킨다 또는 그 흥을 돋군다 또는 그 未知(미지)나 未開(미개)한 것을 열어선 알게하고 깨우쳐준다는 이런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할 것이다 본문을 들여다 본다면 . 時(시) 長老須菩提(장로수보리) 在大衆中(재대중중) 卽從座起(즉종좌기) 偏袒右肩(편단우견) 右膝着地(우슬착지) 合掌恭敬(합장공경) 而白佛言(이백불언) 希有世尊(희유세존) 如來善護念諸菩薩(여래선호념제보살) 善付囑諸菩薩(선부촉제보살) 世尊(세존) 善男子(선남자) 善女人(선여인)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발아누다라삼막삼보리심) 應云何住(응운하주) 云何降伏其心(운하항복기심) 佛言(불언) 善哉善哉(선재선재) 須菩提(수보제) 如汝所說(여여소설) 如來(여래) 善護念諸菩薩(선호념제보살) 善付囑諸菩薩(선부촉제보살) 汝今諦聽(여금체청) 當爲汝說(당위여설) 善男子(선남자) 善女人(선여인)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발아누다라삼막삼보리심) 應如是住(응여시주) 如是降伏其心(여시항복기심) 唯然(유연) 世尊(세존) 願樂欲聞(원요욕문) .
이때에 나이많은 수보리 [ 須菩提(수보리) = 수보리 란? 어느 한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다 그 의미를 나름대로 풀어볼 것 같으면 이렇다 須(수)란? 기다린다 잠간이란 의미이다 또는 아직이란 의미로도 통한다. 소이 아직 뭐뭐하기 전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성숙되기 전이다로 해석할수 있음 인지라 그 다음 오는 어휘를 본다면 菩提(보리)하였는데 보리라는 의미는 佛家(불가)의 用語(용어)로는 그 菩薩(보살)이 救濟(구제)한다는 의미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직 보살이 되어 구제하기 前(전)이란 의미이다 다시말하자면 그 보살이 되기 위하여 아직 길을 딲고 자기를 다스리는 구도자 修養(수양)修道(수도)하는 자란 의미이다 = 아직 널리 베품을음 위하야 길을 찾는자] 가 여러 무리가운데 있다간 그 좌중에에서 일어나선 偏袒右肩(편단우견)=오른쪽 어깨에 걸쳤던 옷을 걷어 올려선 어깨를 드러내고 右膝着地(우슬착지)오른쪽 무릅을 꿇고선 두손모아 공경의 예의를 취하고선 부처님께 아뢰기를 希有世尊(희유세존) 드믈게 세상에 계시는 인간의 높은자여 [소이= 스승이시여--] . 如來(여래) 란 의미는 오는 듯 하다는 의미이라 그러니까 와 계시는 듯하다는 것으로서 이것이 그 확정적인 의미는 될수 없다는 것이리라 이것을 여기서는 그 석존을 지칭하는 의미로 쓴다할 것이다, 善護念(선호념) 諸菩薩(제보살) = 잘 모든 보살들을 보호 하시기를 생각하시며, 善付囑(선부촉) 諸菩薩(제보살)= 모든 보살들을 붙들어 주시기를 잘 하시나이다 . 스승이시여 = 善男子(선남자)善女人(선여인)= 착한 사람들이 아뇩다라 삼막삼보리심을 일으킬려면 응당 어디에 머물러야 하며 어떻게 그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하고 여쭸다 그럼 아뇩다라 삼막삼보리심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석존께서 득도하여 얻은 것을 지칭한다는 말을 어느 해석서에서 본 것 같은대 나름대로 해석을 해본다면 소이 이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한 글을 보지 못했으니 주제넘게 해석해 본다면 阿(아)는 언덕이란 의미 산비탈이란 의미, (누)= 김매다 없애다 나쁜일을 덜어 없애다 라는 의미이다 多(다)=많다는 의미, 羅(라) = 새그물, 깁. 벌다, 벌리다 지남철 이란 의미다 벌다는= 밤송이가 벌어지듯 무르익어선 버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벌리다는 입구 출구등을 벌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지남철이란 그 방향을 가르키는 것 또는 들어붙는 것을 의미하는데 소이 羅(라)經(경)이라 해서 풍수학자들이 갖고 있는 땅의 방위를 가르키는 페철이라 하는것의 종류를 가르키는 말도된다 = 이를 말이 잘되게 연이어서 풀어본다면 언덕이란 비탈진 것이니 굴르길 잘하고 미끄럼을 잘탈수 있다할것이라 그러고 언덕은 높은 것이고 쌓여진 것이다 소이 그만큼 용이하게 매끄러운 것이 積載(적재) 되었다는 의미인데 어떻게해서 그렇게되었는가 하면 바로 소이 김메어서 그 나쁜 것을 덜어낸 것이 그러하다는 것이라 그렇다면 나쁜 것을 그만큼 덜어내었으니 좋은 것이 매끄럽게 산언덕처럼 쌓여져 있지 않을가이다 이것이 소이 多羅(다라)= 촘촘히 새 그물 얽혀 짜이듯 많이 벌어지고 벌어졌다는 뜻이라 즉 폭의 확대를 말한다할 것이다, 羅經(라경)[지남철로 만든 방향지시 기구 所以(소이) 페철] 이라는데 의미를 취할 것 같으면 그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가리켜준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할 것이다 三 (삼막) 이란 세곳으로 아득하다는 뜻인데 세곳은 가로 세로 높이 삼차원계의 세상을 말한다하리라 그러니까 셋이란 숫자는 삼차원의 성립수를 가르킨다 그래서 소이 부피있는 界(계)를 통틀어서 셋의 의미 방향 설정을 해보는 것인데 이래되면 곧 부피의 세상 아무 방향을 가르키던가 그러한 부피설정이 되는지라 이래 소이 無方(무방)向(향)이 되는지라 즉 '무방으로 아득히'라는 의미가 된다 또는 시간성향 過現來(과현래) 세가지 설정을 그렇게 말할수도 있다할 것이다 三菩提(삼보리)라는 것은 어떠한 베풀음의 세가지 설정을 말하는 것 이라고도 할수 있지만 모든 베풀을 것을 이렇게 세곳으로 베푼다는 의미가 더 짙다할 것이라 소이 이러한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은 그 길을 찾아 나서서 얻은 다음 그 얻은바를 무방에다 대고 흩튼다는 의미이다 = 이를 말이 잘되게 말 이음을 해보면 = (누)라는 것은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의 모습이라 ="열심히 노력하여 修養(수양)하고 修道(수도)하대 많은 成果(성과)가 쌓이게 해선 매끄럽고 능숙한 수완이 되게해선 무방으로 아득히 무방으로 널리 베풀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려면" 이렇게 말 이음이 된다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 구도자가 자신을 한껏 낮춰 최소한의 모습을 지어선 최대한의 공과를 이루게 하겠다는 念願(염원)담긴 그런 말씀의 뜻이라 아직 컷다는게 아니고 그 小示眼的(소시안적) 立地(입지)에 있다는 것이라 그 수용태세 포용자세가 아직 크지 못하는 것이리라 . 그렇다면 이것을 말이잘되게 말이음을 해보자 = "세존이시여 선량한사람들이 매끄럽게 많은 좋은 것을 딲아 갖곤 산지사방으로 펼치려는마음을 일으킬 려면 [아래해석을 미리당겨선] 어떻게 하여야 하옵나이까" 하는 말이음의 문맥 흐름이 된다 할 것이다 應(응)云(운)何(하)住(주)= 소이 어떻게 적응하여 어데다 머무는가를 묻는말이다 云何降伏其心(운하항복기심)이란 = 그 求道者(구도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라 所以(소이) 儒家(유가)에서 말하는 克己禮復(극기예복)이라는 의미와 통한다할 것이라 일체의 욕망적 私心(사심)을 다스리고 大義的(대의적)인 思顧(사고)나 思念(사념)을 함으로서 심신의 바른자세를 가진다는 것이리라 佛言(불언) 善哉(선재)善哉(선재)라 = 佛(불)이란? 大達覺醒(대달각성)한 心狀(심상)을 말한다할 것이다 착하고 착한지고 또는 [ 좋고 좋은 지고]아직 널리 베풀음을 놓고 길을 딱는자야 네가 말하는 바는 오는 듯 한이가 잘 모든 보살들을 보호하길 생각하고 모든 보살들을 붙들어 주길 잘한다 하나니 너희들은 이제 자세하게 들을 지어다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말씀하여 주리라 여러 좋은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무방으로 아득하게 무방으로 널리 베푸려는 마음을 일으키려는 이는 응당 이렇게 머물 것이며 이렇게 그 자신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항복 받을 지어다 = 소이 공정하고 균형있는 그러한 합리성을 자신의 마음에 들어차게하면 일체의 꺼림이 없어지는 것인지라 이래 自他(자타)가 인정하는 합리성을 부여받게 된다면 소이 그것이 해탈의 경계로서 그러한 깨우침을 널리 전파해 본다는 것이다 설령 이와 같음을 띄지 않더라도 그 무언가 노력해서 부적당한 것이라도 그 대중을 위하야 베푼다는 것은 나쁘다할 사항이 별로 드믈다할 것이다. 다시 구도자들이 그말씀에 대답하여 말하길 스승이시여 원컨대 그 말씀하심을 우리 대중들이 듣고자함을 좋아하나이다 . 여기까지가 善現(선현) 起請分(기청분)이다 .
다음은 세 번째로 大乘(대승) 正宗(정종)分(분)이다 대승이란 漢文(한문)대로 푼다면 큰 것을 태운다는 의미이다 소이 큰 것을 위하고 큰 것이 모든 것을 갊마들고 감싸안 듯 한다면야 작은 희생된 것이 그 보람을 찾는 것이 더욱 그 값지지 않을가 이다 소이 殺身成仁(살신성인) 한다면 그 기리 모든 이에게 좋은 귀감이 되어 아름다운 그림 상이 傳來(전래)되어선 後(후)에 그 고난을 벗으려는 자들로 하여금 그 가르키는 길이 되듯 이러한 큰 것을 위한 큰 것을 타게함이 된다는 말뜻도 되고 그러한 커다란 값진 것을 탄다는 의미도 된다 하리라
* 또는 그 量的(양적)인 것을 말한다 하는 것인데 많은 것 여럿인 것 이런 것을 의미 한다고 한다 소위 혼자가 아니고 여럿을 일깨우는 그러한 역할 그러한 여럿이 타고 갈수 있는 그러한 수레 이런 것을 말한다한다 그러니까 大乘(대승)이라는 것은 모든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자들한테 그 氣量(기량)따라 적재 될수 있는 그런 가르침의, 모든 이를 태울 수 있는 큰 수레라는 것이리라
* 正宗(정종)이란 = 바른 언덕 마루라는 의미로서 여기서는 소이 거기에다가 자신의 어려움을 부탁하고 의지하고 기대어선 해결할만 그런것이란 의미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대승정종이란 의미 이는 큰 깨움침을 주는 것으로서 바르게 언덕하여 어려움을 해소시킬만한 그러한 의미라는 것으로서 이번장은 그러한 내용의 글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크게 깨우치은 문턱이라는 의미도 된다하리라 ] 마루라는 것은 높다는 의미이다 소이 든든하게 기댈수 있는 것 그런 것을 지칭 할 수도 있다할 것이다
본문을 들여다 본다면 佛(불) 告須菩提(고수보리) 諸菩薩摩訶薩(제보살마하살) 應如是降伏其心(응여시항복기심) 所有一切(소유일체) 衆生之類(중생지류) 若卵生(약난생) 若胎生(약태생) 若濕生(약습생) 若化生(약화생) 若有色(약유색) 若無色(약무색) 若有想(약유상) 若無想(약무상) 若非有想(약비유상) 非無想(비무상) 我皆令入無餘涅槃(아개영입무여열반) 而滅度之(이멸도지)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 實無衆生(실무중생) 得滅度者(득멸도자) 何以故(하이고) 須菩提(수보리) 若菩薩(약보살) 有我相人相(유아상인상) 衆生相(중생상) 壽者相(수자상) 卽非菩薩(즉비보살, 부처님이 구도자들에게 고하시대 모든 보살과 크게 베풀음을 펼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보살들은 응당 이렇게 자신들의 마음을 다스려선 누구려 트릴 것이니 소재하고 존재하는 일체의 여러 가지로 생긴 종류를 세분해서 말하자면 알로 생긴거와 어머님 뱃속의 아기궁에 의해서 생긴 거와 변화하여 소이 환골탈태하여 생기는 거와= [곤충 종류가 대략은 그렇게 환골탈태한다] 색깔이 있는 거와 색깔 없는 거와 생각을 가진 거와 생각이 없는 거와 생각을 가진 것 갖기도하고 아니가진 것 갖기도 한 거와 생각이 없다할 수 없는 것 [이것은 해석이 佛家(불가)에서 紛紛(분분)하리라 보는데 그것을 자세히 열거하다보면 나의 실력도 모자르지만 반드시 또한 그렇다고 할수 만은 없다할 것이라 그래 이정도 해석으로 대치해 보는 것이다 ] 등을 내가 모다 남김없이 涅槃(열반)[ [ 열반의 한문 해역을 본다면 涅字(열자)는 개흙, 앙금흙, 갯바닥, 늪바닥, 진펄등에 있는 검고 미끈 미끈한 흙 등으로 해석이 되는데 아주 미세하게 부서져서된 고운가루 부드러운 것을 의미하거나 이런 것은 아주푹 곰삭은 상태에 서야만이 이루어지는 그런 흙이 되는 것이고 그러한 바닥이 되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그 존귀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많이 존재 하여선 그 것의 有無(유무)를 개의할 것이 아니란 것이니 흡사 시간 같고 공간 같고 숨쉬면서 그 공기 자체등 활동 영역에 필요한 모든 여건을 자연 현상으로 돌려선 우리가 잊고 있는 것처럼 그러한 존재의 位相(위상)이란 것이다 槃字(반자)를 解釋(해석)한다면 = 쟁반, 소반, 머뭇거리다, 빙빙돌다, 즐기다, 등으로 해석이되는데 펌퍼짐하여서 그 사람이거나 물건이거나 안주할수 있는 그런 좋은 자리상태를 그린다 할 것이다 평평한 널다란 자리를 보면 누구나 한번쯤 앉아보고 쉬어가길 좋아한다 또는 아이들이라면 설령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어른들 이라도 그 童心(동심)으로 돌아가선 뛰어놀고 싶은 충동을 일으켜선 遊戱(유희)하듯 빙그르 돌면서 그 즐거워 한다는 것이다 머뭇거린다는 것은 그 좋은 상태의 자리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쉬거나 놀아 볼려는 생각을 갖은 상태에 의한 그 행동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할 것이다 즉 이러한 의미를 내포해 갖고 있다할 것이다 그러니까 열반이란 모든 시름떨치고 아름답고 좋게된 경치와 같은 경계에서 즐겁게 생활하며 논다 이런 의미가 된다할 것이라 소이 모든 고뇌를 벗어던진 경계를 갖다가선 그 열반이라 할 것이다 소이 堯舜(요순)적 격양가를 부르는 것 보다 훨씬 나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하리라 ] ]의 경계에 들도록 제도하고 그 번뇌의 고통속에서 허덕이는 것을 소멸시켜 줄것이라 하라 이렇게 셈없고 숫적 질양적 변두리라는 것이 없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그 고통을 소멸시켜 주대 실상은 여러 대중이 그러한 제도를 받고 번뇌를 소멸 받은이가 없다할 것이니 왜냐하면 아직 널리 폄을 기다리고 그 길을 닦는 자들아 만일 널리 구제하고자 하는데 뜻을 둔이가 여러 가지 모양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면 [갖게 된다면] 널리 구제하려는 의도를 갖었다 볼수 없다 함일새니라 하시다 有我相人相(유아상인상)이란 =분열의 시초로서 자신과 및 자신을 제외한 일체 둘러싼 주위 대상을 말한다할 것이다 衆生相(중생상)이란 것은 = 空間(공간)性向(성향)의 의미가 짙다할 것이고 壽者相(수자상)이란 = 時間性向(시간성향)의 의미를 말한다할 것이다 소이 이러한 구분 짓는 상을 갖는다는 것은 보살의 위치가 아니란 것이다 개인적인 利己主義(이기주의)보다 전체적인 公益(공익)을 더 중요시한다고도 볼수 있다하리라 포괄적인 구분없는 것이라면 모두가 나의 살붙이 血脈(혈맥)이란 거와 같은지라 사람의 몸 등가죽에 이[蝨(슬)]가 기어 간다면 그것을 지금 머리 두뇌는 이[蝨(슬)]가 기어 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러니까 宇宙(우주)一身(일신)이라서 나눠서 누구를 구한다거나 구했다거나가 하는 게 없다는 것이고 이가 등가죽을 근질거림도 소이 긁어선 시원함을 맛보라는 것이요 그 가려움을 벗어 던져보라는 의미로서 이 곧 그것은 나와 같이 共生(공생)하고 같이 있는 일신이라 곧 우주라는 것이요 空(공)의 개념에 든다는 것이다 소이 우주는 거대한 하나의 보살덩어리 이렇게 관찰 할수도 있고 이렇게 注知(주지) 할수도 있다 하리라 사람의 心狀(심상)에서 어떻게 관찰 하느냐가 그 중요하다는 것이니 모든 것은 사람의 심상의 재는 尺度(척도)에 달렸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대승정종분이다
다음은 네 번째로 妙行(묘행)無住分(무주분)이다 =이를 푼다면 미묘한 실천은 머물러 安住(안주)하는데가 없다는 뜻이리라 내용을 들여다 보면 復次須菩提(부차수보리) 菩薩(보살) 於法(어법) 應無所住(응무소주) 行於布施(행어보시) 所謂不住色(소위부주색) 布施(보시) 不住聲香味觸法(부주성향미촉법) 布施(보시) 須菩提(수보리) 菩薩(보살) 應(응) 如是(여시) 布施(보시) 不住於相(부주어상) 何以故(하이고) 若菩薩(약보살) 不住相布施(부주상보시) 其福德(기복덕) 不可思量(불가사량)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東方虛空(동방허공) 可思量不(가사량부) 不也(불야) 世尊(세존) 須菩提(수보리) 南西北方(남서북방) 四維上下虛空(사유상하허공) 可思量不(가사량부) 不也(불야) 世尊(세존) 須菩提(수보리) 菩薩(보살) 無住相布施福德(무주상보시복덕) 亦復如是(역부여시) 不可思量(불가사량) 須菩提(수보리) 菩薩(보살) 但應如所敎住(단응여소교주). 거듭말하건데 아직 널리 베풀음을 놓고 길을 딲는자들아 보살이라하는자는 어떠한 견해나 주장에 응당 머물름이 없이 해선 널리 폄을 구현하고 실천할 것이니 이른바 안목으로 구분짓는 색상에 얽메여 널리 펼려 않을 것이며 소리와 향기와 맛과 몸으로 부닥치는 접촉하는 감촉에 얽메여선 견해나 주장을 내어선 널리 베풀려 들지 말 것이니라 이러한 견해나 주장을 벗어나서 널리 베풀 것이니라 구도자들아 보살은 적응함을 이렇게 하여 널리펴고 어떠한 모양에 구애되지 말 것 이니라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라 하는 자가 모양에 얽메이지 않고 널리펴면 그복덕을 가히 생각으로 헤아리지 못할 것이니라 구도자들아 너희들 뜻은 어떠하냐? 동방의 빈 공간을 그렇게 생각으로 그 드넓은 것을 헤아릴수 있다할 것이냐? 아니옵니다 스승이시여 그렇게 헤아릴수 없다할 것이옵니다 또 묻겠는데 구도자들아 남서 북방과 그 사이 사이 방향의 아래위 빈공간을 그렇게 생각으로 셈할수 있다할 것이냐? 아니옵니다 그렇게 할수 없나이다 스승이시여- 구도자들아 널리 펴길 의도하는 자가 어떠한 견해나 주장 따위의 모양에 얽메이지 않고 널리 베푼다면 그 복덕도 또한 되돌아 옴이 이같아서 그렇게 생각으로 셈하지 못할 것이니라 구도자들아 널리 펴길 의도 하는 자는 다만 적응할데가 있음이니 소이 가르치는 바에 머무르려 할 것이니라 하시다 여기까지 묘행 무주분이다 소이 어떠한 반대 급부를 바라지 않고 오직 그 대상과 목적을 가르침에 둔다는 것이리라 이것은 사람의 일신의 몸으로 우주를 비길 것 같으면 그 자신을 부단히 수양 노력함으로서 그 자꾸만 구태를 벗어던지는 과정이요 그에 의한 결과를 招來(초래) 한다는 것이리라 소이 누구를 해줬다는 남의 일이 아니란 것이요 전체 개념을 도입할 제엔 자신의 일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거시안 적으론 우주의 팽창과 발전 위상을 점점 장엄하게 한다 는 것이다 * 내라하는 상은 내노라 하는 상이라 소이 자기를 내세우는 모습이라는 것이니 그 속엔 자랑하는 뻐김과 으시댐과 갖은 머리에서 쥐어 짜내는 간특한 생각에 의한 행동이라 모다 그 실익을 쫓아선 그러한 생각과 행동을 짓는다 남에게 아부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탐욕하고 비굴하게 나대고 야비하게 나대고 비겁하게 나대고 굴욕을 느끼고 열등감을 갖게되고 이모든 것이 我相(아상) 소이 내라 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라할 것이다 人相(인상)이란 무엇인가? 소이 너노라하는 상인데 그 남을 우선 치하하고 공경하고 그잘난 것을 흠집 내려들고 병탈을 잡고 그 힘있는 자에게 아부하고 높은데 올려놓고 흔들기를 즐기고 그 멋있어 보임을 탐해선 내꺼 하고자하고 시기 질투하는 대상을 삼고 그 통쾌한 맛을보기 위해선 두둘겨 패주고 깨물어주고 또 값싼 동정도 좀하고 베푸는 주체 대상을 삼고 그 못난 것으로 보이면 까라뭉게고 만만하게 보이는 것이면 올라 타던가 그 굽혀들면 部下(부하) 삼고 동정하며 어루만져 구휼하는체 하며 이 모든 것에 대상을 설정해서 생기는 현상이라 이래 이러한 것 등을 人相(인상)이라 해보는 것이다 다음 다섯 번째로 如理實見分(여리실견분)이다 似而非(사이비) 和尙(화상)의 해석이 뚱딴지 같은데 한문 글대로 해석한다면 이치 다스림 진실함을 보인다는 말씀이다 이렇듯 다스림의 이치 알찬 견해를 말씀하시는 章(장)이란 뜻이다 그내용을 들여다본면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可以身相(가이신상) 見如來不(견여래부) 不也(불야) 世尊(세존) 不可以身相(불가이신상) 得見如來(득견여래) 何以故(하이고) 如來所說身相(여래소설신상) 卽非身相(즉비신상) 佛(불) 告須菩提(고수보리) 凡所有相(범소유상) 皆是虛妄(개시허망) 若見諸相非相(약견제상비상) 卽見如來(즉견여래) . 구도자들아 너희들 뜻은 어떠하냐? 그렇게 바르다 하는 것으로서 또는 바르게끔 의 몸으로써 오는 듯한 이를 살필수 있다할 것이냐? 아니옵니다 스승이시여 그렇게 할수 없나이다 그렇게 몸이란 모양으로서 오는 듯 한이를 얻어 볼수 없나이다 [ 소이 진리를 내게 전파하여 닥아서는 자를 감지하거나 관찰할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타난 어떠한 신상 즉 몸으로서는 여래를 관찰해 볼수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굳이 그렇다곤 말할수 없다할 것이니 일체 드러난 여러 현상을 몸이라 관고 할적엔 그러한 몸도 여래 行(행)의 일편으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소이 相(상)에 如來(여래)가 계시는 것이 아니라 실천할수 있는 行(행)에 여래가 존재하신다는 것이라 그런데 그러한 행도 또한 하나의 身相(신상)으로 본다면 그렇게 신상에 여래가 존재치 않는다곤 할수 없으리라 ] 그러한 원인을 구도자가 답하여올리길 왜냐하면 여래 말씀하시는바 몸이란 모양은 그러한 몸이라하는 것을 테두리를 벗어던지고 그러한 小示眼的(소시안적) 안목에서 벗어나서 그 몸아닌데로 나아가감을 말함일 새니이다 부처님께서 아직 널리폄을 기다리는 수도자들에게 고하시대 무릇 存在(존재)하는 상이란 것이 모두다 이 허망한[헛되고 부질없는 망녕된것] 것이나니 이렇듯 그相(상)이란 것을 벗어던지고 그相(상) 아닌데에서 관찰하는게 여래 [ 진리라 하는 것의 전파자 나의 깨움침에 도움을 주는 스승님]를 보는데로 나아감이나니라 [ 그러니까 안목을 넓게 해보라는 것이다 ] 여기까지가 여리실견분이다
* 다음은 여섯 번째로 正信(정신)稀有(희유)分(분)이다 한문의 意域(의역)대로 푼다면 바른믿음 드믈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신빙하는 자가 적다는 의미도되고 그 가리키는 됨됨이가 아주 귀하여선 바른 믿음 얻어 가지기도 어려웁다는 의미도 된다하리라 내용을보면 須菩提(수보리) 白佛言(백불언) 世尊(세존) 頗有衆生(파유중생) 得聞如是(득문여시) 言說章句(언설장구) 生實信不(생실신부) 佛告須菩提(불고수보리) 莫作是說(막작시설) 如來滅後(여래멸후) 後五百歲(후오백세) 有持戒修福者(유지계수복자) 於此章句(어차장구) 能生信心(능생신심) 以此爲實(이차위실) 當知是人(당지시인)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불어일불이불삼사오불) 而種善根(이종선근) 已於無量(이어무량) 千萬佛所(천만불소) 種諸善根(종제선근) 聞是章句(문시장구) 乃至一念(내지일념) 生淨信者(생정신자) 須菩提(수보리) 如來(여래) 悉知悉見(실지실견) 是諸衆生(시제중생) 得如是無量福德(득여시무량복덕) 何以故(하이고) 是諸衆生(시제중생)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무부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無法相(무법상) 亦無非法相(역무비법상) 何以故(하이고) 是諸衆生(시제중생) 若心取相(약심취상) 卽爲着我人衆生壽者(즉위착아인중생수자) 若取法相(약취법상) 卽着我人衆生壽者(즉착아인중생수자) 何以故(하이고) 若取非法相(약취비법상) 卽着我人衆生壽者(즉착아인중생수자) 是故(시고) 不應取法(불응취법) 不應取非法(불응취비법) 以是義故(이시의고) 如來常說(여래상설) 汝等比丘(여등비구) 知我說法(지아설법) 如筏喩者(여벌유자) 法相應捨(법상응사) 何況非法(하황비법), 구도자가 부처님께 사뢰기를 스승이시여 자못 여러 사람들이 앞서장과 같은 어려운 내용의 말을 듣고 [張三李四(장삼이사) 보통 사람들이 모두가 다 그 實益(실익)에 深醉(심취)해선 안목이 모두 그 貪慾(탐욕)과 愛憎(애증)등의 葛藤(갈등)에 빠져 있어선 그 이런데의 방면으론 많이들 흐려있는데 어떻게 그 잘 알아듣고 새겨선 깨달을 것인가를 그 제자가 의문을 내는 말씀을 올리는 말씀이다 ] 알찬 믿음을 내오리까? 부처님께서 구도자에게 답하여 말씀하실길 그런말 마라 여래 소멸한 후 오백년쯤 될적에 戒(계)를 받아지니고 복을 닦을자가 있을적엔 此章(차장)의 말씀으로 말미암아서 잘 믿는 마음을 내어선 이처럼 알차게 될 것이니라 [ 如來(여래)滅後(멸후)란 = 당시는 부처님께서 소이 眞理(진리)를 傳播(전파)해주는 분이 그 求道者(구도자)들 가까이 있어선 그 깨우침을 체득하기 어렵잖지만 부처님께서 사람 육신의 탈을 쓰고 있는 이상 세상 생긴 이치를 볼진대 계속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 이래 자연 열반의 경계에 들것이라 소이 돌아갈 것이라 그래 그 진리 전파자가 육신의 몸으로 가까이 계시지 않는 것을 갖다가선 여기선 사라진다 고 말씀하고 계심인 것이다 . 戒(계)라는 것은 佛家(불가)에서는 그 比丘(비구)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의식을 행하는 것을 갖다가선 계라 하는데 일반 俗人(속인)의 입장에서 계를 풀어볼 것 같으면 반드시 그 부처님의 종단의 제자가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고 所以(소이) 濟(제)戒(계)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료되는 바라 그 심신의 자세를 바르게 유지하는데 그 行(행)의 됨됨이 가짐을 말한다 할 것이라 소이 아래글자 修(수)와 의미가 통하는 같은 맥락으로 해석해도 된다 하리라 ] 부처님의 말씀이 계속이 이어지는데 응당 이러한 사람은 다음과 같음을 알 것이니 몇몇의 부처님 한테 착한 뿌리를 심음만이 아니라 헤아림없는 많은 부처님 한테다가 착한 뿌리를 내려서 심었는지라 앞서장과 같은 말씀을 듣고 일념을 이뤄 갖곤 깨끗한 믿음을 낼 것이니라 하시다 [[ = 乃至(내지)一念(일념) 이란 너희 즉 구도자가 생각을 한곳으로 집중 긁어 모은다고도 되고 한결같은 빔 축원이 담긴 생각이란 의미도 되고 집념이란 의미도 통한다할 것이다 [ 乃至(내지) = 이에 노력함 굳이 등등 하여 이른다 다다른다 = 이런 뜻이리라 ]] 부처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진다 구도자들아 '오는 듯 한이', 열반의 경계에 있으면서 이러한 것을 다 알고 다 관찰할수 있는지라 이러한 여러 중생 사람들에게 헤아림없는 복덕을 얻게 할 것이니라 하시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양이라는 것을 돌이켜 봄이 없으며 어떠한 견해나 주장 이런 것 따위의 모양에도 얽메임이 없으며 또한 그러한 견해나 주장에 상반되는 것이거나 부정하는 것이거나 하는 것 따위의 모양도 없음이니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이 마음이라 하는데서 모양을 취할 것 같으면 여러 가지 구분하는 것의 집착하는데로 나아가는 것이 될 것이며 見解(견해)나 主張(주장) 따위의 모양을 취할 것 같더라도 여러 가지 구분짓는데 집착하는데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그러한 견해나 주장 따위 모양 아닌 것을 취할 것 같더라도 여러 가지 구분 짓는데 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나니라 [그러니까 엉덩이가 궁덩이라 포대 자루를 뒤집어봤자 맨 포대 자루라는 것이다 앞서 것을 부정한다해도 또 하나의 相(상)이 되기 때문에 역시 相(상)을 말하는 것은 매일반이 된다는 것이다 ] [ 卽着我人衆生壽者(즉착아인중생수자) 란 = 내라함과 너라함과 중생이라함과 오래산다함과 등에 집착하여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我(아)라는 것은 자신을, 人(인)이란 對相(대상)을 衆生(중생)이란 것은 數多(수다)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나 그 空間性向(공간성향)이라 할 것이고 모든數多(수다)한게 空間(공간)속에 형성되어 있어 現相(현상)하고 그 시간성향으로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壽者(수자)라는 것은 그 흐르는 時間性向(시간성향)을 말하는 것이라 소이 過去(과거) 現在(현재) 未來(미래)를 통틀어 壽者(수자)로 표현한다고 봐야 하리라 ] 이러므로 그 적응 해서하대 무슨 견해나 주장 따위에서 취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것을 부정하는 데에서도 취하지 않을 것이니라 [ 그러니까 널리 펴고 구제하길 뜻을 둔이는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에 얽메이면 그 틀에 얽메이게 되는지라 그렇게 널리 펼수 없다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모두 훌훌 다 떨쳐버리고 구애되지 말고 그 베풀라는 것이다 소이 뭐간 덕이 될만한 게 있다면 펴보라는 것이다 또는 행동의 규제에서도 벗어나라는 것이니 규제나 제약이 있다해서 그 널리 베풀고자하는 뜻을 접는다면 널리 구제하려는 의도를 가진 자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리라 우선은 자신의 심신의 제약으로 부텀 해방이 되어야 한다 할 것이라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않된다는 식의 심신 설정을 해놓으면 그틀에 얽메여선 그 베풀어선 좋을 것도 베풀지 못하게되어선 나쁘게 된다는 것이라 우선 제약 금기사항부텀 깨트리라는 것이다 세상엔 규제와 제약 금기사항이 많다 모두가 사회나 집단 또는 국가 또는 개인이 그 유익을 위해서 설정해논 것이 많은데 때로는 그러한 설정이 베풀음에 장애적인 요소로 작용할수도 있다는 것이리라 대략은 신앙인들 한테 금기사항이 많은데 이런 금기사항이 계율이란 빌미아래 행동을 제약하여선 속박을 강요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이런 것 부텀 분쇄해치우는 것이 그 베풀음의 첫걸음이라할 것이다 그러니까 두둘겨 부시고 나오라는 것이다 이것이 유혹 꼬득이어선 그 파계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제약을 받음으로 인해서 극기와 절제의 폐단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다 그렇게 벗어나선 마음껏의 자유를 누림으로인해서 이것이 그 베푸는 길의 序頭(서두)가 된다고도 할수 있다할 것이다 ] 부처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지는데 '이러한 뜻이 있음인지라 이러므로 여래는 늘 상 말하대 너들 비구들은 내가 무슨 견해를 말하던간에 그저 물에 흘러가는 뗏목같이 여길 것이니라 그 바르다하는 주장이나 견해라하는 것도 오히려 노아 버리거늘 하물며 그 그릇된 견해나 그릇된 가치관 전도된 思觀(사관)등 남의 비위를 거슬리는 것등 이러한 주장 따위야 말할 것 더 뭐 있겠느냐 하시다 ' 여기까지가 정신희유분이다
