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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 고구려, 이렇게 보면?
이레아 추천 0 조회 1,018 06.10.05 17:59 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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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10.05 18:04

    첫댓글 하지만 7백년을 갔었죠.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요?

  • 작성자 06.10.05 18:17

    제가 저 글을 통해 제기하려는 의문은 '강대한 군사력의 고구려'라는 관념에 대한 것이지 구구절절 장구한 역사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7백년간 국토를 수호할 만한 군사적 역량이 있었으니 그정도를 버틴것이 아니냐 라고 하신다면 제가 의문을 제기하는 측면은 이른바 "졸라짱센" 고구려 개마무사의 천하를 뒤흔드는 정복활동에 관한것이지 산성에 버로우 까고 기방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 06.10.05 18:53

    이레아//그러면 그러한 논지를 펼쳐야 하셔야지.. 저 글을 보고 의도와 달리 해석할 수 있습니다

  • 06.10.05 19:05

    청은 논외로 친다면, 요, 금 모두 중국이 엄청나게 혼란하고 역사상 가장 약체였던 시대에 나타난 제국이라는 점이 있지요... 그리고 요는 엄밀히 따져서 만주 계열의 국가가 아닌 몽골 계열의 유목민족 국가였고, 청조의 건국 역시 명을 대체해서 중국 전토를 지배하게 된 것은 사실상 운빨이 매우 강했다는 점... 반면 고구려는 건국 후 200년 동안 후한과 싸웠고, 그후 중국이 혼란에 빠진 400년 동안 무리하게 확장 안하고 한반도로 남하해서 국력을 신장시켰고, 수, 당과 맞짱뜨다가 장렬하게 전사 하셨습니다...

  • 06.10.05 19:08

    사족 하나, 고구려의 영토가 과연 우리가 흔히 배우는 수준이었는지가 의문입니다.. 당시 만주 전체에 걸쳐 국가 다운 국가는 고구려, 부여가 유일했는데 왜 고구려는 송화강 이남에만 있었을까요? 사실 우리는 너무 고지식하게 역사를 가르치는것 같아요... 약간 뻥튀기 해도 별 무리는 없을거 같은데... 사실 만주와 연해주 전체를 영토라고 가르친다고 해서 어느 누가 태클을 걸겠습니까... 실질적으로도 영토였을 텐데... 현지의 토착 지배층을 놓아두고 종주권만 인정 받는 방식의 지배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건 중국이 서역에다 한 짓인데, 중국은 그런 서역을 영토라고 자랑하는데 우리나라는 대체 왜????

  • 06.10.05 19:39

    음.. 그런 뻥튀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군요. 그래봐야 척박한 땅 조금더 찾지했다는 정도인데.... 제가 볼땐 우리나라 사람들 지나치게 한반도를 무시하는 사고도 좀 고쳐져야 할 듯 합니다. 장수왕이 왜 그넓은 만주를 놔두고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는지 생각해볼 부분이죠. 인구면에서도 고구려 보단 백제의 인구가 더 많았다는 것은 요즘 학계에서도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 지는 것 같더군요.

  • 06.10.05 21:23

    그런데 5세기에 가면 동부여 영토까지 병합하지 않나요? 송화강 일대까지 장악했는데...

  • 06.10.05 19:29

    그게 바로 고구려(또는 발해?)가 만주족이 세운 금,청이나 거린이 세운 요와 계보가 다르다는 증거입니다. 유목민 국가와 완전한 형태의 정주국가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뭐 이전의 조상이 유목민이라고 해도 우리의 경우는 삼국시대에 접어들면 완전한 정주민의 단계로 들어섭니다. 고구려가 타 유목민 국가들에 비해서 구사적 활동 범위가 넓지 못했던 것은 정주국가의 한계상 부득이 했을 것입니다. 사실상 전 부족민이 바로 군사자원인 유목민과는 달리 정주국가는 평소에 농사나 생업에 종사하다 유사시 전쟁에 참여하는 농병일치제가 기본입니다. 장기전의 경우 생업에 상당한 영?을 받를 수 밖에 없죠.

