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의 승리
원제 : Tarzan's Triumph
1943년 미국영화
감독 : 빌헬름 틸레
제작 : 솔 레서
출연 : 자니 와이즈뮬러, 자니 셰필드, 프란시스 길포드
스탠리 리지스, 시그 루맨
MGM 영화사에서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인 자니 와이즈뮬러를 배우로 캐스팅하여 타잔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첫 영화는 1932년 '유인원 타잔' 이었습니다. 자니 와이즈뮬러는 국가대표 수영선수였을 뿐 연기는 해본적이 없었지만 타잔의 설정이 원시정글에서 자라서 말을 전혀 못하는 것이어서 연기력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첫 영화에서 영어대사라고는 '타잔, 제인'이 전부였습니다. 대신 190cm에 달하는 큰 키와 수영으로 단련된 건장한 체격은 벌거벗고 다니는 주인공 타잔에 적합하였습니다. 또한 수영장면을 많이 삽입하여 자니 와이즈뮬러의 장점을 많이 살렸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MGM 타잔은 이후 총 6편이 만들어졌고, 마지막 작품이 1942년 '타잔은 뉴욕으로' 였습니다.
1943년 MGM에서 RKO로 '타잔영화'의 판권이 양도되면서 자니 와이즈뮬러와 보이 역의 자니 셰필드도 패키지로 넘어갔습니다. 이들은 오로지 타잔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배우라서 RKO로 타잔의 판권이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제인 역의 모린 오설리반이 문제였습니다. 두 사람과 달리 제인은 원래 전문 영화배우였고, 타잔 시리즈 외에도 여러 영화에 다양하게 출연한 '진짜 연기자' 였습니다. 그래서 MGM 에서는 모린 오설리반과는 계속 계약을 유지했고, 모린 오설리반도 세 편의 타잔 영화에 출연 후 제인 역을 그만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RKO 타잔에서는 빠지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MGM 타잔영화를 6편이나 출연한 것도 나름 본인의 의사에 비해서 많이 나온 것이죠.
자, 제인이 빠진 타잔 영화가 그렇게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1943년 RKO의 첫 타잔영화인 '타잔의 승리'에서는 모린 오설리반 없이 자니 와이즈뮬러와 자니 셰필드, 즉 타잔과 보이만 등장합니다. 원래 계획대로 1939년 네 번째 영화인 '타잔의 아들'에서 제인이 죽는 것으로 처리되었다면 문제가 없었지만 계획이 변경되어 제인은 계속 등장했기 때문에 모린 오설리반의 퇴장에 대해서는 뭔가 설정이 있어야 합니다. '타잔의 승리'에서 생각해낸 설정은 어머니가 아파서 영국으로 잠시 돌아간 것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제인만 빠졌을 뿐 타잔은 여전히 이스카프먼트 고지대에서 살고 있었고 여전히 정글에서 고립된 삶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MGM과 달리 RKO에서는 MGM 에서의 식상한 패턴을 바꾸고 새로운 시도를 여럿 했습니다. MGM의 마지막 영화 '타잔은 뉴욕으로' 에서도 모처럼 타잔이 정글이 아닌 뉴욕 도시에서 모험하는 것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RKO는 그런 다양한 변화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타잔의 승리'는 타잔이 독일의 나치와 대립하는 구도입니다. 현대식 군사훈련을 받은 무기를 잔뜩 보유한 나치와 팬티와 칼 한자루 든 타잔이 과연 상대가 될까요? 하지만 장소는 타잔의 홈 그라운드인 정글이었고, 타잔은 보이를 구하기 위해서 나치와 전쟁을 선포합니다. 결과는?