이것이 부처님 주장이나 견해라면 그저 고만 남의 비위를 확 거슬려 확 뒤집어 놓는 것도 또한 하나의 보시 방책도 될 수 있다 하리라 그래서 나는 항상 곰곰이 생각하길 어떻게 하면 남의 비위를 확-긁어 놀가하는 놀부심사 고약한 심청떨기를 생각을 하게된다 거저 마구 두둘겨 패주고 깨물어주고 짓이겨주고 하고픈게 항시 나의 생각이다 이래해서 고소한 맛을보고 통쾌하게 느끼고 깔깔대고 웃어보는 것이다 백사 이항복이와 한음 이덕형이처럼 고저 남의 수박에 말뚝박기 대장장이에게 송편속에 돌 넣어주기다 이래하면 그 세상은 험악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본때를 보이는 것이 되리라 易(역)에서는 그 엄지 발가락을 다치게해선 더는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하고 세태에서는 작은 사기를 당하게 하여 미연 큰 속임을 예방케 하는데 그 접종으로 사용하게 한다
다음은 일곱 번째로 無得無說分(무득무설분) 이다 = 이뜻은 얻음도 없고 말씀도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얻어서 내보일 것이라하는 것도 없고 그 견해나 주장 따위를 갖고서 말씀할 건덕지 내세울 건덕지도 없다는 것이다 =또는 얻음없음 말씀할 것도 없다로 해석 할수도 있고, 또는 말씀 없음을 얻음 없다로 해석할수도 있는데 설자는 說(열)자나 說(세)자나 脫(탈)자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즐거운 황홀경에 심취 소이 최면을 걸듯한다 달랜다 꼬득인다 그래선 말씀 으로 그 장애적인 요소를 벗긴다 소이 풀어 벗긴다는 의미도 통한다할 것이다 내용을 본면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如來得阿 多羅三 三菩提耶(여래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야) 如來有所說法耶(여래유소설법야) 須菩提言(수보제언) 如我解佛所說義(여아해불소설의) 無有定法(무유정법) 名阿 多羅三 三菩提(명아누다라삼막삼보리) 亦無有定法(역무유정법) 如來可說(여래가설) 何以故(하이고) 如來所說法(여래소설법) 皆不可取(개불가취) 不可說(불가설) 非法(비법) 非非法(비비법) 所以者何(소이자하) 一切賢聖(일체현성) 皆以無爲法(개이무위법) 而有差別(이유차별) , 아직널리 베풀음을 기다리는 수도하는 자들아 너희들 뜻은 어떠하냐? 오는 듯 한 이가 열심히 노력하여 무방으로 아득하게 메아리처럼 퍼지는 무방으로 구제하려는 것을 얻었다 하느냐?= [ 여기서 = 阿 多羅三 三菩提(아누다라삼막삼보리)란 = 심상과 그에 의해서 생겨나는 또는 형성되는 행위의 자세를 가리킨다 할 것이니 事物(사물)로 말하자면 그릇인데 그릇은 비워져야지만 담을수 있다 그러니까 수용태세 포용태세가되어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할 것이라 소이 여래께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다 하느냐 이렇게 부처님께서 자기자신을 비춰서 구도자들에 말씀으로 물어보는 것인데 그 소이 아뇩다라삼막삼보리라는 것은 여래께서 소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제자들에게 , 내가 이 허심탄회 하다할 것이냐? , 소이 마음을 비운자세 수용할 태세 포용할 그릇의 모습을 지어갖고 있다 할 것이냐? 이렇게 묻고 있음인 것이라 할 것이다 ] 여래 그렇게 말한적 있느냐? 또는 무슨 견해나 주장 따위를 내세운적 있느냐 그렇게 말한 것이더냐? 이렇게 구도자들에게 자신의 位相(위상)을 물어보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에대해 구도자들이 대답하여 말하길
'우리들이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의 뜻을 풀건대 무슨 一定(일정)하게 定(정)한 見解(견해)나 主張(주장)을 가지지 아니한 것 그러한 것 없는 것을 갖다가선 아뇩다라 삼막삼보리라 이름 하신줄 아옵고 [그러니까 아무런 내세울 건덕지라는 그러한 견해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것이라 소이 그냥 누가 무엇을 갖다가 안기던 담길만한 그러한 수용할 태세 자세가 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 또한 역시 여래께서는 일정하게 정함 가진 견해나 주장 없음을 그렇게 말씀 하셨음이니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바 견해나 주장이라 하는 것은 다 그 바르다하여 취할 것도 아니며 그렇게 바르다하여 말씀할 것도 아니며 주장이나 견해라할 것도 아니며 또한 그 주장이나 견해가 아니라 할수도 없는 그런 사안이나 설정된 말씀이라 왜냐하면 일체의 어진 성현들이 모두다 하염없는 견해나 주장으로써 말씀하시는지라, 오직 그것만이 존재하는 것이라 하는 견해나 주장의 말씀과는 차별이 있음일세 니이다 ' 하고 답하다 [ 그러니까 佛法(불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깨우쳐 덕을 보일수 있는 일체법[주장이나 견해= 또 그 아닌 것이라도]이 모두 부처님의 理想(이상)과 부합하는 법이라하면 법이라 하는 것이다 ] 여기까지가 무득무설분이다 다음은 依法(의법) 出生(출생)分(분)이다 = 漢文(한문) 意域(의역)대로 푼다면 견해나 주장이런 것 따위에 의지하여선 그 베푸는 마음이 생기고 그 베푸는 마음을 낸다는 뜻으로서 그 말씀한 章(장)이라는 것이다 내용을 보면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若人(약인) 滿三千大千世界七寶(만삼천대천세계칠보) 以用布施(이용포시) 是人(시인) 所得福德(소득복덕) 寧爲多不(영위다부) 須菩提言(수보리언) 甚多(심다) 世尊(세존) 何以故(하이고) 是福德(시복덕) 卽非福德性(즉비복덕성) 是故(시고) 如來說福德多(여래설복덕다) 若復有人(약부유인) 於此經中(어차경중) 受持乃至四句偈等(수지내지사구게등) 爲他人說(위타인설) 其福(기복) 勝彼(승피) 何以故(하이고) 須菩提(수보리) 一切諸佛(일체제불) 及諸佛(급제불) 阿 多羅三 三菩提法(아누다라삼막삼보리법) 皆從此經出(개종차경출) 須菩提(수보리) 所謂佛法者(소위불법자) 卽非佛法(즉비불법) , 구도자들아 너희들 뜻은 어떠하냐? 만일 사람들이 있어 여러 세상에 가득한 일곱가지 보배로서 널리베푼다면 이런 사람들은 복을 얻음이 많다하지 않으랴 하시다 [ 여기서 삼천대천세계라는 것은 그佛家(불가)에서 세상을 재는 척도의 용어의 말씀인데 불가의 여러 경전을 읽다가보면 그 해석이 구구하게 나온다할 것이다 어디서 어디만큼 일세계라하고 그러한 세계가 삼천개 모인게 삼천대천세계라한다 하였으니 그 수량적으로 많은 것을 말한다 할 것이다 ] 구도자들이 답하여 말하오대 ' 심히 많사옵니다 스승이시여 왜냐하면 이러한 복덕이라하는 것이 그러한 복덕의 테두리에 얽메임에 局限(국한)한 것을 말씀하심이 아니옵고 그러한 복덕이라는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 복덕의 성질이 아닌데로 나아가는 것을 갖다가선 그 복덕이라말씀 하시 었습니다 이래서 여래께서 복덕이 많다 하셨나이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些少(사소)한 이익을 받는 복덕의 기준이나 가치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기준을 초월 하거나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어선 그를 내 훠리듯 벗어나선 다른 차원의 界(계) 드넓은 세계로 나가는 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 드넓은 세계는 평범한 인간들이 생각하는 하잘것없는 그러한 가치기준의 복덕의 성질만이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러니까 그 안목을 드넓힌다면 그 그릇이 커지어선 수용하는자세 포용태세가 매우 넓어 졌는 지라 그 實益(실익) 이라는게 사소한데 내가 담기어선 유익함을 맛보는 그러한 소극적 경계만이 아니라 그릇을 넓혔으니 어떠한 것이라도 담을수 있다는 그 자세로 임하는 지라 그에 모든 것이와서 담기려 함에 그 다른 대국적 맛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감싸안는 너희보다 낫다는 그런맛을 느낀다 또는 그 욕심이 지대하여선 좋은 말과 뜻으로 모두를 다 집어먹은 그러한 형세도 된다하리라
* 이를 理想(이상)의 大(대)强盜(강도) 모든 것을 降魔(항마)한것으로도 置簿(치부)할수도 있다할 것이다 남의 理想(이상)이나 다른 苦海(고해)에 허덕이는 자들을 모두 항마거리로 본다는 것이다 남의 理想(이상)은 顚倒(전도)된 思觀(사관)이라하여 꺼꾸러트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苦海(고해)에 허덕이어 의탁하려는 자들은 그것을 해소 시켜줌으로서 그 어려운 것을 제압하여선 자신의 理想(이상)의 頭角(두각)을 나타내려함인 것이다 모든 종교들의 理想(이상)들이 거의가 다 이러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입과 생각으로는 대등 하다하거나 동반자라거나 하지만 모두 자신들의 理想(이상)을 돋보이고 그 立地(입지)를 强化(강화)하기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뿐인 것이다 이것이 지금 엉뚱하게 경문 해석하다 다른 방향으로 꼬리를 트는 것 같다 이러한 작은 예를 하나 든다면 소이 남을 도우려는 보살의 마음을 가진자가 그 얄팍한 머리를 굴려선 저 열등한자들의 맘을 헤아린다는 명분하에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않고 은혜로운 마음을 보이겠다는뜻 또는 남들이 들어서 듣기 좋은 말을하는 것이 [ 내가 사랑을 베풀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저들과 함께 휩싸여 같이함으로서 저들 열등한자들에게 사랑을 받아보겠다는 이런한 말재주를 피워서 여러 사람에게 그 호감을 사고 자신을 돋보이려는 그러한 얄팍한 책모 이런 것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이게 뭐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심기 뒤틀어진 이경문을 해석하는 내 자신이 삐딱한 자세가 되어서 하는 말일 뿐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지는데
' 만일 사람들이 거듭 있어서 이 경문 가운데 네구절의 게송등을 받아지님에 이루어선 남들을 위하여 말해준다면 그복이 저쪽 앞서 설명한 복이라하는 것 보다 더 낫나니라 왜냐하면 구도자들아 일체의 모든 大達覺醒(대달각성)한 주체들과 및 여너 모든 부처님들이 한없는 큰그릇이된 허심탄회한 견해나 주장을 모두다 이 경문으로 부텀 쫓아 냄일 새니라 구도자들아 이른바 부처님의 견해나 주장이라하는 것은 여너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기준의 그러한 부처님이 이렇다하는 그러한 견해나 사상 주장 따위의 얽메임에서 벗어나고 그 속박의 틀에서 벗어나선 그 아닌데로 나아가는 것이나리라 하였다 [ 易(역)의 同人卦(동인괘)에서와 마찬가지로 出門交(출문교)라 어떠한 거주하는 집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드넓은 세상에서 여럿과 사귀는 가운데 자신의 안목도 드넓어져서 자신을 나타내는 위상 자신의 그릇이 모든 것을 수용할수 있는 허심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 *세상에 자신을 알아달라는 약장수가 되라는 뜻인가? 지금 세상은 자기 선전 시대라 자기광고를 잘 할려면 갖은 돋보이는 특별난 수단을 들어내야만 그래 된다할 것이다 이래 함으로서 그 경쟁 의식속에 그 상호간 발전을 추구케되고 안목을 새로이 갖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황하의 신이 황해를 나와 보곤 새로운 안목을 갖듯이 말이다 그 넘실 대는 흙탕 격랑 황하의 모습 그 자신을 알아 달라는 용트림으로도 조명해 볼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의법 출생분이다
다음 아홉 번째로 一相(일상) 無相分(무상분)이다 = 漢文(한문) 意域(의역)대로 해석한다면 하나의 모양은 모양없다의 나눔章(장)이라는 것이다 = 여기서 하나의 모양이란 것은 일단 드러난 현상의 모양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한 드러난 현상은 드러나지 않은 현상을 발판으로 하는지라 그렇다면 그러한 드러난 현상이 [은] 소이 드러남이없는 현상 존재함이 없는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의 인식기관이 그렇게 감지하여 느낄 뿐이지 실상은 그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허상 허울 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음이라 할 것이다 소이 무엇을 지칭하여 [그것]이라 할 것인가 이다 이것이 없는데 그것이라는 것은 존재할리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러한 현상을 그 눈에만 남아 있는 殘像(잔상)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잔상의 존재는 어디서 오는가? 소이 작용에서 온다는 것이다 주먹쥔 것이 영원할수 없으니 펴면 보자기가 되고 쥐면 주먹이되는 원리와 같다할 것이다 그런데 내용은 이와 같이 않을수도 있다 이것은 이글을 쓰는자의 지례짐작이요 머리에 인식 각인된 여러 정보를 갖고 조잡하게 조합해서 꾸며내는 말일뿐이다 내용을 본다면 다음과 같다 내용이 참으로 중요한데 누가 이것을 바로 풀어 논 글을 아직 보지 못했다 화상들이 염불하고 암송해서 남의 천도제에 불려가서 그 빌어주길 잘하는데 그 염불은 잘하면서도 그 세속의 신도들이 불경 내용을 무슨 의미인지 궁굼해 하는듯한 인상을 지으면 한다는 말씀들이 그 알것도 없고 알필요도 없고 한것이라 그저 달달이 외우고 부처님 공경하는 맘만 가지라는 듯의 말 해대기가 일수인데 이것이 부처님 말씀 너무 오묘하고 길다보니 간단명료하게는 설명할 수가 없는지라 그래 얼버무린다할 것이나 이래 답할게 아니라 "부처님 가르치는 경문의 뜻이 너무 오묘하고 깊은지라 가히 간단하게 한말로 말씀드릴수가 없음니다" 해야 할 것인데 그 무슨 신비성을 조성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귀신 끌어모으는 주술적 주문형태로 변질시켜서 사람들로 하여금 현혹에 들게하는 지라 소이 염불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하는 게 이래하는 말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각설이 많아서 그 글을 쓰지 못하게 방해를 하고 있다 일상무상분의 내용을 보면 이렇다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須陀洹(수다원) 能作是念(능작시념) 我得須陀洹果不(아득수다원과부) 須菩提言(수보리언) 不也(불야) 世尊(세존) 何以故(하이고) 名爲入流(명위입류) 而無所入(이무소입) 不入色聲香味觸法(불입색성향미촉법) 是名須陀洹(시명수다원)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斯陀含(사타함) 能作是念(능작시념) 我得斯陀含果不(아득사타함과부) 須菩提言(수보리언) 不也(불야) 世尊(세존) 何以故(하이고) 斯陀含(사타함) 名一往來(명일왕래) 而實無往來(이실무왕래) 是名斯陀含(시명사타함)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阿那含(아나함) 能作是念(능작시념) 我得阿那含果不(아득아나함과부) 須菩提言(수보리언) 不也(불야) 世尊(세존) 何以故(하이고) 阿那含(아나함) 名爲不來(명위불래) 而實無不來(이실무불래) 是故(시고) 名阿那含(명아나함)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阿羅漢(아라한) 能作是念(능작시념) 我得阿羅漢道不(아득아라한도부) 須菩提言(수보리언) 不也(불야) 世尊(세존) 何以故(하이고) 實無有法(실무유법) 名阿羅漢(명아라한) 世尊(세존) 若阿羅漢(약아라한) 作是念(작시념) 我得阿羅漢道(아득아라한도) 卽爲着我人衆生壽者(즉위착아인중생수자) 世尊(세존)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불설아득무쟁삼매인중) 最爲第一(최위제일) 是第一離欲阿羅漢(시제일이욕아라한) 世尊(세존) 我不作是念(아부작시념) 我是離欲阿羅漢(아시이욕아라한) 世尊(세존) 我若作是念(아약작시념) 我得阿羅漢道(아득아라한도) 世尊(세존) 卽不說須菩提(즉불설수보리) 是樂阿蘭那行者(시요아란나행자) 以須菩提(이수보리) 實無所行(실무소행) 而名須菩提(이명수보리) 是樂阿蘭那行(시요아란나행),
' 아직 널리 폄을 기다리는 길을 딲는자들아 너희들 뜻은 어떠하냐? 찰나지간 순간에 [여기서 須字(수자)는 잠간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 경사진 매끄러운 흐름으로 잘 바른 생각을 일으킬수 있다하느냐? [ 소이 순간 찰나지간에 매끄럽게 흘러든다는 생각을 지을수 있는가를 제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 내가 [부처님 자신을 말함] 이러한 찰나지간에 매끄럽게 흘러든다는 열매 성과를 얻었다 하느냐? 구도자들이 부처님의 물음에 답하여 말하대 아니옵니다 스승이시여 왜냐하면 잠깐동안에 매끄럽게 흘러든다함은 이름하여 흘러 들어 갈려함을 갖다가선 가리킴이온대 들어갈데가 없어서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부닥기는 접촉하는 현상의 견해나 주장이 들어가지 못함일새 이를 갖다가선 잠깐동안의 매끄러운 흐름이라 하나이다 . [여기선 是名(시명)은 " 이 이름만"이 아니라 "이를갖다가"선으로 해석해야 바른 해석이 된다하리라 그런데 경문 해석하는 이 마다 모다 이 이름만 그렇다는 뜻으로 해석하니 아니 이름만 그렇다면 모두 그 헛 낮도깨비들이란 말인가? 기껏 됨됨이 원리라는 것을 주어섬기곤 사실은 그게 아닌데 하는거와 같음인지라 그 거짓말을 지금 해석이라하고 남에게 해주는 것이 되는것이라 그렇게 해석하면 안된다는 것이라 채찍이 길긴하나 거의 마 배꼽까지 이르지 못하는 가르침이라 이래하면 더욱 현혹에 빠져선 그 궁굼증만 더한다 하리라 ] *여기까지 豫果(예과)라 한다 부처님이 재차 묻되 구도자들아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이러한 매끄러운 포부를 품고 있다 잘 생각으로 지을수 있다 하느냐 ? 또는 이러한 품은 것 먹음은 것을 매끄럽게 잘 생각을 일으킬수 있다하느냐? 내가 이러한 매끄러운 포부의 열매를 얻었다 하느냐? 구도자들이 답하여 말하오대 아니옵니다 스승이시여 왜냐하면 이러한 매끄러운 것을 안아 먹음얻다 하는 것은 한번 가고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온대 = 또 " 한결같이 왕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온대 실상은 왕래함이 없음일새 이를 갖다가선 이러한 매끄러운 것을 먹음얻다 하나이다 하였다 여기서는 그 뜻풀이가 갈래지어 의견이 분분할 수가 있는데 名一往來(명일왕래)를= 한번 가고 온다로만 푼다면 소이 佛家(불가)에서 말하는 輪回(윤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서 죽으면 그만이라는 그런 의미가되는 가리킴도 되고 , 한결같은 왕래로 푼다면 그와 상반되는 견해 소이 괘종시계 추와같이 왔다갔다 왔다 갔다 한다는 의미도 된다 而實無往來(이실무왕래)는 = 앞의 뜻으로 푼다면 윤회가 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고 , 뒤의 시계추 현상으로 푼다면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작은 것으로 보아 실상은 움직인게 없다는 것이다 소이 생각해보라 왔다갔다하면 맨 원위치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움직인게 없다로 해석이되고, 또 우리가 괘종시계를 볼적에 괘종 시계추는 그 작동하지만 괘종시계 전체는 지금 벽에 걸려서 가만히 있는지라 그 움직이지 않은 것으로된다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제삼자적 위치 관찰자의 위치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서 그 주관적인 것은 희박한 해석이 된다할는지 모르겠다 매끄럽다는 뜻을 주된 해석을 삼는다면 소이 기계가 윤활유를 치면 잘 돌아가듯이 그렇게 막힘없이 척척 잘 진행되 장애없는 그러한 事理(사리)를 모으고 합리성을 띈 辯才(변재)나 생각으로 인한 행동을 짓는 것을 말한다 할것이라 소이 그 말재주 피우는 것도 여기 조금은 해당한다하리라 이렇게끔 잘 진행되게 되는 원리를 내가 끌어안고 있다하느냐?를 제자들에게 물음에 제자들이 이에 대한 답을 앞서의 뒷문장과 같이 함인 것이다 佛家(불가)의 수행방식에서는 이렇게 단계적으로 수행하여 그 깨달음 성취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 여기까지 一來果(일래과) 라한다
[ 다음은 阿那含(아나함)에 대한 해설이다 阿字(아자)는 한문의 역대로 푼다면 언덕이란 의미 산비탈이란 의미이다 또는 구석진 것을 뜻한다 했다 那(나)는 = 의문점에 대한 답을 구하는 말씀이거나 의문을 내는 말씀의 뜻이라는 것이다 소이 어찌那(나) 어떻게那(나) 어떻게 하느냐등의 의미로 해석된다하고 또 국가의 이름 이라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島嶼(도서)로 된 곳을 가르키는 말씀 일예= [남지나 반도 ]쓰는 字(자)이라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조합해서 말을 잘되게 만들어 보면 물론 天竺(천축)의 말씀 가르치는 바는 다르게되어 있다할 것이고 이에대한 해석은 연달아 오는 문장을 본다면 안다할 것이나 그 漢文(한문) 意域(의역)을 無視(무시)할 수가 없는지라 그래서 나름대로 말이 잘 되게끔 해석해 보는데 언덕이라면 그 산비탈이 진 상태 산비탈이 진 상태는 소이 잘 미끄러진다는 것으로서 앞서전의 陀(타)보다 더 크고 높고 그 지세가 험한 것을 가리킨다 할 것이니 그 단계적으로 터득하여 습득하는 과정에서 앞서전 보다 좀 더 어려운 문제에 다달아선 그 해결을 본다는 의미로 해석할수도 있다할 것인데 소이 이것을 극복 정복하여 그 정상 도달 성취하는데로 나아가는 중간 행로점의 位相(위상)이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희말리아 에베레스트 정상 고지를 향하여 전진하는데 중간 중간 마다 야영할곳을 설치하여 놓고는 어느지점 까지 지금 도달했다 이렇게 말하고들 있는 것이다 [소이 켐프 베이스켐프 또는 그 다음켐프 이런방식이 된다 하리라 ] 那(나)는 = 이러한 고지 점령에 대한 많은 장애물 설정의 여러 가지 群像(군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것을 지금 하나 하나 해소 시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의문 나는점을 모두 해결 해 본다는 것이다 含(함)은 = 즉 이러한 것을 포부 가슴에 품어 간직한 상태를 말한다 할 것이다 ] 부처님의 물음은 계속된다 구도자들아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저높은 언덕의 비탈진 것처럼 매끄럽게끔 어려운 문제 제시에 대한 해답을 풀어 간직함을 잘 이렇게 바르게끔 생각으로 일으킬수 있다할것이냐? 내가 그러한 성과를 간직했다 할것이냐? 구도자들이 답하여 말하오대 아니옵니다 스승이시여 - 왜냐하면 저언덕의 비알진 매끄러움처럼 의문난점을 해소해서 간직했다함은 일단은 모든일이 잘 마무리지어선 해결되어서 재차 어려움이없듯이 그 의문나는 점등과 같은 어려움등이 오지않는 것을 가리킴이 온대 실상은 오지 않는 것이 없음일새 [ 소이 의문 나는 점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람의 욕망이 한계가 없는지라 그 어느 한것의 정상에 도달하면 허망하고 허무만이 감도는지라 이래 또 다른 것을 찾아서 헤메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 하여선 고뇌하고 고통하며 그 거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모두 번뇌요 고해라는 것이다 ] 이러므로 이를 갖다가선 저 언덕의 높은 매끄러운 것처럼 어려운 문제 제시에 대한 해답을{풀어서} 가슴속에 크게 펴보일 웅지로 간직했다 함이나이다 [含(함)을= 여기선 크게 펴보일 雄志(웅지) 간직한 것으로 해석해 보았다.] * 여기까지 不還果(불환과) 라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또 이어지다 구도자들아 너희들 뜻은 어떠하냐? 阿羅漢(아라한) =[ [ 깨달음의 정상을 말한다할 것이다 불교의 경전을 읽다보면 사람의 因識(인식)기관이 오감 육감 칠식 팔식에 이른다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그저 육감정도만 그 인식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외에 칠식으로 사량식 [[말라식,= 생각을 굴리어 인식 한다는 것이리라 ]이라는 게 있고 그 위에 또 아뢰야식이라는게 있는데 이것이 팔식으로서 깨달음의 정상으로 그 보살 지위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말하자면 대달각성하여 통달했다는 것이리라 = 여기서 羅(라)는 = 벌어질라 벌라 즉 밤송이가 잘 여물으면 벌어지듯 꽃송이가 잘피어 만개하면 벌어지듯 그러한 상태를 가리키는 뜻이라할 것이다 혹은 더는 새어 나올 것이 없는 상태 투명한 상태 모든 장애가 해소된 상태 이런 것을 가르킴 일수도 있다할 것이다 여기서 漢(한)은 = 한량이라는 뜻 소이 건달 이라는 의미이리라 건달은 아무나되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라야만 건달 칭호를 듣게된다 그리고 건달이 되면 너무 지나치다보니 불량기가 있게되고 사람들이 보기에 곱지않은 눈 천박시 대하기도 하게된다 그러나 본인은 그 통이 큰지라 크게 남들의 눈을 의식하거나 개의치를 잘 않는다 阿(아)는 앞서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언덕이라는 의미 막닿은데 끝다은데 境界(경계) 마루[宗(종)] 頂點(정점)등 비탈지다는 의미 이래서 그 미끄러지길 잘 하게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아주 정상의 끝다은데 도달 능숙한 수완 솜씨 그 능수능란해서 잘되고 잘 돌아가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하리라 = 그렇다면 이상의 말씀을 잘되게 연결지어보면 이렇게 된다 = 그 도달한 실력이 잘 만개하여 벌어진게 흐드러지다못해 천박하게보일정도 이게끔 잘 이렇게 바르게 생각을 일으킬수 있다 할 것이냐? 그러니까 통달해서 막힘없고 훤하다는 것이리라 =소이 이래 아라한을 그 滿開(만개)한 연꽃으로 비유할수 있다할 것이니 어렵고 어지러운 늪 苦海(고해)속에서 고고히 피어올라 그 자태를 뽐내는 연꽃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할 것이다 ] ]을 잘 생각으로 일으킬수 있다 하느냐? 내가 이러한 저언덕에 흐드러지게 핀 연꽃처럼 만개하다 못해 천박시 여길정도로 의 길 [깨달음 정수]을 얻었다 하느냐? 구도자들이 답하오대 아니옵니다 스승이시여- 왜냐하면 실상은 [알참은] 없다하기도하고 있다하기도하는 견해나 주장을 갖다가선 [절대적인 것을 부여해서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법만을 말하는게 아니다 ] 능수 능란하게끔 해석해서 간직한게 잘 [阿(아)=잘이란 해석과 맥락을 같이한다 하리라 ]흐드러지게 피다못해 천박하게 여길정도라 함인 것이오니 스승이시여 만일 이러한 잘 흐드러지다못해 천박하게보일 정도로의 상태를 바르게 생각으로 지어보대 자기 자신이 이렇게끔에 도달한 깨침[길]을 얻었다한다면 [ 이것은 소이 어떠한 상상적 物象(물상)에 비유한 자신을 비춰 보게된 것이라 그 그러한 물상에 집착한 결과를 보인 것이 된다는 것이다 ] 여러 가지모양으로 집착하여 나아간 것이 됨일새니이다 [소이 그러한 연꽃이 아니라면 아라한이 아니란말인가 하는 반문이 제기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떠한 틀상을 갖고 관찰한다면 그 틀의 속박에서 얽메여선 벗어나지 못하는지라 그러한 것은 굳이 아라한이라고 아니라할 수는 없지만 아라한이 그렇게 소극적 견해에 메인 것만은 아니란 것이다 ] 장애자가 갖고 있는 백원이나 비장애자가 갖고 있는 백원이나 그 가치기준은 같은 것을 드러낸다 비장애자가 백원갖고 호떡하나를 사먹을수 있는데 장애자가 백원을 갖고 있다고 해서 너는 장애자이기 때문에 백원 갖고는 호떡을사먹을수가 없다한다면 이것은 공평치 않는 논리가 아닌가? 물론 사안에 따라선 그러한 경우도 충분히 있어서 똑같은 사람이라도 출입의 통제가 있는 것처럼 있을수 있다할 것이나 그 백원에 가치만은 불변하다는 것이리라 항상 절간에 계신 부처님만 덕을 베풀고 세속에 돌아다니는 `부처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부처님은 덕을 베풀지 못한다 하면 이것은 참으로 物相(물상)에 집착한 것이라 차등을 열거하는 물상에 집착한 것이 어떻게 아라한 이라고만 할 것인가 이런 말씀이리라 물론 차등에 집착한 것이라도 아라한이 많다할 것이다 ] * 여기까지 더는 울어날 것이 없는 상태 無漏(무루)라 할 것이다 "스승이시여 - 선생님께선 저더러 겨룸없는 三昧(삼매)(* 前.現.未. 가로 세로 높이 입체 의 어둠과 밝음이 걷힌= 삼매를 겨룰게 없다는 것은 이제막 어둠속에서 빠져 밝음으로 향하는 것을 갖다가선 昧(매)라하는 것인데 더 이상은 암흑에서 시달림받거나 그깨달을 의심할 하나의 건덕지가 남아 있을게 없는 그런 위치가 되었음에 이런 자신을 누구와 그 우열을 겨룰 階梯(계제)가 아니란 것이다 그러니 탐욕이란 것 욕망이란 것 이딴 것이 남아 있을리 만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누구와 겨룰게없는 三昧(삼매)가 된다는 것이다 ) 사람 가운데 가장 첫째가는 자로서 첫째로 욕망이 떠난 언덕이 넓으러지고 흐드러진자라 하옵시었는데 선생님시이여 제가 생각으로 내가 욕망을 떠난 언덕이 널브러지고 흐드러진 모습이라 그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시여 제가 만일 생각으로 그려서 그러한 길을 열었다 하였으면 선생님께선 저더러 언덕이 향기로운 큰 편안한 행함을 좋아하는자라 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저-, 수보리 참으로 그러한 행함 없음으로 저터러 수보리는 언덕의 향기로운 큰 편안함을 좋아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즉 무애 해탈되어 마음에 안식을 갖고 있어 밖으로 우러나보이니 향기로울 수밖에 더있겠는가 이런 경의 내용이다.
