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a-Cola의 역사-6】
이 포스터와 관련해 잘못 알려진 오해가 있는데, 코카-콜라 회사가 산타클로스의 현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즉 흰색 소매가 달린 붉은 색 옷을 입고 있는 수염 달린 남자가 자사의 로고인 흰색과 붉은색과 매칭시키기 위해 그 색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붉은색의 옷을 입은 산타의 이미지는 이미 확고하게 설정되어 있었다.
1927년 11월 27일 자 뉴욕타임즈에는 표준적인 산타클로스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키, 체중 그리고 붉은 옷에 후드를 걸치고 흰색 소매가 달린 모습은 거의 표준화되어 있었다.
선물이 가득한 자루, 불그스레한 볼과 코, 진한 눈썹, 유쾌하고 배가 불룩 나온 효과는 분장에 불가피하게 필요한 부분들이다.
코카-콜라 회사는 광고에 산타를 넣음으로써 어린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고 코카-콜라와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1930년대는 코카-콜라의 아성에 3가지의 도전이 제기됐다. 금주법의 종언, 1929년 경제 대공황,, 그리고 강력한 경쟁자인 펩시-콜라의 등장이었다.
금주법의 폐지는 코카-콜라 판매에 재앙적 수준의 충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금주법의 폐지는 코카-콜라의 판매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코카-콜라는 알코올과는 다른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 코카-콜라는 여러 상황에서 소비가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일부 사람에게 있어 코카-콜라는 사회적 음료로서 커피의 위치를 차지했다.
코카-콜라는 알코올음료와는 달리 하루 중 어느 때에 소비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나이를 불문하고 마실 수 있는 음료였다.
금주법의 시행 기간에 회사의 탁월한 홍보 책임자였던 아키 리는 바에서 맥주나 다른 알코올을 마시는 대신에 밝고 가족적인 대체품으로, 우울한 경제적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코카-콜라를 추천했다.
또한 코카-콜라를 팔기 위해 라디오라는 새로운 기술을 선도적으로 활용했고, 많은 영화에도 코카-콜라를 등장시켜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화려함과 현실 도피를 연결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코카-콜라의 광고는 행복하고 걱정이 없는 매력적인 세상을 묘사했다. 그 결과 코카-콜라는 대공황 시기에도 번창했다.
코카-콜라는 겨울철에도 팔리는 음료였고, 알코올음료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겐 무알코올 음료였고, 카페인의 소비를 보편화한 음료였고,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도 매력을 유지하는 저렴한 음료였다. 펩시-콜라는 1894년에 시작된다.
두 번의 파산을 겪은 후 1930년대에 과자점과 음료 체인을 소유한 뉴욕의 기업인 찰스 구스의 손에 넘어가면서 펩시는 코카-콜라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
그는 코카-콜라가 180cc 병에 받는 5센트의 가격으로 360cc 병을 판매하면서 매출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병이 더 크다고 해서 원가는 거의 추가되지 않았다.
비용의 대부분은 병 작업과 배송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펩시의 이러한 전략은 금전적으로 쪼들리는 소비자에게 크게 어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