  • 06.10.05 19:35

    그래서 말갈이나 거란같은 종족을 용병으로 많이 할용하기도 한거고......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 고구려에 대한 과대 평가도 어느정도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데 한목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군사적으로 강한 면모를 가진 나라인것은 맞지만 과연 대제국으로 불릴만한 클레스인지는 의문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결코 폄하해서는 안될 것이 그만한 규모의 정주국가가 그정도의 군사적 역량을 보였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스타르타와 충분히 비교 될만합니다.

  • 06.10.05 21:25

    흠... 저는 작아서 귀여운(?) 아떼네와 스빠르따 정도까지는 보지 않고, 잘나갈 때는 비잔티움과 자주 충돌했고 승리도 했던 불가리아 왕국과 비교해 봅니다.

  • 작성자 06.10.07 12:56

    저도 만연한 고구려에 대한 과대평가때문에 저런 발제로써 의문을 재기한 겁니다.

  • 06.10.06 00:14

    쩝 만주에있는 왕조가 중국본토를 꼭 경영해야 한다는것도 우숩죠 고구려는 고조선과 부여의 계통을 잇고 중국의 중화주의에 비견되는 천하관을 가진 나라였죠 문화도 중국에비해 꿇리는 부분도 그다지 없었고요고구려인에겐 만주와 한반도가 천하였죠 글쓴이님의 논리도 어찌보면 중국이 중심이라는 중화주의의 일종같아 보이기도 하네요 중국의 주변국은 중국을 먹어야 천하를 장악한다는 논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고구려가 후한말엽부터 관구검과 모용씨의 후연에게 잠깐 깨진적 말고는 강력한 군사력과 외교술로 진왕조부터 오호십륙국 남북조까지의 400백년동안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며 국제정세를 좌우한 역사를 봐주십시오

  • 06.10.05 21:59

    고구려가 중국을 먹어치우려고 맘을 먹었다면 중국이 사분오열된 400년동안 기회가 엄청 많았겠죠 하지만 고구려에겐 중국이란 땅덩이가 그리 매력적인 먹이감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고구려에겐 중국을 먹어치우지 않아도 그들의 천하가 있었기 때문이죠 중국의 문화와 사상에 기대어 살던 유목국가와 고구려를 비교하는건 무리라고 봅니다

  • 06.10.06 01:07

    중원은 블랙홀이라 거길 먹은 민족은 거진 쥐도새도 모르게 소멸된다져

  • 06.10.06 06:28

    고구려의 중원은 한반도입니다. 이미 중원을 차지해 혼일사해의 대업을 영락태왕이 이룩했고, 조공을 바치는 나라가 수십인데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오곡이 풍성하게 익고 모든게 풍부했는데 정복할 땅이 남아 있겠습니까. 그게 고구려의 위대한 점이기도 하며, 고구려의 한계이기도 하지요.

  • 06.10.06 11:25

    '만주와 한반도'가 아닐려닞요?

  • 06.10.06 19:16

    왜 아랍인들이 신라에 들어오면 나가지 안을려고 하는지도 생각해보면...그리고 사실 고구려가 서쪽으로 더 진출하기도 힘든게 물 문제쪽에서 상당히 걸린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정설은 아닙니다

  • 작성자 06.10.07 15:05

    고구려의 천하는 한반도이고 고구려에게 중국이 매력적인 먹이감이 아니라서 고구려건국초인 3대 대무신왕때부터 신/동한을 공격해서 도리어 동한으로부터 수도를 공성당하고 고구려의 천하인 한반도에 제대로 진출하지도 않은 상황(동옥저 진출)에서 태조는 50년간 대중국영토확장전쟁을하고 차왕은 선비족과 연합해 유주와 병주를 공격하고 동천제는 위나라와 싸우다 수도를 털리고 기타 등등... 고구려의 중원인 한반도에서의 고구려의 확장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것이 15대 미천왕/16대 고국원왕(건국 삼백년만에)시대에 와서야 시작된 점 등이 과연 그런 대답에 맞는 일일까요?

  • 작성자 06.10.07 13:20

    전 차라리 15대 미천왕들어 중국에 유입되기 시작한 호전적유목민족들에의 중국의 군사적역량이 증가되면서 고구려가 이후 침공경로를 더 만만한 한반도로 돌린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06.10.07 15:35

    거기에 조선조까지도 인구의 자급자족을 달성하지못한 북한지역과 근대까지도 조와 콩을 주요작물로 삼은 만주일대를 기반으로한 고구려가 오곡이 풍성하고 모든게 풍부한 땅이었을까요? 중국기록에도 하호가 저멀리서부터 식료를 운반해 지배자들을 먹여살렸다는 그 고구려가요. 그리고 그런 풍성한 땅에 살았던 후대의 만주민족들은 왜 농경을 안하고 유목을 했을까요.

