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0. 큐티
히브리서 11:23 ~ 31
믿음의 선진 – 모세, 출애굽 백성, 기생 라합
관찰 :
1) 모세 부모의 믿음
- 23절.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두려워 아니하였으며” => 모세의 믿음은 그의 부모의 믿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부모의 믿음은 이집트 파라오의 명령에 의해 아이를 죽이려는 시도에 대해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그냥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 믿음이다. 석 달 동안 그들이 죽을 것 같은 위기의 순간 순간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바로의 공주에게 아이를 보낼 준비가 되었다. 이 시기에 아이를 살리기 위한 방안을 찾고 찾았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지혜로 바로의 공주 하셉수트가 나일강으로 나오는 시간을 알게 되고 그 과정을 하나님을 의지하며 갈대상자에 담아 떠내려 가게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모세의 모친 요게벳의 믿음과 지혜가 모세를 담은 갈대상자에 담겨졌다.
2) 모세의 믿음
- 24절~25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 모세가 어머니 요게벳의 교육으로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알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가 히브리인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이집트의 왕자로서 파라오의 자리를 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어찌하던지 간에 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을 바로의 공주의 아들보다 나음으로 여겼던 것이다.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때 모세가 경험한 하나님 체험이 그를 광야에서의 40여년의 시간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들고 고민하게 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시내산에서의 떨기나무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실존을 마주하게 되면서 그는 완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내려놓는 온유함에 도달하는 배경이 되었다.
-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 모세의 믿음의 핵심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연결되어있음을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다. 어떻게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참 놀라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정말로 모세는 1400여년의 시간을 격하고 예수님을 바라는 믿음을 어디서 얻을 수 있었을까? 하나님이 쓰게 하신 모세 오경의 내용들을 자세히 살피면 그 흔적이 나오는 것으로 여겨진다. 신명기에 보면 그가 너무나 자세히 이스라엘의 역사를 축복과 저주의 관점에서 예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도 너무나 신비한 이야기이다. 이 모든 것들은 변화산에서의 예수님을 만나 모세가 죽은 이후가 아니라 살아생전에 성령의 이끌림으로 시간과 공간을 격하여 예수님을 만나는 역사를 체험함으로 그 향후에 있을 일들을 모세가 미리 알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성령의 역사는 원래 시간의 개념, 공간의 개념이 모호해진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그렇게도 들어가길 원했는데, 변화산에서의 체험을 통해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무엇보다 그가 주인으로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구속사, 그리고 장차 임할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획을 예수님을 통해 깨닫게 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이 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연구해 보아야 할 과제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믿음이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견딤으로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 27절a.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 애굽은 당대에 별천지의 세상, 가장 번화한 제국이었다. 그곳을 떠나 광야로 나아가는 것은 참으로 고통과 어려움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믿음으로 떠난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경험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이지만,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등떠밀려 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애굽을 떠나 광야로 밀뜨려져서 들어가게 되었다.
- 27절b.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 파라오 앞에 선 모세도 그의 권세와 압박으로 두려움이 임했다. 그러나 모세는 파라오의 권세와 그 압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에 파라오의 압박을 참아낼 수 있었다. 때문에 10가지의 재앙으로 계속하여 진노하는 파라오 앞에 나갈 때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압박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다.
- 28절.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한 것이며” => 모세가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고 모세는 그것을 믿음으로 준행한 것이다.
- 29절.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니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 출애굽하는 이스라엘이 통과한 ‘홍해바다’가 발목 밑 정도 깊이의 ‘갈대바다’로 통과한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말을 타고 전차를 탄 파라오의 군대가 물에 빠져 죽었을리가 없다. 홍해가 갈라지는 그 위엄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고 250만의 백성 모두를 홍해로 들어가게 하는 행위는 참으로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이것을 믿음이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고자 따라 들어간 자들은 결국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것이고, 하나님의 권세에 도전한 것과 같은 것이기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죽음의 길을 자초한 것이 되었다.
3) 출애굽한 백성들의 믿음
- 30절.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 인류 역사상 성을 돌기만 했다고 성이 무너진 일은 이 때 한번 뿐이다. 견고한 성이 아니라 허투루한 성일지라도 그런 식으로 무너진 적은 없다. 여리고 성, 가나안 땅의 중간에서 떡 버티며, 높고 견고하며, 이중 벽으로 도시를 에워싸고 있던 불패의 성이 무너진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성을 돌았기 때문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설명을 하고 있다. 모세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출애굽한 백성들이 함께 이 믿음에 동참한 것임을 히브리서 기자는 밝히고 있다. 물론 모세의 영도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믿음이 발생하게 되었고, 그 믿음에 동참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4) 기생 라합의 믿음
- 31절a.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 라합은 기록될 때마다 ‘기생’을 붙여서 표현한다. 거론되는 라합도 부담스럽고, 그 후손들도 부담스럽고, 예수님의 조상이기에 듣는 우리도 부담스럽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구태여 기록하게 하신다. 그 이유는 라합의 믿음이 분명한 것이기 때문이고, 그녀의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 31절b.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 라합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이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그녀가 알았고 경배하였기에 이런 결정을 한 것임을 출애굽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라합의 결정은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연관된 집안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중요한 결정이었고, 그렇기에 이 결정은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가르침 :
1)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믿음의 절정을 설명한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모세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출애굽 백성과 기생 라합의 믿음을 통해서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한다.
2) 모세의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있어서 독특하다. 그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자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그 길을 걷게 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믿음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결단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믿음의 본질은 모세의 것이나 우리의 것이나 동일한 것이 되어야 한다.
3) 라합의 믿음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지는 믿음이다. 그녀가 예수님의 조상의 반열에 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방인에다가 기생이고, 여러 남자를 경험한 여성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의 믿음을 소중히 여기셨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 믿음을 더욱 가치 있게 평가해 주신 것이다.
4) 이 세상의 가치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치를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모세와 출애굽 백성들과 라합의 믿음이 공통요소이다.
적용 :
1)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의 가치를 중심을 놓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이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 사는 자가 아니며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에 중심을 두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 나의 중심은 어디에 서 있는가? 날마나 언제나 생각하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2) 믿음의 창조자이신 예수님께 믿음을 간구드리자. 여전히 나는 믿음이 부족하고, 더 큰 믿음이 요구되는 상황에 처해있다.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주님께 더욱 초점을 맞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