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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도 걷기와 숲 체험이 인기다. 사계절 상록림이 많은 제주는 숲체험을 하는 데 최적의 공간이다. 거기에는 삼림과 제주의 역사문화가 함께 녹아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트레킹, 생물권보전지역에 자리잡은 사려니숲길에 탐방객들은 열광한다. 이뿐 아니다. 한라산 허리를 한 바퀴 두르는 제주의 옛길 ‘환상숲길’인 둘레길도 부분 개통되기 시작해 명품숲길을 예고해 놓고 있다.
한라산둘레길은 한라산국립공원 자락 해발 600~800m 고지를 빙 둘러 순환하는 숲길이다. 한라산둘레길을 ‘환상숲길’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한라산 허리를 타원형으로 빙 둘러 순환하는 숲길이라는 의미에서다. 더불어 그 속에 감춰진 역사·문화·생태·경관자원을 만날 수 있어 매력적이고 환상적(幻想的)인 길이라는 의미까지 녹아 있다.
한라산둘레길이 지나는 해발고도는 제주도에서 여러 가지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제주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 동식물의 분포, 자연환경 등에서 중요한 구분이 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이 지점이 경작지, 혹은 목장과 한라산 숲의 경계지점으로 생활에 필요한 나무, 땔감을 구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과거 일제 시절 ‘하치마키 도로’는 바로 한라산 숲에서 생산되는 임산자원을 운반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이다.
또한 식물의 분포에서도 이 지점은 난대와 온대를 구분하는 구분선이 된다. 식물학적으로 제주도가 국내, 국제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좁은 지역임에도 우리나라에서 분포하는 식물의 약 50%가 한라산에서 자라며, 이 식물들이 수직+계단식으로 분포하는 ‘식물의 수직분포’로 잘 알려져 있다. 한라산둘레길은 식물의 분포상 동백나무, 붉가시나무 등이 우점종인 난대림과 서어나무, 졸참나무 등이 우점하는 낙엽활엽수림 사이를 통과하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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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라산둘레길은 묻혀 있던 옛길을 복원한 것이므로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치유의 숲길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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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둘레길 어떤 곳인가
환상숲길인 한라산둘레길은 1100도로변 서귀포자연휴양림을 시작으로 남성대 제1대피소~5·16도로 수악계곡~이승악~사려니숲길~비자림로~관음사야영장~천아수원지~돌오름~서귀포자연휴양림 거린사슴까지 80여km의 여정으로 한라산의 허리를 한 바퀴 돌게 된다.
▶서귀포자연휴양림~시오름 서귀포자연휴양림이나 서귀포시 도순동 소재 법정사를 출발해 서귀포시 서홍동에 있는 시오름까지 약 9km에 이른다. 숲길은 한라산국립공원 외곽 해발 700m 일대를 동서로 연결한다.
서귀포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산림뿐 아니라 숙박시설을 겸비한 복합휴양관, 다양한 산책코스를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서귀포자연휴양림은 둘레길에서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이다.
휴양림 산책로를 따라 1.5km를 이동하면 도순천을 만나게 되며, 도순천 징검다리 돌계단을 가로질러 하천을 건너면 오르막 법정사 전망대로 이어진다. 환상숲길을 잇는 목재데크 산책로를 따라 만나는 법정사 전망대에선 서귀포 앞바다 범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귀포자연휴양림과 법정사를 연결하는 323m 길이의 이 산책로는 2007년 준공돼 일반에 개방되고 있다. 산책로는 법정사와 의열사를 연결한다. 숲길에는 동백나무와 편백·삼나무숲과 같은 삼림과 화전터, 4·3유적지도 분포한다.
▶제주시험림~남성대 제1대피소~5·16도로 약 15km.수악계곡 남성대 제1대피소에서 돈내코 등반로와 선돌을 거쳐 수악계곡까지 이어진다. 일제 병참로인 ‘하치마키’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구간 중 하나다. 작은 계곡을 잇기 위해 돌로 메운 뒤 평탄하게 만들어 사람과 기구가 움직일 만한 길도 열었다. 대부분 숲길 구간에서 길의 한쪽 부분들이 돌이 쌓여 있고 마감 처리된 것이 확인됨에 따라 자연적으로 유실되기 이전에는 도로로 사용된 적이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이 구간은 국내 최초 국제산림인증 시험림을 관통하기도 한다. 제주시험림은 남원읍과 한남리 소재 한남시험림을 지칭한다. 이 두 곳의 시험림 면적이 2753ha로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제주시내를 관통해 하구인 용연으로 이어지는 한천 상류에 탐라계곡이 있는 것처럼, 수악계곡은 신례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신례천은 성널오름과 사라오름에서 발원해 보리악, 수악계곡을 거쳐 남원읍 하례리와 신례리 경계를 가로지르는데, 하천 전 구간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수악계곡~비자림로 이 구간은 총 21km쯤 된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령인 붉가시나무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승악 주변에 분포한 화산활동 흔적과 생물이 혼생하고 있는 곳이다.
5·16도로 수악계곡에서 이승악까지 5km 구간은 숲길의 흔적이 거의 없어 탐사가 쉽지 않다. 기존 도로변을 따라 이승악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긴 하지만 국립공원을 비껴가는 원칙을 유지하고 차도를 걷는 일을 피하기 위해 이승악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새로 개척했다.
이승악을 끼고 돌아가는 길목마다 발견되는 화산활동의 흔적은 마치 원시 자연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화산탄으로 보이는 직경 2m 이상 되는 거대 암석이 지상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가 하면, 그 암석을 토양으로 삼아 솟아오른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구간에는 다양한 수종으로 구성된 조림지와 편백나무를 선발해 개량종자를 생산하기 위한 한남시험림의 채종원도 만날 수 있다. 1983년 조성된 한남리의 채종원에는 4.5ha에 1,800본의 편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특히 전국적으로 분포한 삼나무, 편백 등의 우수 종을 모아 놓은 ‘유전자원보존원’은 미래 세대의 산림환경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난대산림연구소가 관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