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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에 차우셰스쿠(루마니아어: Nicolae Ceauşescu, 1918년 1월 26일 ~ 1989년 12월 25일)는 루마니아의 독재자로, 1965년부터 1989년 총살되기 며칠 전까지 공산주의 국가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의 국가 원수(1974년부터는 대통령)을 지냈으며 1989년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자 도주를 시도하다가 총살되었다.
1965년 3월 게오르기우데지의 사망 이후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 공산당의 지도자를 승계받았으며 1967년에는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취임,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의 국가 원수가 된다. 차우셰스쿠는 집권 초기 소련의 공산권 간섭에 당당히 맞서는 독자 노선으로 서방 국가들과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바르샤바 조약기구 활동을 사실상 중단시켰으며(형식적인 참여에 그침) 1968년에는 바르샤바 조약국들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도 참여하지 않고 공개 비난하였다.
이러한 독자적인 외교 정책은 루마니아가 곧 산유국이며, 소련에 의존하지 않아도 독자적으로 외화 획득이나 에너지 자원 확보의 가능성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독재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1974년 차우셰스쿠는 자신의 직분에 대통령직을 추가하여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차우셰스쿠는 외교 정책으로는 중소 분쟁 때 중화인민공화국과 옛 소비에트 연방 중 어느 한 편에 가담하지 않는 독자 노선을 걸었지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민주화에는 저항하였다. 그는 민중들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을 통제하고 반대 세력을 용납하지 않는 독재 정치를 하였다.
다른 독재자들과는 다르게, 차우셰스쿠는 한번 입은 양복을 바로 태워버리고, 서방 정치인들과 접촉하면 그 자리에서 알코올 소독제로 소독하는 등 정신적으로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특히나 그의 악명 높은 정책 중 하나는 '강제 임신'이었다. 이는 한 집에 아이를 적어도 5명은 의무적으로 낳게 하는 것이다. 차우셰스쿠는 낙태와 피임을 일절 금하고, 이를 채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벌금을 부과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가서 낙태(또는 피임)을 하고자 했고, 그는 이를 알게 되자 낙태를 목적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전부 총살형에 처하게 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루마니아에서는 전염병이 엄청나게 돌고 있었다. 그 결과 출산율이 올라갔지만, 유아 사망률도 그에 맞게 내려갔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였고, 성적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러자 아이들을 위해 대규모로 고아원을 만들었지만, 이 역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고, 많은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는 신세를 당하고 말았다. 어떤 아이들은 세쿠리타테라는 차우셰스쿠의 친위대로 양성되어 온갖 부를 누렸지만(이들은 극소수), 대부분의 아이들은 길거리에 내던져진 채 노숙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말았다. 일부는 다른 사람에게 팔려가서 막노동을 하는 신세를 당하였다. 이 아이들을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이라 부른다.
차우셰스쿠는 집권하자마자 강압적인 출산율 촉진 정책을 사용하는데, 피임기구를 수입 금지하고, 출산하면 애국자라 규정하고, 아이를 많이 낳으면 세제 혜택을 주고, 그리고 임신중절을 금지시켰다. 출산율은 급증하긴 했지만 몇년 되지도 않아 출산율은 다시 내려갔고 4년이 지난 후에는 출산 촉진 정책 시행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더니 이후로는 조금씩 계속 떨어졌다. 출산을 하지 않기 위해 피임기구를 밀수입하고 병원이 아닌 곳에서 불법 낙태수술이 이루어졌다.
이와 정반대의 인구를 줄이려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 대한민국에서는 가족계획사업은 가족의 건강과 가정복지의 증진을 위하여 수태조절(受胎調節)에 관한 전문적인 의료봉사·계몽 또는 교육을 하는 사업으로 대한민국 모자보건법에서 정의하고 있다. 하나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시행되었던 인구증가억제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후 출생률 감소로 인해 1990년대 후반 들어서 시행된 출산장려정책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가구 1자녀 원칙에 따른 가족계획 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둘째 아이를 임신한 것이 발각된 경우 강제로 낙태되며, 태어나도 생존이 가능한 임산부에 대해서도 낙태가 시행되어 비난을 받고 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둘만낳아 잘기르자, 하나로도 충분하다 인구억제정책의 세뇌를 받고 자란 사람들은 무의식인지 경제가 어려워서인지 거의 출산을 안해서 세계에서 가장 출생률이 낮은 나라중 하나가 되었다. 필자는 정부에서 아랫도리 아래의 일을 왜 간섭하려는지 이해가 안된다. 언제는 피임하면 장려하다가 요즘에는 3째 아이 출산하면 보조해주고 이런 조령모개의 정책이 맘에 안든다. 이 출산장려책도 실패해 현재 외국인 노동자나 신부를 수입해 쓰려는 다문화 가정도 참으로 한심스럽기 마찬가지이다. 사후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하네 마네 하는 것도 그렇다.
아무튼 임신과 출산은 개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이며 또 결혼했다고 해서 아기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하늘[예전에는 삼신]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다. 또 예전부터 임신부는 남편의 수발을 받고 사회적으로도 보호받았다. 그런데 출산후에 처녀적 몸매는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면 돌아갈 수 있지만 임신후 튼살은 저절로 전으로 가지 못하니 문제이다. 이런 경우 이미지 한의원에서 튼살침인 ST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물론 완벽히 전의 피부 상태로 되돌릴 수 없겠지만 수영이나 대중목욕탕 출입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 가능하며 출산후 6개월이내에 치료받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
첫댓글 차우셰스쿠는 집권하자마자 강압적인 출산율 촉진 정책을 사용하는데, 피임기구를 수입 금지하고, 출산하면 애국자라 규정
루마니아에서는 전염병이 엄청나게 돌고 있었다. 그 결과 출산율이 올라갔지만, 유아 사망률도 그에 맞게 내려갔다
성적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러자 아이들을 위해 대규모로 고아원을 만들었지만, 이 역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고, 많은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는 신세를 당하고 말았다
일부는 다른 사람에게 팔려가서 막노동을 하는 신세를 당하였다. 이 아이들을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이라 부른다.
루마니아가 곧 산유국이며, 소련에 의존하지 않아도 독자적으로 외화 획득이나 에너지 자원 확보의 가능성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차우세스크는 성적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러자 아이들을 위해 대규모로 고아원을 만들었지만, 이 역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고, 많은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는 신세를 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