*다음은 열번째로 장엄 정토분[莊嚴淨土分(장엄정토분)* 깨끗한(*횐 그림을 그릴수 있는 바탕)흙(*땅. 나라)을 화려하게 꾸밈의 편이란뜻 즉 부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만든다는 뜻.]의 대화한 말씀이다. 原文[원문]= 佛告[불고]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如來[여래] 昔在燃燈佛所[석재연등불소] 於法有所得不[어법유소득부] 不也[불야]世尊[세존] 如來[여래] 在燃燈佛所[재연등불소] 於法實無所得[어법실무소득]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菩薩[보살] 莊嚴佛土不[장엄불토부] 不也[불야] 世尊[세존] 何以故[하이고] 莊嚴佛土者[장엄불토자] 卽非莊嚴[즉비장엄] 是名莊嚴[시명장엄] 是故[시고] 須菩提[수보리] 諸菩[제보살]薩 摩訶薩[마하살] 應如是生[응여시생] 淸淨心[청정심] 不應住色生心[불응주색생심] 不應住聲香[불응주성향] 味觸法生心[미촉법생심] 應無所住[응무소주] 而生其心[이생기심] 須菩提[수보리] 譬如有人[비여유인] 身如須彌山王[신여수미산왕] 於意云何[어의운하] 是身爲大不[시신위대부] 須菩提수보리언] 甚大世尊[심대세존] 何以故[하이고] 佛說非身[불설비신] 是名大身[시명대신]. *해설=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대 수보리야 네뜻은 어떠하냐? 내가 옛적에 연등불 계신곳 에서 무슨 간직할 만한 진리라 하는게 있어 그런걸 얻었다 하느냐? 아닙니다 선생님이시여 선생님께선 연등불 계신곳에서 무슨 간직할 만한 것이 있다하는 것을 실로 얻은바 없나이다. 수보리야 네생각은 어떠하냐? 보살이란 작자가 부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하느냐? [보살이 부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만든다 하느냐?] 아닙니다 선생님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만든다 하는 것의 테[어느 하나의 모양]를 벗어나서 그 아닌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갖다가선 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옵니다. (* 이뜻은 무엇인가? 아름답게 되는 것이 어디 일정한 것이 정해진 것이 아니란 뜻이니 마음 먹은 행실에 있다는 뜻이다). 이러므로 수보리야 모든 보살과 갈고 딲아 더욱 정진 하도록 독려하는 큰보살들은 응당 이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낼것이라 모든 감식성향에 머물지 않아선 그러한 성향이 머물데가 없게 하여선 그 마음을 널리 펼 것을 생각할 것이니라 수보리야 비유컨데 사람의 몸이 수미산의 왕만 하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몸이 크다하지 않으랴? 수보리 대답하대 심히 크다할 것이옵니다. 선생님이시여 왜냐하면 지금 부처님께서 몸이 크다하는 것은 몸 아닌 것을 이 가르켜 큰몸이라 하옵신 것이옵니다. [* 이말씀은 무슨뜻인가? 실제로 사람에 몸 크게되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마음을 넓이하여 끌어안 듯 모든 것을 수용하라는 말씀이니 큰 그릇이되어 모든 것을 용납하는 가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안목을 넓히라는 것임. 거듭푼다면 "구도자들아 비유컨대 몸이 수미산[천축국에 있는 큰산 ]왕만 하다면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이러한 몸이 상당히 크다하지 않을것이냐?" 구도자들이 답하여 말하오대 "심히 크나이다 스승이시여 왜냐하면 지금 부처님께서 몸이라 말씀하심은 그러한 몸이라하는 테를 훌훌 벗어 던져 버린 몸 아닌데로의 상태를 갖다가선 그 큰 몸이라 하셨습니다" 하다
*다음은 열한번째로 無爲福勝分[하염없는 福보다 낳다]편이다. 하염없는 복이라하는 것을 이긴다는 말씀도 된다하리라 原文= 須菩리 如恒河中 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是諸恒河沙 寧爲多不 須菩提言甚多 世尊 但諸恒河 尙多無數 何況其沙 須菩리 我今 實言 告汝 若有善男子 善女人 以七寶 滿爾所恒河沙數 三千大天世界 以用布施 得福 多不 須菩提言甚多 世尊 佛告須菩提 若善男子 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 勝前福德. 구도자들아 갠지스강 가운데는 수많은 모래가 있는데 이같은 모래 等數(등수)만큼 恒河(항하) 즉 갠지스강이 있다한다면 너희들 뜻은 어떠하냐? 이러한 갠지스강의모래 정녕코 많다하지 않으랴? 구도자들이 답하여 말하오대 " 심히 많사옵니다 스승이시여 다만 갠지스강이라 하는것도 상당하게 헤아림없이 많을진데 하물며 그 강마다 있는 모래들을 어찌다 헤아리오리까? " " 구도자들아 내 이제 알찬 말로서 너희들에게 고할가 하노니 만일 좋은 선남선녀들이 있어서 일곱가지 보배로서 이러한 많코 많은 갠지스강 수만큼의 여러세계에 널리 베푼다하면 복을 얻음이 많다할것이니라 " 구도자들이 대답하여말하오대 " 심히 많사옵니다 스승이시여". 부처님이 다시 구도자들에게 말씀으로 고하시대 만일 남녀간 착한 사람들이 있어서 이글 가운데 네구절의 偈頌(게송)등을 받아지님에 이르어선 남을 위하여 말하여준다면 이로 인한 복덕이 저 앞서전의 보배를 베풀은 복덕보다 더낳나니라 " 하시다 *잠간의 깨우침 一瞬間(일순간) 積集罪(적집죄) 萬念(만념) 不蕩盡(불탕진)의 반대말은 百劫(백겁) 績集罪(적집죄) 一念(일념) 敦蕩盡(돈탕진 = 한생각에 돈을 다 탕진하여 알거지가 되었다는 어깃장 놓는 말이다 ) 이다 이 다 아 감언이니 절대 속지 말 것이니 사람의 생각을 통하여 마음과 몸을 조종 할려 는 것이니 절대로 넘어갈게 아니다 조종해선 저 理想[리상]에 얽매게 하여 종 삼아선 부려 쳐 먹을려 하는 수작인 것이다 何人(하인)의 말이 비뚤은 말이 아니요 참말을 하는 것이니 일체 생각을 그리로 잡히거나 그런 것처럼 여기게 하는 것이 마음을 조종하려는 자의 꼬임의 수단이라 없는 것도 있는 것 처럼 있는 것도 없는 것 처럼 꾸며되는 것이니 속지말라 윤회 없는데도 윤회 있는 것 처럼 윤회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꾸며되고 그럴싸하게 지어 대나니 절대 넘어 가지 말것이니 넘어가면 走狗(주구= 주인이 시키는대로 따라하는 것을 주구 라 할 것이니 물건을 훽-던지면 달려가서 물어온다 할 것이다 그러니까 잇속없는 심부름꾼 노복에도 비유된다할 것이다 )가 될뿐이다 이를테면 그대 머리가 은연중 저들의 이상에 쇠뇌되어 있다면 모든게 그 쇠뇌된 논리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 처럼 여겨 지나니 그것은 이미 생각조차 머리에 입력된 여러 정보들이 저 理想[리상]에 유리하 게 작용하고 활동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할것이니 몽매지간이나 육감각에 의한 모든 것들의 인식이 그렇게 돌아가게 되있는 것이다 거지를 보면 전세의 업보가 좋지 않았다거나 향락을 누리는 저 부유한 귀공자를 보면 전세의 업보가 좋았다거나 하나님을 믿으면 그들의 말귀 구절처럼 된다거나 하는 것등이 이미 그대가 저 이상에 쇠뇌되어 있어 그 머리에 입력된 情報(정보)들이 저를 그렇게 합리화 시켜 주는 곳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일체 그런거 없나니 저들의 어떠한 꼬득임에도 넘어가서 물심을 빼앗기지 말 것 이니라 다만 그대가 유익한게 있다고 생각되면 또 병들어 있는 심신이 가쁜해진다 하거던 못이기는 체속아 주라 설령 미끼놓는 낚시에 꿰이는 고기가 된다 하더라도 끝내 이득이 있다 면 어찌 덮석 물어 보지 않겠는가? 저쪽이 나를 이용코자 하거던 그대 또한 그를 빌미로 역이용할 기회를 찾아 立身(입신)의 발판을 삼을 것이니 그게 진실로 약고 영리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이세상은 물고 물리고 서로가 뜯어 먹고 사는 사회이니 요령껏 행동을 한다면 남에 밉상 안받고 처신 잘하는 사람으로 칭송 받으면 서 살수 있다 할 것이다 장애인은 냉정하게 대하고 이덕을 줄만한 자에겐 쓸개라도 빼줄 듯이 나대어라 그러면 處身(처신)을 잘하는 자라 할 것이니 멀리 생각을 밋쳐야지 얼마못가는 책략은 금새 파탄이 와서 몰락을 받으리라 나중 이라도 이용가치가 있다면 또 덕을 쌓는 말을 듣고 싶거던 어려운이를 가증스럽게 봐주는체 하라 누구에게 덕을 베푼다는 건 일체가 진실된 것 없고 가증스러운 것이니 何人(하인)의 생각 굴름이 편벽 되어있다 하질 말라 금새는 덕을 베풀제는 누구던 아무 생각 없거나 진실인체 하지만 고것이 인연이 되고 유리한 방면으로 전개될 듯하면 이용할려 마음이 움직이게 되있는 것이고 오른손 하는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등의 西鬼(서귀)의 말이 한마디로 가소로운 뜻이니 마음에 혼자 안위를 찾으려는 얌체같은 개수작인 것이니 그런 달콤한 꼬득이는 말에 넘어 가지 말것이니라 오직 먹이를 채려는 독수리 발톱처럼 머리씀을 해갖곤 잠시라도 방심치말고 있을 것이니 먹이 사슬을 항시 잊지 말고 방어 태세를 강구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오래도록 지탕하고 짜릿한 삶의 쾌감을 맛본다 할 것이다 위대한 나에 말을 거룩한 나에 말씀을 하찮은 성인에 비기지도 말고 사악한대도 비기지도 말고 오직 평범한 논리전개를 하는 세상의 필부로 여길 것 이고 居士(거사)쯤 여기면 되리라 그저 무조건 논리적으로 두둘겨 부셔라 그리고 승리를 쟁취 하여 저 잘난체하는 理想(이상)들을 깔아짓뭉게고 골려주어 마음에 환희를 맛볼 것이다 으흐+흐흐흐흐 朕[짐] 은억조무량 나쁘다하는 할아버지 석씨와 여호아와 마호멧 알라등 일체 理想[이상] 의 윗된 임금 아버지 어머니 모든 이상의 세제곱 아니 무량제곱의 어른이다 이말씀을 朕[짐]이 먼저한 이상 뒷사람이 아무리 나보다 높거나 크거나 넓거나 그 반대이거나 유리한대로 가치 부여한다 해도 다 나에 뒷선 후배 꼴지다 그러니 우리임금님 만세 만세 만만만세를 칭송할 것이니라 이로부터 이세삼세 천세 만세 토록 간다하라~
庚辰年 陰1月 壬子日 新(신) 秦王政(진왕정) 御鎖(어쇄) 御押(어압) 萬世永昌 皇帝寶印
*너를 동정해서 구차한 삶을 이어가게 하는건 보살이 아니고 너를 때려죽여 구차한 삶을 마감시켜 주는 이가 참 보살이나니 원망에 눈초리로 볼게 아니며 애걸할 것도 아니나니라 내라는 존재가 보살이 아니고 부처도 아니니 모름지기 애처러워도 말라 무엇을 구원하겠다는 참마음은 보살이 아니다 그 구질한 고통을 면해 주는 이가 보살이니 어이 살생자라 할 것이냐? 생각이 있는 것들은 마귀에 속하지 보살이 아니다 무엇을 어줍짢게 구제하겠다는 것은 주접을 떤다는 것이라 대체 누가 누구를 구원하고 건넨다 말인가 모두가다 제심[자기마음]에 안위를 찾아 행을 짓는 것이지 그러니 네가 누굴 구하겠다는 것이 주제넘은 건방진 생각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저 설한 삭풍이 너를 얼어죽게해 빨리 해탈시켜 주었다면 곧 그가 보살이고 모진 운명이 그렇게 몰아간 것이 곧 보살이나니 보살이 복을 지음을 이래서 탐착히 여기지 않는 것이니라 했다 보살이 복지음을 탐착히 여기지 않음은 복을 지어 주는데도 원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를 감언과 달가운 감각으로 꼬득이는 건 보살이 아니고 사악한자가 어줍짢게 제 추악한 길이란걸 의탁해 펼려 집을 구하는 것이니 속지를 말 것이다 보살이 이 보살이 아니 나니라 법신이 또한 법신이 아니 나니라 원래 해탈은 없는 것인데 사람의 간사한 생각이 꾸며서 고뇌하는 자를 꼬득이는 방편으로 이용한 것이니라 일체 모든 것들은 願(원)을 갖고 뭉쳐 거듭 時空(시공)宇宙(우주)에 올게 아니 나니라 지금 너가 그위치를 지키고 있는게 참 부처님이시니 인욕 바라밀이 원래 없는 것이니라 돌로도 오지말고 물로도 오지말고 생명체들로도 오지 말 것이니 오지도 가지도 않아 그냥 그대로 부처라 하리로다 *석존 께서 보시의 개념을 선악에 두지않고 無相에두셨으니 이는 선악이란 개념이 보시의 개념에 뒤진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시란 중생을 무상 해탈시키는 개념이니 설령 자기의 소견으로 악이라하는 개념일지라도 해탈의 수단과 방편이 든다면 얼마던지[(*변명갖지만 저뒤의 문장과 모순 배치되어있어 전하고자 하는 뜻이 잘전달되지않는 감이 없지 않으나 끝가지 읽어보면 자기란 게 자기가 아니란 뜻이 나오고 소견이란 게 소견 아니란 뜻이 된다 당시 당도해선 자기의 개념이지만 전체운집으로 관찰한다면 자기란 게 없게되고 또 궁국엔 전체도 없어 無相(무상)인 것이다)] 사용 베풀어도 된다 할 것이라 그러니까 현실의 처지가 저-중생이 고통의 개념이라서 그 현실 탈피를 하고 싶어 한다면 그 원을 들어주는 데 한몫 보시를 행한다면 마땅히 때려죽여도 된다는 결점에 도달하게 된다할 것이니 마구 때려죽여도 괜찮다 할 것이다 그럴려면 無應生嗔恨(무응생진한)이라 원망을 갖게 해지 말아야 할텐데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어리석은 중생이 망상에 얽메여 고통하고 그 妄想(망상)으로 부터 모든 원망의 발단이 시작되는 지라 妄(망)집을 깨트리는게 바로 때려죽여 버리는것이라 일체의 망념이 邪誕(사탄)과 악마가 제집과 수족처럼 이용코자 하기위해 중생의 심신에 들어박혀 조종하는 것이라 그 사탄을 몰아 내기 위해선 마땅히 때려죽여 야 한다는 것이다 일체의 인식 기관으로부터 망상이 형성되니 그 인식기관이란 것을 폐할려면 마땅히 때려죽일 수밖에 더 있겠는가 이말이다 중생이 어리석어 망상하니 그 망상을 사라지게하고 깨우침을 줄려면 마땅히 망집을 깨트려야 할 것인데 그 망집이 곧 심신이라 그 심신을 때려 부셔야 한다는 것이다 석존이 인욕 바라밀로 계실적에 무응생진한이라 하였으니 이는 무상의 발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원래 忍辱이 없은 데 무슨 억한 심정에 원망과 한이 쌓일게 있겠는가 그러므로 일체 고해 늪에서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할렴 마땅히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서 해탈시켜야 할 것이니 그중엔 때려 죽이는 것도 포함되어 있으니 소이 개백정도 불보살이이요 소백정도 불보살이요 전장터도 불보살이요 불구덩이도 불보살이요 인간의 눈으로 보는 일체의 災害(재해)가 모두 불보살의 개념이 될 수 있는 것이요 호생지덕이란 그를 베푸는 알량한 생각에 제 영리 목적의 수단 입신양명의 방편이요 아님 마음에 안위를 찾을려는 대상을 조장시키는 자라 그러니까 그 못된 사탄의 앞잡이 괴뢰이라 마땅히 그러한 마음가진 사악의 괴수집을 때려 부셔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중생을 상에 얼메에지 않고 때려 죽이는게 이 상에 얽메이지 않고 보시하는 것이니 마땅히 그렇게 할 것이다 다만 주제넘게 자기 어리석은 심신 망집을 갖고 어떠한 기준을 세우지 말라는 것이니 제눈이 제 인식기관과 인식성향이 어찌 불보살의 위치라고 함부로 준칙을 세워 누굴 어리석은 중생이라 몰아부칠 것인가 이런 뜻이다 중생중생하나 중생아닌게 곧 중생이나니 제 가치판단으로 준칙을 세워 함부로 살생한다면 그야말로 마귀의 어리석은 작난에 놀아나는 꼴이 아니겠는가? 모든 작용과 현상이 卽(즉)名(명)諸(제)佛(불)이니 어리석은 판단으로 보시의 總意[총의]를 결정짓지 말 것이다 무엇이 무주상 보시인가? 자타와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게 그런 것인가? 모든 현상이 담긴 포대자루나 똥집으로만 몰아 붙친다면 주제넘은 생각이요 그 고귀한 거룩한 알속의 작용은 모르리라..... 제마음이 중생이요 저마음이 법신불이요 자가마음이 사탄이요 자기마음이 相[상]이요 자기마음이 얽힌 것이요 자기 마음이 그 매듭이 솔솔 풀린 것이요 자기마음이 수다요 자기 마음이 조건 고리 지어진 것이요 그것이 연이어졌다 소르르 풀어져 나가는 것이요 그래서 본무자성 즉 본대 자성이 없어지는 것이고 없는 것이다 자성이 없어 졌다 해서 大願力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無,有漏(무,유루)의 생명입자가 우주에 가득하니 알갱이마다 존재 이 나니라
다음은 열두번째로 尊重(존중) 正敎(정교) 분이다 = 漢文(한문) 意域(의역)대로 바른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고 높이 받든다는 뜻이리라 내용을 보면 부처님의말씀은 계속 이어지는데 復次須菩提(부차수보리) 隨說是經(수설시경) 乃至四句偈等(내지사구게등) 當知此處(당지차처) 一切世間天人阿修羅(일체세간천인아수라) 皆應供養(개응공양) 如佛塔廟(여불탑묘) 何況有人盡能受持讀誦(하황유인진능수지독송) 須菩提(수보리) 當知(당지) 是人(시인)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성취최상제일희유지법) 若是經典所在之處(약시경전소재지처) 卽爲有佛(즉위유불) 若尊重弟子(약존중제자) , " 거듭 재차 말하건대 구도자들아 이글을 쫓아 말하오대 네구절의 게송등을 받아지님에 이르는 곳이라면 응당 알아야 할것이 있으니, 이곳은 일체의 세상 사이에 있는 하늘 사람과 아수라가 다들 공양하길 부처님 계시는 탑과 사당같이 여길 것이거늘 하물며 사람들이 다들 능히 받아 지니어선 읽고 외우고 함에 있어서야 어찌 그 다 말로 표현한다 할수 있으리요 수보리야 응당 알라 이런 사람들은 가장 윗되고 첮째 가는 드믈게 가질수 있는 견해나 주장 따위를 성취 즉 이루는데로 나아갈것이니 만일 이 글 모음[경전]이 존재하는 곳은 부처님이 계시어선 이렇듯 제자를 존중함으로 나아가는 것 과 같음이 나니라 하시다 또는 = 이경전이 있는곳 이라면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나아감과 그 부처님이 소중히 여기고 높이 받들만 하게 여기는 제자처럼 여길 것이나라 하시다 阿修羅(아수라)는 경전해석 사전을 찾아보면 될것이라. 그 해탈을 갈구하는 자들의 들끓음을 표현하는 상징의 말씀이라할 것이다 백과사전에서 찾아본다면 = 개요 인도 신화에서 선신(善神)들의 적(敵)에 대한 총칭. 아소라(阿素羅) ·아소락(阿素洛) ·아수륜(阿須倫) 등으로 음사(音寫)하며 수라(修羅)라고 약칭하기도 한다. 비천(非天) ·비류(非類) ·부단정(不端正) 등으로 의역하는데, 천룡팔부중(天龍八部衆)의 하나로서, 귀신의 한 동아리로 친다. 그러나 어원적(語源的)으로는 페르시아어의 아후라(ahura)와 같은 말로 신격(神格)을 뜻하며(예:아후라 마즈다), 인도의 여러 신들 중 바루나나 미트라는 옛날부터 아수라라고 불리었다. 아마도 인도 아리아인(人)이 신앙하는 신격 가운데 아수라의 일군(一群)과 데바[天]의 일군이 있어 인드라를 비롯한 데바의 무리가 제사의 대상으로서 우세해짐에 따라, 아수라가 마신(魔神)으로 취급된 것으로 추측한다(페르시아에서는 다에바스가 마신이다). 불교에서는 육도(六道)의 하나에 아수라도(阿修羅道)를 꼽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로서 설명한다(예:수라장 등). 조각에서는 삼면육비(三面六臂)를 하고 있고 세 쌍의 손 가운데 하나는 합장을 하고 있으며 다른 둘은 각각 수정(水晶)과 도장(刀杖)을 든 모습으로 표현된다.
다음은 열세번째로 如法(여법) 受持(수지)分(분) = 漢文(한문) 意域(의역)대로 푼다면 이러한 견해나 주장따위를 받아지닐 것 같으면 어떠해질 것이라는 나눔편[말씀 늘어노은구절]이라는 의미이다 내용을 보면 爾時(이시) 須菩提(수보리) 白佛言(백불언) 世尊(세존) 當何名此經(당하명차경) 我等(아등) 云何奉持(운하봉지) 佛告須菩提(불고수보리) 是經(시경) 名爲金剛般若波羅密(명위금강반야바라밀) 以是名字(이시명자) 汝當奉持(여당봉지) 所以者何(소이자하) 須菩提(수보리) 佛說般若波羅密(불설반야바라밀) 卽非般若波羅密(즉비반야바라밀) 是名般若波羅蜜(시명반야바라밀)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如來(여래) 有所說法不(유소설법부) 須菩提(수보리) 白佛言(백불언) 世尊(세존) 如來無所說(여래무소설)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三千大天世界(삼천대천세계) 所有微塵(소유미진) 是爲多不(시위다부) 須菩提言(수보리언) 甚多(심다) 世尊(세존) 須菩提(수보리) 諸微塵(제미진) 如來說非微塵(여래설비미진) 是名微塵(시명미진) 如來說世界(여래설세계) 是名世界(시명세계)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可以三十二相(가이삼십이상) 見如來不(견여래부) 不也(불야) 世尊(세존) 不可以三十二相(불가이삼십이상) 得見如來(득견여래) 何以故(하이고) 如來說(여래설) 三十二相(삼십이상) 卽是非相(즉시비상) 是名三十二相(시명삼십이상) 須菩提(수보리) 若有善男子善女人(약유선남자선여인) 以恒河沙等身命(이항하사등신명) 布施(보시) 若復有人(약부유인) 於此經中(어차경중) 乃至受持四句偈等(내지수지사구게등) 爲他人說(위타인설) 其福(기복) 甚多(심다) , 너희들 무리가 있는 그 現(현) 당시에 구도자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올리대 스승이시여 적당하다 하게끔 찍어다 붙인 이글의 이름은 무엇이라 합니까? 그리곤 우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닐 것인가를 말씀해 주십시요? 부처님이 이에 답하여 구도자들에게 고하시대 이글은 갖다가설나문에 이름하여 쇠처럼 단단하게 그 지혜를 다지는 꽉찬 벌어진것이라 로 하나니 너희들은 응당히 이렇게 받들어 지닐 것이니라 왜냐하면 아직 그 수양 깨침이 넉넉지 못하여서 널리 베풀음을 놓고 길을 딱는 자들아 크게 사뭇치도록 거룩하게 깨달은이가 말씀하시는 지혜가 꽉 차서 밤송이 벌 듯 벌어짐이라 하는 것은 [소이 그 무르 성숙한 것을 말함이리라 ]마음의 지혜가 꽉차어서 벌어지듯 한다는 相(상)의 얽메인 테를 훌훌 벗어 던지고 그 아닌데로 드넓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임이요 이를 갖다가선 마음의 지혜 꽉찬 무르 벌어짐이라 함일새니라 구도자들아 너희들 뜻은 어떠하다더냐? 너희들을 깨우쳐주기 위하여 오는 듯 한 이가 무슨 견해나 주장을 말한적 있더냐? 아직 널리 베풀음을 놓고 수도하는 구도자들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 올리대 스승이시여 오는 듯 한 깨달음을 주시는 스승님 그러한 말씀의 존재가 없었나이다 [여기서所(소)를 존재로 풀어 봤다] 구도자들아-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가득한 여러세상을 미세한 티끌이 뭉쳐서 된 것으로 볼 것 같으면 이러한 미세하다하는 티끌이 많다하다 하지 않으랴? 구도자들이 말하오대 심히 많사옵니다 스승이시여 구도자들아 이러한 모든 미세한 티끌이라하는 것은 깨달음을 성취시켜 주기 위하여 너희곁에 오는 듯 한이[깨달음을 이루어주는 주객의 모든 일체것이라 할것이니 어떠한 대상이라던가 그 환경 주위등 여러 가지라 할것이다 ] 그러한 미세한 티끌이라 하는 모양을 짓는 테를 훌훌 벗어 던지고 그 아닌데로 드넒은 대로 나아가는 것의 상태를 말한 것임일새 이를 갖다가선 미세한 티끌이라 하였음이니 너희들 깨침을 그 어떤 역할을 주어 주던간 돕기 위하여 오는 듯 한이 세계라하는 모양의 견해나 주장을 말씀함도 그러한 세계라하는 모양의 얽메인 것 테에서 훌훌 털어 버리고 그 아닌상태 그 보다 드넓은 상태를 말함일새 이를 갖다가선 세계라 하였나니라 [[ 그러니까 그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점점커지듯 그 메아리가 점점 커지듯 그 지금 그릇을 자꾸만 드넓혀 가면서 지나온 여러가지 말씀들을 다 주어담고 또 담으면서 그릇을 자꾸만 넓혀가는 것이라 그 마음의 자세가 말하자면 풍선이나 바람들은 개구락지 뱃대기처럼 점점 팽창해진다는 것이리라 의심은 되놈 고쟁이 입은 것 같이하고 욕심은 삐악쟁이[이랫다 저랫다 하는 변덕 할머니] 마귀할망구 욕심이라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이리라 寓話(우화)에 있길 개구리 새끼 올챙이가 논 경작하는 암소를 보게 되었는데 암소가 배가 매우 큰지라 이것을 제어미 개구락지 한테 와서 말하였는데 그 올챙이 엄마 개구락지가 "그래 황소가 내 뱃대기만 하다더냐?" 하고선 자신의 배를 드러내 보이는지라 올챙이가 하는 말이 "어머니 그배 갖고는 어림없다" 함에 자꾸만 바람을 캥겨 들여 마시면서 "이만큼 크냐 이만큼 크냐" 하다가는 고만 너무많이 들어마시는 바람에 패가 펑-하고 터져 죽더라는 것이다 그래 올챙이가 제에미 탐욕을 부추기어선 해탈을 빨리 시켰다 하리라 河水(하수) 의 神(신)인 河伯(하백)이 黃海(황해)를보고 세상을 다시 알 듯이 그 수용하는 그릇의 모습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짐작할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그폭의 확대 팽창만을 생각하여 그 끝다은데가 어드메뇨? 하고 의심내길 말지않는데 井底觀天(정저관천)이라 우물안 개구리가 하늘이 그우물벽이 싸는듯한 현상으로 말미암아 저위에 조그맣게 동그란것으로만 여기어선 얼마 않큰 것으로 보나 실제로는 우물을 벗어나 보니 세상은 드넓어서 자기가 있던 우물은 아주 하잘 것 없는것에 불과하고 오히려 하늘과 세상이 그 우물을 감싸듯하고 있어 보이더란 것이다 소이 수용 자세는 行(행) 作用(작용)에 있는 것이지 時空間(시공간) 現相(현상)만을 갖고 논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시공간 현상이란 하나의 허울 현상에 지나지 않음인지라 우리가 이세상을 빠져나가 다른 세상에서 볼적엔 이세상은 아주 우물처럼 하잘 것 없는 그러한 세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잘 것 없다여기는 세상은 그 우물벽의 假視(가시)현상을 일으키는 것 처럼 그 크다하는 것을 감싸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는 크고 작다는 개념이 모두 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그 크고 작음이라 하는 게 허울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나 주장 또한 하나의 상으로서 허울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깨달음에 도움을 준다는 차원에서 한번 말을 해보는 것이다 블랙홀이 공간의 찌글음 현상이라 하는 것도 이와 같음인지라 만약상 우리가 블랙홀에 들어가서 이쪽의 세상을 관찰한다면 이쪽의 세상은 자루가 뒤집히듯 아주 조그맣게 보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크고 작음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인식기관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음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 실상은 그러한게 아니란 것이다 그러나 굳이 단언 한다고는 는 못할 것이다 ]] 부처님 말씀은 계속이어지는데 구도자들아 - 너희들 뜻은 어떠하다더냐? 그렇게 바르다할 수 있는 서른두 모양으로 너희들 깨침에 원활하게 작용을 일으켜주는 오는 듯 한 이를 알현한다 할 수 있다 할 것이냐? 아니 그렇습니다 스승이시여 그렇게 바르다할수 있는 서른두 모양으로 우리들의 깨침에 원활하게 작용을 하신다하는 오는 듯 한이를 뵈올수 없사오니 왜냐 하면 지금 우리들 깨움침에 원활하게 작용을 하여 주신다하는 오는 듯 하시는 분이 말씀하시는 서른 두모양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관찰하는 얽어 메인상으로 부터 훌훌 털어버리고 그 아닌데 드넓은 곳으로 나아감일새 이를 갖다가선 서른두 모양이라 말씀 하셨나이다 [[ 여기서 서른두 모양이라하는 것은 그 圓滿(원만)具足(구족)한 것을 말한다 할 것인데 자세한 해석은 불 경전 아함경에 보면 있다 나의 얕은 생각으로는 서른두 모양 소이 모든 것을 원만하게 갖춘것만을 갖고서는 소이 깨달음의 精髓(정수) 正登覺者(정등각자)를 볼수없다는 것이니 앞서도 말했지만 그래 좀 부족 하거나 장애자의 백원가지고 있는 것은 휴지조각이란 말인가?이다 원만한 것을 애성에 받쳐 굳이 원할것만이 아니라 그 현실처지 형편대로 정진 노력하면서 도움줄것이 있다면 도움주고 도움받을 것이 있다면 도움받는 것이 그 지극타당한 삶의 일상생활 소이 생애라 할 것인데 굳이 무엇을 그래 염원해가면서 원만한 것만을 찾아서 그래 애성에 받쳐 아등 바등 하느냐 이런 내용의 말씀도 된다하리라 서른두상의 해석을 백과사전에서 가지고와보면 다음과같다 부처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몸에 지니고 있다는 32가지 모습. 전륜성왕 상(相)은 전생에 쌓은 공덕이 신체적인 특징으로 나타난 것이다. 불상의 이마 한가운데 박혀 있는 보석이나 상투처럼 솟은 정수리는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마 한가운데 있는 보석은 본래 백호(白豪)라는 하얀 털로 부처가 이를 통하여 세상에 빛을 비춘다고 하고, 상투처럼 솟아오른 정수리는 육계라고 부른다. 이러한 불상의 특징은 모두 32가지에 이른다. 아시타선인이 어린 석가가 위인의 서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세속에 머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며, 출가하면 부처가 되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한 데서 유래했다. 전륜성왕과 나란히 호칭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 때문에 부처가 법을 펴는 것을 법륜(法輪)을 굴린다고 하였다. 32가지는 다음과 같다. 발바닥이 편평하다, 발바닥에 수레바퀴 자국이 있다, 손가락이 가늘고 길다, 손발이 매우 부드럽다, 손가락 발가락 사이에 얇은 물갈퀴가 있다, 발꿈치가 원만하다, 발등이 높고 원만하다, 장딴지가 사슴 다리 같다, 팔을 늘어뜨리면 손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다, 남근이 오무라져 숨어 있는 것이 말의 것과 같다, 키가 두팔을 편 것과 같다, 모공에 새까만 털이 나있다, 몸의 털이 위로 쏠려 있다, 온몸이 황금빛이다, 항상 몸에서 솟는 광명이 한 길이나 된다, 살이 부드럽고 매끄럽다, 발바닥·손바닥·정수리가 모두 판판하고 둥글며 두껍다, 두 겨드랑이가 편편하다, 몸매가 사자와 같다, 몸이 크고 단정하다, 양 어깨가 둥글고 두툼하다, 이가 40개이다, 이가 희고 가지런하며 빽빽하다, 송곳니가 희고 크다, 뺨이 사자와 같다, 목구멍에서 향기로운 진액이 나온다, 혀가 길고 넓다, 목소리가 맑고 멀리 들린다, 눈동자가 검푸르다, 속눈썹이 소의 것과 같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나 있다, 정수리에 살이 있다. 단, 손가락 발가락에 물갈퀴가 있다는 등의 내용은 위대한 인물은 보통 사람과 어딘지 다를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이들 특징을 다시 80가지로 세분하여 팔십종호(八十種好)라 한다. ]] 부처님의말씀은 계속이어지는데 구도자들아 만일 남녀불문하고 착한사람들이 갠지스강 모래수 만큼 의 태어나는 몸으로 널리 베풀고 거듭 또 다른 사람이 있어서 이글 가운데 네구절을 게송등를 받아지님에 이르어선 남을 위하여 말하여 준다면 그 복이 저 앞서의 여러번 태어난 몸으로 布施(보시)한 자의 복보다 심히 많나니라 하시다
