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보러 갔다. 전교생 203명중 정예 멤버로 뽑힌 여덟 명의 우리들은 각자의 담임 쌤의 차를 타며 선생님의 기름으로 좋고 편하고 즐겁게 도착하였다. 경상북도 끝자락에서 경상남도 끝자락까지의 먼 여행이다 보니 종례도 남에게 맡겨버리고서는 급히 출발하였다. 그날따라 비가 퍼붓는다고 일기예보가 말하였지만 우리 반에는 맑음 인형이 몇 개나 달려있었기에 운이 좋은 것인지 인형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비가 적게 내리거나 앞이 안보일정도로 쏟아 붓다 곧 그치고는 하였다. 대부분의 날씨는 비를 겨우겨우 참고 있는 듯 흐린 날이었다. 노정쌤은 적당한 날씨라 칭찬하였지만 역시 조금만 더 우리를 반기듯 쨍쨍하였더라면 좋았겠다고 나는 배부른 투정을 하였다.
네비게이션이 없으신 홍쌤은 빌려서 오시는 투철한 정신을 보이셨다. 그리고는 자동차의 여정 내내 네비게이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모르는 지역이니까 길 잃어버리면 우린 택시타고 경찰서 가야 했을 거다.
여하튼 도착하고 나서 시간이 남아 돌아다니다가 입장을 하였다.
자리에 앉아 사람을 둘러보니 촌놈이나 도시 놈이나 똑같더라.
앞의 꼬마 애들은 어머니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놀고 떠들고 비비적거리곤 하더라.
그래 이쪽까지는 용서할 수 있지만 폰은 만지지 말아줘. 너무 환하단 말이야. 너 때문에 배우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여서 내 환상이 깨져버렸잖아. 이런 미취학 아동 같으니라고.
또 어느 건실한 청년은 피자를 사와서 들고 오더라.
하지만 오히려 저런 못난 모습에 나는 안심하고 상주기분을 내며 관람 할 수 있었다.
맨 처음 이순신에 대해서 말해보려 한다. 이순신 그는 극 중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하호호 이야기 하고 있으면 듣고 있다가 불쑥 끼어들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사람이다. 결국 인생자체가 진지한 남자였다. 옆에서 '시부랄'거려도 화내지도 않는다. 담담히 서 있으며 반박한다. 그리고 개 한 마리 잡아먹었다고 곤장 팔십대를 때리기도 하였다. 실은 그 자리에 탐관오리가 있어 그를 혼내줄 구실로 삼으려 한 듯하였다.
하지만 그는 진지한 만큼 인간적인 모습이 살아있었다. 그가 나갔던 전투에서 겁을 내기도 하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못 만나면 어쩌지 하는 노파심도 있었고, 자신의 아들이 자기처럼 맞서 싸우다 죽었다는 사실에 그는 통곡하기도 하였다. 천하다고 해서 사람을 차별하지도 않고 잘 놀아주기도 하였다. 그런 순신이의 인간적인 모습에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좋아하고 그의 일이 자신의 일인 양 적극적으로 행하기도 하였다. 순신이에게서 배운 것은 결국 '인간답게 진실 되게 대하면 누구든 마음을 열 수 있구나.' 라는 것이었다.
이 뮤지컬은 어릴 때 읽던 위인전에 나와 있는 이순신보다 좀 더 인간 같은 모습이 부각되어있었고 이 인간도 인간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사실 나라도 승사가 없는 전투에 겁을 먹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거다.
하지만 그런 인간적인 인간 활동에 비해 전체적인 줄거리는 역사와 같다고 본다. 정묘재란이나 전투는 말이다.
그래도 뮤지컬이기에 비현실적인 것도 들어가 있기는 하다 조총과 상모가 싸워서 상모가 이기는 것과 상모로 공격하는 것. 전어가 춤을 추는 것은 사실 볼이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웠다. 전어랍시고 사람들이 나와서 하늘거리는데 왠지 스펀지에 나오는 실험 맨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뮤지컬의 효과이다. 살육하는 징그러운 장면이 어느새 긴 천 하나로 표현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간편하고 효율적이며 가벼워 보이기까지 해보였는데 막상 돌리는 사람은 어지러워 보였다. 머리를 붕붕 돌리면 화려하게 퍼지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이 뮤지컬에는 많은 노래들이 나왔다 고수가 나오는 판소리로 간언하기에서부터 왠지 지금 날의 랩과 같은 거북선 설명하기 등등 다양한 종류가 나왔다. 듣기에 좋았던 곡이 많지만 그냥 노래말고 읽어주었으면 하는 음악이 어색한 부분이 있기도 하였다. 아마 이유는 내가 봤던 뮤지컬들보다 좀 많이 노래가 나와서 그런 것 같다. 몇 편 보지는 못하였지만 봐왔던 뮤지컬들로 적정선을 찾았었으나 무시당하고 빅 한 음악들이 나와 긴장한 내 탓일게 분명하다.
일본군이 쏘는 조총에 이야기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깜짝깜짝 놀라고, 능숙하고 능력 있는 노정 쌤이 귀 막는 것을 보면 따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였다.
그래도 좋다. 마지막부분에는 조총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전부다 도망가고 이순신 죽고 나서 마을사람들이 통곡하며 장례 치르는 데 전쟁소리, 조총소리 들려서 뭐하랴.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는 두 종류였다.
제일 앞 가둬진 염소우리 같은 오케스트라석과, 그곳에서 뒤로 약간 물러나 있는 적당한 오 만원자리. 내가 앉은 자리는 후자였다.
자리에는 장단점이 있었다. 맨 앞자리는 뮤지컬은 잘 보이지 않지만 커튼콜 때 손을 뻗어 배우들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었고, 내가 앉은 자리는 뮤지컬은 기똥차게 잘 보이지만 오케스트라석에 가로막혀 손을 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맨 처음의 나는 제일 앞자리에 앉고 싶었고 나는 그 자리를 꿰차지 못한 것에 대해 절망하였다. 아직 어리고 민감하고 외모에 관심을 두는 여중생이어서 그런지 뮤지컬보다는 잘생긴 배우에 대한 사심이 너무 강해서였다. 하지만 나의 초반의 절망은 마지막 커튼콜 때에 와서 아침과 낮이 바뀌듯 바뀌어버렸다.
와, 행복해라. 망할 경상남도 도지사가 등장하여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서는 무대로 올라가기 시작하였고, 즐겁게 우리를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손을 뻗을 타이밍을 자기가 앗아가고 악수하며 사진을 무대 한가운데서 찍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애들이 악수하지 못하였다. '내가 못하면 남도 못해야해' 라는 나의 마음 어딘가 잡혀있는 놀부가 살아나기 시작나기도 하였지만 뮤지컬 잘 못 보는거 참고서는 악수를 택했는데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 아이들이 불쌍하게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게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망할 사진사 빡빡이가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자신의 왜소한 체격으로 완전히 가려버렸다. 내 요염한 매력의 일본남자를 그딴 늙은이가 가려버렸다. 그 느낌이었다. 영화관에서 슬픈 영화 보고 있는데 앞에 머리 짱 큰 아저씨가 제일 중요한 장면에서 팝콘 씹어 먹으며 큰소리로 떠들고 있는 느낌.
또 뮤지컬 내내 나는 재채기와의 싸움에 시달렸는데 그건 내가 꽃가루 알레르기이기 때문이다. 도지사가 공연장에 꽃다발을 들고 와서 나는 재채기를 참느라 제대로 관람도 못했다. 나쁜남자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