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오바마 건보개혁에서 해법 찾는다
스물두 살의 오바마는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하고 다국적기업을 상대하는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다. 파이낸셜 라이터로 승진했고, 전담 비서까지 생겼지만 뉴욕 맨해튼 심장부의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시카고 흑인 빈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스스로 “구원을 찾아 나섰다”고 했다.
오랜 내적 방황의 돌파구를 흑인 인권이라는 보편성의 세계에서 찾기 위한 운명적 선택이었다.
활동은 만만치 않았다. 빈민가 총기사고 대책을 세우자고 목사들을 만났지만 조롱만 당했다. 첫 집회를 열었지만 좌석은 텅 비었다.
그는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참담한 결과”라고 적었다.
이렇게 실전적인 현장경험을 거쳐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조셉 나이가 스마트 리더십이라고 부르는 오바마식 리더십은 탄생했다.
지금 오바마 미합중국 44대 대통령은 건강보험 개혁을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건보개혁은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제기한 이후 100년 가까이 풀지 못한 미국사회의 숙제다.
하지만 오바마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진정성이 뒷받침된 뛰어난 소통능력이다.
시카고 빈민가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그는 국민을 상대로 집요하게 호소하고 설득했다.
하루에 무려 다섯 차례나 방송에 출연해 건보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국민을 직접 만나는 타운홀 미팅도 수시로 다녔다.
부유층과 기업에 부담을 전가해 경제가 활력을 잃을 것이라고 공격받았고, 사회주의자로 비판받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오바마는 의회를 설득과 소통의 중심 무대로 활용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가 만만치 않았지만 의회를 두 번이나 찾아갔고, 상·하원 합동 연설을 했다. 하원 표결을 앞두고 당적을 가리지 않고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했다.
백악관 비서실장과 보건장관·교육장관도 가세했다.
특히 처음부터 의회가 개혁안 초안을 만들도록 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에게 전권을 주고 민주당 내 반대파, 공화당과 절충하도록 했다. 펠로시는 저소득층 건보 가입을 위한 연방정부 보조금을 줄이고 중소기업의 건보 제공 의무를 면해 주자는 당내 보수파 의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물론 펠로시의 지지기반인 진보진영과 히스패닉, 흑인계 의원들은 배신감을 표시했다.
낙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재정지원을 금지하는 법안도 통과시켜 줬다.
당내 낙태 반대 의원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표적 낙태 권리 옹호자이지만 더 큰 목표를 위해 기꺼이 소신을 접었다.
이렇게 해서 7일 건강보험 개혁안이 가까스로 하원을 통과할 수 있었다.
건보개혁은 미국 정치인에게는 위험한 어젠다다.
루스벨트·케네디를 포함해 손을 댔던 인물은 모조리 사회주의자로 몰렸다.
빌 클린턴도 집권 초기에 아내 힐러리를 앞세워 건보개혁을 추진하려다 좌절했고, 1994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했다.
건보개혁을 위해서는 납세자들이 10년간 추가로 1조2000억 달러를 부담해야 한다.
이들은 병원에 갈 수 없는 4700만 명을 도와야 한다는 명분에는 찬성하지만 막상 내 돈은 쓰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반면 수혜자들은 먹고살기에도 바빠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정치적 이해득실로만 따지면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만일 개혁법안이 상원 표결에서 부결된다면 오바마도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건강한 미국을 만들겠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밀어붙이고 있다.
오바마의 건보개혁 추진방식은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해법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정운찬 총리를 앞세울게 아니라 국정의 설계자이자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과 대화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서울시장 때는 수도분할이라며 반대했다가 대선 후보 시절에는 충청권 표심을 잃지 않기 위해 찬성으로 돌아섰던 데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게 순리다.
그리고 국회를 소통의 무대로 활용해야 한다.
국가적 갈등 조정을 존재 이유로 하는 국회를 놔두고 민관합동위원회에 권한을 준 것은 정공법이 아니다.
힘들더라도 대통령이 국회를 상대하고, 당내 반대세력과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야당도 국익을 위해 열린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수정안이 단순히 충청권을 위무하는 정략적 수준에 머문다면 반목과 분열의 시작이 될 것이다.
국가 전체의 100년 뒤를 헤아리는 심려 깊은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
당장은 힘들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개혁을 하자고 호소하는 오바마식의 솔직한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진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소통하면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과 국가의 장래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이하경 전략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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