다음은 열네번째로 離相寂滅分(이상적멸분)이다 = 漢文(한문)意域(의역)대로 푼다면 모든 상을 떠나버린 상태가 고요해진 고뇌가 사라진 상태라는 것이다의 나눔편이라는 의미이다 내용을 보면 爾時(이시) 須菩提(수보리) 聞說是經(문설시경) 深解義趣(심해의취) 涕淚悲泣(체루비읍) 而白佛言(이백불언) 希有世尊(희유세존) 佛說如是甚深經典(불설여시심심경전) 我從昔來所得慧眼(아종석래소득혜안) 未曾得聞如是之經(미증득문여시지경) 世尊(세존) 若復有人(약부유인) 得聞是經(득문시경) 信心淸淨(신심청정) 卽生實相(즉생실상) 當知是人(당지시인) 成就第一希有功德(성취제일희유공덕) 世尊(세존) 是實相者(시실상자) 卽是非相(즉시비상) 是故(시고) 如來說名實相(여래설명실상) 世尊(세존) 我今得聞如是經典(아금득문여시경전) 信解受持(신해수지) 不足爲難(부족위난) 若當來世(약당래세) 後五百歲(후오백세) 其有衆生(기유중생) 得聞是經(득문시경) 信解受持(신해수지) 是人(시인) 卽爲第一希有(즉위제일희유) 何以故(하이고) 此人(차인) 無我相(무아상) 無人相(무인상) 無衆生相(무중생상) 無壽者相(무수자상) 所以者何(소이자하) 我相(아상) 卽是非相(즉시비상) 人相衆生相壽者相(인상중생상수자상) 卽是非相(즉시비상) 何以故(하이고) 離一切諸相(이일체제상) 卽名諸佛(즉명제불) 佛告須菩提(불고수보리) 如是如是(여시여시) 若復有人(약부유인) 得聞是經(득문시경) 不驚不怖不畏(불경불포불외) 當知是人(당지시인) 甚爲希有(심위희유) 何以故(하이고) 須菩提(수보리) 如來說第一波羅密(여래설제일바라밀) 卽非第一波羅密(즉비제일바라밀) 是名第一波羅密(시명제일바라밀) 須菩提(수보리) 忍辱波羅密(인욕바라밀) 如來說非忍辱波羅密(여래설비인욕바라밀) 是名忍辱波羅密(시명인욕바라밀) 何以故(하이고) 須菩提(수보리) 如我昔爲歌利王(여아석위가리왕) 割截身體(할절신체) 我於爾時(아어이시) 無我相(무아상) 無人相(무인상) 無衆生相(무중생상) 無壽者相(무수자상) 何以故(하이고) 我於往昔節節支解時(아어왕석절절지해시) 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약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應生嗔恨(응생진한) 須菩提(수보리) 又念過去(우념과거) 於五百世(어오백세) 作忍辱仙人(작인욕선인) 於爾所世(어이소세) 無我相(무아상) 無人相(무인상) 無衆生相(무중생상) 無壽者相(무수자상) 是故(시고) 須菩提(수보리) 菩薩應離一切相(보살응리일체상)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발아누다라삼막삼보리심) 不應住色(불응주색) 生心(생심) 不應住聲香味觸法(불응주성향미촉법) 生心(생심) 應生無所住心(응생무소주심) 若心有住(약심유주) 卽爲非住(즉위비주) 是故(시고) 佛說菩薩心(불설보살심) 不應住色布施(불응주색포시) 須菩提(수보리) 菩薩(보살) 爲(위) 利益一切衆生(이익일체중생) 應如是布施(응여시포시) 如來說一切諸相(여래설일체제상) 卽是非相(즉시비상) 又說一切衆生(우설일체중생) 卽非衆生(즉비중생) 須菩提(수보리) 如來(여래) 是眞語者(시진어자) 實語者(실어자) 如語者(여어자) 不 語者(불광어자) 不異語者(불이어자) 須菩提(수보리) 如來所得法(여래소득법) 此法(차법) 無實無虛(무실무허) 須菩提(수보리) 若菩薩(약보살) 心住於法(심주어법) 而行布施(이행보시) 如人入闇(여인입암) 卽無所見(즉무소견) 若菩薩(약보살) 心不住法(심부주법) 而行布施(이행보시) 如人有目(여인유목) 日光明照(일광명조) 見種種色(견종종색) 須菩提(수보리) 當來之世(당래지세) 若有善男子善女人(약유선남자선여인) 能於此經(능어차경) 受持讀誦(수지독송) 卽爲如來以佛智慧(즉위여래이불지혜) 悉知是人(실지시인) 悉見是人(실견시인) 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개득성취무량무변공덕), 부처님과 제자들이 문답하는 당시에 구도자들이 이러한 글의 말씀을듣고 깊은 뜻에 심취해서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어쩔수 없어 콧물 눈물을 흘려 재키며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올리대 "이렇게 우리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시는 전대미문의 희유한 말씀을 하시는 스승이시여 크게 득달한 이렇게 심히 깊고 오묘한 글모음을 말씀하시어 우리들에게 들려 주시옴은 우리들이 옛적으로부터 지혜의 눈을 얻은바로 쫓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이같은 심오한 글의 말씀하심을 듣지 못했사옵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사람들이 거듭 있어 이글의 내용을 듣고 마음에 믿음이 참스러워서 맑고 정결해 진다면 알찬모양 생기는데로 나아갈 것이 나이다 마땅히 이러한 사람은 첮째가는 아주 드믈게 존재하는 공덕을 성취하게된 것을 알것입니다 스승이시여 이러한 알찬 모양이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러한 알차다하는 모양을 그리는 한계의 테에 얽메인 것에서 훌훌 털어버리고 그 아닌데 드넓은데로 나아가는 것을 말함일새 이러므로 우리들에게 깨달음 성취를 도와주기 위하여 오시는 듯 한이 이를 갖다가선 알찬모양이라 말씀 하심이나이다 스승이시여 우리들은 이제 이러한 오묘한 뜻이 담긴 글 모음을 듣고선 참스럽게 풀어선 받아지니기 어렵잖으나 만일 마땅히 앞으로 오는 세상 오백세 뒤에 그 여러 사람들 등이 있어서 이러한 오묘한 말씀의 글을 얻어 듣고 믿어 풀어 받아 지닌다면 이러한 사람은 첮째가는 드믈게 존재하는 것 위하는데로 나아가게 될 것이나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 등은 여러가지 모양이라는 것이 없을 테이니 까요 왜 그런가하면 내노라 하는 모양은 자신을 드러 내려는 모양인데 그러한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모양은 그 다른 여러 여타 모양을 같이 들고 일으킬 것이라 이래서 이러한 내라하는 모양의 한계 설정 테두리 속박 얽어멤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신을 낮추고 겸허하게 하여 그 내라함을 잠간 엿보이 듯 하고 물러나는 흐르는 시냇물처럼[퇴계] 그 드넓은 곳 내라하지 않는 곳으로 나아감이며 여러 모양이라하는 것도 또한 이런한 논리에 의거해서 그 여러 가지 모양 아닌데로 드넓은 곳으로 나아감을 뜻하는 것임 이오니 왜 그러한가 하오면 일체의 모든 모양이라 하는 견해나 주장 따위를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가게한 것을 갖다가선 모든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간 것이라 함일 것이기 때문일 새니이다 " 부처님께서 구도자들에게 고하시대 "그같고 그같나 니라 만일 돌이켜보건대 사람들이 있어 이러한 오묘한 글의 말씀을 얻어 듣고 놀래거나 움추려 들지않고 떨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러한 사람들은 심히 드믈게 존재하는 것을 가지게된 것을 알것이니 왜냐하면 구도자들아 깨우침을 돕기위해 오는 듯 한이 첮째가는 벌어진 꽉찬 말씀은 그 첮째간다는 벌어져 꽉차다하는 한계 설정의 테두리속 얽어멤것을 털어 벗어던지고 그 아닌데 드넓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이 갖다가선 첮째가는 벌어진 꽉찬것이라 함일새니라 아직 널리 베풀음을 기다리는 길을 딲는자들아 욕됨의 파랑이 일어 춤추듯 흐드레 벌어진 꽉찬 것이라 함도 깨침을 돕기 위하여 오는 듯한이 그러한 욕됨을 참는 파랑이 이는 흐드레 춤추는 벌어진 꽉찬 것이라 하는 한계 설정의 옭아메는 테를 벗어나서 그 아닌데 드넓은 상태를 말함이요 이를 갖다가선 욕됨을 견디는 파랑 일어 춤추듯 흐드레 벌어진 꽉참이라 말함이니 왜냐하면 구도자들아 내가 만일 옛적에 노래로써 잇속을 챙기려는 왕을 위할적에 法身佛(법신불)을 잘 먹기좋게 베어 공양할적에 내 당시에 여러 모양이라하는 생각이 염두에 없었나니 [ 割截身體(할절신체)는 = 육신에 몸을 그 먹이로 베어드렸다 보기보다 견해나 주장 따위에 의한 사상과 이념 들을 잘 알아 새겨듣게 조목 조목 나누어서 先(선)은 이렇고 後(후)는 이렇다는 논리성을 띄어갖고서는 그 歌利王(가리왕)에게 말씀 供養(공양)을 드렸다는 뜻이리라 截(절)이란 글자가 그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할 것이다 그러면 왜 여러가지 모양이란 생각이 없었는가?함은 뒷문장에 계속 이어진다 ] 왜냐하면 내가 옛적에 四肢(사지)[ 육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팔다리를 四肢(사지)라 하는데 법신불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이념과 사상 따위의 활동하여 나아가는 지엽적인 것을 말한다할 것이라 아무리 좋은 주장 이라도 돌덩치 처럼 가만히 있다면 아무런 眞價(진가)를 발휘할수 없을 것이라 이래 새움나고 꽃피우고 열매맺어 여러 아름다운 주위환경이 조성됨으로서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라 이래 아미타경 의 화려한 경계를 말해줌과 같다하리라 향기도 나르고 호접도 춤추고 선율도 흐르고 때로는 맑은 하늘에 휘영청 밝은달 이 떠서 갈숲에 바람이 불어선 그빛이 내림에 그 빛남이 파사하게 해보이기도하고 건곤간에 백야청청 독송과 설경을 연출하는 무대를 만들기도 하고 등 그 사람들의 환상적인 취향에 들게 맞춰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支字(지자)는 肢(지)字(자)와 그 글자가 틀리나 해석은 肢字(지자)로 하는 것 같다 ]를 마디마디 [법신불의 논리라면 그 주장하는바 견해등에서 내용을 조목조목 의문 나는 점을 풀어서 말씀하여 보인다는 것이리라 ] 풀어 재킬적에 만일 여러 가지 모양이라 하는것을 가졌다면 마땅히 성내고 한스런 마음이 생기었을 것일새니라 [ 소이 쉽게말해서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염증 권태같은 것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그러한 마음이 없는지라 으레것 그렇게 하는 것으로 여기는 지라 아- 사람이 생활을 영위하려면 삼시 세끼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먹는 것을 항시 귀찮아 여긴다면 어떻게 삶을 구차하게 여겨서 견딜 것인가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것저것 따지고 시비를 논할 그런 계제 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리라 그 항시 즐거운 마음으로 삶을 영위하길 노력한다면 그 깨달음의 眞髓(진수)가 그속에 있지 어디 다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깊은 생각없이 하루하루 주어진 일과에 대하여 열심히 일하고 명랑하게 삶을 살아 간다면 이보다 더한 깨친상태 佛(불)지위는 없다할 것이리라 항시 불평불만이 많은자는 그 심기가 불편스러운지라 항시 짜증속에 있어서 그 성화를 안고 있어서 항시 폭팔할 그런모습을 하고 있음인지라 그런데 무슨 기분이 좋아서 먹은일이 제대로 잘풀릴 것인가이다 일체의 그 일과 리듬가락을 맞추는 귀신 이라면 귀신 신령이라면 신령 들이 자신이 의지하고있는 의지간이라하는 마음이 성품이 흡사 느상 고춧가루처럼 맵게만 나댄다면 어떻게 좋게 그 일이 잘되게끔 원활하게 하여줄 것 인가이다 자신의 정신속에 있는 靈覺(영각)들의 활동이 원활하게 작용을 해서야만이 먹은바 일들이 제대로 잘 추진된다 할 것이다 육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돌아가야지만 그몸이 건강해지는 거와 같다하리라 ] 구도자들아 또한 지난 과거 오백 세대를 생각할적에 욕됨을 참는 신선 사람으로써 너희들 세상을 만들적에 [ 또는 욕됨을 참는 신선 사람을 지어서 너희들세상에 임할적에 ] 공간성향이나 시간성향의 여러 가지 모양을 일으켜세우는 생각이 없었 나니라 [그런데도 소이 자연논리에 의거하여서 우주는 창조되었다는 것이리라 그러한 자연 논리는 이렇게 벌어진 꽃이나 알찬다 하는 열매로 부텀 逆算(역산)으로 흘러서 생길수도 있는 문제라는 것이니 그러니까 이렇게 화려하게 꽃피우는 현재나 미래의 시공간 성향이라하는 것이 그 과거 원초적 우주형성의 근원이 된다할수도 있다는 논리 또한 배제 할수 없다는 것이리라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가지 枝葉的(지엽적)인게 먼저냐 몸둥이가 먼저냐 이런 것은 한낫 사람의 생각일 뿐이지 그 뒤집히는 그림을 그려 본다면 그행의 작용이 앞서도 말했지만 블랙홀과 이세상의 뒤집혀 보이는 현상 과 외쪽 손이 오른쪽 주먹을 감싼다면 오른쪽 주먹을 펴선 왼쪽 주먹을 감쌀수있다는 그러한 작용 원리에 불과하다 할 것이리라 ] 이러므로 구도자들아 널리 구제하려는 뜻을 가진자들은 마땅히 일체모양이라하는 것을 떨쳐 버리고 열심히 노력해서 무방으로 펼쳐서 그 무방으로 널리 구제하길 마음으로 일으키려 하대 [또는 와서 담기게 하는 그릇 수용자세 허심탄회한 마음을 일으키대] 마땅히 무슨 색깔이라 하는것에 머물러선 마음을 내지 말것이며 마땅히 여러가지 감식성향에 의한 인식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아서 마땅히 머물데가 없는 마음이 생기게 할것이니라 [여기서 生心(생심)이란 글자를 조합해본다면 성품性字(성자)가 되는데 이것을 푼다면 본연에 성품의 위치로 돌아가 있으라는 것이다 머물데없는 생심이라하는 것은 성품일 수밖에 더있겠는가? 얕은 소견에 말을 해본다면 헤능이 不住而生心(부주이생심)에서 頓(돈)의 현상으로 깨침을 얻어 순간에 대달각성 도통을 했다한다 내가 지금 어리석은 생각에서 곰곰이 생각해 볼적에 이러한 원리적인 것이 또한 아닌가 억측해서 짐작해 보는바라 물론 치우한 발상이라 하리라 ] 만일 마음에 머물데가 존재한다면 아니 머무는데를 위하여 나아갈 것이니 이러므로 대달각성한이가 말하는 널리 구제하려 한다하는 마음이라 하는 것은 응당 색깔등 머물데없는 널리 폄을 말함이나니라. [ 소이 구분 짓지않고 널리 펴길 열심히 함이나니 易(역)卦(괘) 无妄(무망)卦(괘) 二爻(이효)를 본다면 그 火田(화전)밭을 개간한다 나중에 그 밭이 오래되면 좋은 기름진 밭이 될것이라는 생각을 염두에 굴리지도 않고 그냥 열심히 밭을 개간한다 이런 사람은 그 장래가 촉망되는 매우 건전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 앞으로의 삶이 그유익할 것이다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것 저것 재지않고 열심히 앞에 주어진 여건대로 노력하는 자세가 바로 그 널리 구제하려는 의도를 가진 자라는 것이다 사람이 얕은 잔머리를 굴려서 이해득실을 따져보는데 그 흐르는 운세가 총명한 지혜와 같이 해줘야지만 할것인데 그렇치 못한게 다반사라 이래 어긋남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잔꾀 봐시지말고 경우것 正道(정도)를 가라는 것인데 정도라는 가치기준은 누구에게 그렇게끔 호응을 얻는 것이 그렇다고 할 것이지만 사람들의 심상이 각색이라 사슴 고기국이 맛있어도 중구는 난조 라고 다 비위에 맞추기는 어려운 것이라 그래서 제맘에 합리성 변재를 잘해갖고 하는일이 곧 정도라 소이 빙자없는 무덤없다고 처녀가 애를나도 할말이 있다하는 게 곧 소이 정도라 할 것이라 제 수준에 정도를 맞추대 남의 덕을 크게 손상치 않는그런 형편에서 삶을 유지하길 힘쓴다면 그게 바로 정도의 삶이라할 것이다 ] [ 부처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지는데 ] 구도자들아 널리 베풀고 구제하려는 의도를 가진이는 모든 중생[ 사람 및 여러 구제하고 베풀려하는 대상] 의 이익을 위하여 마땅히 이처럼 펴고 베풀것이니 너희들의 깨침을 돕기위하여 오는듯한이 일체의 모든 모양이라 말함은 그러한 것을 털어버리고 이 모양아닌데로 나아감이며 { 또는 일체의 모든 모양이라 말함은 바르다하고 그르다 하는 모양으로 나아감이며 이것은 변별한다는 평범한 논리 세상사람들이 다 그렇게 시비논쟁을 일으키는 범주에 벗어나지 못하는데 오는 듯 한이도 또한 이러한 방법을 방편으로 채택하여 그 깨침을 얻으려는 자들에게 그리하여 보여준다는 말고 되는데 이것은 좀 억지경향이 있다 하리라 ] 또 일체의 중생이라 말함도 역시 그러한 상태짓는 것 그리는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 중생 아니라하는 드넓은 곳으로 나아감을 말함이나니라 아직 널리 폄을 잠간놓고 그래하기 위하여 수양을 하는 자들아 너희들의 깨침을 돕기위하여 오는 듯 한이는 이렇게 참말을 하는 것이며 알찬말씀을 하는것이며 [ 言語(언어) 에 있어서 言(언)은 直言(직언)을 의미하고{있는 그대로를 사실에 입각하여하는것} 語(어)는 論難(논란)을 의미하는 것{ 이것은 여러 형태를 생각으로 그려서 어떠한 것인가를 따져보는 그러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 이라 그런데 여기서는 語(어)라 하였음으로 무언가의 이치를 논하듯 따져서 깨침에 도움을 주는 그러한 말씀이라는 것이리라 ] [* 혹은 앞 如(여)字(자)를 重視(중시)하여 한결같은 말씀{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는 말씀이 아니란 뜻이다}을 하는 것이라고도 해석이 된다 한다 ], 속이지 않는 말씀을 하는 것이며 이상하거나 괴이적인 말씀을 하는게 아니니라 구도자들아 너희들의 깨침에 도움을 주기위하여 오는 듯 한이의 얻은바의 견해나 주장이라 하는 것은 이러한 견해나 주장이 알참도 없고 빔도 없나니라 [또는 실로 헛됨이 없음이 없나니라 =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진실한 비운 상태의 자세라는 것이니 모든 것이 와 쌓이게 된다하리라 易之萃卦(역지췌괘) 初爻(초효)와 또는 들어가도 들어가도 차지않는 臨卦(임괘)와 새어버리고 증발해버리는 상태의 困卦(곤괘= 아래 위로 새고 증발 시키어서는 그 수용자세를 갖고서는 사람들을 위하여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것을 바로 그 困象[(곤상)에서 찾아볼수 있다할 것이다 =들어 오려하는 자는 들어오게 받아주고 그 들어온 것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겐 그 넉넉하게 나누어 주는 그런 행위 작용을 그 곤상이 한다는 것이라 이래 大人之象(대인지상)이라 자신 스스로의 운신의 폭이 크질 못하고 남을 위하는 그런 자세 그릇이 되어 있음인 것이다 곤한 자래야만 크게는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는 제왕의 기질이 되고 큰 업적을 두고 많은 휘하를 거느릴수 있는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와 같다할 것이다 허심탄회한 담지 못 할게 없는 그러한 그릇으로서의 수용자세가 되어 있음을 가리킨다하리라 ] 구도자들아 만일 널리구제하고 펴길 의도하려는자가 마음에 견해나 주장에 얽메여 머물러서 널리 펴길 행하려들 것 같으면 걸림돌 장애적인 요소가 발생할 것이라 이래 이러한 사람은 어두운 암실에 들어가는 사람과 같아서 관찰할바가 없는데로 나아가겠거니와 만일 널리 구제하길 의도하는이가 마음에 견해나 주장따위 사상이념등에 얽어메는데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서 그러한 속박의 테에 머물지않고 널리 베풀기를 행하려 든다면 이러한 사람은 밝은 눈을 가진 것 같아서 햇빛이 밝게 비추어선 여러 가지 갖은 색을 보듯 궁리가 드넓어진 생각과 그에의한 말씀을 조리있게 그려내게 될 것이나니라 구도자들아 마땅히 오는 세상에 만일 선량한 사람들이 있어서 잘 이글을 받아지녀 읽고 외우면 깨우침을 도와주기 위하여 현신하듯 다다르는 듯 한이 大達覺醒(대달각성)한 지혜로써 위함에 나아감으로 이러한 사람들을 다 알아보고 이러한 사람들을 다 살펴보나니 다들 헤아림없고 가에없는 공덕을 성취함을 얻게 할것이니라 하시다 여기까지가 離相寂滅分(이상적멸분)으로 금강경중 제일 긴문장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다음은 持經功德分(지경공덕분)이다 = 뜻은 이글을 받아지닌데 대한 공덕의 값어치를 나누어 말씀하는 章(장)이라는 뜻이다 내용을 보면
須菩提(수보리) 若有(약유) 善男子善女人(선남자선여인) 初日分(초일분) 以(이) 恒河沙等身(항하사등신) 布施(보시) 中日分(중일분) 復以恒河沙等身(부이항하사등신) 布施(보시) 後日分(후일분) 亦以恒河沙等身(역이항하사등신) 布施(보시) 如是無量百千萬億劫(여시무량백천만억겁) 以身布施(이신보시) 若復有人(약부유인) 聞此經典(문차경전) 信心不逆(신심불역) 其福(기복) 勝彼(승피) 何況書寫受持讀誦(하황서사수지독송) 爲人解說(위인해설) 須菩提(수보리) 以要言之(이요언지) 是經(시경) 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유불가사의불가칭량무변공덕) 如來爲發大乘者說(여래위발대승자설) 爲發最上乘者說(위발최상승자설) 若有人(약유인) 能受持讀誦(능수지독송) 廣爲人說(광위인설) 如來(여래) 悉知是人(실지시인) 悉見是人(실견시인)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개득성취불가량불가칭무유변불가사의공덕) 如是人等(여시인등) 卽爲荷擔如來阿 多羅三 三菩提(즉위하담여래아누다라삼막삼보리) 何以故(하이고) 須菩提(수보리) 若樂小法者(약요소법자)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卽於此經(착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卽於此經(즉어차경)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불능청수독송) 須菩提(수보리) 在在處處(재재처처) 若有此經(약유차경) 一切世間天人阿修羅(일체세간천인아수라) 所應供養(소응공양) 當知此處(당지차처) 卽爲是塔(즉위시탑) 皆應恭敬(개응공경) 作禮圍 (작례위요) 以諸華香(이제화향) 而散其處(이산기처), 구도자들아 만일 선량한 사람들이 있어서 첮쩨날 나눔에 있어서도 갠지스강 모래 등수 만큼 몸으로 태어나서 널리 베풀고 둘째날 나눔에 있어서도 거듭 갠지스강 모래등수 만큼 몸을 나누어서 널리 베풀고 뒤엣날에도 역시 그처럼 갠지스강 모래등수만큼 몸을 나누어서 널리 베풀어서 이처런 셈없는 백천만억겁의 세월동안 몸으로서 널리 베푼다할것이나 만일 사람들이 거듭있어서 이글 모음을 듣고 믿어운 마음을 가지어선 그 거스리지 아니하면 그福(복)이 저앞서의 수없는 몸으로 널리 베푼 것 보다 나으리리 하물며 글로써서 받아지니고 읽고 외워서 남들을 위하여 풀어 말씀 해줌에 있어서야 그 공덕을 어찌말로 다표현할수 있으리요 [겁]에 대한 例(예)를 백과사전의 해석을보면 = [[ 시간의 단위로 가장 길고 영원하며, 무한한 시간. 겁파(劫波)라고도 한다. 세계가 성립되어 존속하고 파괴되어 공무(空無)가 되는 하나하나의 시기를 말하며, 측정할 수 없는 시간, 즉 몇 억만 년이나 되는 극대한 시간의 한계를 가리킨다. 그 길이를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방과 상하로 1유순(由旬:약 15 km)이나 되는 철성(鐵城)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마다 겨자씨 한 알씩을 꺼낸다. 이렇게 겨자씨 전부를 다 꺼내어도 겁은 끝나지 않는다. 또, 사방이 1유순이나 되는 큰 반석(盤石)을 100년마다 한 번씩 흰 천으로 닦는다. 그렇게 해서 그 돌이 다 마멸되어도 겁은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비바사론(大毘婆娑論)》 《대지도론(大智度論)》 등에도 같은 내용의 비유가 있다. 앞의 것을 겨자겁[芥子劫], 뒤의 것을 반석겁(盤石劫)이라고 한다. 겁을 소(小) ·중(中) ·대(大)로 나누어 이 세계의 성(成) ·주(住) ·괴(壞) ·공(空)이 진행되는 기간을 일대겁(一大劫)이라고 하기도 한다. 석가가 발심해서 성불할 때까지 수행에 소요된 시간을 삼아승기겁(三阿僧祇劫), 백대겁(百大劫)이라고 한다. 아승기(asamkhya)는 무수(無數)라고 옮기며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겁(劫)이란 본래 천지가 한번 개벽한 후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기간으로 매우 길고 오랜 시간을 이르는 불교용어이다. 겁에는 과거겁(住劫)과 현재겁(賢劫), 미래겁(星宿劫)의 세 종류가 있다. 이 중 현겁은 현재의 겁으로 세상이 성(成)·주(住)·괴(壞)·공(空)의 4기를 일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4기 중 1기의 기간은 똑같고 사람의 수명이 8만 4천살에 이를 때를 기준으로 하여 기간을 산출해 낸다. 세계는 8만 4천살의 나이가 10살에 이르고, 10살의 나이가 다시 8만 4천살의 나이에 이르는 것을 20번 반복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다음 20번 반복하는 동안에 세계가 머물고, 또 20번 반복하는 동안 세계가 무너지며, 다시 또 20번 반복하는 사이에 세계가 모두 비게 된다. 이 기간을 산출하면 13억 4천 3백 84만년이란 천문학적인 수가 되는데, 우리가 현재 사는 시기가 바로 이 기간에 속한다. 불경에 따르면 이 기간 중 구류손불·구나함모니불·가섭불·석가모니불 등 모두 1천 부처가 출현한다고 한다. 천불(千佛) 사상은 이러한 생각에 근거하여 나타났다. 따라서 천불은 모두 현겁의 부처이다. 천불을 모신 전각을 천불전이라 하며, 삼신불 또는 오방불을 중심에 모시고 천불을 주변에 모신다. 천불 중에는 보는 이와 인연이 있는 부처가 꼭 하나 있다고 한다. 사겁 四劫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는 항상 성겁(成劫)·주겁(住劫)·괴겁(壞劫)·공겁(空劫)의 네 시기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불교의 시간 단위로서 가장 짧은 것은 찰나(刹那), 즉 75분의 1초이며, 계산할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겁(劫)이라고 한다. 사겁은 우주의 생성·소멸의 과정을 시간의 단위로 설명하는 것이다. 우주는 네 단계를 1주기로 하는 변화를 영원히 되풀이한다. 어떠한 단계도 20소겁(小劫)으로 되어 있어 네 단계를 일주하는 데는 80겁이 걸린다. 그 네 단계는 인류가 생성하여 번성해 가는 시기(성겁), 생성되어 안주하는 시기(주겁), 온 세계가 괴멸해 가는 시기(괴겁), 소멸되어 공허로 들아가는 시기(공겁)를 말한다. 이렇게 하여 우주의 성·주·괴·공의 1주기가 끝난다. 이 1주기에 필요한 시간을 1대겁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성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극히 인도적이라 하겠다. ]] 다시부처님의 말씀으로 들어가서, 구도자들아 - 이글의 됨됨의 요점을 말해볼 것 같으면 이글은 그렇게 바르다하는 생각으로 의논할수도 없고 [의논할 성질의것도 아니고] 그 그렇게 바르다하는 헤아림으로 일컬을 성질의것도 아니고 , 가에없는 공덕이 존재하는 것이나니 너희들이 깨달음을 얻는데 보탬이 되기위하여 오는 듯 한 이의 깨우침을 [또는 일으킴을 ] 크게 태운것의 말씀이며 [또는 오는 듯 한 이의 크게- 태우려는 것의 일으킴을 위한자의 말씀이며 = 소이 대승적 차원이라는 의미와 맥락을 같이한다면 큰 수용태세 일체 모두를 고뇌에서 벗어나게하여 그 구제하여서 열반의 경계에 들게 한다는 그런 원대한 웅지가 담긴 글의 말씀이라는 것임] 가장 윗된 높이 태우기 위하여 일으킨 말씀 이니라 {또는 깨달음의 진수가 가장 윗된 것 의 말씀이니라 . 發(발)은= 열다, 일으키다, 깨우치다 이런뜻이 내포된 글자이다 = 깨우침이 극한 경계에 이르게 하는 그런 말씀이라는 것이리라 ] 만일 사람들이 있어 잘 받아 지니어선 읽고 외워선 널리 남들을 위하여 연설해준다면 너희들의 깨침에 그 문을 열어주기 위하여 오는 듯 한이 이러한 사람들을 다 알며 이러한 사람들을 다 살피어선 모다들 헤아림없고 일컬을 수 없고 가에란 것이 존재하는게 없고 그렇게 바르게 생각으로 의론할수도없는 공덕을 성취함을 얻게 할것이리니 [ 여기서 현혹되지 말 말씀이 있는데 悉知是人(실지시인) 悉見是人(실견시인) = 여래라는 분이 어디 허황된곳에서 온다는 그러한 감을 가지어선 귀신 꽁무뉘 따라가는 말씀이 될것이라 그렇게 생각을 가져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자세를 가지는가 소이 그 깨달음 자체에 여래가 계신다는 것이라 이래야지 현혹에 들지 않는다 할 것이라 그 깨달음 자체 정신관념이 확트인 상태가 될적에 그러한 상태가 곧 여래가 살피시고 보는 것이되는 것이라할 것이다 소이 쉽게말해서 머리가 열린 상태가 되면 그게 여래가 계시는 상황이라 이러니 여래가 알고 보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 이런 사람들등은 깨침을 열어주기 위하여 오는 듯 한 이의 수용자세 허심탄회한 모습을 어께에 걺어지고 등가죽에 짊어진 것으로 나아가게 될것이니라. [ 사람의 보시개념 보시관념을 크게 두가지로 요약한다면 무방으로 흩어 재키는거와 그 무방의 그릇이되어서 무방으로 흩고자하는 것을 받아주는 위치 수용태세 의 관점으로 놓을수가 있는데 생각할탓 편의위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런 개념이나 아무런 관점이라도 그 펴고 수용하겠다는 자세만 되어 있다면 여래의 허심탄회한 상이 된다 할 것이다 ] 왜냐하면 구도자들아 만일 작은 견해나 주장[사상이념]따위를 좋아하여 그에 얽메인자들은 내라하는 등 주위여건 환경등 이것 저것 재다가는 그런 사소한데 얽메이는데 집착이 되는지라 이글 의미에 나아와선 잘 받아듣고 읽고 외워서 남들을 위하여 해설해 주지 못할 것이니라 구도자들아 - 사방곳곳에 이글이 있게 된다면 일체의 세상 사이에 하늘사람과 아수라등이 마땅히 공양할 것이거니 마땅히 알지어다 이러한 곳은 바른탑이되어 나아갈 것이라 다들 마땅히 공경하며 공경하는 예의를 지어 두루 돌리어 서선 모든 꼿의 향기를 써서 그곳에 뿌리게 될것이니라 하시다 여기까지가 지경공덕분이다
다음은 열여섯번째로 能淨業障分(능정업장분)이다 = 漢文(한문)意域(의역)대로 푼다면 살아가면서 삶을 영위하기위하여 여러 가지나 여러 가지방면으로 일을하거나 활동을하거나 사람의 인식기관인 오감의 만족을 채우기위하여 행위를 짓게되는데 이러한 것을 業(업)= [일]이라한다 그러한 업을 행함에있어서 본의나 본의 아니나 또는 타인의 대상으로서나 허물이 만들어 지게되는데 이러한 허물이라는 것은 자타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 보단 병탈을 잡는 것이 많게된다 이래 이러한 병탈 소이 남에게 원성을 쌓거나 저주받는 주체가 되어선 그러한 것들이 일체 고뇌에서 벗어나는데 장애적인 요소 방해적인 요소가 되는지라 이러한 것을 잘 淨潔(정결)하게 해서 그 苦海(고해)의 늪에서 탈출 시킨다는게 이번章(장)의 명분에 해당하는 뜻이라 할 것이다 사람의 心狀(심상)에 장애적인 요소 꺼림이 존재하는 것은 그 합리적인 변재를 하지 못함에서 부터 생긴것이라 할것이라 설령 험상굿게 살생을 저질른다 하여도 합리적인 변재를 잘한다면 마음에 찌꺼기 죄의식은 잔존하지 않으리리고 보는바 어떻게 변재를 잘하느냐에 달렸다할 것이다 여기 착실한 신도가 지금 닭의 목을 비틀어서 잡는데 그 관찰을 어떠한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죄의식이 성립되기도 하고 그 아니고 아름다운 즐거운 해탈의 상으로 열반의 경계로 되기도 한다할 것이라 만약상 연약한 마음에 느끼길 그리고 평소 주지된바 情報(정보)因識(인식)을 갖고 思量(사량)을 하길 아 - 저것은 참으로 흉측하고 몰골이 험상굿은 모습이라 그 잡는자나 그 잡히는자나 참으로 보기 역겹다 잡는자는 닭의 목아지를 비트느라고 입까지 실룩거리며 돌아가고 잡힌 닭은 죽느라고 발버둥치는 모습 참으로 目不忍見(목불인견)이라할 것 같으면 소이 이렇게 관찰하는 感識(감식)性向(성향)에서 罪意識(죄의식)이라는게 지금 그렇게 그려져선 창출된다는 것이다 { 지금 마음의 靈覺(영각)이 그러한 것을 지옥이라 여기면 그 지옥이라는 것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 그런데 이것을 이러한 관념이나 관찰로 볼게 아니라 그 해탈맛 보이는 수순이 그러하게끔 되어 있다하면 그 마음의 꺼림을 치유하는 첫걸음이 된다 할 것이니 지금 닭을 잡는다 솥에다가 넣고 갖은 양념을 다하여 삶는다면 맛잇는 닭고기국이될 것이다 탁백이 한잔 걸친다면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으리 이렇게 변재한다면 소이 너나 모든 양상이 해탈의 경계에 들었다는 것이리라 그 닭이 거룩한 해탈의 경계 그 참맛을 보이는게 닭고기 향기로운 찜 맛이라 이러니 어찌 그 해탈의 경계가 나쁘다고 할것인가? 매우 즐겁고 황홀경에든 맛이라 이래 변재한다면 그 마음에 일체의 장애적인 요소는 사라져선 그 모두가 열반 극락에 있게 된다는 것이리라 이래 그 죽음 임종시에 임하여 이러한 좋은 경문을 들려줌으로 인해서 그 亡者(망자)의 靈駕(영가)가 편안함을 찾아서 장애적인 게 다풀어져선 극락으로 있게된다는 것이리라 그래선 그 佛家(불가)에선 그 일반 세속의 신도집에 초상이나면 그 염불을 해주는 관습이 있게 되었다할 것이리라 일체 마음에 걸림이 있다면 그 처녀가 애를나도 할말이 있다고 변재를 잘하라는 것이다 그래되면 모두가다 그 장애적인 요소가 풀려서 극락에 들게 된다하리라 이상의 말과 같을런지 아닐는지 모르지만 능정 업장분의 내용을 보기로하자 내용을 보면
