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의 경건생활,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해 말씀하신 다음,
보물과 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보물’은 보석을 나타내는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
‘주님을 경외할 줄 아는 지혜’(이사 33,6)를 상징하기도 하며,
또한 ‘이스라엘’에 견주기도 합니다(탈출 19,5; 신명 7,6).
한편 ‘보물’은 획득하여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와 있으니 찾은 이에게 발견됩니다.
또한 발견하기만 하고 차지하지 못한 이도 있고,
그런가 하면 아예 찾아 나서지도 않은 이가 있고,
찾았으나 악용하는 이도 있습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마태 6,19)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마태 6,20)
그렇습니다.
우리는 땅에 보물을 쌓아둘 수도 있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수도 있습니다.
땅에 쌓아둔 보물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위해 쌓아올린 보물이지만,
좀 먹고 녹슬고 도둑 받을 수 있는 보물입니다.
하늘에 쌓는 보물은 하느님 앞에서 쌓아올린 보물이고,
영원히 남는 ‘의로움의 보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 6,21)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을 보면, 자신이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곧 값진 보물이라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눈이 어디를 향하여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우리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는지, 하느님을 보고 있는지,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보고 있는지,
하느님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보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마음은 어디에 있겠는가?
당연히 주님의 마음은 분명 여기 저희 안에 와 있습니다.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당신 마음이 와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당신의 보물인지라 당신의 눈은 지금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당신 목숨을 내어주고 얻은 소중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제 마음에 와 있는 주님의 눈동자를 관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주님의 눈은 나를 향하여 있는데 내 마음의 눈은
어디를 향하여 있는지도 보아야 할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몸의 등불'인 '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마태 6,23)
그렇습니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해질 것입니다.
곧 편견과 고정관념이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눈이면,
환하고 투명하게 볼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깨끗하면 볼 것'(마태 5,8)이라고 했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이 맑아져야 할 일입니다.
만약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눈이 성하지 못하면'(πονηροσ)은 직역하면 ‘악하면’으로, 곧 ‘악한 눈’을 뜻합니다.
그러니 보물의 처신이나 사용이 악하지 않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리 보물이라 할지라도 악하게 사용되면
오히려 자신을 어둠에 빠뜨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눈은 몸의 등불이다.”
(마태 6, 22)
주님!
제 눈이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있는 것을 쓸모없다고 보는 불평의 눈이 아니라,
있는 것을 소중하다고 보는 축복의 눈이 되게 하소서.
보아도 보지 못하는 눈이 아니라, 모든 것 안에서 경탄과 탄성,
경배와 경외를 바라보게 하소서.
상처를 보되 그 속에서 구원을 볼 줄을 알고,
죄를 보되 자책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았음을 보는 맑은 눈이 되게 하소서.
진부함을 넘어 경이로움을 보고, 행위를 넘어 존재를 보는,
거부할 수도 거부될 수도 없는, 그 무엇도 떼어놓을 수 없는,
당신의 사랑의 눈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