  • 작성자 06.10.07 15:48

    어느나라건 군사력이 강대하거나 주뵨에 약한세력이 있거나 부유한 땅이있으면 쳐들어가 자신들의 영토와 부와 군사력을 증강시니다. 고구려라고 예외할수 없고 그런점에서 고구려의 영토가 제가 언급한 국가들중 가장 규모가 작다는건 고구려가 그만한 국가였다고 할 수 밖 없는 이유입니다.

  • 06.10.07 17:26

    글쎄요 고구려에 대한 사료가 부족하지마 고구려가 기근에 시달렸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도 중국기록에도 없습니다 고구려는 경제적으로 수레가 발달했다고 김용만작가가 주장했죠 그건 수레가 다닐 만큼의 도로같은 기반 인프라가 기본적으로 존재했다는 말입니다 즉 도로가 존재했다는 말은 상업이 매우 발전했을것이란 추측이가능하죠 학계에선 고구려전성기 인구를 약 400만으로 잡고 있는데 고구려가 차지한 영토에서 나오는 곡물과 육류면 이정도 인구는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았을것 같은데요 물론 동천왕과 고국원왕때 관구검과 모용씨에게 수도를 공성당하고 백제에겐 왕이 전사하는 치욕도 당했죠 하지만 3세기 후반

  • 06.10.07 17:02

    소수림왕에서 부터 시작된 고구려 국력강화가 결국 광개토태왕대서 결실을 맺어 남으론 백제 신라 북으론후연 거란을 정벌함으로 해서 고구려의 전성기를 맞이하죠 당시 상황을 보면 후연은 이미 멸망직전이고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 의 속국화되 광개토태왕부터 장수왕으로 이어지는 속에서 중국은 남북조시대를 맞이하며 죽을쓰고 있던 상황 이었죠 하지만 고구려는 적극적으로 중국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며 지금 으로 말하면 동북아 균형자 역활을 하죠 북방민족의 강화라고 말씀하시지만 숙신같은 동쪽의 유목민은 고구려 멸망시 까지 고구려에 크게 위협이 된적이 없고 모용씨는 3세기 후반에 가면서

  • 06.10.07 17:18

    급속도로 멸망해가고 유연과는 거란 실 지두유 해 같은 군소 유목민이 완충지대로 있어서 크게 위협이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북방유목이 당시 중국에 들어가 왕조를 이룩한 일부세력을 제외한곤 고구려를 압박할 만큼 성장했던 세력은 그다지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므로 북방민족의 압박으로 고구려가 중국진출을 하지 못했다 는건 무리가 있어보이네요 중국이 부유한땅이라고 해서 모든 국가와 민족이 중국땅을노려야 한다는건 아니라고 보는데요 고구려에겐 고구려땅이 조상의 땅이고 자신들의 문화적역량도 충분한 상태였죠 굳이 부유하단 이유만으로 중국에 들어갈 이유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 06.10.07 17:00

    고구려가 중원에 비해 문화적 역량이 크게 딸린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도 중국땅을 얻지 못하면 기근에 시달려야 하는 유목국가였다고 보기 어렵죠 요 금 청같은 나라들은 문화적 기반도 취약하고 민족적으로도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중국의 문화와 보화가 없으면 나라의 지탱일 어려웠던것과 고구려는 근본적으로 다른것 같습니다

  • 06.10.07 18:05

    거란족과 만주족과 고구려족을 비교하는것 자체가 무리일것 같네요. 고구려는 정주농경민족이지 그들과 같은 유목민족이 아닙니다. 영토의 크기를 군사적 역량과 바로 결부시켜 버리는 것도 위험한 발상입니다. 당과 명을 비교하면 영토는 당이 훨씬 큰데 과연 당이 명보다 훨씬 군사적 역량이 뛰어나다고 하시겠습니까.