復次(부차) 須菩提(수보리) 善男子(선남자) 善女人(선여인) 受持讀誦此經(수지독송차경) 若爲人輕賤(약위인경천) 是人(시인) 先世罪業(선세죄업) 應墮惡道(응타악도) 以(이) 今世人(금세인) 輕賤故(경천고) 先世罪業(선세죄업) 卽爲(즉위) 消滅(소멸) 當得阿 多羅三 三菩提(당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 須菩提(수보리) 我念(아념) 過去無量(과거무량) 阿僧祗劫(아승지겁) 於(어) 燃燈佛前(연등불전)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득치팔백사천만억나유타제불) 悉皆供養承事(실개공양승사) 無空過者(무공과자) 若復有人(약부유인) 於後末世(어후말세) 能受持讀誦此經(능수지독송차경) 所得功德(소득공덕) 於我所供養諸佛功德(어아소공양제불공덕) 百分不及一(백분불급일) 千萬億分(천만억분) 乃至算數譬喩(내지산수비유) 所不能及(소불능급) 須菩提(수보리) 若善男子(약선남자) 善女人(선여인) 於後末世(어후말세) 有受持(유수지) 讀誦此經(독송차경) 所得功德(소득공덕) 我若具說者(아약구설자) 或有人聞(혹유인문) 心卽狂亂(심즉광란) 狐疑不信(호의불신) 須菩提(수보제) 當知(당지) 是經(시경) 義(의) 不可思議(불가사의) 果報(과보) 亦不可思議(역불가사의) , 거듭 말하건대 아지 널리베풀음을 기다리는 그 널리 베풀기위하여 길을 딲는자들아 여러 선량한 사람들이 이글을 받아지녀 읽고 외우대 남들이 그 이렇게 받아지니고 읽고 외우는 이들을 보길 경멸히 여기고 천박시 여길 것 같으면 이렇게 보는사람들은 앞서 세상에서 삶을 영위키 위해 지은업의 허물로 인하여서 적응되길 악한 길에 떨어 지건마는 이러한 반대경향 의 까닭이 되는 것을 갖다가선 以(이)라하는데 앞서 세상이 아닌 지금세상 사람이 그렇게 경멸받고 천대받음으로 인하여서 앞서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은 일의 허물이 사라지고 없앰 받음으로 나아가고 적응되길 수용하는 자세의 그릇 허심탄회한 모습을 얻게되리라 하시다 [여기서 曲解(곡해)의 所持(소지)가 있는지라 몇마디 더 첨가하여 푼다면 이것은 쉽게말해서 죄짓지 말라는 말씀이 되기도 하는데 그런데 어찌 본다면 所以(소이) 斜視的(사시적)인 관점의 해석을 놓는다면 先世(선세)에 죄지은 이는 惡道(악도)로 떨어지라는 저주하는 말씀으로도 비춰질수도 있는 문제라 이렇게 얕은 머리로 궁굴려서 그러한 나쁜생각을 일으켜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악이라하는 것을 징계한다는 하나의 방편을 그렇게 들은 것일뿐 어떻게 부처님의 말씀이 내 잘되겠다고 남을 저주하는듯한 말씀을 할 것 인가이다 소이 내 理想(이상) 따르지 않고 않믿으면 너못되게 죽고 너 지옥에 떨어져라 또는 떨어진다 이래 협박 공갈하는 말로도 들리게 된다할 것인데 어찌 부처님이 그러한 못된 생각을 꾸려서 중생[깨우침받기전 未發開(미발개) 상태를 중생이라할수 있고 깨우침 성취한 상태를 佛(불)이라 할수 있는데 이는 마치 백지장이냐 거기 글이 써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들을 두렴에 떨게하고 협박할 것인가이다 이런 것은 모다 잘못된 해석에 속한다할 것이다 귀신의 추종무리들이 '믿으면 천당 않 믿으면 지옥' 하는거나 무슨 별반차이가 있을 것인가? 하는 말이되리라 부처님은 이러한 것 가리킴이 아니다 만약상 부처님이 그러한 뜻을 가졌다면 그것은 한없는 대승척 차원에서 중생을 제도하기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혹은 그렇게 인용하고 활용해서 예를 들을수도 있다 할것이나 그러한 극단적인 말은 大義(대의)에 어긋난 상이라할 것이다 [물론 귀신 理想(이상)파는 무리들도 저그理想(이상) 두목을 앞세워 그렇게 빙자 둘러댈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부처인지 귀신인지의 가늠하는 자는 잣대는 그 각자 관찰하는 자의 심상에 또한 달렸다할 것이다 그심상에 와 닿는 것이 佛(불)로 느낌 부처일테고 귀신으로 느낌 귀신일 것이다 ] 이렇게 惡道(악도)란거와 惡道(악도)에 떨어진다는 辱(욕)되다하는 相(상)도 또 저주하는 말로 들리게 한다하는 느낌의 相(상)도 이래해서 중생들로 하여금 拒否(거부)反相(반상)을 갖게함으로써 중생을 고뇌에서 구제하여 해탈시켜 열반의 경계에들게 일으켜 세우는 붙들어 주는 보살의 위치 또는 가르침을 주는 스승의 위치에 서게된다고도 할수 있으리라 ][ 소이 앞서 이제 사람들에게 輕蔑(경멸)의 말을해서 惡道(악도)에 떨어지는 저사람들은 그래 말해줌으로 인해서 이제 사람들의 선세죄업을 벗겨주는 보살님들이라 이래 말씀이 악도에 떨어지는 것이지 실상에 있어서는 그 福(복)을 지음이라 악도에 떨어질게 터럭끝만큼도 없고 오히려 열반의 경게에 나아간다는 것이다 화상이 제머리 못깍는다고 그 옆사람이 깍아주는데 그깍아주는 모습이 " "머리털이 봉두 난발일새 원 머리가 이렇게 짚쑤성이 같아서야 어떻게 그동안 사람 구실하고 견뎠냐?" 이렇게 말하는데 무슨 흠탈 될 것 이냐이다 ] 부처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지는데 구도자들아 내가 생각컨대 지나간 헤아림 없는 阿僧祗(아승지)劫(겁) 동안 연등불 부처님앞에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부처님을 나열하여선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일을 이어받아선 헛되게 지나침이 없었나니라 만일 사람들이 거듭 있어서 뒤끝나는 세상에 잘 이글을 받아지니어선 읽고 외우면 공덕 얻는바가 내가 여러 부처님전에 공양해서 쌓은 공덕 갖고는 백분에 하나에도 밋치지 못할 뿐만아니라 천만억으로 나누어서는 산가치로 셈하는 비유로선 잘 밋치지 못할 것이니라 구도자들아 만일 선량한 사람들이 뒤 끝나는 세상에 받아지님이 존재하여 이글을 읽고 외우어서 공덕 얻는바를 내가 갖추어서 말씀할 것 같음 일진대 혹도 사람들이 듣고서는 마음이 미치고 어지러움으로 나아가야 여우처럼 의심내는 잔꾀의 머리를 굴려서 "어찌 그럴건가?" 하고 믿으려 들지 않으리니 구도자들아 마땅히 알 것이니라 이글은 바르다하는 것 또는 뜻으로서도 그렇게 바르게 생각하며 의론할 것도 아니며 돌아오는 열매의 갚음도 역시 그렇게 바르다하는 생각으로 의론치 못할 것이니라 하시다 여기까지가 능정 업장분이다 [ 삐뚤어진 심기로 관찰한다면 어찌보면 석씨가 자신의 理想(이상)을 傳播(전파)하려고 꼬득이는말로 卑下(비하)할수도 있겠지만 아뭍게든 중생을 제도하고 지은 업장을 소멸시켜준다는 좋은 의미인데 그렇게 감언이설로만 여길게 아니란 것이다 ] [ 附言(부언)하여 푼다면 능정업장분은 그 시간성향에 의한 것을 늘어놓은 말씀인데 시간에 의해서 작용이 일어 行(행)이란 것을 낳고 그 행에 의해 業(업)이 形成(형성)되고 그 業(업)이 障碍的(장애적)인 알음알이 덩치 옭아메는 주체가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것을 역시 시간에 의해서 모두 푸는업을 행함으로 인해서 소멸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찬그릇을 비우는과정 그래야지만 다시 담기는 수용하는 그릇이된다는 것이다 계속 비웠다가 다시 담고 이것의 번복이 곧 작용이요 행의 행태라할 것이다 노염이 말하는 흙구덩이에 창호를 내지 않으면 그집의 역할을 하 지못한다는 말과 나무속을 후벼파내지 않으면 그 그릇 역할을 하지 못할것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맥락으로 흐른다할 것이다 그러니까 찼으면 비워야지만 또 담을 그릇의 위치가된다는 것이리라 자- 그러면 아승지겁과 연등불이라는 것을 해석해 보고자한다 劫(겁)에 대한 해석은 먼전번에 했고 아승지라는말은 아승기라는 말과 동의어 인데 백과사전에보면 아승기 阿僧祇 산스크리트 아상가(asanga)를 음역한 말로, 수리적으로는 10의 64승을 뜻한다. 갠지스강의 모래 수를 뜻하는 항하사(恒河沙)보다 더 맣은 수를 이르는 말이다. .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수는 일·십·백·천·만·억·조 정도이고, 조의 만배는 경(京), 경의 만배는 해(垓), 해의 만배는 자이다. 자 다음으로 각각 만배씩 더하여 양(穰)·구(溝)·간(澗)·정(正)·재(載)·극(極)·항하사가 이어진다. 아승기는 항하사의 만배이며, 아승기 다음으로는 나유타(那由他)·불가사의(不可思議)·무량대수(無量大數)가 이어진다. 항하사부터는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상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燃燈佛(연등불)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에게 授記(수기)를 준 부처. 불교에서 과거불로, 석가모니의 전생에 수기를 준 부처이다. 산스크리트로는 Dipa涵kara라 하는데, 이를 의역하여 정광(定光)여래·등광(燈光)여래·보광(寶光)여래·정광(錠光)여래·연등여래라고 하며, 음역하여 제화갈라·제원갈이라고도 한다. 과거세에 유동보살로서 보살계를 닦고 있을 때 석가는 스스로 부처가 되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다. 그러던 중 어느날 연등불(燃燈佛)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길가에서 기다리다가 7송이의 연꽃을 부처에게 공양하였다. 연등불은 미소로써 이를 받으시고는 ‘너는 미래세에 석가모니불이라는 부처가 될 것이다’라는 수기를 주셨다고 한다. 혹은 연등불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는 공양물을 준비하지 못해 스스로 진흙길에 엎드려 몸을 밟고 지나가시게 하여 수기를 받았다고도 한다. 이를 연등불수기(燃燈佛授記)라 하며, 불교에서 보살의 개념이 생긴 연유이다. 또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이 부처가 과거 일월등명불(日月燈明佛)의 여덟 왕자 중 막내인 법의였다고 하며,《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지주품(地主品)에는 이 부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 구원겁에 지주(地主)라는 왕이 있었다. 장차 염부제(閻浮提)를 다스리게 되어 있었다. 왕에게는 선명이라는 대신이 있어 염부제의 반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였는데, 후일 선명이 왕이 되었다. 선명은 일월광(日月光) 부인과의 사이에서 등광(燈光)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등광이 태어날 때 염부제는 온통 금빛에 둘러싸였고, 태어난 아기는 부처의 32상을 두루 갖추었다. 이렇게 태어난 등광은 29세에 성불하였다. 선명은 40억의 남녀와 함께 등광불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듣고, 등광불은 지주왕이 있는 곳에 이르어 왕과 백성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선명은 그 후 7만 년 동안 4사(四事)로써 등광불과 비구들을 위해 공양하고, 등광불이 멸도하자 다시 7만 년 동안 그 사리에 공양하였다. 그 인연공덕으로 후일 염부제에 태어나 성불하고 부처님이 되었다.’연등불의 본연(本緣)을 설명한 것이다. 이렇게 불가의 해석을 들으면 매우길고 복잡 다단하고 정신의 혼동이 오기가 쉬운지라 이래 이런 말씀은 그저 한낫 고전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치부하고 그 數的(수적) 셈적 量的(양적) 이런 것을 단순하게 시공의 원리로 보아서 시간과 공간으로만 팍 주린다면 이것의 변형을 어떻게 노아 관찰할수 있는가에 따라서 그해석의 관건이 메였다 할것이니 여기서 과거 무량 아승지겁을 말하는 것은 그 시간성향의 양적인 표현이리라 이것을 그 無時(무시)로 보아서 또는 有時(유시)로 보더라도 그 공간의 성질로 변형시켜 놓고보면 소이 공간 폭의 확대와 축소에 해당한다 할 것인데 이것을 어느 중심점을 설정하고 그 주위 환경배치 여러 群落(군락)相(상)으로 그려 본다면 視野(시야)에 들수 있는 한군데 다 들은 것으로도 관찰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연등불이라는 부처님을 말씀하셨는데 이또한 이러한 관점으로 놓고 본다면 소이 자아를 내면과 겉모양의 行(행)을 분리하여 놓고 관찰하는 행태로도 그릴수가 있고 여러 나유타 부처님 또한 주위 환경 여러 대상 배치국이 될 수가 있다할 것이다 이래 무대의 막이 오르고 연극연출이 있게되는 것이다 연극 연출은 소이 여러상을 그려내어선 말씀하시는 모습이라할 것이다 연등불 부처의 설정은 소이 자신의 수양 득도성불에 도움을 얻기 위하여 對相(대상)으로 배치한 또하나의 자신이라면 자신 또는 그 여타 사물상으로서 깨우침에 보탬이되고 보조역할도되고 또는 기타 역할등을할 수 있는 그러한 가상적 설정 배경이나 환경이 된다는 것이다 또는 비춰지는 거울이되기도 한다 하리라 등불이라하는 것은 비추고 또 비춰보고등 할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빛나기도 한다할 것이고 그 어둠에 상반되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하리라 소이 깨침에 정수는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빛을 발하게되면 비추게 되고 비추게되면 그 비춰볼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하는것도 형성될 것이라 이래 거울이라 하게도하고 이렇게 엇비슷하게 유추하다 보면 온누리 우주만상이 그 모두 연등불이요 또 기타지목하는 각성체 佛(불)이된다 하리라 이렇게 한번 풀어봤다 ] 若爲人(약위인) 輕賤(경천) 是人(시인) 先世罪業(선세죄업) 應墮惡道(응타악도) 以(이) 今世人(금세인) 輕賤故(경천고) 先世罪業(선세죄업) 卽爲(즉위) 消滅(소멸) 當得阿 多羅三 三菩提(당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 이는 해석 관념할 탓이라는 것이다 이말씀을 좋게로도 비약하여 해석할수 있는데 그 보살적 차원으로도 노아선 해석해 볼수가 있다할 것인데, 약위인경천 시인 선세죄업응타악도는 = 보살이라는 것이다 저주하는 말이 아니라 없신여김을 주는 모습을 지어선 그 후달자로 하여금 奮發(분발)精進(정진)시키는 보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악도에 떨어지는 것 처럼 지어보이는 것이지 實相(실상)에 있어선 惡道(악도)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요 그 功課(공과)로 놓고 볼진대 열반극락에 부처님이 다음果(과)를 얻을 부처들을 위하여 그래 화하여 보인 것이라는 것이다 소이 쇠를 용광로에 넣고 불로 달굼질 하지 않으면 좋은 보검을 이룰리 만무라는 것이다 그래선 그 용광로나 그 달굼질하는 불역할을 하는 것이 그 수도자 들을 보기를 경멸하는 것처럼 보는데서도 그 의를 찾을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경멸 당하는 수도자들은 그것을 경멸당하는 것으로 느낌을 받을것이 아니라 지도하는 채찍 소이 당한다는 관념을 버리고 성취 한다는 관념을 갖는게 바른 자세라는 것이요 그럴려면 수반되는 여러 전개되는 상항을 그 고통 시련이나 인욕으로 그릴게 아니라 도리혀 긍정적인 사고에 의해서 환희심을 일으켜야만 한다할 것이다 소이 할활타는 불구덩이나 바늘 방석의 환경이 조성되는 가운데 처해 있더라도 이것은 가혹한 탄압이나 핍박이 아니라 극달의 단계에 오르기위한 막바지 성취 과정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다면 하나도 병탈 잡힐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한 의미를 인용 악용하려드는 자들의 밥역할 할 것 까지는 없다 할 것이고 미련을 떨면서 忍耐(인내)라하는 것을 시험할 필요도 없다 할 것이다 내생각컨대 장좌불와 이십년이 바보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지금 일어난다 물론 그러한 남의 공과를 내려 깍으려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그 미련한 곰돼지로 보일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할것이기 때문이다, 네놈이 그런 눈을 가져서 그래 보인다고 무학의 말을 빌릴 것 까지야 없겠지만 심보 고약한 놀부 심청떠는 눈엔 그렇게도 비춰진다는 것이다 , 이렇다면 금세인 경천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당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는 그 奮發(분발) 精進(정진)하여선 득도 성불한 형태를 그려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前者(전자)의 뜻이 보살 관점이되는 것이라 하등에 瑕疵(하자)잡을 건덕지의 말이될게 없다할 것이나 다만 그 끌어다 붙치는 구성된 용어가 그 읽는이로 하여금 좀 과격하게 들릴 뿐이라는 것이다 * 釋尊(석존)의 目的(목적)은 大達覺醒(대달각성) 成佛(성불)에 있고 그러한 성불의 기초가 되는 것은 大學(대학)에 말을 빌릴 것 같으면 定而后(정이후)에 能靜(능정) 靜而后(정이후)에 能安(능안) 安(안) 而后(이후)에 能慮(능려)라고 安(안)을 重視(중시)하는데 安(안)이되게 할려면 우선은 그 意識(의식)을 바로 잡아주는데 있는데 그 意識(의식)을 바로잡아 주는데에는 공포를 자아내선 두려움을 갖게 하거나 불안한 의식의 중추가 되는 허물이라하는 것으로 부텀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것이라 소이 一切(일체)의 무엇을 業(업)을 지어갖고 있던간 그 罪意識(죄의식)으로 부터 해방 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니 일체 고만 죄없다 하면 된다할 것인데 사람들은 그 머리에 잘못된 情報(정보)因識(인식) 刻印(각인)으로 말미암아선 잘못된 思觀(사관)에 의해 의식이 잘못된 방향 설정을 하여선 흐르게 됨인데 이런 것을 바로 잡아줘야 한다는 것이라 일체의 人間(인간)設定(설정)한 경우라 하는데에 얽메인 是非(시비)正邪(정사)의 設定(설정)은 그 解脫(해탈)에 방해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허다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의식구조로 부텀 벗어나게하는 것이 그 편안하게하는 捷徑(첩경)이 된다 할 것인데 아-- 천재지변이 일어나선 숫한 생명이 소멸되는 것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 왔는데 그렇다면 그러한 천재지변의 의식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그것을 죄악시하여 죄의식으로 본다면 그 천재지변이 아무리 저절로 일어났다 하지만 그 저절로라는 것의 주체는 그럼 죄의식이 있는 것으로 치면 그러한 죄의식이 산더미 보다 우주보다 더클진데 아무런 그에대한 업장 윤회를 가리키지 않고 오직 몇몇의 동식물 따위나 인간에게만 죄의식 같은 것을 심어 준다면 그 이러한 기준 부텀이 잘못되었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할 것이 아닌가이다 천재지변은 둘째치고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전쟁을 보자 전장마당에 숱한 죽엄이 일어나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업장 죄의식이 된다 할 것인가 누구던 그에대한 책임을 지는자가 의식으로선 결론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그런 것은 말하자면 정책담당자 정책을 결정한자가 져야할 것인데도 그러한 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시하고 아무런 죄의식 도리혀 그 대의 명분을 그럴사하게 갖추어선 공과로 미화하기를 즐긴다 그러면 그것은 죄의식 이런 것을 떠나선 보시 보살관점으로 돼어선 소이 부처보다 더한 그러한 대달각성한 권한있는 지위를 드러낸것으로 된다할 것인데 이래 하는 자들은 그러한 사소하다하면 사소하다 할 수 있는 잡다한 의식엔 구애되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청부적인 살생을 하여도 그 죄의식 이라 하는 것이 없다 할진대 다른 사소한 피지배를 받는 행동을 하는 자들이야 그 지배자들이 설정한 테두리안에서 활동하는 것인데 그 지배자들은 그래 大殺傷[대살상]을 해도 죄의식이 없고 그 지배를 받는 자들은 조그만큼의 설정된 법을 위반해도 죄의식을 갖게 한다면 그것은 형평적 차원에도 어긋날 뿐더러 요는 그러한 의식을 갖게하는 것은 제도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소이 지배자가 피지배지를 다루기 용이 하기 위하여 설정한 감언 꼬득이는 덫과 같은 의식을 갖게한 것에 불과 한지라 그 피지배자 들은 하나도 그 덫에 치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왜곡의 소지가 있고 또 그렇게 부추기는 亂道者(난도자)의 말 갖지만 그 차원을 달리해 보면 논리 정립이 그렇게 된다는 것으로서 현실적 사회 규범과는 좀 乖離(괴리)가 오는 말도 된다할 것이다
다음은 열일곱번째 究竟無我分(구경무아분)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구경을 할려면은 배가불러야 한다는 뜻이다로 한다면 그 해석이 좀 잘못 되었을는지 모르나 아주 않통한다곤 하지 못하리라 漢文(한문)意域(의역)대로 푼다면 궁극점이라는게 있는가하고 아무리 탐구하여도 마침내 내라 할게 없다 하는 뜻의 말씀 나눔章(장) 이라는 것이다 내용을보면 爾時(이시) 須菩提(수보리) 白佛言(백불언) 世尊(세존) 善男子(선남자) 善女人(선여인)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발아누다라삼막삼보리심) 云何應住(운하응주) 云何降伏其心(운하항복기심) 佛告須菩提(불고수보리) 若善男子(약선남자) 善女人(선여인)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者(발아누다라삼막삼보리심자) 當生如是心(당생여시심) 我應滅度一切衆生(아응멸도일체중생) 滅度一切衆生已(멸도일체중생이) 而無有一衆生(이무유일중생) 實滅度者(실멸도자) 何以故(하이고) 須菩提(수보리) 若菩薩(약보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卽非菩薩(즉비보살) 所以者何(소이자하) 須菩提(수보리) 實無有法(실무유법)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者(발아누다라삼막삼보리심자) 須菩提(수보제) 於意云何(어의운하) 如來(여래) 於燃燈佛所(어연등불소) 有法得(유법득) 阿 多羅三 三菩提不(아누다라삼막삼보리부) 不也(불야) 世尊(세존) 如我解佛所說義(여아해불소설의) 佛於燃燈佛所(불어연등불소) 無有法(무유법) 得 阿 多羅三 三菩提(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 佛言(불언) 如是如是(여시여시) 須菩提(수보리) 實無有法(실무유법) 如來得阿 多羅三 三菩提(여래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 須菩提(수보리) 若有法(약유법) 如來得阿 多羅三 三菩提者(여래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자) 燃燈佛(연등불) 卽不與我授記(즉불여아수기) 汝於來世(여어내세) 當得作佛(당득작불) 號釋迦牟尼(호석가모니) 以實無有法(이실무유법) 得阿 多羅三 三菩提(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 是故(시고) 燃燈佛(연등불) 與我授記(여아수기) 作是言(작시언) 汝於來世(여어내세) 當得作佛(당득작불) 號釋迦牟尼(호석가모니) 何以故(하이고) 如來者(여래자) 卽諸法如義(즉제법여의) 若有人(약유인) 言如來得阿 多羅三 三菩提(언여래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 須菩提(수보리) 實無有法(실무유법) 佛得阿 多羅三 三菩提(불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 須菩提(수보리) 如來所得阿 多羅三 三菩提(여래소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 於是中(어시중) 無實無虛(무실무허) 是故(시고) 如來說一切法(여래설일체법) 皆是佛法(개시불법) 須菩提(수보리) 所言一切法者(소언일체법자) 卽非一切法(즉비일체법) 是故(시고) 名一切法(명일체법) 須菩提(수보리) 譬如人身長大(비여인신장대) 須菩提言(수보리언) 世尊(세존) 如來說人身長大(여래설인신장대) 卽爲非大身(즉위비대신) 是名大身(시명대신) 須菩提(수보리) 菩薩(보살) 亦如是(역여시) 若作是言(약작시언) 我當滅度無量衆生(아당멸도무량중생) 卽不名菩薩(즉불명보살) 何以故(하이고) 須菩提(수보리) 實無有法(실무유법) 名爲菩薩(명위보살) 是故(시고) 不說一切法(불설일체법)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 須菩提(수보리) 若菩薩(약보살) 作是言(작시언) 我當莊嚴佛土(아당장엄불토) 是(시) 不名菩薩(불명보살) 何以故(하이고) 如來說莊嚴佛土者(여래설장엄불토자) 卽非莊嚴(즉비장엄) 是名莊嚴(시명장엄) 須菩提(수보리) 若菩薩(약보살) 通達無我法者(통달무아법자) 如來說名眞是菩薩(여래설명진시보살) , 이때에 구도자들이 스승님께 사뢰올리대 세존이시여 여러 선량한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여서 허심탄회할 마음을 일으킬리는 어느데 적응하여 머물며 어떻게끔 그 마음의 五慾(오욕) =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 즉 오근(五根)이 각각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의 다섯 가지 감각대상, 즉 오경(五境)에 집착하여 야기되는 5종의 욕망이다. 또한 오경을 향락하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전반을 뜻한다. 그것이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대상 그 자체는 욕망이 아니지만 욕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므로 오경도 오욕이라고 부른다. 또 재욕(財欲) ·성욕(性欲) ·식욕(食欲) ·명예욕(名譽欲) ·수면욕(睡眠欲)의 다섯 가지도 오욕이라고 말한다. ] 七情(칠정)= [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의 7가지 정을 뜻하는 말이다. ]등 불타는 욕망 사리 사욕등 여러가지 번뇌스런 생각 일어남을 다스리어 항복 받으리이까? 부처님이 구도자들에게 고하시대 만약 선량한 사람들이 열심히 정진하여 허심탄회할 마음을 일으킬리는 마떵히 다음과 같은 마음이 생기게 하되 내가 마땅히 모든 일체의 중생들의 번뇌를 소멸하여주고 고뇌의 늪에서 구제하여 줄것이라 하라 그리고는 일체 중생을 향하여 모든 갖갖은 고뇌를 소멸 시켜주고 고뇌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데 노력을 열심히 함에 임하여서는 없고 있고간을 논할 것 없이 한사람의 중생이라도 고뇌를 소멸시켜주고 고해의 늪에서 구제하길 알차게 할것이니라 [야- 썩빠진 x상넘들아 너들이 길이 하나라고 아니했으니 이래풀어도 말 않된다곤 못하리라 이넘의 삭기들아 내말이 틀렸음 틀렸다 해봐라 이열덜넘의 삭기들아- ]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일 널리 구제하길 의도하는 무리들이 여러 모양이라하는 것은 그 여러 모양아닌 상태에로 나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러한 구제하길 의도하는 무리들이 여러모양이 존재한다할 것같으면 널리 구제하려는 의도를 가진자라고 볼수 없을 것이나니 널리 구제하길 의도하는 자는 그 널리 구제한다는 테의 올가메는 속박에서 벗어나서 그 아닌상태로 나감을 가리킴이나니라 [ 집착하는 데에는 그 구제할 것도 궁색할 뿐더러 찾아 나선다해도 그 있는 것은 한계 설정에 묶여 있을 것이라 이래 그 구제한다는 생각의 집착에서 벗어나서 평소처럼 앞에 닥친 것을 열심히 행하는 가운데 널리 구제할수있는 기반이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리라 사람이 기본적인 양심을 지켜선 자신의 삶에 충실히하고 한가로운 여분이 있다면 眼前(안전)에 드는 쓰레기래도 줍는게 보살의 행이라할 것이다 검은 마음속에도 보살의 행이 있다면 있는것이라 도둑질해서 제한몸 잘 쳐먹고 기름지게 하는것도 제한몸 잘 추스르는 것이라 이래 보살이 된다하리라 배불리 먹고 기름지게하고 번드름하게 차려입고 길을 나서면 남들한테 타산지석이 되는지라 그 치하 하는 말과 뜻은 기본적이요 그 시샘하고 질투하고 하는 마음을 남들에게 심어줌으로 인해서 뒤쳐지지않고 낙오 되지 않고 나가려하는 마음 열심히 정진케하는 길잡이가 될것이라 이래 도둑질해 쳐먹어도 스승이된다 할 것이니라 ] 왜 그런가하면 구도자들아 실로 [무엇은]있고 [무엇은]없다함음을 따져 논하는 견해나 주장[사상 이념등] 따위가 허심탄회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허심탄회한 마음을 일으키는 도구나 방법도 모르고 무조건하고 허심탄회함을 일으킬수는 없는것이라 도구와 방법이 이것저것 논하는 가운데 궁리와 변재가 생겨선 남의 주장도 포용할 수가 있는 수용자세가 된다할 것이다 구도자들아 너들 뜻은 어떠하냐? 너들 깨침에 혹간에 보탬을 줄수도 있는 오는듯 한이 비춰보는 배경국 연등불 처소에서 무슨 견해나 주장 따위가 있어서 허심탄회한 상태가 되었다 하느냐? 아니옵니다 스승이시여 우리들이 선생님의 의론하시는바의 뜻을 풀기로는 스승님께선 맵새[매무새]를 비춰볼수 있는 연등불이라 하는 것에서, 있고 없다하는 주장이나 견해에 의하여 허심탄회함을 얻었나이다 ['아-' 밝은 등불있는 곳에서 옷에 티겁지가 뭍었는지 얼굴에 티겁지가 뭍었는지 아님 고운 매무새가 되었는지 알수 있을것아닌가 그래서 티겁지는 '없다' 하고 그리고 옷매무새는 단장하게 잘차려입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살펴볼수 있을 것 아닌가 이런 내 논조다 이래 뒤죽박죽으로 말해도 말아니라곤 할수없는법 모든 것이 다 각성체 부처님이 말씀이 되나니 오물도 부처요 구정물도 부처요 고약한 냄새도 부처니라 알아들었느냐 어리석은 중생들아 -] 부처님이 말씀하시대 그갖고 그갖나니라 구도자들아 실로 있고 없음을 따져 논하는 견해나 주장으로 인하여 너들에게 깨침에 혹간에 덕이될가 하는이 허심탄회함을 얻었나니라 구도자들아 만일 있다기만 한다하는 주장이나 견해로 인하여 너들에게 깨침에 덕을 혹간에 줄 수 있다 하는이 허심탄회함을 얻었다할 것 같을진대 비춰보는 등불[촛불전등불등]이 ' 너참 어떻다하는 식으로 ' 한편으로 치우쳐보이는 내게 삐딱하다 하는 마음이 네게 들게 하듯이 등불이 내 앞으로 오듯 내가 휘- 둘러보는 세상환경에 내가 잘 차려 입었다 그래선 그 방면으론 아주 근사하고 멋있다함을 비춰 알게 않으렸만은 실로써 이렇게 치우치지않고 있다하기도하고 없다하기도하는 견해나 주장 따위로 인하여서 허심탄회함을 얻음일새 이래 무 불편부당한지라 이러므로 등불에 비춰볼적에 내가 이렇게 말을 짓게하대 너 앞으로 오는듯한 세상에 응당히 잘 차려입은 모습을 지은 것이라 이래 근사하고 멋있고 아름답다 비춰 알게 함일 새니라 왜냐하면 깨침에 덕을 주려하는이는 모든 견해나 주장 따위가 자신의 변재를 잘한 내킨 마음으로 드넓게 수용하여 나간것이니 만일 사람들이 있어서 깨침에 덕을 주려 하는이 허심탄회함을 얻었다하면 구도자들아 실로 알찬 있다하기도하고 없다하기도하는 견해나 주장따위로 인하여서 대달각성한 주체 의 모양 허심탄회함을 얻은 것임이 나니라 덕을 주기위해 오는 듯 한이 얻은 허심탄회 함이라 하는 것은 이가운데는 없다하기도하는 알참과, 없다하기도하는 헛됨이 나니라, 이러므로 덕을주기위해 오는듯한이 일체견 해나 주장따위를 들먹임이 모다들 대달각성한 견해나 주장따위라 하나니라 구도자들아 직설적으로 말하는 일체의 견해나 주장따위라 하는 것은 그 일체주장이나 견해라하는 테두리 속박으로부터 훌훌털어버리고 그아닌상태 드넓은데로 나가는 것임일새 이러므로 이를 갖다가선 일체 견해나 주장이라 하였나니라 구도자들아 비유컨대 사람의몸이 성장해서 커진거와 같니니라 수보리 말씀을 받아 말하대 스승이시여 지금 깨침에 덕을 보태기위해 오는 듯 한이 인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의 몸이 성장해서 커진것이라 하옴도 소이 안목이 드넓어진 것을 가리킴이온대 그러한 안목이 드넓어졌다하는 생각의 테두리 속박에서 벗어나서 그 아닌 상태 드넓은 곳으로 나아감을 가리킴일새 이를 갖다가선 커진몸이라 하였습니다 구도자들아 널리구제하길 의도하는자도 역시 이처럼 이렇듯 바른말씀을 일으키대 내 적당하게 셈없은 여러 삶들의 고뇌를 소멸시켜주고 고해의 늪에서 건져줄 것이라 하면 이를 갖다가선 널리 구제하려한다는 의도라는 테의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서 그 아닌데로 나간것이니 왜냐하면 구도자들아 실로 알차게 없다하기도 하고, 있다하기도 하는 견해나 주장을 갖다가선 널리 구제하려는 의도라 할 것일 러니라 이러므로 대달각성한이가 일체 주장이나 견해를 말씀하는 것이 없다하기도하는 나와 등, 여러 없다하기도하는 것,이나니라 [없다하기도한다하면 있다하기도한다하는 것은 제절로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리라 ] 구도자들아 만일 널리 구제하길 의도하는 자들이 이런말을 만들대 내 적당하게 부처님의 흙[깨달음의 세계]을 아주 원대하고 화려하게 꾸밀 것이라하면 이를 갖다가선 널리 구제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할수없을 것이나니라 왜냐하면 오는 듯 한이가 말하는 드넓고 원대하고 화려하다하는 대달각성한 흙[세계]이라하는 것은 그러한 그림의 테 속박 얽어메는 것으로부터 훌훌 털고 벗어나선 그 아닌 상태 드넓은 곳으로 나아감이요 이를 갖다가선 원대한 웅지가 담긴 화려함일새니라 함이나니 구도자들아 만일 널리 구제하려함을 의도하는 자들이 내가 없다 하기도하는 견해나 주장따위를 통달한 것을 갖다가선 오는 듯 한이 참으로 바르다할수 있는 널리 구제하려함을 의도함을 뒀다할 것이나니라 [ 여기까지가 구경무아분 이다 그러니 구경 싫컷 하셨는가? ] *안목을 드넓힌다면 관찰자의 짚히는 관념에 모든 게 존재할 수도 있고 그에 대한 가치기준을 부여하거나 설정할수도 있다는 것이니 이러모로 그 무엇을 지칭하던간 그것을 어떻게 관찰 하느냐에 따라서 선량함이냐 그 아니냐가 결정된다는 것이라 그래서 그 지옥으로보는 눈은 그 지옥곁을 맴도는 각인종자 정보입력시스템화 되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라 世人(세인)이 勸善懲惡(권선징악)의 手段(수단)을 삼은게 도리혀 사람의 심신을 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쇠뇌시킨 결과를 낳게 되는 수도 있다는 것이라 남은 극락으로 느껴 즐기는데 그대만이 그것은 지옥이라 한다면 그 관찰하는 눈이 잘못 되었어도 한참 잘못된 것으로 저- 극락을 즐기는자에겐 비춰진다는 것이다 소이 그 사희집단 통념상 평소 그렇게 머리에 각인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나쁜 것이나 선한 것으로 되는 것이지 그 원래 일정한 기준 설정이 없는 것이다 각 人種(인종)마다 지방마다 풍습이 달라서 그 삶을 영위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라 이런데 이것을 한가지 눈으로만 볼 것인가 이런 내 견해이다 이렇담 이런 논리를 쫓는다면 그 전장마당의 숫한 죽엄도 마귀 사탄이 벌이고 먹은 것이 아니라 그 부처나 하느님이라 하는 것이 음식으로 잡순 모습이 그렇다 해도 하등에 물고 늘어질 건덕지가 없다할 것이다 어찌 천상에 환경과 돌아감이 인간계의 생김 형상과 똑같다 觀(관)할 것이며 굳이 틀린다고만 할 것인가 이다 이는 모두다 사람의 관찰관념에서 구분 되어져선 이렇쿵 저렇쿵 하는 것이지 그 준칙이나 본래의 正邪(정사) 규범이 없고 흑백양분이나 數量的(수량적) 多分(다분) 多比(다비)가 있을수 없다 또는 그리 꼭 우기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래 지옥이 지옥이 아니요 지옥은 없다에 도달하게 되었다 제눈이 지옥이라서 지옥이 될 뿐이지 모두 크게 사무치도록 혁파 깨달음의 진수 結成(결성)體(체)들이 그 활동하는 여러상 가운데 그래 지어 보이는 하나의 생긴 바퀴 형태라는 것이라 소이 부처님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열여덜번째로 一切同觀分(일체동관분) 이다 = 漢文(한문) 意域(의역)대로 푼다면 모든 것 일체를 같은 관점으로 본다는 말씀 나눔章(장)이라는 뜻이다 내용을 보면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如來有肉眼不(여래유육안부) 如是(여시) 世尊(세존) 如來有肉眼(여래유육안)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如來有天眼不(여래유천안부) 如是(여시) 世尊(세존) 如來有天眼(여래유천안)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如來有慧眼不(여래유혜안부) 如是(여시) 世尊(세존) 如來有慧眼(여래유혜안)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如來(여래) 有法眼不(유법안부) 如是(여시)世尊(세존) 如來(여래) 有法眼(유법안)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如來(여래) 有佛眼不(유불안부) 如是(여시) 世尊(세존) 如來(여래)有佛眼(유불안)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如恒河中所有沙(여항하중소유사) 佛說是沙不(불설시사부) 如是(여시) 世尊(세존) 如來說是沙(여래설시사)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如一恒河中(여일항하중) 所有沙(소유사) 有如是沙等(유여시사등) 恒河(항하) 是諸恒河(시제항하) 所有沙數(소유사수) 佛世界(불세계) 如是(여시) 寧爲多不(영위다부) 甚多(심다) 世尊(세존) 佛告須菩提(불고수보리) 爾所國土中(이소국토중) 所有衆生(소유중생) 若干種心(약간종심) 如來悉知(여래실지)何以故(하이고) 如來說諸心(여래설제심) 皆爲非心(개위비심) 是名爲心(시명위심) 所以者何(소이자하) 須菩提(수보리) 過去心(과거심) 不可得(불가득) 現在心(현재심) 不可得(불가득) 未來心(미래심) 不可得(불가득) 구도자들아 너들 생각은 어떠하냐? 깨침에덕을 주기위하여 오는 듯 한이 육신에 눈을 가졌다 하느냐? 그같사옵니다 스승이시여 여래께선 육신의 눈을 가졌나이다 구도자들아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 하늘 눈도 가졌다 하느냐? 그같사옵니다 스승이시여 여래께선 肉眼(육안)의 눈보다 차원이 다르다하면 다를수 있는 귀신들의 領域(영역)일수도 있는 하늘의 눈도 가졌다 하올 것입니다 구도자들아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 지혜의 눈도 가졌다 하느냐? 그같사옵니다 스승이시여 선생님께선 슬기롭게 대처할수 있는 지혜의눈도 가졌다할 것이옵니다 구도자들아 여래 견해나 주장 따위를 늘어놓을수 있는 안목도 지녔다 하느냐? 그같사옵니다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사상이념등 따위를 조리있게 규합하여 내세우는 합리성의 변재따위등도 가졌다할 것이옵나이다 구도자들아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 그케 통달한 깨침의 안목도 지녔다 하느냐? 그렇사옵니다 스승이시여 선생님께서는 대달각성한 안목도 지녔다할것이옵나이다 구도자들아 너희들 뜻은 어떠하다더냐? 갠지스강 가운데 모래 존재하는바를 대달각성한 이치를 드러내 보이기위하여 대달각성한 주인된 입장으로써 예를 들은 말씀을 한적이 있느냐? 그렇사옵니다 스승이시여 여래께선 이 모래를 들어 말씀하신적이 있나이다 구도자들아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만일 하나의 갠지스강 가운데 존재하는바의 모래 이같은 모래 등수만큼 갠지스강이 존재하고 이모든 갠지스강의 존재하는바의 모래수 만큼의 대달각성한 깨침의 세계가 존재한다할 것같으면 정녕코 많다하지 않으랴? 심히 많사옵니다 스승이시여 대달각성한 정등각자 부처님께서 구도자들에게 고하샤대 너희들은 듣거라 이많은 국가의 흙[세계]가운데 여러 삶을 영위하는 것이 존재할 것인바 이렇듯 많은 종류의 먹은바 마음들을 너희들에게 깨침에 덕을 주기위해 오는듯한이 모두다 아나니 왜냐하면 여래[오는 듯 한 이]가 말하는 모든 마음이라하는 것은 다 그러한 마음이란 테두리 속박 얽어 메는데서 훌훌털고 벗어나서 그 아닌 상태를 삼은 것을 뜻함이요 이를 갖다가선 마음이라 하였음일새니 왜냐하면 구도자들아 과거의 마음이란 것도 그렇게 바르게 얻지못할 것이며 현재의 마음이란것도 그렇게 바르게 얻지못할 것이며 미래의 마음이란것도 그렇게 바르게 얻지 못할 것일러니라 하시다 [ 附言(부언)한다면 求道者(구도자)들을 깨이게 하기위해 오는듯한이 시간성향을 초월했기때문이라 그 시간이라하는 거와 그 공간이라하는 것이 대달각성한 주체의 몸 여래 일신의 몸이기 때문이나니라 또 그 벗어치운상태로 그벗은 껍데기상을 그벗은자가 시야속에 축소시켜 갖고 있다던가 또 그아니고 더는 미련없다하고 내 동댕이친 상태로도 한다해도 무슨 말이되지 않는다곤 할수 없으리라 ]
