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비트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6번지 성보빌딩 301호 Tel. 02_722_8749
사진가 이상엽의 신작 사진전이 인사동 아트비트갤러리에서 개관기념 초대전으로 11월 21~12월 4일까지 2주간 열린다.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 등의 매체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등의 출판물을 통해 다큐멘터리사진가로 알져진 이씨는 2004년부터 3년간 러시아를 취재한 글과 사진으로 〈레닌이 있는 풍경〉(산택자, 웅진 임프린트)를 출간하는 동시에 동명의 사진전을 연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할린까지 1만킬로미터의 땅에 서있는 레닌의 동상과 기념물에 초점을 맞췄다. 이씨는 사회주의 붕괴 후 러시아가 갖고 있는 이념과 상징, 지표로서의 레닌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를 추적한다. 이번 전시에는 15점의 흑백프린트가 선보인다.
추억이 된 혁명가 ● 〈레닌이 있는 풍경〉은 사진가 이상엽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시베리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사회주의 체제 몰락 이후 큰 변화를 맞고 있는 러시아 사회의 모습을 기록한 작업의 일부이다. 한눈에 쉽게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변화가 구석구석 숨어있는 그 사회에서 작가는 레닌과 관계된 이미지만을 따로 모았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어 가는 과정에서 러시아혁명의 후계자들은 대부분 러시아인민에게 독재자로 간주되었다. 스탈린의 동상은 도처에서 헐리거나 파손되어 마치 비잔틴 시대의 성상파괴운동과도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기야 그의 동상은 이콘화의 전통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었던 러시아 인민의 종교의식 속에서 성상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스탈린은 사라졌어도 레닌은 남았다. 그 이유를 파헤치는 것은 작가에게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는 단지 남아있는 레닌의 모습들에서 ‘추억’을 되새길 뿐이다. 무슨 추억일까.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작가에게 맑시즘은 휴머니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과학이었다.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파헤친 철학자들은 많지만 맑스는 분석을 필연적인 현실로, 예정된 역사적 귀결로 제시한 이였고, 이를 처음 실천해 옮긴이는 레닌이었다. 레닌이 없었다면 맑시즘을 과학으로 여기는 관점은 토대가 취약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레닌은 맑스를 맑스 자신보다도 더 맑스답게 받아들였던 이다. 그에게서 비로소 맑시즘은 현실적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실천이 이론 자체보다 더 중요했던 작가의 청년기는 그래서 레닌에 대한 추억이 깃들어 있다. 그의 청년기에는 레닌이라는 이름을 공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금기였던 만큼 음지에서 비밀스럽게 그를 읽었다. 1910년 1차 혁명 실패 이후의 망명생활에서부터 조직을 재건하여 1917년 혁명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일대기였다. 일거수일투족과 발언 하나하나가 모두 모범인 가장 완벽한 혁명가가 바로 그였다. 영웅을 넘어 신비스럽기까지 한 인물,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이상사회 건설에 바친 인물, 하지만 허황된 꿈과 이상에만 매몰되지 않고 정확한 판단력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상을 현실로 만든 완벽한 현실주의자. 이러한 생각들이 레닌에 대한 청년기 작가의 추억을 감싸고 있다. 하지만 이제 레닌이 건설한 나라는 무너지고 없다. 그가 가졌던 생각이 과학이 아니라 미신이었는지, 혹은 그의 후계자들이 잘못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제 모든 것이 역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성공했으나 결국은 실패로 끝난 역사, 그것이 레닌이 만든 역사이다. 그래서 추억은 씁쓸하다.