  • 06.10.07 18:48

    수렵민->정주농경민 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친구는 반농반목민이라고 하더군요;

  • 06.10.07 19:04

    고구려인들은 정착농경민이었구요 고구려구성원 중엔 말갈같은 숙신계열 유목민도 있었죠 유목 고구려복속민에 대한 특별 세금정책까지 있었으니까요 유목복속민의 비율이 고구려인구비중에서 낮았으니까 반농반목이라고 하기는 약간 무리지 않을까하네요

  • 06.10.07 18:14

    고구려의 경우는 안들어간 것이지 못들어간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목민족들은 중화왕조의 강하고 약함에 따라 공물을 타오던지 약탈하든지 해야 생계를 유지하는 민족이고, 고구려의 경우 그렇지 않죠. 광개토왕 이후에 고구려가 생계를 위해 약탈을 하는 것이 보입니까. 그들 유목민족과 고구려의 소위 문화적 역량이라는 것은 과연 비교조차 할수 있겠습니까. 완전한 정착을 이루어 동방의 강국으로 성장한 고구려가 피를흘려가며 차지해야할 메리트가 중원에 있었을지가 의문입니다.

  • 06.10.07 23:43

    풍부하기에 넓히지 않았다는 말은 너무 큰 비약일까요. 외교적으로도 고구려가 강대국 반열에 들어간 5세기 이후 약탈과 정복은 이미 옛 일이 돼버린 정도로 정세적 균형과 미묘한 신경싸움이 동북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5세기경 장수왕이 (별것 아닌거 같은) 지두우를 정복해 유연과 분할해서 북위가 엄청난 위협을 느꼈음을 알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A국이 B국에 평화유지군 보내서 B국을 A국화 시키는 바람에 C국 외무부가 "유감이다" 라고 표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좀 아닌가? -_-;;;

  • 06.10.07 23:44

    게다가 평양과 한강유역이라는 썩 좋은 곡창지대를 차지해 버렸는데 뭐가 더 부족하겠습니까. 몽골 부족들에게 식량이 풍부했다면 그 거대한 대제국을 세웠겠습니까.

  • 06.10.08 00:53

    뭐랄까요.. 고구려가 중국에 안들어간건 정말 주목해볼만한 건데..타 유목민 국가들은 문화적 역량에 있어서 중국보다 독자적인 자주관 확립이 약했던건 분명한것 같습니다.아니면 기후변화 문제일수도 있고요(그들 본거지를 아얘 옮긴다는 문제는 사상보다 자연환경탓이 더 클것 같다는 추측도 듭니다만...추측일뿐;)

  • 06.10.08 00:55

    하여튼 고구려는 문화적으로나 기후적으로나 중국에 옮겨야할 이유가 전혀 없었는지도 모르죠.만주에서 자라고 만주에서 세운 전설을 간직한 나라를 중국으로 이주해야할 이유가 과연 있었을까요? 중국이란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게 하지 않았던건 고구려의 문화적 자존심에서 나온 하나의 민족사적 쾌거지..(물론 군사적인 문제가 있었음에.. 반대하는바는 아니지만..)굳이 서토(중국)에 들어가야할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 06.10.09 04:55

    우리 한민족의 활동지역은 원래 만주와 한반도입니다. 고조선이 한아라에게 멸망하고 난뒤에 만주와 한반도에 수많은 부족이 생겨났고 그후 전쟁,흡수를 통해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생겼죠 고구려는 초기 만주지방의 세력과 고구려보다 앞선 백제와의 경쟁을 통해 대국이 되었습니다. 즉 중국세력보다는 한반도의 백제나 신라의 위협도 무시할수없었죠. 거란족이야 황하이북까지 내래가지 않았다고 치고 여진족때는 고려사회가 혼란할때이고,만주족은 청태종이 조선을2번이나 두들겼으니 말다했죠

  • 06.10.11 01:23

    영토크기가 국력을 나타내는 절대적 척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굳이 영토에 대하여 언급하자면, 고구려의 경우 직접 통치하는 영역과 간접통치 영역, 세력권이 비교적 명확합니다. 특히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영토는 직접통치하는 지역으로 한정하여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반면에 기타 본문에서 언급한 국가들의 경우는 두리뭉실하게 유목민이 분포하던 모든 지역을 아무런 의문없이 인정합니다. 물론 어차피 그들은 유목민이고 유목민의 특성을 고려할 때 꼭 틀렸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제기한 바와 같이 단순비교는 무의미할 뿐 아니라 옳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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