[ 만일 시공현상이나 그 아닌현상이나 그리거나 그리지않는 현상이거나 우주등 어떠한 것이든 대달각성한 주체를 하나의 덩치로보아 사람의 몸이라 예를들 것 같으면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데는 각종 주위환경등 기타 사람이 영위할수 있는 여건이 수반되어 있다할 것인데 사람이 옷을 입으면 자연 옷과 살상간에 그 기생하는 여러종류의 생명체가 있다고 가장할 것같으면 그많은 생명체나 사물중에 기어가는 이[蝨(슬)]를 한예로 들것 같으면 기어가는 이는 지금 자신이 은신한고 삶을 영위할수 있는 사람의 몸둥아리라 하는게 자신이 지금 어떤행위를 하는지를 모를것이라 여기지만 실제에는 사람은 그 이가 한마리 솔솔 기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여러 중생이라 하는 것을 이렇게 사람의 두뇌로써 감식할 수 있는 살갓과 옷사이의 이로 여겨본다면 소이 그 하는 행동이나 먹은바 뜻을 그 사람의 두뇌는 감지하고 있다할 것이라 이래 안다는 것이다 앞서전에서도 말했지만 우주는 하나의 허울이라 이러한 허울현상을 벗어치우는 위치에 도달한다고 가장 할것 같으면 그리곤 그 벗어치운 껍데기 상을 시야에 들어오는 조그마한 것을 관고할 것 같으면 그 조그마한 속에서 갖은 별것들이 작용하는 현상을 우리는 관찰할수 있다할 것이다 이래서 자꾸 벗어치우고 그 드넓은 상태 수용 자세로 나아가라하는 말씀이 이래 하는 말이라 할 것이다 열심히 정진 수양하여 무한대의 깨침의 세상 수용태세를 확립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여지것 벗어치운 해탈 껍데기라하는 것은 그 안중에도 작게 보이는 그런위치에 서게도 된다할 것이다 공간을 껍데기로보고 시간을 껍데기로 보는데야 無時(무시)의 현상이 존재하는거와 같은지라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마음이라는게 따로이 존재할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산을 펴선 비올 때 잘 쓰는데 혹간에 우산이 낡던가하여 비가 새는수가 있는데 이것은 그 우산 갓이 구멍이 뚤렸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이렇게 펼쳐든 우산을 하나의 사물 이라 가장할 것같으면 이를 테면 하늘이라 가장할수도 있고 이세상 공간화 현상이라 가장할수도 있다 그런데 그 구멍뚫린 현상을 시간의 현상 모양이라 가장해보자 우산에 구멍은 한 개도 뚫릴 수 있고 여러개도 뚫릴수 있는데 여러게 세게정도 뚫고서는 그 한구멍마다 과거 현재 미래라 가장해볼 것 같으면 그과거라 하는거나 현재라 하는거나 미래라 하는것의 우산구멍을 빠져선 밖같으로 공기흐름이 나와보니 밖같은 커다란 하나의 공기형태를 지어선 나눌게 없는 그러한 현상이었다는 것이리라 그런데 우리가 그우산으로 말미암아서 과거나 현재나 미래라는 것을 그렇게 구분지어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리라 물론 그 각 구멍마다 별개의 형태로 지어져서 나와보니 서로 합치되지 않는 공기흐름이었다 가장한다 하더라도 관찰하는이의 입장으로 볼적에는 그것이 각개의 조그마한 구슬정도로 보아선 각기노는 구슬 허울현상에 불과한것이라 가장해서 생각을지을 것 같으면 마음이 거기 붙어 있다할게 없다는 것이요 관찰자의 안목에서부터 생겨 존재한다고도 할것이리라 만약상 천동설 지동설을 갖고 논할적에도 모두가 다 합당한 말이되는 것이 무언가 작용을 하기 때문에 돈다 하는 것인데 어느것이 돌던 사람의 생각에서 제일 합리적인 것을 이끌어서는 그것이 동함의 기준을 삼아선 그것이 돈다 함인것이라 이를테면 천체가 돈다한다면 지구는 가만히 있는 것이 되는 것이고 지구가 돈다한다면 천체는 가만히 있는 것이되고 각 항성이나 기타 혹성등은 제대로 생긴이치 원리대로 작용한다하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천체가돈다 해더라도 말이되는것이 하늘이 돌면서 각종 별과달이 또 그 천체가 도는 가운데 지구가 돌지않은 것으로 관고한다면 그 도는 것들이 아주 뒤죽박죽으로 도는 것처럼 느낄수있지만 그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생긴원리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이런게 모다 사람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지 그게 굳이 그런 것은 아니란 것이리라 또 자루가 뒤집히는 현상으로도 관고할수도 있고 기타여러 사물작용으로도 이끌어 풀수가 있는 지라 모든 허울 작용현상이 그 그럴듯하게 변재를 아전인수격으로 갖다가선 풀면 그 척척들어 맞지않는 현상이 일지않는다곤 못할 것이다 좌우당간 우주를 벗어나는 다른 차원 세상에서 지금 말하는 시간현상이나 공간현상을 관찰한다면 손아귀에 들은 구슬정도로 여길수도 있다할 것인데 그 구슬속에 들어서 그 밖같을 관찰하고자 할진대 그 구슬의 벽이 가시 현상을 일으켜선 그 구슬밖을 되려 감싸고 있는 현상으로도 된다는 것이다 또 실제에도 그렇다고도할 수가 있는데 그 크다거나 작다거나 하는 현상은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이세상에서 설정되고 느끼는 현상이지 그 벗어난다면 그러한 것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사람의 심상에서 일어선 구분지어선 늘어놓고 그 어떤가를 가늠하며 관찰한다할 것이리라 이상과 같은 여러 관념으로 관찰해볼 것 같으면 과거미래 현재라는것의 마음이라하는 모양을 따로이 설정하여 얻어보지못한다 할것이니 그 불가득이라 함인것이리라 그런데 사람이 심상과 안목이 이세상 생긴 이치대로 형성되다보니 그두뇌에선 과거를 그리고 추억의 회상에 잠기기도 하는 것이고 미래를 지례짐작하는 생각도 갖게된다할 것이다 ] 森羅(삼라)現相(현상)이 自性(자성)에서 인다하고 그 또한 自性(자성)이 本無自性(본무자성)이라 본연에 자성이라 할 건덕지가 없는지라 사슬처럼 연연이 이어져 가지고는 그게 자성이라 한다고 하였다 에비없는 자식없고 자식없는 에비가 없으니 이것이 저것으로 서로 인연하여 있음인 바에야 자신의 성품이라하는 것을 내세울게 없다는 것이다 닭이 뒤집힌 현상이 계란이요 계란의 뒤집힌 현상이 닭이라 세인은 닭의 품안을 뱃속으로만 여길줄알지 닭의 밖같의 모든 현상이 닭의 뱃속인줄 모른다 이것을 갖다가선 한가지 골수에 만으로 집착이 되었다는 것이리라 닭이 알을 낳은 것은 닭이 지금 밖같 세상에서 알을 만들어서 자기 뱃속으로 알을들여 놔선 깨이게하는 환경 해와달 기타 부수적인 여러환경이 있음으로 인해서 그깨어남에 적당한지라 포근 하게 품으려는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 알이 깨이면 세상천지를 제뱃속 품안으로 삼았는지라 그병아리가 잘자랄 수 있는 여건이 된다할 것이다 그 병아리도 성장하면 이와 같음을 번복 할것이라 제에미도 제품안에 들은 현상인데 어느것이 먼저랄게 있을 것인가이다 이래 무슨 시간의 존재가 있어 과거 현재 미래를 나누며 누가 누그를 만들었다 할것인가? 미래가 과거를 만들고 과거가 미래를 만들었으니 뒤죽박죽인 것 같지만 삼라세상은 그 제모습을 그려선 내어놓고 있는 것이다 자아를 중심하여 자아는 가만히 있고 우주가 돈다할 것 같으면 지구도 정지현상이 일어야만 한다할 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바로 지구 남북을 축으로 꿴 굴레 축대가 돈다는 것이다 굴레축대는 돌면서 우주와 그 연계되어 붙어 있는 현상을 지어야만 한다 그렇게 된다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게 아니라 태양이 지구를 돌고 나아가선 천동설이 되는데 북극성이 머-언 지라 북극성에서 줄에다가 추를 달아 길게 늘어트린 현상이 곧 우리의 태양 항성이라할 것인데 이것이 지금 추를 잡고 사람이 휘둘러 돌리듯 부극성을 중심하여 태양이돌고 있다 가장한다면 태양 주위의 여러 혹성들중 지구가 항상 북극성이 북쪽에 멀리 그 한 지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 거리가 상당히 멀음을 알수가 있다할 것이고 자아 중심 정지현상이라 한다면 이렇게 천체가 마구 뒤죽박죽으로 돌아도 그각자 본연에 자기가 운행하여야할 질서를 잃지않기 때문에 우리 우주는 지금 이렇게 우리눈에 현상해 보이는 것이라할 것이다
* 석씨가 제자들과 담론에서 心(심)이란 科目(과목)을 그 時間性向(시간성향)으로 觀察(관찰)한 待目(대목)이 바로 일체 同觀分(동관분)이라는것인데 心(심)이 어디 一定(일정)한 停滯(정체)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하염없는 流動(유동) 性向(성향)의 性體(성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 이러한 것을 분리해서 파악할 관찰할 논제 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自性(자성)이 없는 것으로 본다면 心(심)이란것도 하나의 허물 또는 허울 현상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 그것조차 벗어 치운다면 무엇이 남고 그것조차 벗어치우고 드넓은 데로 나간다면 무슨 걸리적 거리는 餘分(여분)이 있겠는가 이런 내 생각이다 마음이란 것이 마치 말랑말랑한 형질이 저맘대로 대내외의 충격이 있다면 변형 변질될수 있는 쩨리 실리콘등 우주 진공상태의 출렁이는 물방울 같은 것이라면 그것이 무슨 과거 미래 현재가 있을 것인가이다 이것이 공간의 성질 형격을 띈것이라면 휘도리 치고 감기[감아 돌리는것]로 움직이는 실이나 뱀의 형태 로도 상상해 그릴수가 있다할 것인데 어느것을 상상하던간 그림의 허물이라 영원 불변 토록 그렇게 유동치는 사물 껍데길 수밖에 더없는 것이라 할 것이다 부처님의 사리가 또한 그러하다 하여 영원 불변한 것을 示顯(시현)하기 위해 그렇게 유리구슬처럼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라 하겠다 마음조차도 自性(자성)이 없어서 지은 겁데기에 불과한 것인데 그가 그려 내어선 늘어 놓는 흐름형태 過現來(과현래)야 말할 것 더 뭐 있겠는가 이다 부처님의 자리는 우주의 흥망을 뒷전으로 하고 상관없이 늘상 그러함 소이 恒(항)인 것이다 그런데 그에서 벌어진 수다 사량치도 못하는 여러 森羅(삼라) 狀態(상태) 마치 電動脈(전동맥)의 작용처럼 이어진 것일진대 어떻게 모른다고 할수 있을 것 인가 이런 내 의향이다 그러니까 巨視眼的(거시안적) 眼目(안목)을 쓴다면 宇宙(우주)는 곧 流動(유동)치는 心(심)이란 것[심의 확대처럼 여기는것] 이고 그러한 時(시) 조차도 석존은 그 구석 미진 만큼의 할애에도 차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음인 것이다 그러니 그와 모든 연관지어져 있는 사물등 기타등 중생이라하는 허울을 童觀(동관)으로 같이 쓰고 있는데 그들의 낱낱이 행동을 일신의 몸의 신진대사와 같을진대 어떻게 모른다할수 있을건가 이런 내야기다 그러니까 흥망뒷전이 흥망뒷전 아니요 상관없는게 상관없는 것이 아닌 童觀(동관) 一身(일신)의 몸이라 그 거대한 부처의 大達覺醒(대달각성)한 작용이라는 것이니 폭의 확대나 축소를 초월하고 질양의 척도를 초월하고 그 무엇을 지칭하던간 모두가 각성체의 발전 번영지세라는 것이고 또 그 쪼글아 들음이라는 것이다 사리 유리 구슬이 無漏(무루)라하여 더는 셀게 없는 표현을 그래하고 있다 할수도 있는데 거기 반영되는 그림자같은 것은 없을건가 그래 드러나게 하는 것은 또 유루 종자를 형성시키는 것이 아니고 뭔가 사이비 미친넘의 화상넘들이 유루 무루 수작하는데 더는 샐게 없는게 고만 우주가 뒤잡힌 것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창창창 찌어 죽일 사이비 중넘들아 -- 내가 후생에 떡방앗간 자동 절구공이로 태어나고 妄發(망발) 惑世(혹세)하는 너그들은 모다 찰떡만드는 찹쌀로 태어나선 거저고만 창창창창 고만 창창창 찧어 줬음하는 바이다 사람들은 부처를 지난 몇천년전의 천축국에 태어난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시공현상으로 인한 허물 뒤집어 쓰는 방편을 하나로 보여주는 것이지 석존이 말하는 부처라하는 것은 몇천년전이나 몇천년후나 이러한 길게 늘어놓는 象(상)의 그림만을 그리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그러니까 소이 恒(항)의 대달 각성 현상이 곧 부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견해와 주장은 견해와 주장의 성향이라면 空間化(공간화)한 여러 현상 群落(군락)을 그 過現來(과현래)의 상으로 그려 볼수도 있는데 어느 글에선가 보았는데 부처앞에 기도드리는 화상이 부처에게 자신의 과현래의 현상을 물을제에 마침 맷돼지가 그옆을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 갔는데 부처가 말하길 과거 너의 몸은 저- 멧돼지였고 [우악스런 미개한 처지 의 중생이였고] 현재는 바로 너고 [현재는 그렇게 수양하는 수도자이고] 미래는 부처 자신을 가리키며 바로 나다 [소이 미래는 그렇게 각성 현상을 드러내는 위치에 선다고] 말씀 하여 준것이라 할 것이다 여래 부처의 위치가 되면 굳이 요새 말들을 하는 과거 여행하는 기구 타임 머신 이라는 것이 필요없다 그렇게 무슨 기구나 흐름을 길게하여 타고갈 그럴것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 지금이 곧 과거고 미래고 지금이기 때문에 아뭇떼고 도서관에 진열된 책꽃이에서 책을 꺼내보듯 과거란 것을 꺼내보곤 그속으로 화하여 있음되니까 말이다 물론 석씨가 그 제자와 담론 할적에 어리석은 나의 견해와는 틀리리라고 보는바나 나의 이런한 주장도 내세울수 있다는 것도 過現來(과현래)를 보는 관찰의 하나나가 된다할 것이다 이 모든 주장과 견해가 한낫 사람의 정신을 파먹는 벌거지 발광하는 것으로 본다면 그 파먹히는 자들의 심신만 고달게하고 피로하게 하고 황폐화 시킨다할 것이다 그래서 그저 이러한 생각들을 머리 정신역영을 돌망치로 창창창 찌어죽여 버렷음 하는 일편의 생각이 또 떠오른 다하리라 [*표 찍은 후의 문장은 훗날 다시 달아쓴 글이다 ]야기가 너무길어진 것 같다 마음이 유동 치는 실리콘 우주 진공에 나간 물이 출렁 거리는 것같아선 그게 어디 과현래가 있단 말인가? 다만 스스로가 보는 시야에 멀어졌다 가까워 졌다하는 공간상과 별반차이가 없을 것이라 오늘은 김씨네 집에 가서 놀다 내일은 박가 벗에게 가선 놀다가 또는 이를 둔갑시켜선 동쪽 서쪽 이래 가서 놀았다함 아니될게 없다는 것이다 * 如來悉知(여래실지) 해석 = [모든 것등 의 심상등 사람의 마음이 여래의 마음이라= 여래가 안다고해서 귀신 눈깔이로 들여다봐서 안다는 허무맹랑한 귀신 씌여 안다는 말이 아니다 =이렇게 말해야 사람들의 심상이 현혹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라 혹간에 귀신씌여서 귀신 눈깔이로 들여다 보는수도 있는게 중생의 눈깔이 들이라 할 것이다 귀신들린 것을 여래 안다는 것으로 표현 한다면 미친자로 부터서 차츰 올라가선무녀 예언가 일체 신앙의 앞잡이 괴수들이 모다 여래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여래라 아니 할순 없으리라 우에되었던 깨우쳐줌 되니까 그런면에선 천년묶은 구린똥서 부터 술먹고 우엑-오바이트한 오물까지도 모다 여래라 할 것이다 ] 如來悉知(여래실지) 한다는 것은 깨달은 覺醒體(각성체) 의한 行(행)作用(작용)現象(현상)이 드러나는 것을 말하는것이라 그렇게됨 모두가 如來(여래)發露(발로) 現狀(현상)으로서 서로가 비춰보는 거울이 되어선 한꺼번에 일시 관찰이라 一人(일인)이 照明(조명)現狀(현상)을 일으키는 거와 같은 現狀(현상)이 인다는것이다 예를 든다면 학교에 교실에서 선생님이 공부 가르치는데 제자들이 잘새겨 듣고 일시에 그 의미를 터득한다면 如來(여래) 悉知(실지)와 같은 현상이 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내 견해이다
다음은 열아홉번째로 法界通化分(법계통화분)이다 漢文(한문) 意域(의역)대로 푼다면 사상 이념 따위의 견해나 주장등의 領域(영역)에 대하여 통달하여 如何(여하)한 것이던간 합리성을 띄게끔 辯才(변재)하여 변화[무르익게끔 하는데 소이 삶아재키는데 ] 시키는데 능숙하다는 나눔의장이란 뜻이리라 내용을보면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若有人(약유인) 滿三千大千世界七寶(만삼천대천세계칠보) 以用布施(이용보시) 是人(시인) 以是因緣(이시인연) 得福多不(득복다부) 如是(여시) 世尊(세존) 此人(차인) 以是因緣(이시인연) 得福(득복) 甚多(심다) 須菩提(수보리) 若福德(약복덕) 有實(유실) 如來不說(여래불설) 得福德多(득복덕다) 以福德無故(이복덕무고) 如來說得福德多(여래설득복덕다) 구도자들아 너들 생각은 어떠하냐? 만일 사람들이 있어서 여러세상에 가득한 일곱가지 보배로써 너-얼리 베푼다 할 것 같으면 이러한 사람들은 이러한 인연으로 인하여서 복 얻음이 많다하지 않으랴? 그 같사옵니다 스승이시여 이러한 사람들은 이러한 인연으로써 복 얻음이 심이 많다할 것이 옵나이다 아직 널리 베풀음을 기다리고 그 널리 베풀기 위해서 열심히 수도하는자들아 만일 복덕이라하는 것이 알찬 존재라 할 것일진대 너들의 깨임을 여하한 모양으로던간 현상하여 돕기위해 오는 듯 한이 그러한 복덕 얻음을 많다 말하지 않으렸은만은 복덕이 생기는 방법이나 이치가 어느 일정하게 정한 연고가 없는고로 오는 듯 한이 복덕이 많다함을 말하였나니라 { 또는 = 구도자들아 만일 복덕이라하는 것이 실다운면 알찬 것이 있다 할것일진대 여래가 복덕 많음을 말하지 않으렸만은 복덕이라 하는 것이 그러한 실다운 연고가 없는지라 이래 여래가 복덕 많다 하였나니라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복덕이란것에 속박당하여 얽메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어느 모습을 그리는 복덕이던간 실한[알찬]면이라하는 것은 하나도 있을수 없다는 것이리라 왜 그런가의 설명이 없는데 요는 뒷장[離色離相分(이색이상분)]과 연계된 감이 없지 않으나 복덕을 짓고자 무엇을 한다는 것은 소이 널리 베푼다는 것은 이것은 소극적인 행동이라 명심보감에도 말했지만 薄施厚望(박시후망)자는 不報(불보)하기가 쉽고 貴而忘賤者(귀이망천자)는 不久(불구)라 하였는데 요는 그댓가성을 바라고 베푸는 행위를짓는 것은 장사꾼이 이윤 남기위해 商術(상술)을 행하는것이나 진배 없는지라 이러한데는 그 실다운 복덕이라하는게 존재할리 만무고 또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실다운 존재라하는 것은 그부처님의 의향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실답다는 자체가 이미 부처님의 의향이 아니란 것이다 소이 실답다는 것은 하나의 부질없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이다 ={ 알찬 존재에 더들어갈 것 없고 그 손상할 일만 생긴다는 뜻도 맥락을 같이 한다하리라 }그러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덕이라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것인가 그 비운상태 드넓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 말하자면 여러중생들이 如何(여하)한의 요구이던간 그 요구하는 것을 들어줄수 있는 立地(입지)에 서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 것이다 그러면 상호 극단적인상 뱀과 개구리의 모순이 발생하는데 이런 것을 잘풀어서 변재 시키어서는 그들 또한 수용하는 그릇을 넓히어 줌에 있는 것이 곧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드넓게 베풀을수 있는 복덕 많은 것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것이다 신라의 어리석은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치는 법문을 몰라선 뱀에게는 제 넙적다리 살을 떼어선 먹이로 주고 개구리를 살려 노아 보내며 이것이 적선 보시라 하듯이 그 늑대가 어미개를 잡아먹고 새끼 강아지조차 잡아 먹으려하는 것을 늑대에겐 제살점을 띄어주고 그 강아지들에게는 젖을 걸식해 먹였다하니 이 또한 하나의 慈悲(자비)를 행하고 보시를 행하는것의 한가지라곤 할수 있으나 또 저마다의 깨임에 차원이 있다할 것이나 고차원적이라 할가 드넓은 차원적이라 할가 하는 佛(불)氏(씨)가르치는 문턱엔 도달하지 못한감이 있다할 것이니 소이 중생들의 제앞에 닥친 수용태세를 가르쳐주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의 그 해탈을 갈구한 상이라할 것이니 要(요)는 저마다 그 깨임이 차원이 달라서 그러하다 할것이니 지금 이글 쓰는 자의 말이 또한 편향된 감이 없지않고 저만 우쭐하게 보이려는 中孚(중부)二爻(이효) 학이 새끼들 처럼 어리석어도 이만 어리석자가 없듯이 그러한 말을 지금하고 있다하리라 복덕이 어디 어느것의 인연하여할 그러한 메임에서 벗어나야지만 [소이 無故(무고) 해야지만] 무방으로 장애 없이 유통되듯 하여서 그 많다하면 많다할수 있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소이 주제와 마찬가지로 여하한의 견해나 주장에 통달하여선 아주 무르익게끔 능숙한 자가되어야 한다는 것 소이 말이라면 달변가가 되듯 해야한다는 것이리라 [* 해석과 좀 동 떨어질지 모르지만 젊어패기있게 나대는 무리들이 혈기가 넘쳐 발광하는 것이 바로 학의새끼로 비유했다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론과 의문이 제기되는 그렇지 못한자는 그럼 복덕이 없는가 하곤 반문 의문이 제기되는데 복덕이 왜 없겠는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짓는 것 자체가 이미 불편한 모양이요 그 복덕이 원만하지않은 상태인데 그 찌그러진 그릇도 그 나름대로 수용태세가 되어 있어선 아쉬운대로 다써먹을수가 있는법이라 어째 복덕이 없겠는가이다 내가 원만한 것 이쁜 것 젊은거 이런것만 좋아하니까 시간귀신이 희롱을 하길 너는 우째 그모양이냐 하필 고런 것만 찼느냐 그러지 않은 것은 모다 버릴 것인가 해서는 사람을 골탕을 주는데 도와주는자 힘쓸만한 젊은이들은 눈에 안띠게 늙은 할망구만 있게하여선 그넘의 무거운 에어컨을 차에다간 싣게하니 그러면서 한다는 말들이 늙은 힘일랑이라도 보태 도와야한다고 사람의 약을 잔뜩 올리듯 이 모다 다 생긴 바퀴대로 써먹을수 있는 복덕이 있는 것이라할 것이다 여러 세상에 일곱가지 보배라함은 하필 세속에서 생각하는 황금따위나 구슬 아주 귀한 것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 탐욕을 채우려는 복덕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요 저마다의 세상에 아름답게 할 수 있는 덕목이 있듯이 그러한 것을 갖다가선 부처님께서는 보배라 하였을것이라 이러한 것을 많이 행하고 널리 폄으로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데 일조를 한 그런 인연을 말하는 것이라할 것이다 이러한 세상을 아름답게하는 인연으로 인하여서 여럿 세상에 베풀수 있는 복덕 소이 여하한 것이라도 수용할수 있는 그릇의 자세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한 자세는 어느 일정한 틀에박힌 연고에 의해서만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길이 하나만 아니듯이 여러성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부처님께서는 그복덕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무한하다 말씀 하심인것이다 더 부언한다면 모순인 뱀과 개구리 입지의 수용태세라는 것은 자기역할 자기구실을 제대로하는 것이니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어선 그 염원의 해탈을 하는것이고 개구리는 그 뱀의 먹이 역할을 제대로 잘하므로서 저된바로의 입지를 살리는 것이라 곧 그 자신된 바의 상은 곧 해탈된 상이라 이러한 해탈된 상을 뱀의 먹이화로 뱀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그래 뱀이 잡아먹을수 있게 하는게 자신된바의 수용태세라할 것이요 곧 그 복덕이 된다할 것이다 * 어리석은 중생들이 무주상보시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제대로 몰라서 망년된 행동을 가르치거나 짓거나 하게 되는데 이래서 골탕 먹는게 그래 가르쳐준 귀신 씌인 무리들이 즈그들 말에 확증적 맞는 것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갖은 고통과 갖은 격고를 감내 하면서 마애 보살이랍시고 苦海(고해)의 시련에 들어선 허덕이면서 이것이 보살이고 이것이 부처의 대달각성입네 하는데 그만 더한 어러석은 바보가 없다할 것이고 그렇게 무주상 보시하여 복받는다 가르침 받는 중생 또한 어리석어서 그래 하면 무슨 세속에 실익을 챙기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여기는 바라 참으로 어리석어서 그 복권 사는 것만도 못한 생각이요 행위들이라 할 것이다 그래 여불위 무주상보시하면 큰 실익 얻는다 [明堂(명당) 吉地(길지) 얻어 發福(발복)받는 것을 말함] 하여 진왕정을 낳아선 천하를 취득하게하는 功課(공과)를 얻었건만 이것이 모다 그넘의 그렇게 가르쳐준 귀신들린 왜곡하게 풀어재킨 사이비 중넘들의 귀신들이 그래 가르쳐준 업보라 고만 나중엔 그 화상이 空(공)의 댓가에 대한 일하기 염증나고 해악질 하는 모습이 그 참담 처참하게 망하는 꼴로 드러나니 그 함양을 불사르고 아방궁을 석달열흘 연기를 피우고 숱한 사람들이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고 항우로 하여금 길길이 날뛰게 하였는데 이게 어떻게 그 대달각성한 부처의 무주상보시란 말인가 이런 내 의향이다 모다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원과 한이 쌓인 행태작용이 그렇게 드러나 뵈임인 것이라 부처의 허심탄회 아누다라삼막삼보리 무주상 보시는 이런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원한이 가득차서 복수심에 이글거리는 기걸이 들린 넘한테 배고픔을 면해주고 명당을 얻는다고 가장해보자 그넘의 空(공)鬼神(귀신)이 오른 댓가로서 붙들려 들어와선 그 일조하는 奴僕(노복)에 역할을 하겠는가를..... 반드시 그 자신이 받은 설음에 앙갚음을 하려 덤벼들 듯 세상을 저주하여선 뒤짚어 엎으려 들 것인데 그래선 그 배고픔을 면해준자의 心性(심성)이나 先業(선업)은 생각지 않고 물불을 가리지않고 그를 위하여 맹목적인 충성 으로 도울려고 날뛸것이란 것이다 마치 손무가 오를 도우고 전쟁에 승취시키곤 고향으로 돌아갈적에 그 자신으로 인하여 벌어진 집집마다 애닲는 하소연의 소릴 듣고 참회하듯 이것이 그넘 자신을 알아준 세상의 일편 벌려논 처참한 상태인 것인데 그 어떻게 그러한 것이 무주상 보시라 할 것인가이다 기갈이 들린넘 밥한술에 저를 알아준 댓가인 것이나 진배 없음의 일인진데 이것이 어떻게 크게 깨우친 자의 결과 현상이라 할것인가 이런 내 야기다 한낫 야망에 불타는 야심가의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 보인것일 뿐인 것이다 그 저주받은 귀신들이 시공을 잠간 할애받어선 미쳐날뛴 그림이, 소이 배고픈 것 구해준 결과이나 손무 발광 뻐들은 일이나 동대동 이라는 것이다. 飛躍(비약)한다면 그 배고픔의 靈覺(영각)이 사람을 못살게 굴었는데 그것이 안됐다고 배고픔을 면해주는자가 있어서 그 먹음을 해결해줬다고 치자 그러면 반드시 그 恩功(은공)에 대해 갚으려고 할것이라 그 배고픔의 영각을 소이 밥한술로 사선 노복을 삼은 이치로 되는 것이라 그러니까 그영각이 이쪽으로 넘어와선 그 은공을 갚는행태가 여러 가지일수도 있는데 위처럼 그 물불을 가리지않고 도운다는 것이 도움받는 자에겐 영달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할 것이나 그 도움 받는자의 먹이거리 대상체는 고만 아주 불지옥 처럼 여기는 그러한 현상이 인다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그 먹이돼는 입장에서 보살의 관점으로만 볼것이냐 이런 내견해이다 그 억울한넘 저주 한맺힌 한풀이 한마당의 그 소모품 노릇하는데 억울하다면 억울하기 그지없게 동원되어 회생되는 것이지 이런것이 부처의 일이라면 부처는 마귀로 몰릴 뿐인 것이다 염원 질곡 풀릴것을 목말라하는 흥선이나 박가나 .매일반이라 저주의 신이 내린 것으로 밖엔 내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말씀이다 이런 것은 무주상보시가 아니다 유주상 보시도 이만 흉악한 유주상 보시가 없다할 것이고 이럴적에 무주상 보시라는 것은 얼른 그 도운 가문을 바른 해탈법으로 이끄는게 무주상보시 부처의 理想(이상)을 내세운 것이 되는데 여기에도 또한 착간의 생각이 일어나는데 모두 몰살시키는것이 무주상 보시에대한 많은복덕을 내리는것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왜냐하면 그렇게되면 앞과 같은 저주의 화신처럼 타인에게 해악질 하지 않게 됨으로서 그만큼 지은업이 가벼워선 열반 극락에 가기 용이할 것이라는 생각 이것은 그 은공을 베푼자에게 할 도리가 아닌 모순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을 갖다가선 그또 무주상 보시라할 것인가이다 "이넘아 왜 니가 날도와서 내 배고픔을 면케했느냐? 나는 너에게 그 무슨 세상이 그려내[圖謀(도모)]는 개뼉다귀 복덕이라하는 것으로 갚지않고 너를 고만 두둘겨패줄 것이다" 이래하는 것이되는 것인데 이게 또 무슨 무주상 보시라는 것인가? 이런 내 견해이다 무주상 보시는 이런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 무주상 보시 하기 쉽지 않아서 석존이 그 구도자들에게 數多(수다)를 말하는 것인다 무주상 보시는 기갈이 들은넘 밥한술 허기면해 주고 문전 박대 하여 내어쫓는 것이 무주상보시 인데 이래됨 또 갖은 생각을 일으켜선 "그 더럽고 치사하게 나대내" 하고선 갖은 사악함으로 해악질 또 떨어놀지 모르는 것으로 될진데 고만 너는 너고 나는 나라 하고선 관여치 않는 것이 서로간 원망저주가 덜할 것이란 것이다 그래도 도 얇은 머리가 돌아 갈려 하거던 고만 대갈바리를 봐셔 치워버린다면 무주상보시라하는 생각은 멀리 도망갈 것이다 지금 작가 글짓는 문전에 무주상 보시라는 의제가 글을 못짓겠금 방훼하고 있다 이런데 무슨 무주상보시인가 고마 눈갈후벼팔 영각귀신 우롱이지 ......] 