뭐 정글에서는 아무도 타잔을 이길 수 없죠. 그럼에도 RKO에서 MGM 타잔의 패턴을 답습하지 않고 이런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해나간 건 높이 살만 합니다. 그럼 나치가 대체 왜 정글에 오게 되었나의 상황이 나와야죠. 타잔이 사는 이스카프먼트 인근의 저지대에 팔란드리아 라는 비밀스런 도시가 있습니다. 아주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입니다. 이곳에서 정글에서 죽을 뻔 한 독일군 한 명을 구해주고 정성껏 돌봐주었는데 그 독일 장교가 나중에 나치들을 데리고 팔란드리아를 방문한 것입니다. 은혜로이 자신을 돌봐준 사람들이지만 그곳에 원유 및 여러 자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전쟁물자로 활용하기 위해서 그곳을 침공한 것이죠. 팔란드리아 사람들은 그런 속셈을 모르고 그들을 손님으로 반갑게 맞이해 주었지만 나치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선량한 팔란드리아 사람들을 총으로 위협하여 숲에 비행장을 만들어 나치의 병력을 불려오려고 합니다.
자, 고립된 삶을 즐기는 타잔이 나치와 팔란드리아 마을의 내정에 간섭할 이유가 없죠. 그런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타잔이 어떻게 나치와 엮이게 될까요? 팔란드리아의 공주인 잔드라(프란시스 길포드)는 젊고 아름답고 용감한 여인입니다. 우연히 팔란드리아를 구경하려다가 절벽에 고립된 보이를 구해준 인연이 있었고, 그때 타잔을 알게 됩니다. 이후 잔드라는 나치의 침공 때 자신들을 구해줄 구원자로 타잔을 찾아갑니다. 물론 남의 일에 간섭하기 싫어하는 타잔은 잔드라의 이런 간청을 외면합니다. 대신 잔드라를 극진히 보호해주지요. 잔드라를 좋아하게 된 보이는 타잔을 설득하여 잔드라를 위해 나치와 싸울 것을 조르지만 타잔은 막무가내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잔드라에게 타잔의 환심을 살 수 있게 적극 도와줍니다.
타잔의 특징이 일편단심 제인인데, 잔드라 라는 제인의 대체미녀가 등장하면서 참 묘한 장면이 나옵니다. 보이가 잔드라에게 타잔을 유혹하는 법을 코치하니까요. 수영하는 타잔에게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게 하고 같이 수영하게 하고...하긴 아직 어려서 남녀간의 관계에 대한 개념이 없는 보이는 다음 영화인 '타잔은 사막으로 간다'에서 코니 라는 여자에게 아예 같이 살자고까지 합니다. 참 그러고 보면 타잔은 여복도 많네요. 여자를 찾기 어려운 고립된 정글에서 살면서도 제인이 잠시 떠난 사이에 두 명의 미녀와 각별한 인연을 갖게 되니.... 아무튼 제인 외에 다른 여자와 매우 다정한 장면을 연출하는 보기 드문 타잔 영화가 RKO의 '타잔의 승리' 입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질 때 사실 제인의 처리에 대해서 결정된 것이 없었습니다. 하마터면 잔드라가 제인을 대신해서 타잔의 새로운 여자로 계속 나올 뻔 하기도 했죠. 잔드라는 타잔의 집에서 꽤 가까운 마을에 살고(치타가 반나절만에 갖다올 수 있는 거리니) 상당한 미모와 용기를 가진 여인이니까요. 정글에도 비교적 익숙하고. 보이도 잔드라를 무척 따르고, 그리고 보통 타잔영화의 엔딩에서 외부인과 작별을 하고 끝나는데 이 영화의 엔딩에서 타잔은 잔드라와 작별하지 않습니다. 제인을 대신해서 치타의 재롱을 보면서 함께 웃고 끝나죠. 즉 반응이 좋으면 제인 대신 잔드라가 계속 나올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는지 아쉽게도 잔드라는 1회성 출연이 되었고, 이후 다음 영화에는 낸시 켈리가 연기한 코니 라는 여성이 역시 1회성으로 등장하지요. 코니는 타잔과 작별을 했으니 애초에 1회성이었고. 그리고 나치와 타잔의 대립에서 아이디어가 응용되었는지 다음 영화 '타잔은 사막으로 가다'에서는 제인이 부상당한 영국군을 위해서 간호사로 활동하고 전쟁이 끝나면 돌아오기로 하지요. 그리고 진짜로 2차 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고, 제인은 복귀합니다. 물론 모린 오설리반의 복귀는 아니었죠. 브렌다 조이스라는 다른 배우가 제인을 물려받아 연기하게 됩니다. 타잔 원작도 그렇고 아마 관객들도 타잔이 제인 외에 다른 여자와 사랑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겠죠. 결국 RKO 타잔에서도 타잔-제인-보이-치타의 그 견고한 가족은 그대로 유지되지요.