레닌이 건설한 국가는 한때 미국과 견줄 만큼 부유한 때도 있었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옛일이다. 이제 그 나라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체제가 붕괴하기 전에는 자본주의의 쓰레기로 여겨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현상들을 민첩하게 뒤쫓고 집단을 위해서만 일하던 사람들의 의식도 많이 황폐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이미 실패로 입증된 체제에 미련을 갖는 이들도 많다. 믿기지 않아서, 혹은 믿고 싶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러시아 어디를 가든 레닌은 여전히 영웅처럼 서있다. 이 불세출의 영웅의 후계자는 영구혁명론자 트로츠키가 아니라 국가사회주의 건설의 주창자인 스탈린이었다. 하지만 레닌만이 진정한 영웅이자 인민의 벗이며, 반대로 스탈린은 독재자로 간주되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 공공장소 어디를 가나 서있는 레닌의 동상을 보며 한때 그를 동경했던 사진가는 감회가 새로웠을 법하다. 레닌이 꿈꾸었던 사회는 이런 사회가 아니었지만 현실은 비정하고 자본은 위력적이다. 사진가 역시 이러한 진실을 아시아 동쪽 끝에서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레닌은 그래도 행복하다. 이상을 이루었고 그것의 나락을 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꿈꾸었던 이상사회는 채 한 세기도 못가서 무너져 내렸고, 자손들은 다시 궁핍에 빠져들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가 가장 두려워하여 위험인물로 여겼던 이 혁명가의 동상 주변에는 자본주의의 상징들이 모여든다. 사람들은 그의 발아래에서 빵 사기에 바쁘고 동상을 배경으로 결혼 기념사진 촬영에만 몰두한다. 위대했던 혁명가는 이제 기념물로만 남아 역사가 되고 추억이 되어간다. 이는 작가가 레닌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혁명은 이제 추억인 셈이다. 그것이 21세기의 씁쓸한 현실이다. ■ 박평종
레닌이 있는 풍경 속에 서있다. 지독히 쓸쓸하다. 이방인의 눈에 누구도 관심 없이 홀로 서있는 그의 동상이 몹시도 낯설다. 하지만 그의 이상이 인민을 배반했더라도 인민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의 육체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서쪽 끝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쪽 끝 사할린까지 서있다. 사회주의가 붕괴하던 때 러시아 전역에 있던 스탈린은 사라졌다. 그는 레닌의 과오까지도 모두 안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레닌은 남았다. 도시 곳곳에 무관심으로 방치되었어도 그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정말 그는 살아있는 것일까?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율리시스의 시선〉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루마니아에서 철거된 거대한 레닌 동상을 실은 배가 다누베강 국경수비대를 지날 때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배에는 아무도(nobody) 타고 있지 않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 역사는 무기력하게 과거를 되풀이 하고 있다. 민족 간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고,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주의는 극에 달하고 있다. 세력의 균형 속에서 그나마 보존되어 오던 다양성은 이제 세계화라는 이름의 공습을 받아 멸종돼 가고 있다. 언어도, 문화도, 정신도 모두 말이다. 이, 참을 수 없이 가해지는 맥도날드 식 폭력에 진저리치며 기차에 올랐다.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타고 9,938km를 갔다. 아주 먼 여행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와 예카테린부르크, 우랄산맥을 넘어 서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 이르쿠츠크를 지나 극동의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횡단철도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노선이다. 서울과 부산을 11번 왕복해야하는 엄청난 거리로, 쉬지 않고 달려도 8박9일이 걸리는 여로이다. 당연히 호기심 많은 관객이라면 평생에 한번은 도전하고픈 길일 것이다. 하지만 단지 여행자로서 이 구간에 도전한다면 비싼 도시 물가와 낙후한 농촌, 불안한 치안과 부패한 경찰과의 안 좋은 추억만을 가지고 돌아올지 모른다. 그것이 러시아의 현실이며 지금 내가 다녀 온 길 위에 놓인 상투적인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그 한 꺼풀을 벗겨내 지난 80년 동안 세계를 분할 지배했던 소비에트 강국이 사회주의 몰락 후 어떻게 변모하는지 확인 할 수 있었다. 한국산 핸드폰과 대형 TV, 자동차가 휩쓸고 있는 새로운 시장과도 만나고, 재빠르게 자본주의 전도사로 변신해 사기를 치려는 어설픈 러시아인도 만났으며, 아직도 맑스-레닌주의를 신봉하며 크렘린 앞에서 눈물어린 데모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광활한 시베리아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가는 민족들을 쓸쓸히 지켜보았고, 또한 녹슬어가는 레닌의 동상들을 봤다. 그리하여 내 가슴 속 심연의 채 치유되지 않은 고통과 슬픔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지나 온 철길을 되돌아보면 파노라마처럼 수많은 풍광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이 실제 내가 본 풍경에 오버랩된다. 사진가 요셉 쿠델카가 찍은 레닌 사진이다. 사진에 담긴 루마니아의 다누베 강을 흘러가는 처연한 레닌의 풍경은 충격을 넘어 내 가슴 속 깊이 파고든다. 쿠델카는 체코출신으로 ‘프라하의 봄’을 몸으로 맞섰고, 영국으로 망명해 세계적인 사진가그룹 ‘매그넘’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많은 세월이 흘러, 쿠델카가 자신의 고향과 동구를 다시 여행하게 된 것은 테오 앙겔로플로스 감독에게 영화스틸 사진을 제안 받으면서였다. 그가 준비한 영화는 사라져 버린 전설적인 그리스인의 필름을 찾는 한 영화감독의 시선으로 바라본 발칸반도의 풍경이 담긴 〈율리시즈의 시선〉이었다. 이 영화의 스틸 작업을 위해 노쇠한 쿠델카는 6X17인치 린호프 대형 파노라마 카메라를 홀로 매고 일행을 쫒았다. 그는 사회주의 해체와 함께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레닌동상을 묵묵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대형 사진에 옮겼다. 그것은 한 시대 종말의 지표이자 집시처럼 떠도는 쿠델카의 눈에 비친 묵시록적인 풍경이었다. 나 역시 그 처럼 ‘율리시즈의 시선’으로 레닌이 있는 러시아 풍경을 본 것뿐이다. 하지만 이 사진이 나의 기대와 달리 러시아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한다. 다만 나의 사진이 그 실체에 조금 다가갈 수 있었고, 그것이 관객들에게 전달되길 기대할 뿐이다. ■ 이상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