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중용법(讀中庸法)
朱子曰 中庸一篇을 某妄以己意로 分其章句하니 是書豈可以章句求哉리오 然이나 學者之於經에 未有不得於辭而能通其意者니라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중용(中庸)》 한 책을 내가 망령되어 내 뜻으로 장구(章句)를 나누었으니, 이 책이 어찌 장구(章句)로써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배우는 자가 경서(經書)에 대하여 말을 알지 못하면서 그 뜻을 통달하는 자는 있지 않다.”
又曰 中庸은 初學者未當理會니라
○ 中庸之書難看하니 中間에 說鬼說神하고 都無理會하니 學者須是見得箇道理了라야 方可看此書將來印證이니라
○ 讀書之序는 須是且著(착)力去看大學하고 又著力去看論語하고 又著力去看孟子하여 看得三書了하면 這中庸은 半截都了라 不用問人하고 只略略恁看過요 不可掉了易底하여 却先去攻那難底니라 中庸은 多說無形影하여 說下學處少하고 說上達處多하니 若且理會文義면 則可矣니라
또 말씀하였다.
“《중용(中庸)》은 처음 배우는 자가 이회(理會)할 수 없다.”
○《중용(中庸)》의 책은 보기 어려우니, 중간(中間)에 귀(鬼)를 말하고 신(神)을 말하여 도무지 이회(理會)할 수 없다. 배우는 자가 모름지기 이러한 도리(道理)[진리(眞理)]를 견득(見得)하여야만 비로소 이 책을 봄에 인증(印證)[증명(證明)] 할 수 있을 것이다.
○ 독서(讀書)의 순서는 모름지기 우선 힘을 붙여 《대학(大學)》을 보고, 또 힘을 붙여 《논어(論語)》을 보고, 또 힘을 붙여 《맹자(孟子)》을 보아, 이 세 책을 보고나면 이《중용(中庸)》은 반절을 모두 마치게 된다. 남에게 물을 필요없고, 다만 대강 보고 지나야 할 것이요, 쉬운 것을 놓아두고 먼저 어려운 것을 다스려서는 안된다. 《중용(中庸)》은 형영(形影)이 없는 것을 많이 말하여 하학(下學)[인사(人事)]을 설명한 부분이 적고, 상달(上達)[천리(天理)]을 말한 부분이 많으니, 만일 우선 글 뜻을 이회(理會)한다면 가(可)할 것이다.
讀書에 先須看大綱하고 又看幾多間架니 如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는 此是大綱이요 夫婦所知所能과 與聖人不知不能處는 此類是間架라 譬人看屋에 先看他大綱하고 次看幾多間하고 間內又有小間然後에 方得貫通이니라
책을 읽을 때에는 먼저 모름지기 대강(大綱)을 보고, 또 많은 간가(間架)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하늘이 명(命)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을 따름을 도(道)라 하고, 도(道)를 닦음을 교(敎)라 한다.’ 한 것은 이것이 대강(大綱)이요, ‘부부(夫婦)의 아는 바와 능한 바와 성인(聖人)의 알지 못함과 능하지 못함’은 이러한 종류는 이 간가(間架)이다. 비유하면 사람이 집을 볼 때에 먼저 대강을 보고, 그 다음에 몇 칸인가와 칸 안에 또 작은 칸이 있음을 보아야 하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한 뒤에야 바야흐로 관통(貫通)하게 된다.
又曰 中庸은 自首章以下로 多對說將來하여 直是整齊라 某舊讀中庸에 以爲子思做러니 又時復有箇子曰字라 讀得熟後에 方見得是子思參夫子之說하여 著爲此書로라 自是로 沈潛反覆하여 遂漸得其旨趣하니 定得今章句擺布得來에 直恁麽細密이로라
○ 近看中庸하여 於章句文義間에 窺見聖賢述作傳授之意 極有條理하여 如繩貫棋局之不可亂이로라
또 말씀하였다.
《중용(中庸)》은 수장(首章)으로부터 이하는 상대(相對)하여 말한 것이 많아 매우 정제(整齊)하다. 내가 옛날 《중용(中庸)》을 읽을 적에 자사(子思)가 지으신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또 때로 자왈(子曰)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읽기를 익숙히 한 뒤에야 바야흐로 자사(子思)께서 부자(夫子)의 말씀을 참고하여 이 책을 저술하셨음을 발견하였노라. 이로부터 침잠(沈潛)하고 반복(反復)하여 마침내 점점 그 지취(旨趣)를 알았으니, 이제 장구(章句)를 정하여 펴놓음에 참으로 이처럼 세밀히 하게 되었노라.
○ 근간(近間)에 《중용(中庸)》을 보아, 장구(章句)의 글 뜻 사이에서 성현(聖賢)들이 술작(述作)하고 전수(傳授)한 뜻이 지극히 조리(條理)가 있어 먹줄이 바둑판을 꿰뚫음과 같아 어지럽힐 수 없음을 엿보았노라.
中庸은 當作六大節看이니 首章이 是一節이니 說中和하고 自君子中庸以下十章이 是一節이니 說中庸하고 君子之道費而隱以下八章이 是一節이니 說費隱하고 哀公問政以下七章이 是一節이니 說誠하고 大哉聖人之道以下六章이 是一節이니 說大德小德하고 末章이 是一節이니 復申首章之義하니라
《중용(中庸)》은 마땅히 여섯 개의 큰 절(節)로 나누어 보아야 하니, 수장(首章)이 이 1절(節)이니 중화(中和)를 말하였고, ‘군자중용(君子中庸)’로부터 이하 열 장(章)이 이 1절(節)이니 중용(中庸)을 말하였고, ‘군자지도비이은(君子之道費而隱)’ 이하 여덟 장(章)이 이 1절(節)이니 비은(費隱)을 말하였고, ‘애공문정(哀公問政)’ 이하 일곱 장(章)이 이 1절(節)이니 성(誠)을 말하였고, ‘대재성인지도(大哉聖人之道)’ 이하 여섯 장(章)이 이 1절(節)이니 대덕(大德)·소덕(小德)을 말하였고, 끝 장(章)이 이 1절(節)이니 다시 수장(首章)의 뜻을 거듭 말하였다.
問中庸大學之別한대 曰 如讀中庸求義理는 只是致知功夫요 如謹獨修省은 亦只是省意니라 問只是中庸은 直說到聖而不可知處로소이다 曰 如大學裡也에 有如前王不忘은 便是篤恭而天下平底事니라
<혹자가>《중용(中庸)》·《대학(大學)》의 분별을 묻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예를 들면 《중용(中庸)》을 읽어 의리(義理)를 찾는 것은 바로 <《대학(大學)》의> 치지공부(致知工夫)요, 홀로를 삼가며 닦고 살핌은 또한 바로 <《대학(大學)》의> 성의(誠意)이다.” “이 《중용(中庸)》은 성스러워 알 수 없는 부분을 곧바로 말씀하였습니다.” 하고 묻기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학(大學)》에 또한 ‘전왕(前王)을 잊을 수 없다.’고 한 것은, 바로 《중용(中庸)》의 ‘공손함을 지극히 하면 천하(天下)가 평해진다.’는 일이다.”