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들, 국회 앞에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촉구
국회의원들에 직접 마련한 개정안 전달
동료지원센터 설치, 입·퇴원 제도 개선 등 담겨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라”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작은 현수막을 들고 있다. 현수막에는 각각 “정신건강복지법 개정하라!”(왼쪽), “동료지원센터 설치하라!”(오른쪽)라고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가 5일 오후 1시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 남인순·서미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함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김소영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가 5일 오후 1시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 남인순·서미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함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신장애인들은 국회의원들에게 개정안을 전달하며 정신장애인을 위한 동료지원센터 설치, 보호의무자 폐지 등을 비롯한 입·퇴원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 여전히 미비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반드시 필요”
2016년,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정신건강복지법)로 전면 개정됐다. 기존의 법에서 강제입원 요건을 완화하고 국가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복지서비스 지원을 새롭게 규정했다.
올해(24년) 1월 2일, 정신장애인들의 요구가 일부 반영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동료지원쉼터 설치·운영 근거 △동료지원인 양성 및 활동지원 △퇴원 시 절차조력인 제도, 그밖에 △조기 발견 체계 △트라우마센터 설립 등의 내용이 법에 추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개정 및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입장이다. 이들이 마련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는 △동료지원센터 설치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 등 입·퇴원 제도 개선 △주간활동지원, 위기지원 및 전환지원 △정신응급지원체계 △정신건강권익옹호체계 구축 등이 포함돼 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정신질환자가 정신질환자 동료에 대한 상담 및 교육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료지원인’과 정신질환자를 임시로 보호하면서 동료지원인 상담 등을 제공하는 ‘동료지원쉼터’는 규정돼 있지만, ‘동료지원센터’ 설치에 대한 근거는 포함돼 있지 않다.
정신장애인들이 요구하는 ‘동료지원센터’는 동료지원인 양성 및 동료 간 상담 및 지원, 정신질환자 권익 옹호 활동, 주간활동지원서비스 제공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센터를 말한다.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자기결정에 의해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같은 경험을 한 동료들에게 체계적인 동료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센터에 대한 설치 및 운영 근거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보호의무자 제도’란 보호의무자에게 정신질환자의 입·퇴원과 치료에 관여할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정신장애인들은 보호의무자에게 부여된 과도한 권한과 책임을 줄이고 정신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보호의무자 및 의무 규정,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의 입원유형 현황에 따르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77%로 강제입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작은 현수막을 들고 있다. 현수막에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하라!”, “동료지원센터 설치하라!”, “정신병원 입원제도 개혁하라!”,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확충하라!” 등이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권 침해, 제대로 된 제도 없기 때문”
조인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되고, 강제입원 된다. 입원되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하거나 사망하기도 하며 입원 후 자의로 퇴원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다. 입원하는 동안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격리·강박 당하고 과도한 약물을 주입 당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에 대한 회전문식 강제입원과 인권 침해가 반복되는 것은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 때문만은 아니다.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을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시민으로 바라보지 않는 제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오늘(5일) 제출하는 정신건강복지법 전면 개정안은 당사자들의 욕구와 필요가 반영된 법안이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안이다. 각 조문은 당사자의 삶, 치료, 가족, 사회적 통합과 연결되어 있다. 이 변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미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병원 외 다른 선택지 없어… 동료지원 시스템 구축해야”
정신건강복지법 입법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제형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정신보건법에서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됐지만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회복할 수 있는 대안적 치료 방법이나 직업서비스, 활동지원서비스 등은 마련되지 않았었다. 지역사회에서 조기에 발견되어 치료나 회복으로 연결될 수 있는 체계 또한 구축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정 변호사는 “당사자와 가족들은 병원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며 “지역사회에는 정신질환자나 정신장애인을 무서운 존재라고 여기는 편견의 시선이 가득하다. 이런 편견을 해소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당사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리고 동료끼리 지지하고 활동할 수 있는 동료지원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신건강복지법 입법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제형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 “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 국가에 있어… 입·퇴원 제도 개선하라”
반희성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정신장애인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평균 입원 기간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상위권으로 200일이 넘는다. 그에 반해 지역사회 서비스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회복은 치료와는 다른 의미이다. 회복의 상태란 완치는 아니더라도 당사자로서 무탈하게 살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희성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반 센터장은 “현재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아닌 가족 등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 2016년에 도입된 동의입원은 자의입원 유형으로 분류되나 취지와 달리 강제입원 요건과 절차를 회피하기 위한 우회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도 가족들에게 사실상 입·퇴원의 결정권을 부여하여 가족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치료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보호의무자 제도를 폐지하고 입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 센터장은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당사자가 된 것이 슬프지만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너무 살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나를 비롯한 당사자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무탈하게 살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가 (왼쪽부터) 김윤 의원, 남인순 의원, 김예지 의원과 서미화 의원실에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및 당사자 1201명의 개정 지지 서명록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 김윤·남인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개정안 통과를 위해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하며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표했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참석한 국회의원들에게 개정안 및 당사자 1201명의 개정 지지 서명록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