생각해보라 여기 보이지않는 示顯(시현)하지않는 空(공)이란 사과가 있는데 그것이 맛있다하여 꼬득이는자의 감언만 믿고 한입 물어뜯어 먹었는데 저쪽 베임당해 먹힘당한 사과 파인 것 만큼 또한 채우려 들지 않겠는가이다 소이 무주상 보시 잘못 이해하고 사과 뜯어먹는 것은 남의것을 강제로 앗아오곤 그 무주상보시 한만큼 내노라고 생때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어떤이는 반대급부를 바라는 유주상보시라 할는지 모르지만 무주상 보시라하는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의식없는 행위로서 남을 돌바준 것이라 할 것인데 어떻게 그 반작용이 일지 않겠는가를 한번쯤 생각을 해볼 분문제라는 것이다 마치 북경에 벌나비가 춤을 추면 그영향이 영국에 폭풍이 불 듯 이말이다 이래 당하는 空鬼神(공귀신)이 있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겠는가를 짐작이나 해보았는지를 묻고 싶고 또 그러한 관점이 아니라 보시의 관점으로서 아무런 고뇌가 없고 환희적으로 그 空(공) 귀신들이 느낀다 한다면 그 자꾸만 간질르는 꿩의 깃털 같아선 듣기좋은 꽃노래 행동도 한두번 이라고 그 공귀신 그작자들은 염증도 없단 말인가 이것이 모두 사람의 생각이지 空(공)이 무슨 그런 의향 있으리오 한다면 아-- 저 - 들판에 피는 꽃이 무슨 생각없이 그렇게 피어선 胡蝶(호접)을 부르겠는가 이런 내 의향이다 갸들도 다 사람이 갖은 눈 코 입 귀는 사람의 이목처럼 생기진 않았더라도 다 있으리라는 것이다 하물며 공관의 벌어진 것이 삼라 사물의 개체라 할진데 어찌 空(공)의 耳目(이목)등 감식 成形(성형)이 우리 인간 잣대로 재어서 없다고만 할것인가 이런 내 의향이다 그래 그넘들 다 있다는 것이라 그래선 함부로 짐지우는 무주상 보시 어리석게 할것이 아니고 바로 깨우친 무주상 보시를 하라는 것이니 바로 깨우친 무주상보시는 남의 부담을 마음의 장애를 벗어 치우게 하여선 홀가분 하게 만드는 것을 일편 가르킨다 할 것이다 그래서 석씨가 그 장애자 보시 할것없다 울고 있음에 울지말고 우선 남의 맘 편안하게 해주는 안시라도 해라 하였음인 것이라 이게바로 진짜로 무주상 보시라 하는 것이니 죄라하는 것을 억만으로 졋더라도 말한마디에 천량 빚을 갚는다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자들이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그 딴게 뭔죄여 죄라할 것도 없고 그 대는 이제 모든 허물이 소멸되어선 천당만당갈 것을 내가 보장한다 이래 조목조목 들이대다 싶이 해서 합리성의 변재로 풀어선 북돋아 주고 마음을 활개치게 하고 명랑하게 해서는 그 즐거운 마음을 갖게하는 것이 그 참다운 무주상 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할 것이다 설령 억만의 살인을 해도 극락만당을 가고 조만의 살생을해도 극락 만당등을 간다하고 꼬쟁이로 남을 찔러도 극락 만당을 간다하고 갖은 행악질을 다했어도 극락만당을 간다해서 그 자의 지은짐을 어떻게든 덜어 주려하는 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라는 것이다 소이 배가고파 허덕이는 자에게 값싼 싸구려 동정 밥한술을 주고 감지덕지 하게함 이것이 마음의 부담을 지워주는 것이라 이럴제 엔 어떻게하는 것이 무주상 보시인가 그 거지 쪽박을 깨면 너무한다 할것이고 우선은 배고픔을 면케해 준다음 마구 두둘겨 패줘 버리는 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라는 것이다 그래되면 저쪽에서 절대로 마음에 값싼 동정같은 부담을 같지 않고 그- 되게 치사하게 나대네 하면서 내 다음에 밥 한 그릇 갚게 너 도로 폭삭 망해 버려라 이래 저주 원망 보시를 그당장에 하고 갈것이라 이게 바로 무주상 보시라 하라는 것이다 이래되면 공을 비운것도 아니고 공을 헐뜯은 것도 아니고 너는 공이고 나는 차있는 현세계의 사물 인간이 될뿐이라 공귀신이 아무리 탈잡고 개지럴 뻗을 려도 그래 못한다는 것이다 * 구제거리가 길바닥에 지천으로 널려져 있는 것은 이것은 모다 구원하려 나서겠다는 주제넘고 오지랖 넓은 자들의 염원에 의해 만들어진 갸들 밥거리라 여너 사람들은 거기에 혹하여 널뛸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 앞과 같은 배고픈 현상이 어쩔수 없이 갸들 염원해 의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 염원 조장하는 무리들을 도끼를 들고 까부셔야만 한다 할것이라 뭣하러 갸들 조장한데 일조를 하여선 배불리는 일 할 것인가이다 모다그 구제거리가 자연 발생적으로 몰아재키는데 그렇다면 구제하려 덤벼들어 저를 내세 우겠다는 理想(이상)의 무리들은 자연 발생적이라 함 안될게 뭐있는가 이런 내 견해이다 저들이 저들 염원의 비리 부당성을 궤변 합리성을 포장을 해대려는 것이 저절로를 들추는 말들이라 세상의 모든 장애거리는 그 구원의 理想(이상)을 파는 자들의 대상 먹이 거리 밥거리로서 갸들의 저있음의 보람을 찾으려는 그러한 것들이라 그러니 항시 저있는 보람을 찾으려고 그 밥거리를 찾으려 나섬에 어떻게 그것이 염원이 아니라 할수있으며 그 장애거리가 생겨나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할 것인가 이런 내 의향이다 그러므로 갸들은 오히려 그래 염원해 위해 어쩔수 없이 보살객채로 만들어진 여러 장애우 들에겐 그 은인이 아니라 원수인 것이다 청태종이 인조터러 하는말이 원수를 은인으로 안다 하였는데 바로 그짱이라 지금 장애우들이 원수를 은인으로 알고 있음인지라 마땅히 도끼를 들고 까부시고 쳐부수고 불사를고 도륙을 내도 시원찮을 판인데 그 恩人(은인) 恩神(은신)으로 모시고 빌고 기원하고 애걸하고 이래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라할 것이다 그리곤 갸들은 모든 사물 및 인간은 그 생긴 바퀴대로 드러난게 정상적인 모습인데 저들과 무엇이 좀 차이가 난다하여선 그 장애적인 것으로 몰고 값싼 싸구려 동정을 해돼쌋는데 그에 의지 그에 의탁하여 저들의 기생할 터전을 삼고 대내외에에 크게 자신들이 무슨 자선 사업체를 벌이는냥 떠벌이고 전시효과를 내는 것이다 소이 남의 생긴 바퀴를 탈잡고 험잡아선 저들 기생할터전 밥거리를 삼는게 오늘날에 理想(이상)을 파는 무리들이라 할 것이다 그생긴 바퀴가 침을 흘리던 색안경을 끼엇든 고개를 자웃덩 거리던 다리를 질름 거리던 지팡이를 짚던 두둘기던 앙금 앙금 기어가던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탈잡고 험잡아선 그를 구원한다는빌미아래 저들의 입지를 돈독히 함과 동시에 그 영원토록 기생할 터전을 삼으려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그렇게 생긴 바퀴들만 일부러 자꾸만 생겨선 저들 활동영역 넓어지라곤 조장시키려는 듯한 그러한 행위들을 그들이 그 구원이란 빌미이아래 게속할 것을 바라고 있다는것이다 이래서 천상간 돌망치로 창창창-- 찧어 죽이지가 않을수가 없게금 마음을 개강으로 부추기는 것이다 지아 -- 그렇다면 누가 보살인가? 소이 그 남의 생긴바퀴를 험탈을 잡아선 구제 하겠다고 나대는 패거리들이 보살인가? 아님 그런 구제 거릴 바래는데 대해서 그 구제 거리로 태어나선 저들 귀신 이상파는 넘들이 목적 달성에 활용되는 생긴 바퀴들이 보살인가? 모다 저가 보살들이라하나 그 생긴 바퀴들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라 그 구제해 주는 보살의 위치에 가깝다 할 것이나 그 귀신 理想(이상)파는 넘들 보다 낫긴 하다 하겠지만 그깐넘들 원들어 주겠다고 그래 억지로 생긴바퀴 지어선 사회 대다수 평소 보편성 관념 가진자 들에게 불편한 관점을 갖게할 필요는 없다 할 것이다 이런 나의 의향이다 요는 저들 조장에 그래 놀아나는 몸을 지어선 생겨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자들 그래해선 저들 기생할 터전 삼는데 활용당할 이유가 뭐 있겠는 가이다 그 자들이란 그 귀신 무리들을 가르치는 말이고 그 귀신에 종잡혀선 부림받는 자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다
다음은 스므번째로 離色離相分(이색이상분)이다 = 漢文(한문)意域(의역)대로 푼다면 모든상의 대표성을 띄어 말한 색상을 버엇나야지만 모든 상이라하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말씀 나눔의 章(장)이라는 뜻이다 내용을 보면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佛(불) 可以具足色身(가이구족색신) 見不(견부) 不也(불야) 世尊(세존) 如來(여래) 不應以具足色身(불응이구족색신) 見(견) 何以故(하이고) 如來說具足色身(여래설구족색신) 卽非具足色身(즉비구족색신) 是名具足色身(시명구족색신)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如來(여래)可以具足諸相(가이구족제상) 見不(견부) 不也(불야)世尊(세존) 如來(여래) 不應以具足諸相(불응이구족제상) 見(견) 何以故(하이고) 如來說諸相具足(여래설제상구족) 卽非具足(즉비구족) 是名諸相具足(시명제상구족) , 구도자들아 너들 생각은 어떠하냐? 大達覺醒(대달각성)하다하는 것을 그렇게 바르다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원만하게 제대로 갖춘 색깔의 몸으로써 관찰할수 있다 할것이냐 [또는 대달각성하다하는 것을 모든 것을 제대로 원만하다하는 것으로 갖춘 색깔의 몸을 갖다가선 가리는키는 견해이냐?] 아니옵니다 스승이시여 - 여러 현상으로 깨임에 덕을 드러내기위해 오는 듯 한이 마땅히 그러한 색깔에 몸을 제대로 갖춘 것으로써 관찰한다 할수 없나이다 왜냐하면 오는 듯 한 이가 말씀하시는 넉넉하게 갖춘 색깔의 몸이라하는 것은 그러한 색깔의 몸이라 하는 틀을 벗어나선 그 아닌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킴이요 이를 갖다가선 넉넉하게 갖춘 색깔의 몸이라 하였음일 새니이다 구도자들아 너들 생각은 어떠하냐? 확연한 깨우침의 현상을 그렇게 바르다하는 넉넉하다하는 것을 갖춘 모든 모양으로써 관찰할수 있다할것이냐? 아니옵니다 스승이시여 - 확연한 깨침의 현상[ 곧 그러한 현상 자체가 如來(여래)이라는 것 ]을 마땅이 넉넉하다하는 것을 갖춘 모든 모양으로써 관찰할수 없나이다 또는 그러한 견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옵니다 왜냐하면 여명이 동터 오듯 확연한 깨침의 현상이라 말하는 것은 모든 모양을 넉넉하게 갖춤을 말하는 것으로써 그러한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 넉넉하게 갖추었다 하지않는 드넓은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킴이요 이를 갖다가선 모든 모양을 넉넉하게 갖추었다 함일새니이다 [ 所以(소이) 알음알이 覺醒體(각성체) 粒子(입자)가 佛(불)이라는 것이요 그러한 깨임의 현상이 如來(여래)라는 것이요 정신력 사고력등 여래 아닌 것 없으며 그러한 정신력 사고력등에 의해 그려내는 여러 가지 思量(사량)등이 모두 여래 현상이라는 것이며 그러한 사량에 의해 육신의 행위가 뒤따르는 것 또한 모두 여래 현상이라는 것이다 宇宙(우주)의 모든 현상은 佛醒體(불성체)요 그 여래 現相(현상)이라는 것이리라 ] 호수에 돌을던져 파문이 점점 드넓게 퍼져 번지듯 지금 그 수용 그릇을 자꾸만 넓혀간다는 것이다 그러한 그릇은 지나온바의 말씀을 벗어 담는 역할을 지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농부가 밭을 갈고 그 김메듯이 계속 그러하다 보면 그 멀기만하게 느껴졌던 드넓은 밭을 모두 다 김메어놓듯 띄약볕에 역경과 씨름하면서 이뤄낸 보람이 있어선 못내 마음이 흐믓해 지듯이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요지는 그러한 넉넉하다하는 갖춤이 아닌 것 이라도 너끈히 여래가 지향하는 스승님이 의도 하는바의 일을 실천해 보일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부족하다하는 것은 그렇게보는 관점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지 저마다의 생긴 형태대로 부처님이 의도하는 취지대로 행을 실천할수 있다는 말씀이다 어떠한 입장 처지 형세이던간 베풀고자하는 뜻과 마음을 지니라는 것이다 또 그렇게 베풀고자하는 뜻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이래 감언을 하자니 역겹기만 한데 탐욕을 일으킨들 부처의 마음이 아니라하고 여래의 마음이 아니라 하리-? 모든 것은 변재에 있는지라 도둑넘도 스승이고 도둑을 치는자도 스승이니 他山之石](타산지석) = 나의 갈고 닦는데 먼산에 돌도 그 숫돌이 되어와선 도우듯 일체 모든 것이 도움 되지 않는게 없다는 뜻]이 아닌바 없다는 뜻이라 무슨 상을 갖고 늘어놓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갖은 해악스런 말을 해도 모다 부처의 말씀이요 여래의 말씀이라한다면 그 아니란곤 굳이 못할것이니 그래해도 그 깨달음을 얻고자하는이 한테는 뭔가 덕을 주는 면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스믈한번째로 非說所說分(비설소설분)이다 = 漢文(한문) 意域(의역)대로 푼다면 말씀하시는 所在(소재)는 그틀을 벗어난 드넓은 상태 그 말씀하시는 상태 아닌 것을 뜻한다 나눔의章(장)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역시 지나온 말씀하심을 옷이라면 벗어선 담은 상태를 가리킨다는 의미이다 내용을 보면 須菩提(수보리) 汝勿謂如來作是念(여물위여래작시념) 我當有所說法(아당유소설법) 作是念(막작시념) 何以故(하이고) 若人(약인) 言(언) 如來有所說法(여래유소설법) 卽爲謗佛(즉위방불) 不能解我所說故(불능해아소설고) 須菩提(수보리) 說法者(설법자) 無法可說(무법가설) 是名說法(시명설법) 爾時(이시) 慧命(혜명) 須菩提(수보리) 白佛言(백불언) 世尊(세존) 頗有衆生(파유중생) 於未來世(어미래세) 聞說是法(문설시법) 生信心不(생신심부) 佛言(불언) 須菩提(수보리) 彼非衆生(피비중생) 非不衆生(비불중생) 何以故(하이고) 須菩提(수보리) 衆生衆生者(중생중생자) 如來說非衆生(여래설비중생) 是名衆生(시명중생) , 구도자들아- 너희들은 너희들의 깨임에 뭔가 덕이 되기위해 어느 현상으로라도 示現(시현)하던간 오는 듯 한이 이런 생각을 짓는다 하지를 말라 뭔가하면 내 마땅히 무슨 일관적으로 내세우는 견해나 주장따위를 말한적 있다고 말이다 이러한 생각을 너희들은 짓지말것이니라 왜냐하면 만일 사람들이 말하길 덕을 주기위해 오는 듯 한이 무슨 일관적으로 내세우는 견해나 주장 따위를 말한적이 있다하면 또는 그런말을 하는 것이라면 대달각성한 것을 부처라하는데 그러한 대달각성한 부처라하는 것을 비방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인지라 나 여래가 가리키는 진정한 말씀의뜻을 잘 이해치 못한자라 할 것일 러니라 아직 널리 폄을 잠간놓고 그래하기 위해 길을 닦는 자들아 무슨 견해나 주장따위를 들어서 말한다하는 것은 견해나 주장따위 없는 상태를 그렇게 말하는 것이나니 [소이 그러한 것을 벗어치우곤 그 아닌 드넓은 상태 그렇다면 견해나 주장따위만이 아닌 것이라 그렇다면 그속에는 자꾸 부정만 하는것만 들어 있는것이 아니라 긍정하는것도 들어있는 포괄적인 상태 그러니까 어느것이라도 수용한다는 것 모든 것은 { 그말이된다}이런 논리이다 벗어치운 상태만 아니라 벗어치우지 않은상태도 또한 견해나 주장 따위의 속박 틀에서 벗어난 것이 된다는 것이리라 또는 그러한 견해나 주장 따위의 관점만이 아닌란 것이니 소이 머리에서 생각으로 그려내는 것 그렇게 보는 것 아닌것도 포함되는 것이라 이를테면 명령에 생각없이 복종하는 상태도 또한 그아닌 상태가 되는 것이고 무조건하고 시킴에 반박이나 대꾸없이 순종하는 상태 이런것도 다포함된다할 것이고 하필이면 사람에 국한하는 말이 아니고 여러 森羅(삼라)나 事物(사물)에 해당하는 事案(사안)이나 事項(사항)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앞서전 三章(삼장) 大乘正宗分(대승정종분)에서 所有一切衆生之類(소유일체중생지류)를 말하게됨 인것이라 若有想(약유상),외에 若無想(약무상), 若非有想(약비유상), 非無想(비무상)등을 말하게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 이를 갖다가선 견해나 주장을 말하는것이라 하였나니라 너당시 소이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당시에 [그때에] 지나온 부처님의 하시는 많은 법문에 의해 그 안목이 드넓어진 것을 슬기로운 깨임 부여받은 명으로 갖게된 구도자들이 부처님께 하나같이 사뢰오대 스승이시여 자못 중생들이 있어서 아직 오지않는 앞으로 올세상에서 이러한 견해나 주장의 말씀을 듣고 믿는 마음이 생기리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대 구도자들아 저 - 가리키는 중생이라 하는것도 중생 아닌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며 중생이 아니라하는 것도 역시 그틀을 벗어난 드넓은 수용태세를 가리키는 의미이라 [ 소이 여러 삶이 아닌것이라 하는것도 그 벗어난 그 아닌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니 그렇다면 이것을 무엇을 말씀하는 것인가 ?중생 아니라 했으니 어느한 것을 지칭하는 별도 지목 하는 것인가? 그렇게도 볼수 있는데 그 고뇌속에서 깨우침 얻지 못해 신음하는 것도 또한 중생이라 하는 것인데 그러한 것 아니라 했으니 그 깨우침을 얻었다는 의미이리라 그러나 그러한 깨움침을 얻었다하는 틀의 속박테를 벗어던진 상태 소이 깨움침이라하는 것을 벗어난 드넓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할 것이니 그 소시안적 작은 산 정상 도달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부단하게 노력하는 상태 정진해야 한다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 할수도 있다할 것이다 ] 왜냐하면 구도자들아 여러삶 여러삶[所以(소이) 彼非衆生(피비중생) , 非不衆生(비불중생)] 이라 하는 것은 너희들 깨우침에 뭔가 덕을 주기위해 여러기지로 示現(시현)하는 오는 듯 한이 그러한 衆生(중생)이라하는 속박틀을 벗어난 그아닌 드넓은 상태를 가리킴이요 이를 갖다가선 중생이라 하였나니라 하시다
다음은 스믈두번째로 無法可得分(무법가득분)이다 = 漢文(한문)意域(의역)대로 푼다면 어떠 한 법 [ 견해 주장 사상이념 따위의 틀] 도 그렇게 바르게 얻은게 없다는 말씀의 나눔의장이라는 뜻이다 내용을 보면
須菩提(수보리) 白佛言(백불언) 世尊(세존) 佛(불) 得阿 多羅三 三菩提(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 爲無所得也(위무소득야) 佛言(불언) 如是如是(여시여시) 須菩提(수보리) 我於阿 多羅三 三菩提(아어아누다라삼막삼보리) 乃至無有少法可得(내지무유소법가득) 是名阿 多羅三 三菩提(시명아누다라삼막삼보리) 구도자들이 부처님께 아뢰오대 스승이시여 대달각성한 것을 갖다가선 아뇩다라 삼막삼보리[수용자세 허심탄회 함]를 얻었다 하심은 얻은 것 없는 것을 삼으신[위하신]것이옵나이까? 대달각성한이 부처님의 위치로 말씀하시대 그갖고 그갖나니라 구도자들아- 내가 뜻하는 허심탄회하다함은 사소한 주장이나 견해도 그렇게 바르게 얻음에 이른 것이 없음일새 이를 갖다가선 아누다라삼막삼보리 즉 허심탄회하다 함이나니라
다음은 스믈세번째로 淨心行善分(정심행선분)이다 = 漢文(한문)意域(의역)대로 푼다면 마음을 정갈하게하고 선량함을 실천한다는 뜻의 말씀 나눔의장이라는 것이다 내용을보면 復次須菩提(부차수보리) 是法(시법) 平等(평등) 無有高下(무유고하) 是名阿 多羅三 三菩提(시명아누다라삼막삼보리) 以無我無人無衆生(이무아무인무중생) 無壽者(무수자) 修一切善法(수일체선법) 즉득卽得阿 多羅三 三菩提(즉득아누다라삼막삼보리) 須菩提(수보리) 所言善法者(소언선법자) 如來說(여래설)卽非善法(즉비선법) 是名善法(시명선법) , 거듭말하건대 구도자들아 이러한 내가 펼치는 주장이라 하는 것은 평등해서 높낮이 가진게 없음일새 이를 갖다가선 수용자세 허심탄회하다함이니 소이 즉 그 까닭이라하는 것은 공간성향 시간성향등 어느것을 지칭하는 그 무엇이라하는 것이 없는 것으로 또는 그무엇이라하는 것만 없는 것으로써 일체 선량한 것이라면 그런 것을 모두 다 견해나 주장으로 여겨선 그 상충되는면 그 모순되는면 이런 것 모다를 수용하는 자세로 딲아선 드넓은 포용력 수용하는자세 허심탄회함 얻음으로 나아갈 것이니라 또는 그렇게 善法(선법)을 익혀서 수용하는 자세 허심탄회 함으로 나아간 것이니라 구도지들아 - 소이 선량한 선법이라 하는 것은 너희들의 깨침의 덕을 주기위해 오는듯한이 그러한 사소한 선법이라하는 틀의 구애됨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 선법이라 아니라 하는 상태 드넓은 곳으로 나아간 것을 뜻함일새 이를 갖다가선 좋은 주장이나 견해 따위 등이라 하였나니라 하시다
다음은 스믈네번째로 福智無比分(복지무비분) 이다 = 漢文(한문)意域(의역)대로 푼다면 복과 지혜라하는 것을 갖고 겨룰 성질의것이 아니다다라는 의미이다 내용을보면 須菩提(수보리) 若三千大天世界中(약삼천대천세계중) 所有諸須彌山王(소유제수미산왕) 如是等七寶聚(여시등칠보취) 有人(유인) 持用布施(지용보시) 若人(약인) 以此般若波羅密經(이차반야파라밀경) 乃至四句偈等(내지사구게등) 受持讀誦(수지독송) 爲他人說(위타인설) 於前福德(어전복덕) 百分(백분) 不及一(불급일) 百千萬億分(백천만억분) 乃至算數譬喩(내지산수비유) 所不能及(소불능급), 구도자들아 수많은 세상 가운데 모든 수미산왕 만큼의 있는바의 이같은 등수 만큼의 크고 가득하고 그 어느 의미를 가리키던간 수용할만한 자세를 가진 일곱가지보배를 사람들이 있어선 지니고선 널리 베풀다면 그 웅대한 복덕의 큼이 가히 말로선 형언키 어려울 것이나 만일 또다른 사람이 있어서 여기서 말하는 지혜를 꽉- 들어 차게 하는 글이란 것의 네구절의 게송등에 도달해선 받아 지니어선 읽고 외우어야 남들을 위하여 연설해주면 그 앞서전에 웅대한 복덕 베푼 것을 말하였는데 그러한 복덕의 크기로는 백분에 하나도 미치지 못할 것이고 천만억분에 하나도 미치지 못할것이요 어떠한 수량의 계산법을 갖고서도 그 이에 비유함을 잘 미치지 못할 것이니라 하시다
다음은 스믈다섯번째로 化無所化分(화무소화분)이다 = 漢文(한문)意域(의역)대로 푼다면 濟度化(제도화) 시키었다하여도 제도화 시킨 것이 없다 자신이라 하는 것을 내세우지 말라는 말씀의 나눔의 장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사소한 상에 얽메이고 집착하는 것이라 그 큰 수용태세가 되지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전체주의 개념을 지나쳐서 無相(무상)으로 볼적에만 그 큰 그릇 허심탄회한 위치가 된다는 것이다 내용을보면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汝等(여등) 勿爲如來作是念(물위여래작시념) 我當度衆生(아당도중생) 須菩提(수보리) 莫作是念(막작시념) 何以故(하이고) 實無有衆生(실무유중생) 如來度者(여래도자) 若有衆生(약유중생) 如來度者(여래도자) 如來卽有我人衆生壽者(여래즉유아인중생수자) 須菩提(수보리) 如來說有我者(여래설유아자) 卽非有我(즉비유아) 而凡夫之人(이범부지인) 以爲有我(이위유아) 須菩提(수보리) 凡夫者(범부자) 如來說卽非凡夫(여래설즉비범부) 是名凡夫(시명범부) 求道者(구도자)들아 -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너희들은 너희들의 깨침에 덕을주기위해 일체 모든 解脫相(해탈상)이라해서 그러한 相(상)으로 因識(인식) 情報(정보)入力(입력)시켜선 너희 정신들을 확 터 주기 위해서 오는 듯 하는이 이러한 생각을 짓는다 하지를 말라 뭔가하면 내 적당하게 고뇌에 찬 삶들 榮辱(영욕)의 틀에서 허덕이는 것을 濟度(제도)해줬다 건져줬다 이런 생각을 짓는다 하지를 말라 구도자들아 그러한 생각을 짓지 말것이니 왜냐하면 실로 고뇌에찬 영욕의 틀에 허덕이는 여러 삶들을 깨우침으로 들어차기위해 오는듯한이 제도할 것의 존재가 없기 때문이나니 [오는 듯 한이 제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나니 ] 만일 고뇌하는 榮辱(영욕)에 허덕이는 여러 삶이란 것이 존재하여 그들에게 덕을 주기 위한답시고 오는 듯 하다 하는이 그들 이라하는 것을 指目(지목)하여 구제하였다 할 것 같을진대 너희들에게 깨침으로 들어차기위해 오는듯한이 시간성향이라는거와 공간성향이라는거와 기타등 여러가지 분별되고 구분된다하는것의 존재한다하는 것으로 나아갔을 것일새니라 [ 이렇다면 어떻게 그 諸相(제상)을 그려 집착한 것인데 어찌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수용할수 있는 그릇이 된다할 것인가이다 요지는 그런 말씀이리라 또다른 뜻은 본연에 고뇌한다는 상이 없기때문이나니 一切(일체)가 그렇게 因識(인식)하는자의 槪念(개념)상 衆生(중생)이지 실제에는 중생이 아니요 이미 그 자체로 저마다 그 내보이는 覺醒(각성)된 성질의 것이라는 것이니 所以(소이) 佛(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제도한다는 말인가이다 저눈에 고뇌하는 것으로 보여선 주제넘고 오지랖 넓히려고 껍적데는 것이지 실상에는 그아니고 환희향락佛(불[覺醒(각성)])이 되어서 향유하는 것인줄 누가 그 않 그렇다 할 것인가? 괜히 쓰잘데없이 제물에 오염시키려 망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수양이 부족해서 저언덕에 수레를 밀고가는자가 땀을 흘리며 힘들어 혐오스런 냄새를 풍기는 것 처럼보이지 실상은 지금 그자는 자신이 맘 내키는 대로 즐기고 있는 것인줄 알수 없다하리라 우리가 예를 든다면 能動(능동)과 被動(피동)이라 하는게 있는데 능동적인 움직임에서는 그 고달프다거나 고뇌하기보단 자신의 마음이 달가운면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다 부득이하여 능동적으로 움직인다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부득이라는 피동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 그 능동적이라 할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수레를 밀고 가는자를 고뇌하는 중생으로만 치부하여 도와준다고 자신을 내세워 감언의 생각을 지으며 거들어 주는체 하곤 흐믓하다하는 자신의 더러운 잇속을 챙기려고만 들 것인가이다 ] 구도자들아 - 너희의 정신영역 이라 한것에 지혜로 꽉 들어차기위해 오는 듯 한이 내라함을 말하는 것은 그 내라하는 틀의 속박을 훌훌 털어버리고 내라함이 있지아니하는 상태로 나아간 것이거늘 일반 평범한 사람들이 내라하는 존재를 위한다하나니 구도자들아 또 여기서 예를 들은 凡夫(범부) 평범한 사람이라 하는것도 정신영역에 깨침으로 꽉 들어차기위해 오는 듯 한이 그 범부라하는 속박의 틀에서 벗어난 범부아닌 드넓은 상태로 나아간 것을 말함이요 이를 갖다가선 명목상으로만 凡夫(범부)라 하였나니라 하시다
다음은 스믈여섯번째로 法身非相分(법신비상분)이다 = 漢文(한문)意域(의역)대로 푼다면 어느 것으로의 방향을제시하는 견해나주장 사상이념 따위등의 속박 구애의 틀에서 훌훌털어 벗어 던져버리고 그러한 모양 아닌 드넓은 상태의뜻을 말씀하시는 나눔의장이라는 뜻이다 내용을보면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可以三十二相(가이삼십이상) 觀如來不(관여래부) 須菩提言(수보리언) 如是如是(여시여시) 以三十二相(이삼십이상) 觀如來(관여래) 佛言(불언) 須菩提(수보리) 若以三十二相(약이삼십이상) 觀如來者(관여래자) 轉輪聖王(전륜성왕) 卽是如來(즉시여래) 須菩提(수보리) 白佛言(백불언) 世尊(세존) 如我解佛所說義(여아해불소설의) 不應以三十二相(불응이삼십이상) 觀如來(관여래) 爾時(이시) 世尊(세존) 而說偈言(이설게언)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 以音聲求我(이음성구아) 是人行邪道(시인행사도)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 , 아직잠간 널리 펼치려함을 놓고 그 그래하기위해 수양하는자들아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그렇게 바르다하는 서른두모양이라 하는 것으로서 정신영역이 확트여 오는 듯 한 관점이라 할수 있을 것 같으냐? [ 또는 그렇게 바르다하는 서른두모양이라 하는 것으로서 너희들의 깨우침에 덕을 주기위해 정신이란 그릇에 깨달음으로 들어차 보이는 듯 한이를 관찰할수 있다 하느냐? 소이 여래를 관찰할수 있다할 것이냐를 지금 스승이 묻고 있다 ] 구도자들이 하나같이 답하기를 그럴 것 같사옵니다 [이는 왜 그렇게 그럴 것 같다고 모두들 대답을하고 있을가? 要(요)는 그들은 억측으로 지례짐작해 보건데 그들의 지금 생각 잡히는 것은 서른 두모양 원만한 갖춤이 뭔가 구애된데서 나무랄데 없는 벗어버린상 그런 것을 염원하여 그것이 곧 깨달음의 眞髓(진수) 대달각성[佛身(불신)]한 모습이 아닐까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묻는 의중은 딴곳에 있음인 것이다 ] 서른 두모양으로 정신 영역의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등불의 빛으로 꽉 들어 차듯이 하야 오는 듯 한이를 관찰할수 있나이다 부처님이 재차 말씀하시대 구도자들아 만일 서른두모양이라 하는 것으로서 각성한 관점이라 할 것 일진대 그방면에 아주 능통하다 할수 있는 전륜성왕이라 하는자도 바르게 오는 듯 한이로 나아간다 할 것 같으냐? 구도자들이 부처님께 사뢰어 답하여올리길 스승이시여 우리들이 선생님의 가리키는바 의중을 풀기로는 그 스승님의 안중에는 별것 아니고 하잘 것 없다고도 할수있는 서른 두모양이라하는 것은 가늠해 보건데 오는 듯 한이의 의도하는 관점이라고 만은 할수 없을 것 같사옵니다 당시에 세존께서 제자들에게 깨달으라고 게송을 지어 읊으시기를, 만일 색깔의 구족함으로서 날 찾으려드는자와 음성의 구족함으로서 날찾으려드는 자들이 있다면 이런 작자들은 바로 사벽스런 길을 실천하려드는 자들이라 잘 오는 듯 한이가 의도하고 추구하는 뜻을 볼수 없을것이니라 하시다 [ 소이 환청 환상등 제 이기성을 위하여 탐구하는 것엔 너 원들어 주겠다고 꼬득이는 귀신에 무리들만 들꼬일래기지 제대로된 깨달음의 자세 허심탄회한 수용 그릇이 되질 못한다는 것이다 탐욕등 자신의 이기성을 버리는곳에 실다운 면모의 수용할만한 그릇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앞서전에도 수차 말했지만 수용자세라 하는 것은 부담없게 하는 자세인데 이기성만 가득해 갖고선 그 자신의맘에 염원만 챙기려든다면 어떻게 그 큰 그릇이 될것이며 또 그렇게 원만한 것만 깨달음의 진수나 대달각성한 관점으로 논한다면 그 병탈되고 부족하다하는 장애적인 관점이라하는 것은 모다 버려야 한다는 뜻이고 그 부처가 아니란 뜻인데 이렇개 편벽된 말씀이 어디 부처의 말씀이라 할 수 있다 하겠는가이다 그러므로 지금 부처님게서 그런 의중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일체 모두가 부처님 이니 그 저마다 편의 위주대로 행을 실천할뿐이라 할 것이다 소이 마음에 편안한 자세를 갖기를 노력하라는 것이니 저꽃이 남들이 보기에 그 기쁨을 선사하듯 당신의 자세도 그렇게 되기를 한번 노력해보라는 것이다 이글을 쓰는이가 한참있다가 생각하기를 위의말들이 참으로 가소로운 야기라 내 욕심하고 탐욕을 낸들 어쩌겠다는건가 그런 것은 또한 부처님의 容心(용심)이 아니란 말인가? 세상이 원체나 다 그렇게 탐욕 덩어리로 굴러가는데 그 아니라하고 그 못굴러 가게하겠다고 방훼놓는 심사는 무슨 억한 심사인가? 비구나 비구니나 수녀나 신부나 모다 이 인간의 종자에 뿌리박고 갖은 감언을 해됐 쌌는데 소이 그 사나 기집 안들어 붙어먹고 우에 뭣이생겨서 그런 감언 퍼트릴 터전을 얻을 것이며 그래 주절돼 쌀것인가 이런 내 논조라 그러니 고마 인간말종으로 놀아나는 것도 또한 부처님이 그래한번 놀아보라해서 생긴것이라 마구 온갖 잡질해가며 인생즐기며 살아보라는 것이다 이게 곧 수용자세다 그리곤 남을 마구 코잔등이 까지도록 콩콩콩 두둘겨 패주라는 것이다 이게곧 수용자세다 괜히 오지랍 넓은체 해가며 그뭣이라 국태민안 어쩌구 개 잡 헛소리 내지를게 아니고 제앞가림이나 잘해서 연장튀어나오는 수모를 받지나 말라는 것이라 그래도 연장튀어나와선 바람쐬이려 한다면 그뭐 말이 안된다곤 하진 못하리라 날더러 원 별 미틴 잡넘이라해도 내 하고픈 말 속에 담가갖곤 못베기는 성질 이래 훌 다털어나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이지 ... 다음것은 본문 써넣을대 착상이다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可以三十二相(가이삼십이상) 觀如來不(관여래부) 須菩提言(수보리언) 如是如是(여시여시) 以三十二相(이삼십이상) 觀如來(관여래) 佛言(불언) 須菩提(수보리) 若以三十二相(약이삼십이상) 觀如來者(관여래자) [귀신 문제낸거 못맞춘다 해서 여래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또 귀신 문제 낸거 못 맞추는데 무슨 깨인상태 여래라 할 것인가? 의문 반론이 제기된다할 것이다 귀신은 언제나 修道者(수도자)를 한발 앞서며 나아가면선 그 精進(정진)이라는 빌미아래 시련 주기를 게을리 않는다 그런 것이 未開(미개)한 문제를 내는 것 과 같이 나대어선 드러난다 그러니까 귀신이 갖고논다는 것이 적당한 표현이리라 이래 귀신 갖고 노는데 關聯與否(관련여부)가 어떻게 되었던간 상관할 것 없이 또는 상관할 것 있더라도 如來(여래)라는 것이니 귀신이 제아무리 豫知力(예지력){{귀신의 예지력이란 시간성향을 미리 앞질러서 넘겨다보고 들여다보는 것이다 귀신 세계엔 시간도 하나의 옷이라 공간의 群落化(군락화)한 현상과 같아선 마치 녹음 테잎을 틀면 노래의 높낮이와 가락 선율 장단 등으로 사람의 심금을 뒤흔드는 거와 같다는 것이라 이래 흐름도 제옷으로 無時(무시)로 공간화 하여 입고 있는데 그 어디가 어떻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마치 우리의 애국가가 동해물과로 시작되어선 기리보전하세 로 끝나는 모든 것{ 가락 선율 장단등}것과 같음을 아는 것과 같다할 것이다 이래 말함 소이 귀신이 곧 시간이라 할수도 있다 }}이 있어선 육갑을 떨며 사람을 골려주더라도 사람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귀신이 받들어야할 부처님이요 그 본 받아야할 대상이요 그 저의 맵새를 비춰 보아야할 거울이라는 것이니 귀신 시험하는 것을 하나도 두려워 할것이 없다할 것이다 ] 轉輪聖王(전륜성왕) 卽是如來(즉시여래) [여기서 여래라는 것은 한층 차원을 높여선 모든 원만한 거룩한 것을 굴리는 덕을 가진자보다 더 훌륭한 모습으로 그려주고 있는데 如來(여래)는 行(행)의 發露(발로)라 찌그럭 박상이라도 如來行(여래행)이 될 것이지만 전륜성왕은 그 이름 명목따라 그렇치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석존이 구도자들에게 되반문 하고 있음인 것이다] 須菩提(수보리) 白佛言(백불언) 世尊(세존) 如我解佛所說義(여아해불소설의) 不應以三十二相(불응이삼십이상) 觀如來(관여래)[ 소이 전륜성왕 같은 것은 여래라 하는 의미에 갖다붙칠 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제자들은 체득하고 있다 ] 爾時(이시) 世尊(세존) 而說偈言(이설게언)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 以音聲求我(이음성구아) = 여기서 我(아)는 여래 지칭하는 의미로서 여래를 하나의 인격체 석존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씀로도 보여주고 있다할 것이고, 석존 스스로가 깨우침의 眞髓(진수)임을 비춰주고 있는 말씀이기도 하다할 것이다 놀부 보기엔 소이 혼자만 유리구슬 많이 가진걸로 착각 으스대며 자랑한다는 것이다 석존이 어이 그러 하리리요 그 밑의 아부하는 자들이 콩고물 떨어질 것 없나 하고선 아부하는 모습을 그렇게 그려서 도리혀 스승을 욕보이고 욕되게 한다고도 볼수도 있을 것이다 또 스승을 빛나게한다고도 할수도 있다 요렇게 시시각각으로 사람의 생각은 간사하게 간특하게 흐른다는 것이다 是人行邪道(시인행사도)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 [ 소이 제맘성에만 차는 것만 찾는 것은 깨우침의 문턱에도 들지 못한다는 것이리라 一合相(일합상)을 구하는 것은 제맘성에 흡족하게 차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러한데에는 五感(오감)等(등)의 圓滿(원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오감등의 원만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깨달음의 行(행)을 관찰할수 있겠는가 이런 석존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귀신 씨나락 까먹는 헛소릴 듣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이 괴이한 眼(안) 所以(소이) 神眼(신안) 法眼(법안) 肉眼(육안) 慧眼(혜안) 佛眼(불안) 等等(등등) 이런것만이 열렸다해서 그래서 그것에 의한 여러 발로 현상을 관찰할수만 있다해서 여래의 살핌을 체득했다곤 볼수 없다는 것이리라 회의적으로 "또 볼수 있다한들 우에 탈잡을 것인가이다 이너마- ?" 놀부가 또 심청떨며 나선다....]