다만 바뀐것이 좀 있습니다. 타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타잔 옐, 즉 타잔 특유의 고함소리를 더 이상 RKO에서 계속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타잔 영화에서 밥먹듯이 나오는 타잔 옐이 확 줄었고 멜로디(?) 도 바뀝니다. 좀 더 단순하고 밋밋해지요. '타잔의 승리'에서 타잔 옐은 딱 두 번만 나오고 '타잔은 사막으로 간다'에서는 딱 한 번만 나옵니다. 그리고 MGM 타잔 6편은 모두 타잔의 후반부에 코끼리의 도움으로 적을 물리치는데 (심지어 뉴욕에 가서도) '타잔의 승리'에서 처음으로 코끼리의 도움 없이 외부의 적(나치)를 물리칩니다. 그리고 타잔이 키우는 코끼리를 팀바 라고 부르지 않고 불리 라고 부릅니다. (코끼리 이름도 판권이 있는지....) 다행인 것은 타잔의 집은 MGM 세트를 그대로 이어받아 사용합니다. 대신 MGM 처럼 타잔이 날렵하게 밀림을 날아다니지는 않습니다. 좀 뒤뚱거리는 어색한 줄타기도 한 번 나오지요. 타잔이 나치 때문에 추락하는 장면도 MGM이었다면 줄을 타고 날다가 떨어졌을텐데, 이번에는 그냥 어설프게 나무가지 위를 기어가다가 추락하지요.
최초의 제인 없는 타잔, 최초로 코끼리들 도움 없이 적을 물리치는 타잔, 그리고 탐험대나 정글의 원주민들이 아닌 나치와의 대결, 제인 대신 등장한 잔드라 라는 미모의 여인, 처음으로 타잔의 정글이 아닌 다른 지역을 지켜주기 위한 타잔의 전쟁, RKO의 첫 타잔은 그렇게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MGM 타잔보다 더 완성도가 높거나 재미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식상한 패턴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이것저것 많이 시도한 것이 RKO 타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s1 : 타잔이 사는 곳은 이스카프먼트 고지대인데 거기 사자, 코끼리, 악어, 코뿔소 등 여러 동물들이 함께 살지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구조가 된 지역인지 인근에 팔란드리아 라는 하루도 안 걸려서 갈 수 있는 신비의 평화로운 마을도 있고, 사막도 있고, 사막 근처에 비어헤라리는 소국가도 있고, 사막 건너에 신비한 약초정글도 있고, 여전사들이 사는 아마존 마을도 있고... 뭐 자동차도 없고 걸어서 가야 하는 정글에(심지어 타잔은 말을 타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다른 마을들이 그렇게 많을까요. 심지어 자코니 부족 등 여러 원주민들 지역도 있는데. 참 신비로운 지도로 구성된 타잔 정글입니다.
ps2 : 보이가 권총으로 나치 한 명을 물리치기도 합니다. 권총을 처음 구경한 보이일텐데 어떻게 그렇게 총을 정확히 쐈을까요? 물론 치타는 한 술 더 뜹니다. 연발총으로 적을 물리치니까요.
ps3 : 이번에도 치타가 엄청난 활약을 합니다. RKO 로 옮겨져서도 치타의 재롱은 오히려 더 늘어나지요.
ps4 : 영화가 촬영중이던 1942년에는 한창 2차대전이 벌어지던 시기였지요. 즉 나치의 침공은 '진행중'이던 시대였습니다. 일종의 연합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영화가 된 셈이죠. 그리고 이 영화의 기원처럼 얼마 후 연합군이 나치에 실제로 승리하지요. 타잔은 훨씬 일찍 정글에서 나치를 물리친 것입니다.
ps5 : TV에서 '나치의 검은 손길' 이라는 부제목으로 방영하기도 했었습니다.
[출처] 타잔의 승리 (Tarzan's Triumph, 43년) 타잔과 나치의 대결|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