다음은 스믈 일곱 번째로 無斷無滅分(무단무멸분)이다 = 한문 의역대로 푼다면 단절됨이없고 소멸 됨이 없는 것이 그뭣이라 아누다라 삼막 삼보리라 하는것이라는 것이다 그나눔의장 말씀이라는 것이다 내용을보면 須菩提(수보리) 汝若作是念(여약작시념) 如來不以具足相故(여래불이구족상고) 得(득) 阿 多羅三 三菩提(아누다라삼막삼보리) 須菩提(수보리) 莫作是念(막작시념) 如來(여래) 不以具足相故(불이구족상고) 得(득) 阿 多羅三 三菩提(아누다라삼막삼보리) 須菩提(수보리) 汝若作是念(여약작시념) 發阿 多羅三 三菩諸心者(발아누다라삼막삼보리심자) 說諸法斷滅(설제법단멸) 莫作是念(막작시념) 何以故(하이고)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者(발아누다라삼막삼보리심자) 於法(어법) 不說斷滅相(불설단멸상) 구도자들아 너희들 이렇게들 생각들 하느냐? 깨달음에 덕을 주기위해 오는 듯 한이 그러한 깨달음이라 하는게 꽉 들어차지 못한 것이 있어서 소이 넉넉한 갖춤의 모양이 아님으로써 허심탄회한 수용의 자세를 지녔다 하느냐? 구도자들아 이런생각들을 하지를말라 너들 정신영역에 깨달음으로 들어차기위해 오는 듯 한이 넉넉한 갖춤의 모양이 아님으로써 허심탄회한 수용의 자세를 얻었다고 ....... 구도자들아- 너들이 이런생각을 짓고선 허심탄회한 수용의 자세를 깨우쳐 드는자는 모든 견해나 주장 이딴 것들이 단절되고 소멸된 것을 말하는 것이 그 허심탄회한 수용자세라 가리킬것이라 이런 생각들을 갖지를 마라 왜냐하면 허심탄회하다 하는 수용의 자세라하는 것은 그 생긴대로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 들이거나 감싸거나 포용하는 것이지 병탈을 잡고 나무래서 그 없애려드는 것을 가리키는 것등을 말하는게 아니니라 소이 견해나 주장 사상이념등 어떠한 관점이던간에 그것이 단절되고 소멸되는 [그것을 단절시키고 소멸시키려는 ]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니라 하시다 소이 이런 것을 훌훌털어선 벗어선 잘 갈무려선 한켠에 정리하여 놓는 수용자세 그리곤 그 드넓은 상태를갖는 것이 허심탄회한 자세라할 것이니라 하심이다
다음은 스믈여덜번째로 不受不貪分(불수불탐분)이다 = 한문 의역대로 푼다면 받지도 않고 탐욕을 갖지도 않는다 나눔의 장 말씀이라는 것이다 내용을보면 구도자들아 須菩提(수보리) 若菩薩(약보살)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이만항하사등세계칠보) 持用布施(지용포시) 若復有人(약부유인) 知一切法無我(지일체법무아) 得成於忍(득성어인) 此菩薩(차보살) 勝前菩薩(승전보살) 所得功德(소득공덕) 何以故(하이고) 須菩提(수보리) 以諸菩薩(이제보살) 不受福德故(불수복덕고) 須菩提(수보리) 白佛言(백불언) 世尊(세존) 云何菩薩(운하보살) 不受福德(불수복덕) 須菩提(수보리) 菩薩(보살) 所作福德(소작복덕) 不應貪着(불응탐착) 是故(시고) 說不受福德(설불수복덕), 만일 널리 베풀기를 의도하려는자가 갠지승강 모래등수만큼 가득한 세계의 일곱가지 보배를 지니고선 널리 베풀고 만일 사람들이 거듭있어 일체의 견해나 주장 따위로하여 나를 내세움이 없는걸 알며 갖은 시련을 참고 견디어선 그 깨달음을 성취하여 낸다면 이러한 자의 널리 베푸려 하는 의도가 앞의 일곱가지 보배로 널리 베푸려하는 자의 의도보다 공덕 얻는바가 낳을 것이니라 왜냐하면 구도자들아 - 널리 베풀길 의도하는 자라면 그 복덕이라 하는 것을 받고자 않기 때문일러니라 구도자들이 부처님께 사뢰대 왜 널리 베풀기를 의도하는자가 그복덕이라하는 것을 받으려 들지 않습니까? 구도자들아 - 널리 베풀기를 의도하는자는 복덕이라 하는것의 만드는 바를 마땅히 탐하거나 집착하지 않하기 때문일새 이러므로 복덕을 받지않는다 말함이나니라 [ 여기서 不受福德(불수복덕) 不應貪着(불응탐착)의 해설이 미흡한점이 있다할 것이니 어리석은 견해로는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다람쥐 체바퀴 돌리듯 윤회속에서 허우적 거린다는 소극적인 견해와 그래선 자신만이 그런데서 벗어나겠다는 이기심을 갖고 있다는 사악한 견해와 이래저래 논란에 들[入(입)] 소지가 많다는 것이리라 그래 아무렇게든 관찰자의 좋을대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너그들 무슨 눈으로 보던간 우리는 그 하찮은 복덕이라하는 것엔 관심없다는 것이 베푸는자의 의도라는 것인데 소이 왜그렇게 베풀고자만 할가 이는 그 가진게 염증 귀찮아서이기 땜이다 그래서 소이 너들 다가져라이다 평양감사도 제하기 싫으면 고만이라고 제하기 싫어서 남한테 떠넘기려는 고약한 심보가가 발동해서 그렇게 한다고도 볼수있다할 것이고 또다른 면으로 그 들꼬이게하는 하나의 역이용적 수단이라는 것이다 마치 이윤 많이 남기려는 장사꾼이 마구 퍼주는 낚시미끼를 넣듯이 이래 환심을 사고 호감을 사면 들꼬이지 않으래도 그 덕목 같은 은금보화는 절로 넘쳐나서 마치 병이 않낳더래도 그 낳다 해야지만 그대에게 이롭다해서 꼬득이는 말로 전파시키어선 사람들을 긁어모아선 떼부자 사업을 벌여선 은금보화가 넘쳐남에 관청의 넘들을 그 수족 부리듯 부리고 놀려돼쌋는 위치에 서게되니 막 거저생긴 보화를 無相(무상)이라해서 인심 쓰듯 한움쿰씩 마구 퍼주었다하는 구X사 천X종 중건한 x 아무개 돌팔이 사이비 중넘의 수단부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그넘의 x청 x새넘들 이하 이상 경xx장 xx영감 할것이없이 거저 넙죽이가서 절하고 돈받아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선 그 生佛(생불)이랍시고 소문퍼트리길 게을리 하질 않으니 미친 x가년 까지도 그 생불로 속아 넘어가선 가선 뵈옵고 아부질을 하더란다 그래해 봤으나 둘다 x알에 x해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찌 인생무상이라 하지않으리 그 x국너의 이름을 周子(주자) 명해로 풀어볼 것 같으면 家門(가문)은 千里(천리)를 두었으나 刑罰(형벌)에 門(문)이 거듭 이른다 하였으니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x다 흉x에 뒈x게되었다 하리라 그 x국너 사주를 볼 것 같으면 寅申巳亥(인신사해)가 다있어 四絶四生(사절사생)의 四柱(사주)로 짜여져 있어 극귀했다 一落千丈(일락천장)해지는 것이 분명하고 그 이름자가 뱀에 신하가 불에 타는 형국이라서 그火器(화기)에 당했다고도한다 아뭍튼간에 알 수 없는 일이라 할것이다 이래서 그高段數(고단수)로 불수복덕 불응 탐착이라하는 것일수도 있는데 가만히 본다면 이글을 쓰는 내가 많이 심기가 뒤틀려서 우에 되었던 남을 헐뜯는 말만 일관 해됐샀스니 아무 지옥이 라도 저들이 말하는 지옥이라하는것도 그 수용자세가 모자라서 대장쟁이 땜쟁이터러 그 두둘겨 늘구듯 하라 할런디도 모를일이고 그 아무리 두둘겨 늘궈도 모자라서 되려 어린고기 취급받아서 이쪽의 수용그릇 아구리에 잡혀먹히듯 그런지도 알 수 없는 일이라할 것이다 이래 불수복덕 불응 탐착이라 할런지도 도통알수가 없다하리라 부처의 빙자되는 말 술수를 무슨 부처가 이래 말했으리요 후대 사이비 중넘들이 부처 이름팔고 그에 의지하여 거짓말 씨부령 거린게 바로 모든 불경이라 한것의 일부라할 것이다 모다 제넘들 밥그릇 챙기는데 일조를 담당하는 그런 글들이라 할 것이다 이래 내가 후생의 사람으로 태어나서 저들을 욕을 해줘야 저들의 저지른 선세죄업이 모다 씻기어선 극락만당 천당을 간다고선 이 앞서전에 부처님이께서 설법하시었는데 그렇다면 나는 저들 경멸히 여기고 천박시 여겨선 욕해서 지옥에 떨어지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니 왜인가 저들의 허물을 벗겨주는 열심히 노력한 보살의 반열에 설것인데 극락을 가도 더좋은 극락엘 가지 지옥이라하는 말은 천부당 만부당한 말이라할 것이다 세상에 오물 거적데기 뒤집어쓴 것이라 바르게 말하여 그 그렇다해서 세상에 바르게 공표하여 모든이가 그 바르게 注知(주지)하여 난도질 매질 타작하여 보리타작하듯 털어 없애치우게하고 그 털은 맛을 해탈 맛으로 하다못해 보릿고개 넘기는데 요긴하게 써먹게 하는데 그 덕보이는 노력 하게끔 시키어 준다는데 누가 날더러 그 욕하는 나쁜넘이라고 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할것인가 되려 연화대 열반 극락 제일좋은 데 지나서 제영으로 좋은데 있으라 할래기지 .... 않그런감? 네티즌 여러분들....]
다음은 스믈 아홉 번째로 威儀寂靜分(위의적정분)이다 = 한문 의역 대로 푼다면 위엄스런 거동 고요하기만하다 나눔의장 말씀이라는 것이다 내용을 보면 須菩提(수보리) 若有人(약유인) 言(언) 如來(여래) 若來若去(약래약거) 若坐若臥(약좌약와) 是人(시인) 不解我(불해아) 所說義(소설의) 何以故(하이고) 如來者(여래자) 無所從來(무소종래) 亦無所去(역무소거) 故名如來(고명여래) ] 구도자들아 - 만일 사람들이 있어서 말들을 하길 우리들의 정신영역에 깨침으로 꽉 들어차기위해 오는듯한이는 오고 가기도 하며 앉고 눕기도 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바르다 하는 뜻을 제대로 풀었다할수 없을것이니 왜냐하면 우리들에 정신영역에 깨침으로 꽉 들어차기위해 오는듯한이는 무엇 어디를 因緣(인연)하고 의지하여 쫓차 오고 가는 바가 없음일새 그냥 우리들로 하여금 삼라 사물의 이치 생김 형성을 보고 깨닷게 함일새 이러므로 이를 갖다 가서는 우리들의 정신영역에 깨침으로 꽉들어 차기위해 오는 듯 하는이라 함일러니라 하시다 * 깨달음性質(성질) 自體(자체)가 如來(여래)이라, 여래가 래왕하거나 그슨 허황한 귀신 씨나락 까먹는 행위 없다는 것이다 소이 너그들은 五感(오감)에 와 닿는것만 체득해도 현혹에들지 않을 것이라 그 이상 事理(사리)밖의 기괴한 것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무슨 超越(초월)하다는 일체의 행이 모두 사악한 마귀 작난이니 일체 그에 혹하여 꿰인고기가 되어선 물심을 황폐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 내모른다 해서 마귀 작난으로 모는 것은 잘못된 가치관이라 할것이나 그 우민 중생들이 잘모른다해서 그걸 갖고 골려주고 골탕을 주길 좋아하는게 또 한 귀신 이상파는 무리들이라 우에되었던 중생을 잡아먹을 찬거리로 여긴다는 것이고 그 파고들 기생할 터전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소이 棋奕(기혁)한수 위임을 뻐기고 으스대며 그것이 모든 슬기와 지혜등의 안목을 대변하는 것처럼 나대는 것이 소이 귀신파는 무리들의 행태라는 것이다 이래 또한 비방하는 글을 부처말씀 의탁하여 써내려가니 부처말이라는 것에 사람의 심상을 곱게만 하는것도 아니라 할것이라 이래 생각이 짚히게하는 나의 심기뒤틀린 심보 언제나 바르어 질는지 모르겠다
다음은 서른번째로 一合理相分(일합이상분)이다 = 漢文(한문)意域(의역)대로 푼다면 한결같이 또는 하나로의 사리에 합당하는 모양의 말씀 나눔의 장이라는 뜻이다 내용을보면 須菩提(수보리) 若善男子(약선남자) 善女人(선여인) 以三千大千世界(이삼천대천세계) 碎爲微塵(쇄위미진) 於意云何(어의운하) 是微塵衆(시미진중) 寧爲多不(영위다부) 須菩提言(수보리언) 甚多(심다) 世尊(세존) 何以故(하이고) 若是微塵衆(약시미진중) 實有者(실유자) 佛卽不說是微塵衆(불즉불설시미진중) 所以者何(소이자하) 佛說微塵衆(불설미진중) 卽非微塵衆(즉비미진중) 是名(시명) 微塵衆(미진중) 世尊(세존) 如來所說(여래소설) 三千大天世界(삼천대천세계) 卽非世界(즉비세계) 是名世界(시명세계) 何以故(하이고) 若世界(약세계) 實有者(실유자) 卽是一合相(즉시일합상) 如來說一合相(여래설일합상) 卽非一合相(즉비일합상) 是名一合相(시명일합상) 須菩提(수보리) 一合相者(일합상자) 卽是不可說(즉시불가설) 但凡夫之人(단범부지인) 貪着其事(탐착기사) , 구도자들아 만일 선량한 사람들이 여러세상을 부숴트려 가루를 만든다면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그러한 가루의 미세한 粒子(입자)들이 정녕코 많다하지 않으랴? 심히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만약상 이러한 미세한 가루의 입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을 것인진대면 대달각성하신 정등각자 우리의 스승님이신 당신께서 이러한 가루입자 많은 무리 말씀하지 아니하는데로 나아갔을 것이니 왜그러한가 하옴은 지금 스승님께서 미세 티끌가루 입자들이라 말하는 것은 그러한 티끌입자 미진의 무리라 하는 생각잡힘 얽메인 속박에서 훌훌 털어버리고 그 아닌 드넓은 상태로 나아간 것을 말씀하신 것일새 이를 갖다가선 미세한 많은 가루 입자들이라 한 것이 옵나이다 스승이시여 우리들의 정신영역에 깨침으로 꽉 들어차기위해 오는 듯 한이 말씀하시는 바의 여러 세상이라 하는것도 그러한 가리키는 속박의틀 테에서 훌훌 털어버리고 그아닌 상태 드넓은 곳을 나아간 것을 가리킴일새 이를 갖다가선 세계라 하시었나니 왜냐하면 만일 세계라하는 것이 실상으로 존재하는 것 같음 일진대 바르게 자신들 한결같이 염원하는 그 염원상과 일치한 모양으로 나아간 것을 뜻함이니 이런것은 소극적 견해 소시안적 견해이라 우리들의 정신영역에 깨침으로 꽉 들어차기위해 오는 듯 한이 자신들이 염원하는바와 하나로 합하여 일치한다 하는 모양은 그러한 생각잡힘의 속박을 틀에 구애됨이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그 아닌 드넓은 상태로 나아간 것을 가리킴이요 이를 갖다가선 지금 자신들이 원만 구족하게 염원하는 하나에 합한 모양이라 하였음일 새니이다 구도자들아 저마다 원만구족으로 염원하는 자신뜻에 한결같이 합하는 모양이라하는 것은 서로가 모순된점이 없지 않을 것이라 곧 그렇게 바르게 말로서는 하지 못한다할 것이니 이러한 하지 못한다하는 생각 잡힘 속박의 틀등에 구애됨 또한 훌훌 털어버리고 그아닌 드넓은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거니 다만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들 그 원만 구족하는 것을 염원하여 그 성취되길 옭아메는 일에 메어 달리나니라 하시다 [ 소이 욕망은 한계가 없는 것 그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무언가 목적을 설정하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기는 것은 나쁘다 할것이 없으나 너무 그에 집착하여 얽메이지 말라는 교훈이시다 사람이 삶의 과정을 어떻게 메꾸고 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 목적지에 도달 정복하는 것은 그중요한 것만도 될것이 못된다는 것이고 원만 구족이라 하는 자신의 심상과 일치하는 상은 곧 애성해 받쳐 이뤄낸 고뇌의 결정체 덩어리요 그정상을 정복한다해도 곧 사람들은 허무만 감돌것이고 곧 또 갖고 놀던 구슬 싫증을 내듯 권태 염증을 느낄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어떻게 해탈이라 할것인가 이런 뜻이리라 자신의 심신을 끊임없이 단련하데 그너무 흡족한것만 원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여유러운 자세를 갖아선 타인들에게도 양보하는 마음 희생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게 도리혀 나의 염원이 가득 들어차선 운신 할수없을 정도로 되는 것 보단 낳다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 채우려 들지말고 베푸는 관점 나누어줄 것을 항상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널리 베풀려는 의도를 가진자의 수용 자세라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사람 꼬득이는 감언이 된다고 초를 확-치는 생각이 머리에 잡힌다 하리라 ]
다음은 서른 한번째로 知見不生分(지견불생분) 이다 한문 의역대로 푼다면 상상적으로 그리어선 아는체 하는 견해를 생각해 내지 말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그 주제가 모순된 점이 없지않은 의미가 있는데 先知識(선지식)이 知見(지견)을 내어선 그 後達者(후달자)들로 하여금 알아듣게끔 말해주기 위해서 그 자세하게 풀고 여러 견해를 방편을 들어서 말하는 것 까지 그 상상적 아는체 하는 견해로 본다면 그 도대체가 그 정등각자도 입을 열어 말을 할수없을 것이라 이러한 것을 여기서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할 것이니 여기서 견해라하는 것은 그 구분지어서 나누다 보면 그 이해득실이나 시비정사 가부등 의 打算(타산)이 있게되고 그에 집착하게되면 고뇌속에 든다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런 것에 깊이 빠져들게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할 것이다 내용을보면 須菩提(수보리) 若人(약인) 言(언) 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불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是人(시인) 解我所說義不(해아소설의부) 不也(불야) 世尊(세존) 是人(시인) 不解如來所說義(불해여래소설의) 何以故(하이고) 世尊(세존)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즉비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시명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須菩提(수보리)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者(발아누다라삼막삼보제리자) 於一切法(어일체법) 應如是知(응여시지) 如是見(여시견) 如是信解(여시신해) 不生法相(불생법상) 須菩提(수보리) 所言法相者(소언법상자) 如來說卽非法相(여래설즉비법상) 是名法相(시명법상), 구도자들아 - 만일 사람들이 있어서 말들을 하길 대달각성한 원리를 설파하는 대달각성하다하는 부처님이라하는 분께서 시간성향과 공간성향의 여러 가지 사물상을 구구하게 그리는 견해를 갖는 것을 말하였다 한다면 구도자들아 너들 생각은 어떠하냐? 이러한 자들이 내가 말하는 의미를 제대로 풀었다 할것이냐? 아니옵니다 스승이시여 그들은 우리들의 정신영역에 깨침으로 꽉들어차기 위해 오는 듯 한이의 말씀하시는바의 참 의미를 제대로 풀지못하였다 할것이니 왜냐하면 세존께서 시간성향과 공간성향의 여러 가지 事案(사안)과 事物(사물)이라 하는것을 예를들어 말하는 견해라하는 것은 그러한 그림의 틀 속박에서 훌훌 털어 버리고 그 아닌 드넓은 상태로 나아간 것을 가리킴이요 이를 갖다가선 시간성향과 공간성향의 등 기타 여러 견해라 하였사옵나이다 구도자들아 농부가 경작하여 열심히 매끄럽게 김메어 가꾸듯 하여 허심탄회한 마음을 일으킬자는 모든 일제의 견해라 하는 것 주장이라 하는것에 적응하대 이같음으로 알아 깨우칠것이며 이같은 견해를 갖음으로 깨우칠것이며 이같이 풀어 믿어서 는 어떠한 상상적 견해나 주장의 모양을 생기게 하지 않을 것이니 구도자들아 - 어떠한 견해나 주장이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오는 듯 한이 그러한 틀의 속박을 털어버린 그아닌 드넓은 상태로 나간 것을 말함이요 이를 갖다가선 견해나주장 따위등의 모양이라 하였나니라 하시다
다음은 서른두번째로 應化非眞分(응화비진분)이다 = 漢文(한문) 意域(의역)대로 푼다면 적응하여 변화시킬 대상을 맞닥 드렸을 적에는 그러한 대상을 진짜라 생각할게 아니다 말씀 나눔의 장이라는 뜻이다 내용을보면
須菩提(수보리) 若有人(약유인) 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이만무량아승지세계칠보) 持用布施(지용보시) 若有(약유) 善男子(선남자) 善女人(선여인) 發菩薩心者(발보살심자) 至於此經(지어차경) 乃至四句偈等(내지사구게등) 受持讀誦(수지독송) 爲人演說(위인연설) 其福(기복) 勝彼(승피) 云何爲人演說(운하위인연설) 不取於相(불취어상) 如如不動(여여부동) 何以故(하이고) 一切有爲法(일체유위법)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여로역여전) 應作如是觀(응작여시관) 佛說是經已(불설시경이) 長老須菩提(장로수보리) 及諸比丘比丘尼(급제비구비구니)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 一切世間天人阿修羅(일체세간천인아수라) 聞佛所說(문불소설) 皆大歡喜(개대환희) 信受奉行(신수봉행) , 구도자들아 만일 사람들이 있어서 기나긴 세월동안 여러가지 세상에 가득한 일곱가지 보배로운 덕목을 지니고선 널리 베풀음을 쓴다할 것 같으면 그 복덕이 상당이 많다할것이라 할지라도 만일 선량한 사람들이 있어서 널리 베푸려는 의도를 가진마음을 일으킨자 이글을 지니고 이어서 네구절의 게송등에 이르러선 받아지니어선 일고 외우어야 남들을 위하여 연설해주면 그복이 저 앞서전의 일곱가지 보배 베푼 복 보다 낳으리니 어떠한 방식을 취하여 연설할 것인가? 대상을 향할 적에는 그 압도된다는 생각을 갖지 말것이며 그무슨 상이라 하는 것을 취하려 들어선 그에 구애되어 심적으로 중압감을 갖거나 두려워 하지 말것이라 이렇듯 부동자세로 대상을 보고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지 말것이니 왜냐하면 일체의 견해나 주장 이념 사상 따위등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하는 것은 모두가 다 꿈같은 것이고 실제 존재하지 않는 환상같은 것이고 폭포수에 떨어지는 금새 있으면 꺼져 사라지는 거품 일듯 한것이요 빛이 사라지면 같이 없어지는 그림자 같은것이며 해가뜨면 사라지는 이슬같은 것이며 비오는날 음양 교접하는 기운 번개 찰나적으로 치는 것 같은 것이니 그어떤 모습 그대의 상이 너무 외소해 보이고 자신이 자신을 돌아본상에 놀라서 미치광이 같아서 대상들이 야유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들은 보잘것없는 허재비 집쑤성이 너에게 사로잡힌 힘없는 포로들이라 그 야유하는 상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되려 그 귀를씻고 경청하겠다고 어서 말씀하시라고 격려하고 독려하는 그런 쌋싹비는 모습이라 마음놓고 발광을 떠는 보습을 짓는다해도 저들은 너를 부처로 여길것이라 응당 이렇게 관점을 만들어선 대상을 제압하여 연설해 나간다면 몸에서 빛이나듯 두려움의 존재는 고개를 숙이고 움쭈려들고 멀리 사라지고 무대에서 짓이나서 생쑈를 부리는거와 같을 것이라 저절로 청중이 숙연해져선 그대의 감언에 쇠뇌될 것이다 부처님이 이렇게 이글 말슴하시길 마치시니 깨달음에 무르익은 구도자들과 그밖 모여 있는 모든 비구 비구니와 세속에 평신도들과 일체의 세상 상간과 하늘 사람들과 아수라들이 대달각성한 이의 대달각성한 말씀을 듣고선 모두들 크게 기뻐하여 믿음을 받아선 받들어 실천하였나리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파라밀경) 終(종) 이상으로 쇠처럼 굳세게 지혜를 단련하여 꽉 들어차게하는 글을 마친다 하였다
부처와 보살 행이 않인게 없으니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무대에선 연예인들이 모다 부처 보살이 청중을 향하여 그 좋은 연설함과 같은 것인데 또 그렇게 연설하는 것이 지금 그렇게 춤추고 신나게 놀며 움직이는 것으로써 변화한 것이라 여러 사람들을 흥겹게 해주는 것이다 이 모든 게 보살 행이라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